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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제428편*
독으로 독을 다스리다 (下)
위관은 무사들을 호령하여 등애를 포박했다.
등애의 아들 등충 또한 소란에 놀라 급히 잠자리에서 달려나왔다가 제 아비와 같이 포승줄에 묶이는 신세가 됐다.
등애에게 충성하던 장수와 관리들이 그제서야 무기를 휘두르며 등애 부자를 구해내려 했으나 그것은 헛수고였다.
저 멀리서 모래 먼지를 자욱하게 날리며 종회의 대군이 몰려왔던 것이다.
등애 부자를 구하려고 애쓰던 장수와 관리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종회는 강유와 함께 말에서 내려 등애 부자 앞으로 갔다.
묶여 있는 등애 부자를 보더니 종회는 다른 사람에게 보일 듯 말듯 한 희미한 미소를 짓다가 이내 인상을 쓰더니 채찍으로 등애의 머리를 후려치며 외친다.
"소나 치던 놈이 감히 이런 짓을 꾸민 것이냐!"
옆에 있던 강유 또한 거든다.
"같잖은 놈이 요행으로 큰 공을 세우나 싶더니 결국 이런 꼴이 되었구나!"
등애는 비록 묶여 있었으나 가만히 있지 않고 목청을 높여 욕설을 하며 종회와 강유의 말을 맞받아쳤다.
종회는 등애와 등충을 함거에 실어 낙양으로 올려보냈다.
등애의 군마를 모두 휘하에 넣게 된 종회는 그 기세와 위엄이 대단했다.
종회가 강유에게 말한다.
"내가 이제야 내 평생의 소원을 이루었소!"
강유가 감격에 차 있는 종회에게 차분한 말투로 말한다.
"옛적에 한신(韓信)은 괴통(蒯通)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가 미앙궁에서 화를 당했고,
월나라 대부 문종(文鍾)은 범려(范蠡)를 따라 오호(五湖)로 물러나지 않았다가 칼에 엎드려 죽고 말았소.
한신과 문종의 공이 얼마나 빛났소? 하지만 이해(利害) 판단을 잘 하지 못하고 시기를 살피는 것에 둔하여 화를 당한 것이오.
오늘날 공이 세운 공은 이미 그 위세가 진공을 능가할 지경이오.
이제는 배를 띄워 조용히 발자취를 끊고 아미산(峨嵋山) 깊은 골짜기에서 적송자(赤松子)와 함께 노니는 것이 좋을 것이외다."
강유가 종회의 심사(心思)를 뻔히 알면서도 종회의 마음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했다.
강유의 말은 종회의 권세욕을 은근히 부추길 것이었다.
종회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한다.
"하하하하하! 그 말은 잘못된 것이오.
내 나이가 아직 마흔도 안 됐소.
앞으로 나아갈 생각만 해도 모자를 젊은 나이에 어찌 물러나서 한가하게 노는 일을 본받아야 하겠소?"
종회의 반응에 강유는 일이 제대로 돌아간다 싶었다.
속으로 기뻐하며 종회에게 말한다.
"은퇴할 생각이 없다면 조속히 좋은 계책을 세우시오.
이 늙은이의 잔소리가 없어도 공의 지혜와 능력으로 능히 이룰 수 있을 테지만 말이오."
종회는 웃음에 손뼉까지 치며 기뻐한다.
"하하! 백약이야말로 내 마음을 잘 알아주시는구려."
강유의 말에 종회의 마음은 더욱 들썩였다. 이날부터 두 사람은 날마다 큰 일을 도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럴 때에 강유는 후주 유선에게 밀서를 보냈다.
폐하, 며칠만 더 굴욕을 참고 계시옵소서. 신 강유가 위태로운 사직을 평안케 하고, 어두워진 해와 달이 다시 빛을 내도록 하겠사옵니다.
한실의 운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사옵니다.
종회가 강유와 함께 한창 반역을 꾀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마소로부터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나는 종사도가 등애를 토벌하지 못할까 염려되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와서 장안에 주둔하고 있다.
조만간 만나고자 하여 이렇게 먼저 알린다.
종회는 편지를 다 읽고 강유에게 묻는다.
"이 편지 내용을 보시오.
내 군사가 등애보다 몇 배가 더 많아 내가 등애를 잡는 것은 간단한 일이라는 것을 진공께서도 아실 터인데 직접 군사를 이끌고 장안으로 오셨다니,
이것은 필시 나를 의심하는 것 아니오?"
강유가 대답한다.
"군주에게 의심을 사면 그 신하는 반드시 죽게 마련이오. 등애의 경우만 봐도 그렇지 않소."
"내 뜻은 이미 결정했소.
이 일이 성공하면 천하를 얻을 것이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서촉(西蜀) 땅으로 물러나 지키면, 유비 정도는 될 것이오."
