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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교인드라망 원문보기 글쓴이: 신행도(117기)
약불전법도중생 (若不轉法度衆生 )하면 필경무능보은자 (畢竟無能報恩者)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
만약에 법을 전하여 중생을 제도하지 못하면 부처님의 은혜는 끝내 갚을 길 없도다.
용수보살의 대지도론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우리는 포교하는 불자가 되셔야 합니다.
포교 3명 하기로 하고 포교 3명 댓가로 오늘 법문을 하겠습니다.
부처님 제자로 살면서 꼭 정리해 보고 싶었던 것이
부처님 연세별로 부처님 일대기를 살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초하룻날마다 부처님 일대기를 연세별로, 살아오신 과정대로
법문을 쭉 하고 있는데 나중에 완성되면 책으로 매서
보급을 하겠습니다.
오늘도 저번 달에 이어서 부처님 일대기 법문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29세에 출가를 하셨고
게살리아라고 하는 곳에서 삭발을 하셨습니다.
그 이후 바가바라는 고행자를 만났고,
곧장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으로 향했습니다.
당시에 수행자들이 마가다국에 특히 왕사성에 많이 모였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시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연찮게 빔비사라왕과 인연이 됩니다.
당시 마가다국의 왕이 빔비사라라고 하는 왕이었는데 앞으로
자주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 앞쪽 부분은 초하룻날 법문을 통해서 말씀을 드렸고
지지난달 빔비사라 왕이 부처님께 출가를 포기하라는 그런 권유가 있었다고 했어요.
빔비사라왕은 수행자 고타마 싯다르타를 보고는 참으로
영민하고 지도력도 탁월해보였던지
“당신 같으면 출가를 하지 말고 왕이 되어서 선정을 베푸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여러 가지 말로 출가 포기를 권유하셨어요.
“정치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정치인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여러 가지 권유를 했지만 고타마 싯다르타에게는 먹혀들지 않았어요.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이런 부탁을 하게 됩니다.
“큰 깨달음을 얻거든 왕사성으로 오셔서
저부터 만나주시고 저부터 제도하여 주십시오.“
하고 빔비사라왕이 수행자 고타마 싯다르타에게 부탁을 해요.
왕과 헤어진 고타마 싯다르타는
데살리등 여러 곳을 다니다가 나중에 많은 스승을 찾아다니면서
공부한 뒤에 일연선하라고 하는 강을 끼고 있는
우루벨라라고 하는 큰 동네의 비산 전 전각산으로 가시게 됩니다.
여기서 한 5년 정도 수행을 하시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전전각산에서 수행을 하실 때 우루벨라라고
하는 이 마을에 내려와서 탁발을 했던 그런 동네라!
탁발을 했기 때문에 많은 은혜를 졌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탁발의 은혜!
음식공양의 은혜를 졌던 그 동네가 우루벨라라!
우루벨라!
우루벨라 라고 하는 동네 이름은 뒤에 또 나타납니다.
부처님께서 나중에 성불하시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이루시고 녹야원에서 최초로 5비구와 청년 야사를 비롯해서 55인을
출가시키면서 60명의 출가제자가 생기게 됩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전도, 포교의 사명을 맡기게 됩니다.
말 그대로 전도선언(轉道宣言)을 하시게 됩니다.
전도선언(轉道宣言)의 내용을 보면 우루벨라 라는 말이 나옵니다.
나도 우루벨라로 가리라 그랬거든요.
전도선언의 원문을 읽어보겠습니다.
비구들이여,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간과 신들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전도를 떠나되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라. 사람 중에는 마음의 더러움이 적은 이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악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 아닌가. 비구들이여, 나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로 가리라. |
나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로 가리라.
우루벨라는 큰 동네 이름입니다.
아무튼 부처님께서는 우루벨라로 가시게 됩니다.
가시는 도중에 젊은이 서른 명을 제도하는 내용을 저번 달에 말씀드렸어요.
너 자신을 찾는 것이 중요하냐!
도망간 여자를 찾는 것이 중요하냐! 기억이 나십니까?
