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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웨이(다단계)와 광신종교의 공통점 1 ~ 13 [펌]
: 아주 쓴소리! 심장약한 분은 안보시길!
암웨이와 기독교의 공통점 1 ~ 13
- 여기에서 언급하는 특정종교는 광신도적 열광을 그 특징으로 하는 일부를 말함.
암웨이와 개독교의 공통점1
무슨 얘기인가 하실 겁니다. 암웨이라는 -영어로 Amway라는- 이 집단적 괴기적인 면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아는 선배가 한번 가보자는 꼬드김에 수원대학교 강당에서 하룻밤 동안 한다는 강연을 들으러 갔습니다. 신념에 찬 그들의 눈빛을 보며, 이들이 과연 내게 어떤 것을 보여줄 것인지 사뭇 기대가 되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안티 기독교와 안티 광신도주의라 기독교인들조차 끔찍하게 여기는 여호와의 증인이니 하는 사람들의 면목을 특히 경계하는 사람입니다 - 예전 6개월간 그들과 한번 교류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결국 설복시킨 적이 있었지요.
수원대학교 대강당 앞에 양복입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젊은 사람들, 중년들, 여자들, 오! 신념에 찬 그 모습들이라니. 그리고 '우리는 성공을 위해 모인 사람'이라는 그들의 주장을 보자니 '형제요 자매'를 외치는 광신도들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뭐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 광신적 분위기 자체를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이니까요.
밤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두 명의 강사(라는 사이비들의)강의를 듣고, 성공했다는 사람 세 명이 나와서 일장 연설을 합니다. 오호라, 이게 뭔가요? 목사의 설교 후에 구원 받았다고 주장하는 몇 명이 거기서 증언을 하네요. 자신이 성공했다는 이들 몇명의 주장을 보자니-기독교적 구원이 이제 지상에서 구현되었다고 주장하는 진짜 사이비들이 나타났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팡파레가 터집니다. 박수를 치는 사람들 -일견 광신도 보도에서 나오는 두 손을 모아 박수를 치는 사람이 생각납니다. 누굽니까? 바로 이 거대한 집단의 최상위자입니다. 바로 그들의 신입니다. 세속화된 교회의 진짜 모습이더군요.
암웨이와 개독교의 공통점2
우선은 매우 간단한 공식부터 시작합니다. [암->암웨이 개-->개독교]
1. 암: 우선은 한번 강연을 들으라고 한다.
.개: 우선은 한번 교회에 나와보라고 한다.
1-1 암: 그 강연에 암웨이에 미친 사람들만 있어서 그 분위기에 빠져든다.
.개: 과연 교회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던가.
1-2 암: 결국 강연은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을 유혹하는 수단이다.
.개: 말도마라. 설교는 무엇인가? 거기에 걸려들면 바로 개독인이 되는 것이다.
2. 암: 처음에는 전혀 강제성은 없다고 한다.
.개: 처음에는 그냥 좋은 말 들으러 가자고 한다.
3. 암: 암웨이에 소속되면 굉장한 '부자'내지는 '인물'이 된다고 한다.
.개: 개독교를 믿으면 자신들의 신이 구원해줄 거라고 한다.
4. 암: 자신의 돈은 들것이 없다고 말한다.
.개: 역시 큰 돈을 들 것이 없다고 말한다.
5. 암: 그러나 알고보면 그는 또한 소비를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
.개: 알게모르게 십일조니 성금이니 내야 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6. 암: 또한 물건만 사는 것보다 장사를 해서 영업 이득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개: 전도는 개독교의 필수 사항이다.
7. 암: 혹시 이탈자가 생길까봐 자주 집회를 한다.
.개:그 뻔한 수작을 눈치 챌까봐 일요일마다 집회를 한다.
8. 암: 알고있는 주변 사람, 일가친척, 죄다 영업쪽으로 끌어당긴다.
.개: 이것들 역시 기회만 잡히면 아무데나 쳐들어간다,
9. 암: 결국 암웨이에서 높은 돈을 주어야 하는 것임에도 적은 수익으로 공짜 영업에 가깝다.
.개:말하나 마나다. 공짜 영업이다.
10. 암: 불확실한 미래를 말하며 공짜 영업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개: 이것들은 지들끼리의 환상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11. 암: 그 체제에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말을 하면 죽일 듯 덤빈다.