종회의 의지를 보고 강유가 종회에게 계책을 내놓는다.
"근래에 듣자하니 곽태후(郭太后)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오.
장군께서 마치 임금을 시해한 사마소의 죄를 물으라는 태후의 유촉(遺囑)을 받은 것처럼 꾸며서 군사를 일으키시오.
명공의 능력이면 분명히 중원을 손에 넣을 것이오."
종회가 강유의 손을 맞잡으며 말한다.
"백약에게 선봉을 부탁하겠소.
일을 이루고 부귀를 함께 누리십시다."
강유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소.
다만 걱정되는 것이 있소.
과연 여러 장수들이 우리의 뜻을 따르겠소?"
"그것은 걱정하지 마시오.
내일이 원소절(元宵節)이니 등불을 가득 내걸고 장수들을 불러다 잔치를 벌여서 다짐을 받겠소.
불복하는 자는 곧장 목을 베어버릴 것이오."
강유는 일이 뜻대로 돌아가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다음날 종회가 예고대로 잔치를 열었다. 부하 장수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술이 몇 순 배 돌았을 때 종회가 술잔을 꽉 움켜잡더니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장수들이 모두 놀라 종회에게 까닭을 물었다.
종회가 대답한다.
"곽태후께서 세상을 떠나실 무렵, 나에게 이런 조서를 남기셨소.
'사마소는 군주를 시해한 대역죄인으로, 조만간 위나라 황실을 찬탈할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그런 불상사가 닥치기 전에 그대가 토멸하시오.'하고 말이오.
여기 그 내용이 담긴 조서가 있으니 제장들은 이 문서에 서명을 하고 마음을 합쳐 사마소를 벌합시다."
갑작스러운 종회의 말에 장수들은 크게 놀라 그자리에서 서로를 쳐다볼 뿐이었다.
어색하게 눈치만 살피는 분위기를 깨는 건 종회의 노한 목소리였다.
종회는 쥐고 있던 술잔을 탁자 위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 놓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남과 동시에 허리의 칼을 빼서 장수들을 가리키며 외친다.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참형에 처한다!"
장수들은 두려움에 떨며 마지못해 문서에 서명을 했다.
종회는 장수들을 궁궐에 감금하고 군사들을 시켜 그들을 삼엄하게 감시하게 했다.
강유가 종회에게 말한다.
"내가 보기에는 충심으로 명에 따르려는 자가 아무도 없소.
장수들을 생매장 해버리시오."
"좋소. 궁중에 구덩이를 파고 곤장을 수천 개 준비하여 다짐을 받아야겠소.
그래도 따르지 않으려는 놈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때려 죽여 구덩이에 파묻겠소."
종회가 강유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그 옆에는 종회의 심복 장수 구건(丘建)이 곁에 있었다.
구건은 원래 호군 호열(護軍 胡烈)의 옛 부하였다.
호열은 지금 종회에 의해 궁중에 감금되어 있는 신세였다.
구건은 종회가 했던 말을 호열에게 몰래 알렸다.
호열은 울면서 구건에게 부탁의 말을 한다.
"내 아들 호연(胡淵)이 지금 성밖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있으니 종회의 음모를 어찌 알겠나?
자네가 지난 날의 정을 생각해서 이 소식을 내 아들에게 알려주면 고맙겠다.
그리 해주면 내가 죽는다해도 여한이 없을 것이네."
"염려 마십시오. 제가 무슨 수라도 써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와 곧장 종회를 찾아갔다.
구건이 종회에게 말한다.
"주공, 궁에 감금된 장수들이 먹고 마실 것이 마땅치 않습니다.
한 사람에게 오가며 음식을 전하게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평소에도 종회는 구건의 말을 믿었던 터라 아무런 의심 없이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며 당부의 말을 한다.
"내가 너를 깊이 믿어 맡기는 일이니 외부에 새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
"마음 놓으십시오. 엄하게 단속할 방법이 있습니다."
구건은 믿을만한 심복 한 사람을 호열에게 들여보내서 밀서 하나를 받아오게 했다.
그리고 그 밀서를 호열의 아들 호연에게 전했다.
호연은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그 내용에 깜짝 놀랐다.
종회의 음모를 알게 된 호연은 각 진영에 아버지가 보낸 밀서를 돌렸다.
밀서를 받아 본 각 처의 장수들은 급히 호연의 영채로 달려와 계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모인 장수들의 의견은 모두 같다.
"차라리 우리가 죽었으면 죽었지, 역신을 따를 수는 없소!"
장수들의 결의를 보고 호연이 말한다.
"정월 여드렛날 궁중 안으로 짓쳐들어 갑시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되오."