아무튼 동네 구석구석 다니시면서 부처님께 음식 공양을 올리셨던 동네 주민들과
눈인사도 했을 것이고, 또 물질적 공양을 했던 것에 대해 분명히 감사의 말씀도
전했을 것입니다.
그 공덕으로 잘 살라는 축원도 하셨을 것입니다.
날이 저물자 찾아간 곳이 우루빈나 가섭이라고 하는 외도의 집이었어요.
우루빈나 가섭은 법화경 첫 페이지에 나와요.
우루빈나 가섭은 대가섭 마하 가섭과 다른 사람입니다.
우루빈나 가섭!
우루빈나 가섭은 마가다국 전체, 우루벨라의 정신적 지도자였기 때문에 부처님은
전 전각산에 들어오시기 전에 한번쯤 만난 적이 있는 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은 다 찾아다녔기 때문에 그 당시에
우루벨라의 큰 정신적 지도자 우루빈나 가섭을 찾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이 말입니다.
아무튼 우루빈나 가섭은 당시에 큰 지도자였는데 아그니라는 불을 신봉하는 수행자였어요.
부처님은 우루빈나 가섭을 제도하기로 마음먹고 밤늦게 우루빈나 가섭의
수행처를 찾아갔어요. 포교도 생면부지의 사람보다는 한 번이라도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을 포교하는 것이 제일 빨라요. 한번이라도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좋다는 것은 부처님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래요.
날이 저물었는데 우루빈나 가섭의 집에 찾아가서
“우루빈나 가섭이여!
여기서 하룻밤 묵어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랬더니 우루빈나 가섭은 그곳의 유지였기 때문에 상이 좀 있었던 모양입니다.
으스대면서 말했습니다.
“이 곳에는 500명이나 되는 제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대가 쉬어갈 수
있는 당사는 없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500명이나 되는 제자가 머물고 있다니 대단하십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사당에서라도 하룻밤 묵어가게 해 주십시오.”
불교로 말하면 법당에서라도 하룻밤 묵어가겠다 이 말입니다.
“실례될 건 없지만 그 사당에는 사나운 독룡(毒龍)이 살고 있습니다. 당신을 해칠지도 모릅니다”
우루빈나 가섭이 이렇게 말하자 부처님께서는
“괜찮습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하고는 사당을 향했습니다.
부처님은 자리를 깔고 앉아서 가부좌하고 삼매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밤중이 되자 사당 한 구석에서 독룡이 연기를 뿜고 다가옵니다.
그러자 이에 맞서 부처님도 삼매에 들어 대적하기 위해 연기를 뿜었습니다.
그러자 열이 뻗친 독룡이 불을 뿜고 들어옵니다.
부처님 역시 화광삼매에 들어 불꽃을 같이 뿜어댔어요.
사당 안은 온통 불천지가 된 거지요.
바깥에서 이를 지켜보던 우루빈나 가섭의 제자들은 안타까워하며 한 마디 했습니다.
“저 젊은 수행자가 오늘 독룡의 먹이가 되는구나!”
부처님께서는 29세에 출가하여 35세 음력 12월 8일에 깨달음을 얻어 우루벨라에
도착한 것은 36세 때였어요.
부처님께서 36세 때이니 젊은 수행자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사당에 새벽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불이 환했어요. 모든 사람들이 사당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날이 밝자 사당문이 열리고 잡아먹힌 줄 알았던 부처님께서 태연히 걸어 나오셨어요.
부처님의 법력이요.
부처님의 법안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아무리 모진 시련이 우리에게 엄습해 온다 할지라도 부처님을 의지해서 우리가
열심히 기도정진하면 부처님의 법력으로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그러한 것을
보여주는 간접 교훈입니다.
우루빈나 가섭이 이 장면을 보니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라.
그 때 부처님께서는 물이 반쯤 담긴 바루 하나를 내밀면서
“이것이 당신이 섬기던 독룡이요. 잘 보시오”하면서 줬어요.
가만히 보니까 독룡이 부처님 법력에 눌려서 조그만 실지렁이만한 실뱀으로 바루에
반쯤 담긴 물에 들어 있는 거예요.
부처님이 법력으로 완전 제압을 한 거지요.