.개: 역시 자신들의 독단에 맞지 않으면 단군상 목이라도 잘라버린다.
12. 암: 소속된 사람들의 확신은 결단코 깨어져서는 안된다.
.개: 소속된 사람들의 믿음은 결단코 깨어져서는 안된다.
암웨이와 개독교의 공통점3
*- 이번에는 사람들을 보자.
1. 암웨이의 전도방식은 '너의 성공은 나의 성공'이라는 말이다. 한편 개독교의 영업방식은 '너의 구원은 나의 구원'이 된다. 이들 광신도들은 확신에 차있다. 눈 빛은 무엇을 말하든 그것에 대해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다. 난 여호와의 증인들이 가지고 다니던 제2 성경을 뺏어놓았다. 여기에는 각종 대응방식이 나와있다. 가령 '시간이 없어서', '전 불교신자입니다' 등등 수십가지 방법에 대응방식이 나와있다. 암웨이 역시 그 대응방식을 가르치는 것을 교육으로 한다. 세뇌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우리 나라에서는 두어군데만 가보면 안다. 그것은 바로 광신적 종교집단과 다단계 회사이다.
2. 나는 여기에서 그들의 구체적 대상이 무엇인지 말하고 싶다. 암웨이는 바로 '돈'이다. 최고의 대상은 '돈을 많이 버는 자'이며 그는 선생이요, 신이요, 추앙의 대상이다. 개독교에서 우리는 자기들만의 독선적 '신'에게 다 주고 -허나 그것도 외부에서 주입된-오로지 '신'의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이들을 본다. 물론 걔중에는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여기 '나'라는 사람이 없는 이 광신도들은 물신주의와 독선적인 신에 빠져 헤어날 수가 없다.
3. 의문은 금물이다. 믿숩니까? 믿숩니다. 의문을 갖지 못한다. 의문을 갖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암웨이 회원이 아니며, 개독교인이 아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확신'을 심어주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들 불쌍하기 그지없는 선량한 영혼들은 '더 많이 선전'하는 방법을 물을 수는 있지만 '암웨이에 부적함한 이론'을 내놓을 수가 없다. 암웨이는 그런 곳이다.
4. 처음 수원대학교 대강당에서 있던 일을 하나 이야기 한다. 최상위자가 초에 불을 켜고 뒤로 뒤로 전달하면서 '이렇게 불꽃이 퍼져나가듯 온 세상에 퍼지게 하소서' 비슷한 제의를 했던 것이 생각난다. 이미 의문이 없기에 그것이 퍼져 나가기만을 바라는 이들의 이 무서운 확신을 어찌 생각해야 할까? 내가 어찌 확신에 찬 전도를 하려는 개독교인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5. 그들은 결국 자기합리화 내지는 자기 왜곡까지 감행한다. 일례를 들자. 우리는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에게 물건을 사달라고 하는 영업이 그다지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것은 강요할 성질의 것도 아니다. 암웨이는 그렇게 말한다. '대인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왜? 1번에서 말했듯 '당신의 성공을 위해서 내가 나섰다.'는 확신을 심어주면 그 다음에는 어쨌든 그 더러운 영업에 일말의 의문도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논리로 무장한 개독교 똘마니들의 무뇌아적 확신과 이토록 닮은 수가 있단 말인가?
6. 나는 개독교 광신도와 암웨이 광신도를 동일선상에 두고 보는 사람이다. 그 둘의 기원은 비슷하다. 아니 이 무자비한 확신의 세계관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잔악하게 현실의 인간들을 파먹어 들어가고 있다. 그대로 둘 수 없을 지경이다.
암웨이와 개독교의 공통점4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이 과격한 정신병은 자신에게조차 거짓말을 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걱정스럽다. 쉽게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결국 돈이 그 자신을 좌지우지 하는 이 끔찍한 자기합리화를 나는 어제도 보았다. 종교적 맹신과도 비교될 수 있는 이 다단계의 논리는 어쩌면 그렇게 광신도들의 말과 유사한지 놀라울 지경이다.