호연이 상세한 계책을 내놓자 감군 위관이 매우 기뻐하며 동의했다.
종회를 치기 위해 군마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삼국지(三國志)제429편 *
천운(天運)의 순환(循環)
종회, 강유의 반란과 이를 저지하려는 위군의 싸움으로 죽은 자가 수백이 넘었다.
쌓여있는 시체가 궁궐 담 밖에서도 보일 지경이었다.
감군 위관(衛瓘)이 남은 군사들에게 명한다.
"모든 군사는 각자의 영채로 돌아가서 왕명이 내릴 때까지 대기하라."
하지만 일부 장병들은 서둘러 돌아가지 않고 보복을 멈추지 않았다.
원수를 갚는다며 자결한 강유의 시체를 찾아다가 그 배를 갈랐다.
놀랍게도 강유의 뱃속에서 나온 쓸개는 달걀만큼이나 컸다.
강유의 배를 갈랐던 그 무리들은 이번에는 강유의 가족들을 모두 찾아내어 몰살했다.
등애의 부하들은 종회와 강유가 죽는 것을 보고 등애 부자가 실려가고 있는 함거의 뒤를 쫓았다.
등애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이 소식은 금세 위관에게 전해졌다.
위관이 근심스러운 얼굴로 말한다.
"등애 부자를 잡은 것이 바로 나다.
그들이 목숨을 건지는 날이면 나는 죽어서 묻힐 땅도 없을 것이다."
곁에 있던 호군 전속(護軍 田續)이 위관의 말을 듣고 말한다.
"강유성(江油城)을 공격할 때,
등애가 저를 죽이려 한 적이 있었는데 모든 장수들이 말려서 겨우 목숨을 건진 적이 있습니다.
그 원한이 사무쳤는데 오늘이 그 한을 풀 때인가 봅니다."
전속이 스스로 앞으로 나서자 위관은 기뻐하며 군사 오백을 주어 등애의 뒤를 쫓도록 했다.
전속과 그의 군사가 면죽땅에 이르러서 보니, 등애 부자는 이미 부하들의 도움으로 함거에서 빠져나와 성도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등애는 달려온 전속이 자기 편인 줄로만 믿고 싸울 태세는 전혀 갖추지 않았다.
등애가 전속에게 돌아가는 상황을 물으려는데 전속이 칼을 휘두르며 달려나와 등애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렸다.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한 군사들이 어지러이 흩어지는 가운데 등애의 아들 등충 역시 누군가의 공격을 받고 죽음을 맞았다.
강유의 죽음 이후로 다른 촉의 장수들도 차례로 생을 마감했다.
백전노장 장익(張翼)이 어지러이 싸우는 중에 죽었고, 태자 유선(劉璇)과 관운장의 후손 한수정후 관이(漢壽亭侯 關彝)도 위군에게 잡혀서 죽었다.
큰 혼란 속에서 성도의 군민들이 서로 싸우고 짓밟히는 동안 죽고 다친 사람의 수가 셀 수 없이 많았다.
열흘 정도가 지나서야 가충(賈充)이 성도에 와서 방문(榜文)을 내걸어 동요하던 민심을 잠재웠다.
그리고 위관으로 하여금 성도에 남아 그곳을 지키게 하고, 폐주 유선(廢主 劉禪)을 낙양으로 압송했다.
낙양으로 가는 유선을 따르는 촉의 옛 신하는 상서 번건, 시중 장소, 광록대부 초주, 비서랑 극정 정도였다.
요화(寥化), 동궐(董厥)은 병을 핑계 삼아 따라가지 않았는데, 후에 모두 울화병으로 죽었다.
이때 위(衛)는 경원(景元) 5년(264)을 함희(咸熙) 원년으로 개원했다.
오나라 장수 정봉(丁奉)은 수춘성을 공략하던 중, 촉이 이미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거두어 본국으로 돌아갔다.
중서승 화핵(中書丞 華覈)이 오주 손휴(吳主 孫休)에게 아뢴다.
"위나라와 촉은 입술과 이 같은 관계였습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인데, 순망치한, 입술이 없어져 버렸으니 방비를 더욱 튼튼히 해야겠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사마소가 오를 칠 날이 머지 않은 듯 하옵니다."
손휴는 화핵의 제안에 따랐다. 육손의 아들 육항을 진동대장군 영형주목으로 삼아 강어귀를 지키게 하고,
좌장군 손이에게 남서 각 군의 요충지를 지키게 했다.
그리고 장강(長江) 유역에 수백 개의 영채를 세워 군사들을 주둔하게 하고, 노장 정봉에게 총 지휘를 맡겨 위의 침략을 대비하게 했다.
촉의 건녕 태수 곽익은 성도 함락 소식에 상복 을 입고 서쪽을 향해 사흘을 통곡했다.