우루빈나 가섭은 내심
“ 이 사람이 젊기는 하지만 대단하구나”
크게 마음속으로 감동을 했어요.
500명의 제자들이 보고 있어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는 크게 감동을 했어요.
그 다음날 인근 숲속으로 들어가셨어요.
숲이 밤새 며칠간 환하게 빛났다고 해요.
그래서 우루빈나의 제자들이 술렁대기 시작했습니다.
“ 저 부처님은 뭐가 있는 분 같다. 우리도 저 수행자에게 뭔가 배웠으면 좋겠다”
제자들이 술렁대자 우루빈나 가섭이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한 거죠.
어느 날 비가 갑자기 쏟아졌어요.
그때 부처님은 강 기슭 숲에 있었어요.
거기에 머물고 계셨다 이 말이죠.
우루빈나 가섭도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이 일어났어요.
강기슭에 있다가 부처님이 떠내려 가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어요.
부처님에 대한 호감이 생긴거죠. 걱정이 될 정도니까.
강물이 범람하자 우루빈나 가섭은 밤중에 쪽배를 타고 부처님이 어떻게 되었나 찾아 나선 것입니다.
이 때 강 둔치는 거센 강물이 이미 휩쓸고 지나가 버렸어요.
“ 사문 고타마여 어디 계시는가?” 소리쳤어요
그러자 깜깜한 저쪽에서 소리쳤어요.“우루빈나 가섭이여 내가 여기 있습니다”
부처님의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부처님이 깜깜한 강물 위를 걸어오시는 겁니다.
그러고는 배위에 오르시는 겁니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부처님의 두 발에는 물기하나 없었다 이 말입니다.
탐욕의 물에도 전혀 젖지 않았다 이런 뜻도 있을 겁니다.
상징적인 의미도 되겠습니다. 경전에는 이런 얘기도 나와요.
부처님께서는 그런 법력을 가지시고 물위를 걸어오셔서 배에 오르셨다.
뭍으로 나와서 안전한 곳에 다다르자 우루빈나 가섭은 자기가 가진 모든 교만심과
상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 부처님께 고백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대의 법력은 뛰어나십니다.
그대야말로 진짜 대 아라한이십니다.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진심어린 우루빈나 가섭의 말에 부처님께서는 묵시적으로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셨고,
우루빈나 가섭의 500명의 제자들도 스승을 따라 제자로 받아들여주길 간청했어요.
부처님께서는 우루빈나 가섭 한 명을 제도하니 499명이나 되는 제자들이 동시에 들어오게 된 거죠.
우루빈나 가섭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인도사람들은 머리에 뱀이 머리에 똬리를 틀듯이 해서 붙여놓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것을 터번이라 그런 말도 쓰는데 이 사람들은 불을 신봉하는 수행자라 머리카락을
베지 않고 머리를 땋아서
여기다가 붙여놓은 수행자들이었는데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삭발하고 정식 출가하고 비구계를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 간청하자
부처님께서 화답을 하십니다.
“설래 비구여! 잘 왔도다 비구여! 나의 그늘 아래서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하라.”
이렇게 허락을 한 거죠.
그 때 우루빈나 가섭 및 제자 500명이 삼귀의를 하면서 정식으로 출가를 해요.
붓담 사라남 가차미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담남 사라남 가차미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감 사라남 가차미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
그렇게 해서 부처님 교단에 들어왔고 부처님의 정식제자가 된 거지요.
바로 삭발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제사 지내던 도구, 불신을 섬기던 도구들을
네란자라강에 다 집어던져 버렸어요.
강물 위에는 베어버린 머리카락, 제사지내던 도구들, 불 섬기던 도구들이 둥둥 떠내려갑니다.
강 하류 쪽에는 우루빈나 가섭의 형제인 가야 가섭과 나제 가섭이 있었는데 떠내려
온 도구들을 보고 우루빈나 가섭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
급하게 뛰어왔어요. 그런데 아주 희안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부처님이 법상에 앉아 계시고 오백 명의 제자들이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서 부처님을
모시고 법문을 듣고 있었어요.
