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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4장 1절 ~10절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왕이 유다의 여호야킴왕의 아들 여코냐와 유다의 고관들을 목공들과 대장장이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부터 사로잡아 바빌론으로 데려온 후에, 주께서 내게 보여 주셨으니, 보라, 무화과 두 광주리가 주의 성전 앞에 놓여 있더라. 1)
The LORD shewed me, and, behold, two baskets of figs were set before the temple of the LORD after that Nebuchadressar king of Babylon had carried away captive jeconiah the son of Jehoiakin king of Judah, and the princes of Judah, with the carpenters and smiths, from Jerusalem, and had brought them to Babylon. 1)
목공들과 대장장이들이 언급됨은 성전 건축의 기술자들에 대한 언급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는 무화과 열매의 비유에서 무화과는 유다의 믿음의 열매인데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라는 우리 마음안의 성전 건축에 대한 열매를 말씀하심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두 광주리의 무화과는 성전인 우리를 말씀하시는 것인데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은 다수가 진리라고 생각하고, 중용이라는 덕목으로 중간을 선택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지만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천국과 지옥에는 중간은 없습니다. 이 세상은 중간이 있지만 이 세상이 끝으로 다가갈수록 철저하게 양극단으로 구분될 것입니다.
이는 백신에서도 나타난 현상으로 세상의 불편을 피하고 세상의 유익을 얻는데 타협한 사람들은 빠짐없이 백신을 맞았습니다. 백신에는 접종과 접종거부외에는 그 사이에 중간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망설임은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두가지 선택중 하나를 선택하여 그 자신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의 보호하심을 입어 백신을 접종하는데 이르지 않으며,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기록된 말씀에 나오는 짐승의 표를 결코 받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결국은 우리의 선택이 곧 우리의 정체성이 될 것입니다. 지금 현재의 모습보다 우리가 선택하는 열매로 우리의 실체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무화과 같은 아주 좋은 무화과가 있고 다른 광주리에는 아주 형편없는 무화과가 있어 너무 나빠서 먹을 수가 없더라. 2)
One basket had very good figs, even like the figs that are first ripe: and the other basket had very naughty figs, which could not be eaten, they were so bad. 2)
naughty ① 말을 듣지 않는 ② (비격식) 부적당한 ③ 장난꾸러기인 ④ 외설한
무화과는 유다의 열매의 모습입니다. 지금의 우리와 같이 유다도 끝에 이르기전에는 다양한 무화과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끝에 다가갈수록 좋은 무화과와 아주 형편없는 무화과로만 갈라질 것입니다. 지금의 제 자신과 당신도 현재는 어느 중간에 위치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끝에 다가갈수록 우리가 점차 아주 좋은 무화과로 변하던지 혹은 아주 형편없는 무화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백신이나 짐승의 표 모두 중간의 선택은 없으며, 그 선택으로 우리의 정체성이 좋은 무화과인지 형편없는 무화과인지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백신을 접종하였다고 해도 그것이 기록된 성경에 구원에 관한 조건으로 언급이 없으므로 구원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말씀에 기록된 짐승의 표만이 받음으로 구원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때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기에 내가 말씀드리기를 "무화과이온데 좋은 무화과는 아주 좋고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가 없으니 그것들이 너무 나쁘나이다." 하였더라. 3)
Then said the LORD unto me, What seest thou, Jeremiah? And I said, Figs; the good figs, very good; and the evil, very evil, that cannot be eaten, they are so evil. 3)
O 주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여 말씀하시니라. 4)
Again the word of the LORD came unto me, saying, 4)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이곳에서 칼데아인들의 땅으로 보낸, 유다의 사로잡혀간 자들을 이 좋은 무화과들같이 그렇게 인정하리라. 5)
Thus saith the LORD, the God of Israel; Like these good figs, so will I acknowledge them that are carried away captive of Judah, whom I have sent out of this place into the land of the Chaldeans for their good. 5)
위 말씀에 나오는 유다의 사로잡혀간 자들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과 같은 사람들로 느껴집니다. 즉 유다라는 국가가 자신들의 계획에 의존하다가 이민족에 멸망하여도 그 개인은 각자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는 집단적인 은혜는 있지만 결국 구원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것으로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구원은 각자에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집단적인 구원은 있을 수 없으며, 집단적인 은혜는 구원의 기회의 제공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는 내가 내 눈을 그들에게 선하게 두며 내가 그들을 다시 이 땅으로 세우고 넘어뜨리지 아니하며 내가 그들을 심고 뽑아내지 아니하리라. 6)
For I will set mine eyes upon them for good, and I will bring them again to this land: and I will build them, and not pull them down; and I will plant them, and not pluck them up. 6)
집단적인 재앙에서 각자가 보호를 받는 모습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휴거라고 생각하는 형식과도 같음입니다. 한국교회에서 휴거를 환난 전에 하늘로 들려올라가서 이 땅의 재앙에서 면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방식은 다양한 것입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Because thou hast kept the word of my patience, I also will keep thee from the hour of temptation, which shall come upon all the world, to try them that dwell upon the earth.
개역개정 / KJV 요한계시록 3장 10절
위의 예레미야 24장 6절의 말씀이 곧 keep이라고 저는 느껴집니다. 시험의 때에 우리를 지켜주심은 곧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처럼 고난의 시간속에서도 그들의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일은 현재 지금의 우리에게도 일어났습니다. 백신에 대해서 알게 해주시고, 그것을 거부할만한 믿음을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것입니다. 이는 짐승의 표의 시대에서도 우리를 지켜주시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나를 아는, 즉 내가 주임을 아는 마음을 주리니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는 그들이 그들의 온전한 마음으로 내게 돌아올 것임이라. 7)
And I will give them an heart to know me, that I am the LORD: and they shall be my people, and I will be their God: for they shall return unto me with their whole heart. 7)
이글을 읽는 분이나 저는 하나님이 주이심을 아는 복을 받았습니다. 다만 이것은 구원이 아니라 구원의 기회제공이며, 저의 블로그 구독자분들이 모두 누리는 집단적인 은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제공도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을 바라보게 됩니다.