종교적 광신자들은 그렇게 말한다. "좀 개독교를 알고 말하라." 다단계의 광신도들도 말한다. "좀 경제가 뭔지 알고 말하라." 즉, 그 자신은 신이니 경제에 대해 훤하고 다른 이들은 대체 무식해서 꼴도 보기 싫은 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자기 합리화의 극단에서 자신이 '미친' 것조차 모른다. 그들의 그 선민의식의 저변에 깔린 것은 아마도 '나는 저들보다 월등히 앞선 사람,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웃기는 망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자기 기만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그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은 하나도 없다. 그저 교회의 목사, 다단계 집단의 논리 뿐이다. 나는 어제 그런 이 중의 하나를 설득하고자 했다.
그러나 역시 교회의 목사가 자꾸 교리를 언급하자고, 알고 말하자고 깝죽대는 것 처럼 여기 다단계의 맹신자 역시 자꾸 실질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교리'-도그마에만 집착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일종의 정신적인 '고자'들을 만난 것만 같았다.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그 '고자'들, 그러나 제발 이 '고자'들이 다른 멀쩡한 사람들의 정신에까지 물들이려고 하는 그런 짓거리만은 제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암웨이와 개독교의 공통점5
- 맞습니다. 암웨이는 유사종교와 유사합니다. 그 교리, 마음을 유혹하는 수단, 나가려는 사람에 대한 죄책감 유발, 구원의 확신, 집회 상위하위 집단의 구조 등은 그야말로 사이비 교회의 복사판입니다. 저는 초기에 자본주의만으로 이러한 현상을 보려했습니다. 헌데 이 신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의 그 '거부할 수 없는 흐름'에 대해 싸우면서 이는 정신적인 문제가 아닐까 했지요. (종교권력 쪽입니다) 그리고 발견한 것이 바로 이 극단적 자본주의-기독교 원리주의 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시스템이 우리 주위에 있었습니다. 바로 암웨이였습니다.
암웨이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1퍼센트의 사람들이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세계화를 매우 극단적으로 추종하는 김지혜[라는 토론자] 같은 이들의 의견을 그대로 답습합니다.
또 한가지 있습니다. 이것 역시 제가 발견한 것 중의 하나입니다. 기독교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을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기편으로 유혹하기 힘이 듭니다. 그러나 기독교에 적극적으로 맹신한 사람들은 그러한 '이론'에 더욱 넘어가기 쉽습니다.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보자해도 결국 여호와의 증인은 '과거의 개독교 맹신자'입니다
그런데 암웨이는 어떨까요? 암웨이는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세계'에 가장 적당한듯한 이론을 내세웁니다.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런 사람들 속에 있으면 반발할 기회도 포착하기 힘이 듭니다.) 물론 여기에서 기자분께서 매우 자세히 설명해주시니 이론의 헛점도 잘 보입니다만 말이지요. 암웨이는 경제니 돈에 대해서 상당히 오랜 시간 걱정을 하고 고민을 하고, 연구를 한 사람들조차도 넘어가기 쉽습니다. 즉, 그들 자신은 암웨이를 '그동안 자신의 경제적 학습'의 최종판으로 봅니다.
이 둘은 언제나 항상 그런 극단으로 넘어갈만한 증후를 지닌 개독교와 자본주의의 한 면이었던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결론이니 너무 극단적이라고는 욕하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 둘은 보이지 않는 끈이 있는 것 같은데 그 부분은 저도 더 연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래는 세계화논쟁에서 제가 썼던 글입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파헤쳐나가겠다는 다짐입니다.---
[보려하지 않으려는 자들에게 고함]
배고픈 이가 배고프다고 하는데 거기에 무슨 억지가 있을 것이며
맞는 이가 아프다고 하는데 거기 무슨 가식이 있겠는가?
슬픔을 슬픔이라 하고 괴로움을 괴로움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거짓이 스며들 그 무슨 틈이라도 있던가?
혹자는 말하기를 당신의 괴로움은 거짓이라는데
괴로움을 괴로움이라 말 못할 바에야
거기 입이 무슨 소용이며
보이는 걸 안 보인다고 말 할 바에야
거기 눈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인세의 만사는 이와 같은지니
보려는 자는 지나간 자리만 보아도 알며
안 보려는 자는 눈 앞에 있어도 알 수 없도다
암웨이와 개독교의 공통점6
나는 인간을 불안하게 만들어 이득을 얻는 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섯번째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공갈-협박-협잡'이다.