그 분위기가 얼마나 장엄하고 성스러웠던지, 그 모습에 압도되어서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귀의를 하면서 출가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완전히 압도가 된 거지요.
가야 가섭은 삼백 명의 제자가 있었고 나제 가섭은 이백 명의 제자가 있었어요.
이 모두가 삼귀의를 외우며 제자가 됩니다.
부처님은 천 명의 제자를 얻게 되었어요.
초기교단에 천 명 제자가 큰 역할을 하는 거지요.
그래서 천 명의 무리들을 이끌고 마갈타라고 하는 수도 왕사성으로 향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빔비사라왕을 만날 목적이었습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으면 가장 먼저 제도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러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부처님은 약속을 잘 지키시는 분이다 이렇게 볼 수도 있지요.
출가 전 일이라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부처님은 빔비사라왕을 생각 했던 모양입니다.
마갈타성의 수도가 왕사성이라, 그 성의 왕이 빔비사라왕이라 이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앞에 서시고 천 명의 제자들이 따라가는 모습이 얼마나
장엄스러웠겠는지 한 번 생각해 봐 봐요.
가야산 정상을 넘어갈 때 쯤 부처님께서는 대중들을 앉혀놓고 산위에서 설법을 하십니다.
산상설법이지요.
가섭 삼형제는 불을 섬기던 수행자들이었는데 부처님을 만나고 불 섬기던
신앙을 다 버리고 부처님 정법제자가 된 것이지요.
보라!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 눈이 타고 있다. 눈에 비치는 형상이 타고 있다. 그 형상을 인식하는 생각도 타고 있다. 눈으로 보아서 생기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모두 타고 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으로 인해 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 분노의 불 어리석음의 불로 인해 타고 있는 것이니라. 수행자들아 이것을 바로 보는 사람은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이 없어지리라. 그래서 해탈을 얻으리라 마음이 해탈한 이는 윤회의 굴레에서 속박되지 않으리라. |
이 산상의 설법은 천 명의 제자들에게 새로 눈을 뜨게 하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불을 섬겨오던 그들에게 주는 감명은 이루 말할 수 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 사람들은 바깥에 불을 섬겨오면서도 마음속에 있는 불(탐, 진, 치)라고 하는
삼독의 불을 모르고 지내왔던 것이지요.
거기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불을 섬겨온 사람들이라 불을 비유해서
마음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불에 대해서 법문을 하신 거죠.
우리는 이것을 상대의 근기에 따라 설법을 하신다 해서 대기설법이라 그러잖아요.
부처님께서는 대기설법으로 가섭 삼형제를 비롯 천 명의 제자들을 크게 깨닫게
했다 그랬습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으신 부처님과 그 일행이 왕사성,
라지기르에 오신다는 소문이 빔비사라왕에게까지 알려졌어요. 왕은 신하들을
데리고 부처님을 영접하려고 성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멀리서 오는 부처님께
왕은 체면 생각하지 않고 달려가서 엎드려 예경하며 발에 이마를 대고 ]
부처님! 부처님! 하고 읍소를 했습니다.
부처님은 빔비사라왕과 그 제자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재회는 아주 감명이 깊었어요.
그 전에 이미 만난 적이 있었잖아요.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 하면 나부터 만나 주시고
나부터 제도하여 주십시오!“ 하는 그 약속을 지키게 된 거죠.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을 친견하면서 주위 많은 사람들로부터 직접적으로 관심을
받게 됐죠. 왜 그런가 하면 가섭 삼형제는 우루벨라뿐만 아니라 마가다국 전체에서
존경받는 정신적 지도자이자 원로였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자기의 명성과 권위를
다 버리고 누군가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게. 그리고
나이가 자기보다 훨씬 어린 사람을 스승으로 삼았다는 자체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건이라 이게!
어떻게 나이 많은 삼형제 천 명의 제자를 가진 존경받는 저 사람들이 젊은 수행자
부처님에게 귀의를 했을까 모든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 했어요. 왕사성의
빔비사라왕과 모든 백성들은 가섭 삼형제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왕과
문무백관들도 가섭 삼형제의 발에다 예경을 하면서 잘 오셨느냐고 인사를 주고받았죠.