곽익 수하의 여러 장수들이 곽익을 찾아가 묻는다.
"군주가 대위(大位)를 잃었는데 왜 속히 항복하지 않으십니까?"
곽익은 눈물을 그치지 않고 대답한다.
"길이 끊어져서 우리 주군의 안위를 모르는데 내가 어찌 벌써 거취를 결정하겠는가?
위주가 우리 주군을 예로써 대한다면 나도 성을 내놓고 항복하겠지만, 우리 주군에게 해를 끼치고 욕을 보인다면 나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옛 말에도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는 마땅히 죽을 뿐'이라고 하지 않던가?"
곽익의 대답에 장수들도 모두 수긍했다.
낙양에 사람을 보내 후주 유선의 안위를 알아오도록 했다.
한편 낙양으로 압송된 후주 유선은 사마소 앞에 끌려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사마소가 유선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호통을 친다.
"공은 황음무도하여 어진 신하를 내쫓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실패하였으니 죽어 마땅하다!"
유선은 사마소의 호통에 안색이 납빛으로 변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빛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모여 있던 문무관원들 이 사마소에게 아뢴다.
"촉주(蜀主)는 나라의 기강을 잃었으나 속히 항복해왔으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시고 귀순을 허락해 주옵소서."
사마소는 문무관원들의 청에 못이기는 척 유선의 귀순을 승낙했다.
그리고 유선을 안락공(安樂公)에 봉하고 집을 하사하였으며, 달마다 생활비를 주고 비단 일만 필, 시종 일백 명을 내려주었다.
유선의 둘째 아들 유요(劉瑤)와 촉의 신하 번건, 초주, 극정 등은 후작(侯爵)에 봉했다.
그리고 환관 황호(黃皓)에게는 능지처참형을 내렸다.
나라를 좀먹고 백성에게 해를 끼쳤다는 죄목이었다.
건녕 태수 곽익은 유선과 촉의 신하였던 자들이 작위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비로소 위나라에 항복했다.
작위를 받은 다음날, 유선은 사마소의 부중으로 찾아가 절을 올리며 사례했다.
사마소는 크게 잔치를 열어 유선을 극진히 대접했다.
음식과 술이 차려지는 가운데, 위나라의 노래에 위나라의 춤이 곁들여졌다.
사마소는 유선과 옛 촉 신하들의 기색을 가만히 살폈다.
촉의 신하들은 흥겨운 음악과 춤 속에서도 모두 애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하지만 유선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가득했다.
사마소는 이번에는 촉의 노래와 춤을 공연하도록 지시했다.
촉의 음율이 흘러 나오자 촉의 신하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유선만큼은 희희낙락이었다.
마치 서로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 같았다.
사마소가 모사 가충에게 넌지시 말한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무정할 수가 있나! 설령 제갈공명이 살아있었다해도 저런 어리석은 임금을 보필하여 나라를 온전히 지키기는 어려웠을 것인데, 강유 따위가 어림이나 있었겠나?"
사마소의 말에 가충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소가 유선을 돌아보고 묻는다.
"촉의 노래를 들으니 돌아가고픈 마음이 들지는 않소?"
유선은 태연하게 답한다.
"이렇게 즐거운데 촉으로 가고싶은 마음이 들 까닭이 있겠습니까?"
순간 애통해하는 촉나라 신하들의 시선이 유선에게 향했다.
잠시 후, 유선이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려고 자리를 나서는데 극정이 급히 복도로 따라나와 유선에게 묻는다.
"폐하, 촉으로 가고 싶지 않느냐는 사마소의 물음에 왜 아니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만약에 또 같은 질문을 받으면 그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선친의 무덤이 멀리 촉땅에 있으니 서쪽을 바라보면 비통한 마음이 든다고 대답하십시오.
그렇게 말씀하시면 진공은 폐하를 촉으로 보내줄 것입니다."
"아...... 알았소."
유선은 극정의 말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술자리로 돌아왔다.
술에 취한 사마소가 유선에게 같은 질문을 또 한다.
"촉이 그립지 않소?"
후주는 기다렸다는 듯이 극정이 말한대로 대답했다.
하지만 입으로만 울음 소리가 날 뿐, 눈에서 눈물이 전혀 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더니 사마소가 씩 웃으며 유선에게 말한다.
"극정이 그렇게 대답하라 하였소?"
유선은 사실을 들켜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사마소의 말에 대답한다.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유선의 대답에 그 자리에 모여있는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촉의 옛 신하들만 유선의 말에 웃지 않고 고개를 푹 숙였다.
사마소는 잔치에서 관찰한 유선의 솔직한 태도를 보고 그 후로는 유선을 의심하는 일이 없었다.
위의 조정 대신들은 위주 조환에게 표문을 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