개독교는 항상 인간을 불안하게 만든다. 구원의 논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들은 '인간이란 신의 창조물로서 단 한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은 인생을 지옥과 천국으로 나누고 항상 불안하게 살아야 하는 존재로 부각한다. '만일 사람들이 일생을 불안하지 않은 마음으로 산다면 개독교는 그 존재의의를 잃을 것이다. 인도인의 사고 방식과 산업화된 개독교적 세계관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사고 방식은 그래서 다르다.
내가 암웨이를 특히 경계해야 함을 말하는 것은 그와같은 이유에서다. 암웨이는 마치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은 '일생을 바보처럼 사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암웨이만이 가장 선진적인 돈벌이 방식이며 이러한 시대적 대세를 읽은 당신은 이제 편안해질 것이다!' 그들이 웃으면서 이러한 '감정'을 사람들의 의식에 심어놓는 것이 바로 영업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두 종류의 '공갈-협박'은 마치 '선의'에 의한 것 처럼 말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선의라고 절실하게 믿는다는 그것. 그래서 그것이 '선의'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주장해도 괞찮다는 그 착각의 골은 무서울 지경이다.
이들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무리'들은 최근의 사회학자, 종교학자가 이야기하듯 '일직선적 세계관'에 전염된 기괴한 현상이다. 단 한 번 밖에 없는 일생, 단 한 번 밖에 없는 기회, 이딴식의 극단주의가 만들어낸 괴물 중 가장 위험한 이 두 괴물은 결국 그렇게 불안한 사람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몸뚱이를 키운다는 점에서 마치 전염병이나 사회적 종양처럼 느껴진다. 하긴 어디 이러한 거짓확신을 통한 이득추구가 그들 뿐이겠는가?
암웨이와 개독교의 공통점7
- 암웨이는 경제적 개독교다. 나는 그렇게 본다.
- 앞서 나는 광신도적 개독교인이 도리어 사이비에 몰두하기 쉽다는 것을 언급했다. 언제나 이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어째서 그럴까? 그들은 항상 개독교인의 논리를 한층 발전시킨 것처럼 보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아니 문구를 살짝 바꾸면 사이비가 되는 것이 바로 개독교이다. 그러나 그 진의는 항상 다른 곳에 있다.
- A라는 기독교적 현상은 항상 A+라는 사이비가 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인이 아닌 사람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이들 사이비의 열광은 항상 이상해 보일 수 밖에 없다. 사실은 개독교 자체에도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 실체는 그다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 암웨이라 불리우는 경제적 사이비도 그렇다. 우리가 무한경쟁 자유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일반적 신앙에서 살짝 어구만 바꾸면 암웨이라는 사이비가 된다. 자본주의 자체에도 문제는 무수히 많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약간은 민주적이 되었다고 해도 '세계화'의 논리를 들어보면 이것은 지나칠 정도이다.
- 구원의 논리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종교라 이름 붙어 사이비로 활개를 치는 것 처럼, 다단계와 같은 사이비들은 '돈에 의한 구원'이라는 이름을 붙여 판다.
- 앞서 언급한 내용 중 다단계가 미국식 경제학자와 심리학자의 연구물이라는 사실을 서강대학 종교학 논문에서 볼 수 있었다. 30년대의 일이다.
- 30년대의 미국식 심리학은 어떠했을까? 본자는 정신분석 서적을 읽어가면서 유럽의 정신분석이 얼마나 미국식의 심리학을 혐오했는지 말하고자 한다. 미국으로 가면서 정신분석은 타락했다. 즉, 미국의 심리학은 개독교적 인간론과 결합하면서 인간을 두고 '사회에 적합한 인간으로 개조하는데' 써먹었던 것이다.