부처님 전에 먼저 예경이 있었고, 가섭 삼형제에게도 예경이 있었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침묵이 흐르고 분위기가 좀 이상해지잖아요.
그러자 가섭 삼 형제를 대표해서 우루빈나 가섭이 이런 어색함을 정리하기라도
하는 듯이 부처님 발에 예경을 합니다. 가장 높은 정수리를 부처님 발에 예경하는 것,
그래서 정례라 그러잖아요. 내 가장 높은 것을 당신의 가장 낮은 발에 예를 올립니다.
그런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절을 해야 돼요.
옛날부터 이것은 불교의 전통이라!
머리가 하얗게 센 우루빈나 가섭이 왕과 대신, 모든 백성들이 보는 가운데 젊고 젊은
36살의 수행자 부처님 발에 예경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자기체면 생각하지 않는 거죠. 스승이시니까!
서가 세존은 저의 스승이시고 저는 서가 세존의 제자입니다. 서가 세존은 크게 깨달으신 분이고 만 중생의 어버이십니다. |
공식적으로 이렇게 선언을 해 버렸어요.
나의 스승은 부처님이다 이것을 만천하에 공표를 한 거지요.
불의 신 아그니를 모시고 살아온 우루빈나 가섭의 얘기를 듣고 왕사성의 왕과
백성들은 큰 충격에 휩싸이면서도 대충 정리가 된 거예요.
‘아 젊은 수행자가 훨씬 높은 분이고 우루빈나 삼형제와 그 밑에 제자들은 다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구나!’
확실히 정리가 된 거죠.
그 때 부처님께서는 많은 제자들과 왕과 문무백관과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설법을 하셨어요.
그 설법의 내용은 보시에 대한 법문이셨어요.
보시에 대한 법문, 그 다음에 천상에 태어나는 것에 대한 법문,
천상락을 얻는 데 대한 설법, 그리고 사성제 법문,
고집멸도(苦集滅道 )라고 하는 사성제 법문을 하셨어요.
그러자 수많은 백성들, 많은 대신들, 왕은 크게 기뻐하였고,
지혜의 말씀에 눈을 뜬 자가 많았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삼보에 대한 금강석 같은 그런 믿음을 일으켰다 그랬습니다.
불법승 삼보에 대한 금강석 같은 믿음을 일으킨 그런 법문이 되었어요.
옛날에는 백성들도 다 신을 믿었거든요.
요즘에도 신을 믿는 사람 많잖아요.
왜냐하면 가섭 삼형제를 따랐기 때문에 다 신을 믿고 있었다 이 말이죠.
그런데 한 순간에 자기들이 믿던 신을 다 버리고 정법제자가 된 거죠.
영적으로 튼튼한 그런 불자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빔비사라왕은 환희심을 내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자기 마음 안에 있는 말들을 하게 됩니다.
자기 심정을 이렇게 고백했어요.
“부처님! 내가 왕자로 있을 때 나에게는 다섯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왕위에 오르는 것이었고,
(왕자라고 다 왕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둘째는 나의 영토에 부처님이 나타나주셨으면 하는 것이었고,
셋째는 내가 그 부처님을 섬기는 것이었고.
넷째는 부처님께서 나에게 설법해 주는 것이었고
다섯째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마음의 눈을 뜰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부처님을 뵈오니 그 다섯 가지 소원이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부처님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렇게 고백을 했어요.
부처님을 뵙고 한꺼번에 그 소원이 다 이루어진 거지요.
“저는 목숨이 끝날 때까지 부처님을 의지하고 삼보를 받들겠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이 후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을 한 번도 잊어버리지 않고 죽는 순간까지 한 평생 부처님을 모시는
아주 독실한 불교신자가 됩니다.
이런 큰 고백이 있고난 뒤에 빔비사라왕은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수행하기에 좋은
동산을 기증합니다.
“부처님 대나무 숲 공원을 드리고 싶습니다.”
죽림이라 그래요. 죽림!
대나무가 여기저기 서 있는 공원이라 생각하면 돼요.
