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로 중요한 것이 현장에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현장주의'는 고(故) 마에다 가쓰노스케(前田勝之助) 명예회장이 강조한 것이다. 그는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고 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분석하다 보면 해야 할 일이 명확해진다. 머릿속으로만 판단하다 보면 본인이 잘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정신을 차려보면 기본이 무너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재무제표에 나오는 숫자만 보고 사업을 통폐합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정통한 임원이 자신의 경험과 현장의 상황을 비교하여 판단해야 한다.
이는 사회 현황을 보는 것도 포함된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존재하는데, 그 원인을 찾아가다 보면 해야 할 일이 보인다는 것이다. 혁신이란 '새로운 가치의 창조'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새로운 데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영역에서 승부를 겨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일을 깊게 파고들면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도레이의 R&D 원칙인 '극한추구'이며, 이것이 우리의 DNA라는 것이다. 도레이(東レ)는 동양의 레이온 회사라는 뜻이다.
1926년 미쓰이(三井) 물산의 면화부서가 독립해 탄생했다. 당시 섬유라고 하면 면이나 마, 모 등의 천연섬유밖에 없을 때다. 도레이는 인류 최초의 화학섬유인 레이온을 만드는 최첨단 기업이었다. 레이온에 이어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아크릴 등의 신소재를 잇따라 개발하며 일본의 대표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아직 이름은 낯설다.
기업이 소비자인 B2B 기업인 데다, 제품의 기본 재료인 소재(素材)를 만드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소재는 사회를 본질적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
‘발열 내의’로 불리는 유니클로의 히트텍은 겨울철 옷을 두껍게 입던 문화를 바꿨다. 이세이 미야케의 옷은 여성이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모두 누릴 수 있게 했다. 혼마의 골프채는 가벼운 채로 공의 비거리를 늘렸다. 보잉의 최신 비행기는 녹슬지 않아 습도를 지상과 맞출 수 있어 쾌적한 비행이 가능하게 했다. 이 모든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 도레이의 소재다. 유니클로 히트텍을 제작할 때 1만번 이상 시제작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의류용 신소재를 개발하는 건 쉽지 않다. 원사, 원면부터 염색, 봉제까지 전 분야에서 축적된 기술이 있어야 가능하다.
도레이는 지금도 더 좋은 히트텍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개발을 계속하고 있다. 개발하다 실패한 사례도 있지만, 실패는 새로운 창조로 이어진다.
‘도레이시(Toraysee)’라는 초극세 섬유가 있다. 원래 의류용으로 개발된 것인데, 때가 너무 잘 타서 실용적이지 않다는 판단에 폐기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그렇게 잘 더러워진다면 차라리 때를 닦는 데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안경닦이용으로 제작·판매했는데 엄청난 인기를 끈 것이다. 원래 안경닦이는 안경을 사면 딸려오는 존재였지만, 도레이시가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은 1장에 500~700엔을 주고 안경닦이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실패한 제품이 새로운 소비 행동을 창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