위 말씀에서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라는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만들어짐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관계는 구원의 계약의 관계로 계약은 양쪽 당사자 모두 동의가 이루어져야만 성립되는 관계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유지함이 곧 살아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돌아옴의 의미는 바빌론으로 끌려감에도 주의 지켜주심(keep)으로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다니엘과 세 친구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부분입니다.
O 그들이 먹을 수 없는 나쁜 무화과들처럼 그렇게 나쁘므로 주가 분명히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 땅에 남아 있는 유다 왕 시드키야와 그의 고관들과 예루살렘의 잔류자들과 이집트 땅에 거하는 자들을 넘겨주리라. 8)
And as the evil figs, which cannot be eaten, they are so evil; surely thus saith the LORD, So will I give Zedekiah the king of Judah, and his princes, and the residue of Jerusalem, that remain in this land, and them that dwell in the land of Egypt: 8)
좋은 무화과와 같은 열매를 맺는 사람들과 나쁜 무화과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의 결과가 완전히 다르게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우리는 구분하지 못하지만 주께서는 하시고 우리 스스로가 선택으로 그것을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때에 가까워질 수록 죄의 사람들은 더욱 죄로 접근하고 이와반대로 구원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더 순결하여 질 것입니다. 다만 죄로 향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으므로 마지막때에 세상이 어지러워 보이게 될 것입니다.
O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광대하여 그 길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으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협소하여 그 길을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
마태복음 7장 13절 14절
아마도 짐승의 표의 시대가 열리면 우리에게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에 하늘로 올라가 이러한 일들을 회피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니엘과 세 친구들처럼 죽음을 각오하고 믿음을 저버리지 않음으로 우리가 그 고난속에서 지켜주심을 받을 것입니다. 백신에서도 백신에 대한 양심적인 사람들의 목소리가 백신을 접종을 거부할 수 있도록 지켜주었습니다. 그러한 양심적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담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진리 곧 하나님의 지켜주심은 곧 진리를 향한 우리의 믿음과 구원의 약속에 대한 소망으로 이 땅의 잠시의 것을 집착하지 않음으로 사탄 마귀들에게 속아 이용당하여 그들과 함께 지옥에 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택이 처음에는 아주 작은 차이처럼 보이겠지만 점차 끝으로 갈수록 그 격차는 벌어져서 양분될 것으로 보입니다. 백신을 맞은 사람과 끝까지 거부한 사람들의 차이는 처음에는 작았지만 점차 커져서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은 4차에 독감백신까지 맞아서 7차 8차에 이르는 중에 있습니다. 사탄 마귀는 그들에게 속아 타협하는 자들에게 더 큰 고통과 시련을 줄수 있을 뿐 조롱과 괴롭힘은 그 끝이 없습니다.
또 내가 그들을 학대받도록 세상의 모든 왕국들로 옮겨 내가 그들을 몰아낼 모든 곳에서 비난과 속담과 조롱과 저주가 되게 하리라. 9)
And I will deliver them to be removed into all the kingdoms of the earth for their hurt, to be a reproach and a proverb, a taunt and a curse, in all places whither I shall drive them. 9)
reproach ① 흠을 잡다 ② …의 비난의 원인이 되다 ③ 비난 ④ (격식) 치욕
proverb ① 속담 ② 소문난 사람 ③ …을 속담으로 표현하다 ④ 비난거리로 삼다
taunt ① (비난·도발을 위한) 비웃음 ② 비꼼(jeer, gibe) ③ 조소의 대상 ④ 비웃다
위 말씀은 마치 지금의 백신접종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백신 접종자들은 학대를 받고 있으며, 그들에게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백신접종 부작용으로 인하여 병원을 방문하면 문전박대를 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한번만 맞으면 끝날줄 알았던 백신은 2가 3가등의 백신을 계속해서 접종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백신접종자들도 눈치를 채고 추가접종을 거부하여 지금은 접종율이 5% 밖에는 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접종을 충분히 한 사람들은 더 이상의 접종을 받지 않아도 그들의 몸이 많이 망가져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접종을 강요했던 자들이 이제와 백신접종은 당사자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다수가 접종자이고, 접종을 거부한 사람들은 속아서 접종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조롱하지 않지만 접종자들은 접종거부자들을 비열하게 조롱하였습니다. 접종자들이 이제는 접종거부자들을 조롱하지 않고, 부러워함은 이미 그들 스스로 조롱을 받는 것입니다.
내가 또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어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었던 땅에서 진멸되게 하리라. 10)
And I will send the sword, the famine, and the pestilence among them, till they be consumed from off the land that I gave unto them and to their fathers. 10)
pestilence ① (치명적인) 전염병 ② (사회·도덕적인) 해악 ③ 역병 ④ 독충(毒蟲)
칼은 전쟁이고, 기근은 식량난이며, 전염병은 지금의 코로나와 같은 것입니다. 위 말씀이 우리에게 읽혀짐은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백신 접종 사기극에서 점차 사람들은 반 반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이 차이는 점차 더 커질 것이며, 확실하게 구분될 것입니다.
현재 지금의 우리에게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이 일어날 환경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남유다가 바빌론의 침략으로 정복당하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믿음을 갖춰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소망이 되며, 우리도 그들과 같이 주의 은혜의 지켜주심으로 이 땅에서 온전하게 돌아옴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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