지금도 가보면 넓은 공원에 대나무가 듬성듬성 서있는 그런 공원이 지금도 있습니다.
“부처님! 저의 성의를 봐서라도 꼭 받아 주십시오”
이렇게 간청을 했어요.
제가 보기에는 그게 국유지였던 것 같아요.
왕사성에 거의 붙어 있는 국유지인데 대나무가 많은 그런 공원이었어요.
왜 이렇게 대나무가 등장했을까! 대나무!
우리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어린이집이 있는 옥불보전에도 대나무를 심어놨잖아요.
감포도량에도 수년전에 저 하동 쪽에서 대나무를 전부 가져 왔는데 운반하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대나무를 꼭 심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최초로
세우신 절이 죽림정사였는데 죽림정사가 대나무를 상징하고 있거든요. 대나무!
그래서 대나무를 꼭 좀 심어야겠다 마음을 먹고 대나무를 심었던 거지요.
대나무라고 하는 특징은 뭐예요.
사시사철 푸르잖아요.
푸른 기상이 있으면서 늘 보면 기운이 넘치잖아요.
그래서 이 도량이 기운이 좀 넘치고 우리 마음이 늘 푸르게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으로 대나무를 심겠다고 생각을 했고,
두 번째는 대나무는 절대 꺾이는 법이 없잖아요.
우리가 살다 보면 늘 마장이 닥치고 기운이 꺾이는 그런 일이 얼마나 많으냐 이거에요.
그런데 대나무는 꺾이지는 않거든요. 조금 흔들려도
그래서 절대 꺾이지 말고 꿋꿋하게 신심, 영적으로 튼튼한 불자로 남아 있으라
이런 마음에서 대나무를 심고 싶었고,
셋째는 대나무를 보면 그 안에는 비어 있습니다.
공사상이라고 하는데 공의 이치를 터득해서 정법대도량(正法大道場)에 오는 모든
불자들이 정법을 잘 체달해서 훌륭한 불자가 되기를 발원하는 그런 마음에서
대나무를 심어야겠다는 그런 마음으로 대나무를 심었던 것입니다.
빔비사라왕은 부처님께 죽림을, 대나무 숲을 보시를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처가 필요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을 하셨고,
그때 빔비사라왕의 나이가 서른 한 살이었어요. 서른한 살이면 대왕이 될 수 있나
하는데 저 북한 봐 봐요. 김정은의 나이 얼마죠. 서른이 안됐어요.
서른 안 돼도 자기들끼리는 왕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서른 한 살의 빔비사라왕이 서른여섯의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은 어찌 보면
나이로 보더라도 당연한 것이죠.
아무튼 왕이 먼저 보시를 하고 왕을 따르던 신하들도 보시를 하고 백성들도
보시를 하고 전체 백성들이 힘을 합쳐서 세운 절이 최초의 사찰 죽림정사입니다.
죽림정사(竹林精舍)!
우리 교단사에 있어서 최초의 사찰은 죽림정사라 불려 집니다.
“최조의 사찰이 뭔가 물어보면 죽림정사라 해야지
大관음사 이렇게 말하면 안돼요“ ( 웃음)
죽림정사가 세워짐으로써 불교가 급속도로 발전을 하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하면 당시에 많은 종교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최초로 절을 만든 종교는 불교밖에 없었어요.
그 때 부처님 착안을 잘 하신 것 같아요. 요즘도 절이 없는 곳은 불자가 없어요.
미국의 뉴욕도량에 오는 신도들 보면 두 시간, 세 시간 걸려서도 법회 보러 와요.
우리는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어도 법회 하러 안 오고 지금 이 시간에도 자고
있는 사람이 있죠. 그러니까 환경이 너무 좋으면 공부를 안 해요. 미국 같은 데는
절이 없으니까 두 세 시간을 버스를 타고 열차를 타고 법회를 보고 다시 돌아가요.
하루 종일 걸리는 거죠. 그래도 법회를 보러 와요.
부처님을 너무 그리워하면서 오잖아요.