- 정신분석학은 일종의 인간의 정신을 읽어내는 학문이지만 결코 그 인간을 개조하는데 써 먹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 심리학은 인간을 체제에 적합한 인간으로 만드는데 여지없이 이용하고 있다. 즉, 그들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을 '심리학'으로 개명하고 인간을 다루는데 그것을 써 먹었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1930년대 미국의 경제적 상황은 어땠을까? 스콧 니어링은 1930년대의 미국적 방식을 이렇게 말한다.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에 기반을 둔 게 아니라 임금을 삭감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기업가의 결단에 바탕을 둔 것이다' 또한 그는 말했다. '많은 미국인들의 꿈은 55세에 정년퇴직하여 여생을 일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모든 계급사회의 밑바탕에는 '네가 일하고 나는 먹는다'라는 원칙이 깔려있다'
- 이 둘이 만나 만들어진 것이 바로 암웨이라는 괴수이다. 사람을 암웨이라는 것에 적합하도록 변화시킬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실패자로 낙인찍힌다.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버린다는 점에서 개독교만큼이나 그 중독성은 심각하다.
- 물건이든 돈을 버는 양이든 상관없다. 이들이 이 거짓된 인간학을 그 기반으로 두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것도 오랫동안 말이다. 미국식의 거짓된 심리학이 아직도 많은 미국인의 정신을 좀 먹고 있는 것 처럼 암웨이 역시 그러한 사회에 가장 적합한 듯이 우리들 이웃의 정신을 파먹어들어간다.
- 그러니 그 해결방법은 무엇일까?
- 한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하는 사랑 뿐이지 않을까? 자신의 정신을 남의 '옳다는 잣대'에 함부로 맡기지 않는 것. 강한 마음을 교육시키지 않고 경제에 적합한 인간을 만드는 우리들의 교육에서부터 그 변화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너무나도 연약한 그 마음이 거짓 종교와 거짓 집단에 속지 않도록 말이다.
암웨이와 개독교의 공통점 8 (MLM 전술 제 1 부)
- MLM 전술이 있다. 즉 다단계에서 인간을 꼬시는 '미국식 심리학적' 전술이라고 합니다. 개독교의 전도방식과 얼마나 유사한지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암웨이 광신자 만들기 일주일만 하면 개독교만큼은 한다! ! !
1. 접근
우연 혹은 필연
- 종교적 접근은 우연을 가장하며 그것을 필연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서울 지하철을 지나다니면서 '도'를 아냐고 묻는 이들, 개독교 신을 믿으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당신을 구하기 위해' 우연인 듯 만났지만 이것은 필연이다라고 주장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계산된 만남이다.
이미지 암시
- 그들은 요즘 힘든 것이 없느냐고 말한다. 힘든 것이 있다고 말하는 그 순간 당신은 그들에게 말할 빌미를 잔뜩 준 것이다. 개독교에서는 너의 죄 때문에 그러하다고 주장하며, 그 죄를 없애는 것은 오로지 교회에 나가는 것 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암웨이는 그 힘든 상황을 해결하는 것은 오로지 암웨이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정말 자신이 그러한 것을 하지 않아서 지금처럼 살게 된 것은 아닐까 하고 스스로에게 자기암시를 걸게한다.
애정증폭
-그들은 말한다. 나는 댁의 형제요 자매며, 동업자며, 사업파트너다. 개독교에서는 마치 형제인듯 군다면 암웨이는 마치 사업의 동반자, 사업의 선구자처럼 말한다. 그럼에도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이렇게 해준다가 된다. 애정에 굶주린 사람에게 이러한 접근은 너무나도 쉽다. 아, 나를 이렇게 관심있게 봐주는구나. 아. 나도 저들과 한 배를 탈 수 있구나 하고 말이다.
초대
- 집회에 올 것을 유도하는 것은 개독교와 암웨이 양자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이다.
그는 결코 말만 들어서도 안되고, 또한 일시적으로 만나서는 안된다. 개독교에서 우리교회에 오지 않을래?는 암웨이에서 사업설명회에 한번 와서 잘 알아보라 라고 한다. 여기에서 거부하지 못하면 서서히 늪으로 빠져든다.
2. 집단 모임
가정하고 말하기
- 네가 죄인이라면, 그리고 개독교적 신을 믿어 천국에 갈수 있다면. 너의 마음이 편안해진다면 하고 말한다. 만일 네가 모모한다면이라고 말이다. 설교 속에서 그리고 집회의 리더가 말하는 만일 댁들이 우리와 함께 한다면 그대는 구원받을 것이며, 부자가 될 것이다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집단모임 속에서 모두가 박수를 치며 환호할 때 그는 정신을 잃는다.
