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공후사ㅣ先公後私 ○ 공적인 일을 먼저 하고 사사로운 일은 뒤로 미룸 ○ 先(먼저 선) 公(공평할 공) 後(뒤 후) 私(사사 사) 사(私)보다 공(公)을 앞세움이란 뜻으로, 사사(私事)로운 일이나 이익(利益)보다 공익(公益)을 앞세운다는 말로로,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 (廉頗藺相如列傳)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이 조(趙)나라 혜문왕 (惠文王)에게 우호를 위한 연회를 제안하였다. 진나라의 위세에 겁이 난 혜문왕이 가기를 꺼려했는데, 명장군인 염파(廉頗)가 가지 않으면 조나라가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상대부 인상여(藺相如)가 수행하도록 해서 보냈다. 진왕이 조왕에게 악기를 연주시키려는 등 치욕을 당할 뻔하였는데 인상여가 용맹과 기지를 발휘하여 무사히 회담을 마치고 돌아왔다. 인상여의 공을 인정한 혜문왕은 그를 재상으로 삼았고, 이에 지위가 염파보다 높아졌다. 염파는 자신이 조나라의 장수로서 나라를 위해 싸운 큰 공이 있는데 인상여가 말재간으로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올랐다며 화를 냈다. 이를 들은 인상여가 갖은 핑계를 대고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 하고 늘 피해 다니니 인상여의 식객들이 비겁하고 부끄럽다고 하였다. 이에 인상여가 말했다. "막강한 진나라 왕도 욕보인 내가 염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나와 염장군이 있기에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쳐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두 호랑이가 싸우면 형세가 둘 다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를 피하는 것은 나라의 급한 일이 먼저이고 사사로운 원한은 나중이기 때문이다." 이 얘길 들은 염파는 인상여의 대문 앞에 찾아가 사죄하였고 둘은 서로 목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우정을 나누었다. 이 고사에서처럼 개인의 사정이나 이익보다 공공의 일을 우선시한다는 뜻으로 선공후사라는 말을 쓰며, 공직에 있는 사람의 마음가짐, 책임의식으로 자주 인용된다. 비슷한 뜻으로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공공을 먼저 위한다는 말인 멸사봉공(滅私奉公)이 있다. 반대로 공적인 일을 빙자하여 개인의 이익을 꾀한다는 뜻의 빙공영사(憑公營私)라는 성어가 있다. - 오늘의 고사성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