인도에서 불교가 막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도심, 왕사성이라고 하는 곳은 수도라,
수도 속에 사람 사는 곳에 절이 있었기 때문에 불교가 금방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사찰이라는 곳이 뭐하는 곳이냐?
첫째 이고득락(離苦得樂) 하는 곳이다.
모든 고통과 번민과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과 행복을 얻는 곳이 절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모든 걸 부처님께 의지하고 얻으려고 왔잖아요.
두 번째는 전미개오(轉迷開悟)
미혹함, 어리석음을 굴려서 깨달음 지혜를 여는 곳이 절이다 이 말입니다.
한국불교대학 하면 불교경전을 가르치고 참선기도를 하는 곳이잖아요.
그게 다 깨달음이요. 그게 지혜거든요. 불교경전을 가르치고 참선기도를
하는 곳이라야 절이다 이 말입니다.
세 번째는 적선회향 (積善廻向)이라
선을 쌓고 내 가진 에너지 내 모든 것을 이웃에 다 나눠 갖는 것이 적선회향입니다.
선을 쌓고 회향하는 것이 절이다 이 말입니다. 우리절처럼 인간을 위한 많은 불사.
교육불사, 복지불사, NGO불사를 하는 곳이라야 참다운 불교 법당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건물을 위한 불사 이런 것은 절이 아닙니다.
정법도량 절은 뭐하는 곳이냐 하면 이 세 가지로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고득락 (離苦得樂)
전미개오 (轉迷開悟)
적선회향 (積善廻向)
사찰은 이런 역할을 하는 곳인데 죽림정사가 지어짐으로써 불교는 그 지역사회,
당시의 인도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역할을 하는 그런 도량이 된 것이죠.
현재 모든 도량은 중생 속에 있잖아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오기 쉽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 큰 절에도
스님과 행자들이 20명이 넘게 있는데도
법당에는 제가 이루어지고 법회를 하다보니까 뿔뿔이 흩어져서
두세 명밖에 안보이지만 많은 스님들이 기거하고 있습니다. 도심 속 절은 너무나
귀중하고 역할이 큽니다. 어쨌든 우리 엘리트 불자들은 우리 불교가
발전할 수 있도록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포교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유인물을 가지고 죽림정사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 36세 때의 일은 한 가지가 더 있는데 그것은 다음 초하루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1번 새로운 일주문입니다.
일주문이 아주 현대적으로 지어졌죠.
이 문만 통과하면 죽림정사 땅입니다.
죽림정사를 들어가다 보면 절을 하나 만나게 되는데
7번 부처님이 새로 지어진 죽림정사에 모셔져 있는 주불입니다.
8번 그림은 죽림정사 일주문 들어서면 절 하나가 나타나는데 탱화 겸 그림이
쭉 걸려 있는데 부처님과 빔비사라왕과의 관계가 나타나는 그런 그림입니다.
꿇어앉아 있는 사람이 빔비사라왕입니다.
2번 그림은 연못인데 인도는 연못이 많아요.
더운 기후이기 때문에 스님이나 수행자들이 연못을 이용해서 목욕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2번의 멀리 보이는 조그만 집속에 있는 부처님이 6번 부처님입니다.
6번의 부처님은 일본의 남녀호랑개교를 믿는 일련종 사람들이 일본식대로 정리를
해서 모셔놨어요. 일본정신을 세계만방에 펼치려고 여기를 정비 하면서 일본식대로
부처님을 모셔놨어요.
남녀호랑개교는 법화경을 신봉하는 그런 종단인데 나무묘법연화경 이런 뜻입니다.
남녀호랑개교라는 일본말로 해야 공덕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부처님 말씀은 어디서나
통하게 되어 있으니 반드시 일본말로 해야 된다는 것은 비전통적이죠.
불교를 홍보하고 불교성지를 깨끗이 정비를 해주니 한편으로 고맙다는 마음을
가지기도 합니다.
남녀호랑개교 이 사람들은 간디화장터 앞에서도 기도를 하고 있어요.
룸비니라는 곳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돈을 얻기 위해
관세음보살도 외우지만 남녀호랑개교도 외우고 있어요.
남녀호랑개교가 세계적으로 많이 퍼져있다 이 말입니다.