이미지 교육
- 사람에게 상기를 시키기 시작한다. 같은 이미지를 동어반복적으로 주입시키는 것은 그 사람이 자나깨나 하나의 목표만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는 개독교에서 준 그 이미지가 편안해보이며, 또한 그는 암웨이에서 준 미래에 대한 이상화된 이미지가 최고로 보인다. 이제 그의 정신 속에 이미지를 심어놓는 것이다.
화술 교육
- 개독교 전도를 주 업무로 하는 사람들은 말을 잘한다. 특히 여기 주어진 말들, 아 ...하소서, 등... 그들은 모든 경우의 반대자들을 이길 수 있는 화법을 배운다. 사이비들은 말할 것도 없다. 암웨이는 그러한 화술교육이 지극히 기초적이다. 사람을 유혹하는 방법. 그리고 어떠한 경우라도 답할 수 있는 의지-개독교가 신이라면 암웨이는 그 자신의 피를 빨아먹고 있는 상위레벨-를 배운다.
핵심교리
- 화술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핵심교리이다. 개독교는 '구원'이라는 것. 그리고 신이란 항상 분노하고, 인간을 감시하고, 지옥에 보내는 존재로 부각한다. 인간은 항상 신 앞에 죄인이며. 그는 죽을 때까지 신의 하수인일 뿐이다. 암웨이의 핵심교리는 포인트이다. 네가 한 것만큼, 네가 사게 한 것만큼 포인트를 주겠다.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과 자신이 속한 라인의 부속품일 뿐이다.
-->종교권력 쪽에서 나는 이것을 조건부적 사랑을 내세우는 신의 모습으로 그린 적이 있다. 즉, 개독교의 신은 무조건적 사랑이 아니라 조건부적 사랑의 신이라는 말이다. 헌데 여기 암웨이는 그것을 한층 잔인하게 강화시킨다. 그러고 보면 암웨이의 방식은 철저하게 교회의 신의 모습을 자본주의적으로 변화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암웨이와 개독교의 공통점 9 (MLM 전술 제 2 부)
- 앞서 말한 암웨이와 개독교의 공통점은 끌어들여 움직이게 하는 수단이었다면 이제 말씀드릴 MLM 전술 제 2부에서는 한번 들어온 사람이 절대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만드는 일종의 감옥을 만드는 행위입니다. 여러분은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암웨이는 1930년대 미국의 거짓 심리학자들과(이들은 인간을 사회에 적합한 인간으로 개조할 수 있다고 꿈꾸는 자들입니다). 경제학을 하는 일부(이들은 인간을 부속품으로 만들어 경제에 공헌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앞서 서강대 논문에서는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그들 종교 개독교의 조건부적 사랑을 이야기하는 호전적 신에 대한 밑바탕이 깔려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면에서 개독교의 인간구속 방식과 암웨이의 인간구속 방식은 똑같습니다. 암웨이, 일주일만 하면 개독교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는다!!!
3. 결속의 강화
마인드 컨트롤
- 이제 자신들의 집단에 합류가 되면 그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일종의 '정신조작' 즉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암웨이는 개독교에서 쓰는 방식의 '정신조작'을 감행하려고 한다. 특히 광신적 개독교인들은 어디어디서 신이 나타나 경고를 했다더라 뭐 마리아상에 피눈물이 났다더라. 세상이 망한다더라. 종말이 가까웠다. 하면서 불안을 심어주기에 여념이 없다.
암웨이에서도 누가누가 성공했다더라, 하는 테입이나 책자들을 자신들의 이론에 적합한 자료라고 생각하고 마침내 그것을 절대적으로 신봉한다. 그것에 대해서 -그것의 진위여부 따위에 대해서는 절대 묻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확신- 정신조작은 반복을 위주로 한다.
집단최면
- 많은 군중 속에 들어가 있으면 혼자 있을 때보다 비판을 할 여유가 적어진다. 개독교 부흥성회라는 곳에 가보면 모두가 손을 들어 무엇인가 내려오는 것처럼 열광한다. 그것이 작은 교회일 때보다는 커다란 공설 운동장 같은 곳이라면 두고 볼 것도 없다. 커다란 대강당의 중간에 한 사람을 몰아넣고 모두가 '자 우리는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입니다.'라면서 동시에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치고 팡파레를 울리게 해봐라. 왠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일시적으로라도 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다. '나'를 잃어버리고 괴물의 일부 '우리'가 되는 그 분위기를 두고 뭐라고 해야 할까. 일종의 정신적 강간이라고 부름이 적당해 보인다.