5번 그림은 우리 절 내생체험관 삼보전 안에도 금박으로 부처님을 개금하는 거
있잖아요. 개금하는 것을 이렇게 해놨습니다.
이 부처님은 죽림정사 옛날의 부처님 같아요.
발굴되면서 새로 모신 부처님이라고 보면 돼요.
3번 그림은 죽림정사가 매우 넓은 동산입니다. 공원입니다.
대웅전이 있던 자리가 아닌가 추정이 되는데 여기다가 이슬람사람들이
묘를 써놨어요. 인도의 많은 절들을 훼손시키고 이슬람사람들 참 나쁜 사람들이죠.
회교라는 종교가 인도까지 처 들어 오면서 난리를 친 거죠.
얼마 전 뉴스에서 들었는데 태국의 변방지방에 이슬람사람들이 데모를 해서
불교인들을 죽이고 학교의 불교인 선생들을 죽이고 아직도 그러고 있더라구요.
신을 믿는 종교인들이 다 이렇게 배타적이에요.
크리스트고, 이슬람교 그 사람들을 제도해야 됩니다.
교회나 성당 가서 포교를 하세요.
3번이 이슬람 무덤이입니다. 이걸 파버려야 되는데
이게 대리석이라서 파버릴 수도 없고 갈 때마다 마음이 아파요.
왜 불교사찰을 불태우고 여기다가 무덤까지 세우느냐 이 말이에요.
9번 위에 보면 쭈삣쭈삣 대나무가 보이죠.
왕사성 안 죽림정사 공원 안에 있는 지금도 남아 있는 대나무들입니다.
그 앞에 플랜카드를 보면 룸비니 도량에 있는 우리 학교 이름이 메타스쿨이라고
하는 초등학교입니다.
초등학교가 한국에 있어야 되는데 저 네팔에 있습니다.
학교를 옮기든지 해야 될 텐데,
고아원 0세부터 시작해서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를 건너뛰었는데
초등학교는 룸비니에 있어요. 그 다음에 중학교 고등학교 올라가잖아요.
여기 가면 학교 안에 조그만 법당도 있습니다.
그래서 룸비니도량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포교가 무지 중요하니까,
포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만 명 포교, 오늘부터 새로 시작입니다!!!
전 학생 신도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한명이 3분씩 포교 합시다
포교는 부처님께 공덕을 짓는 일이며 불자로서의 권리입니다.
◎ 포교할 때는 자기체면 생각지 말고 대담해지라
◎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자기 암시를 하면서 ‘몇 명을 포교하겠다’고 목표를 세우라
그 목표를 달성한 자기 모습을 미리 생각해보라.
◎ 절 개념보다 불교대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되, 중, 고등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병원, 복지시설, 출판사, 무문관 선방, 수백 개의 단체 및 기수, 국내외 14개
도량 등의 엄청난 스케일을 소개하고, 한국불교 대학에 데리고 와서 구경시켜주라.
◎ ‘나는 부처님의 정법 제자이며 엘리트 불자로서 이 포교가 큰 복을 짓는 일이며
부처님께 빚을 갚는 일’ 이라고 확신하고 한 명 한 명 할 때마다 자기 자신에게 박수
를 치면서 보람을 가지라.
◎ 자나 깨나 포교를 생각하고, 최소 3명 이상은 포교해서 자기 집에 부처님 사진이
모셔진 벽시계를 하나 걸겠다는 결심을 하라. 그리 고 10명 이상 포교상인 회주
우학 스님의 서에 작품에 눈독을 들여 라.
◎ 불교 공부를 하면 일이 잘 풀리고, 마음의 안정은 물론 삶의 보람 과 재미가 생겨날
것임을 자신 있게 설득하라. 불교 공부가 곧 행 복의 길임을 재차 강조하라.
포교를 못하면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는 각오로
포교를 다부지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달 초하루 때는 부처님 36세 때의 일 후반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초하루법회에 동참하신 공덕으로 모든 일 잘되시기를 바라고,
늘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들이 모두 잘되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법문 내용이 좋아 석탄일을 앞두고 다시 올려 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