이탈의 어려움
- 일단 그 정도 되었을 때 그냥 나오는 것은 무척 힘들어보인다. 매일 같이 다니는 사람들, 자주 있는 집회, 뭔가 딴 생각을 하고 싶은데 그럴 여유를 주지 않는다. 집에도 찾아온다. 탈퇴는 자유롭다고 주장 !하지만 결코 쉽사리 나올 수가 없다. 암웨이와 개독교 양자 모두 마찬가지다.
3. 배반자 처리
비난과 저주
- 그래도 마침내 나오려는 용기가 가상한 사람들이 있으면 그에 대해 비난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을 것이다. 사탄의 집구석이라고 너희 집은 죄다 지옥에나 떨어질거라는 저주나 비난은 말할 것도 없다. 이탈자를 만들지 않으려는 그들은 '함께 욕하기'를 통해 일종의 왕따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결속 다지기에 나선다. 암웨이는 '계속 가난하게 사세요', '능력없는 자들', ' 실패자'로 말하면서 자신들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게 함으로서 스스로에게 강한 결속력을 다진다.
--->개독교의 다른 면은 자기들만 구원받는다는 패거리주의입니다. 암웨이의 자신들만 최고라는 패거리주의와 유사하지요. 자기들만 옳고 자기들만 구원되었다는 이 양쪽 패거리주의는 결단코 이 사회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암웨이와 개독교의 공통점 10 -free[라는 닉네임 사용자]의 경우
*- 인생의 무수한 난관 중에 이들 사이비 전도사들은 조심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아이 적부터 이렇게 사는 것이 정답이다 라는 식의 말을 자주 듣는다. 성공을 해야 하며, 그 성공은 물질적 성공이다. 개독교 속의 조건부적 사랑을 외치는 신은, 경제적인 인간에게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 조차 이제는 조건부가 되어간다. 그 조건은 경제적 부에 대부분 점수가 매겨진다. 나는 그런 부모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항상 생각한다. 아이들에게나 사람들에게 결코 조건부적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러나 오늘도 우리는 이러한 조건부적 사랑을 이야기하는 끔찍한 위선에 항상 부딪혀있다. 여기 전도사의 말을 좀 들어보자. 아래 free의 글이다.
1. 경험이 풍부한 사람의 글인가? 경험도 하지 아니하고 안티자료만 인용하지는 않는지? 숫자놀음만 하지는 않는지? 그 분의 인격을 믿을 정도의 언행을 하는지! 마지막으로 눈으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백문이 불여 일견이라 했습니다.
--->개독교는 항상 주장한다. 자신들의' 신을 알고 말하라'고 말이다. 그들은 진실을 들을 하등의 준비도 되어있지 않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신을 알고', 혹은 '신을 믿고' 말하라는 것이다. 이 말 놀음을 나는 이렇게 분석한 적이 있다. 즉, 그들이 말하는데로 '신을 믿고' 말한다는 것은 신을 믿는 이가 그 신에 대해서 비판한다는 것은 항상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인지라 그들은 여전히 '더 알아라'를 반복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가 다른 '믿음'을 이야기하면 그는 여전히 개독교를 모르니까 말을 하지 말라라고 한다. 즉, 믿어도 말하지 말고, 안 믿어도 말하지 말라이다. 그들은 어느쪽으로든 그것을 인격에 비교한다. 항상 스스로 확인하라지만 다른식의 '확증'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2. 자신을 믿으십시오.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결정의 주체는 본인입니다. 옳고 그른 것을 본인이 잘 보시면 알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충분히 파악하여 스스로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를 바랍니다.
--->개독교는 말한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믿음'의 주체는 본인이다. 그렇기에 남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안티 개독교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티쪽의 말을 듣고 개독교적 신이 왜곡되었음을 이야기하면 그것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 자신감 없는 행위라고 한다. 즉, 이들은 타인들의 비판과 그 개인을 분리시켜서 정당한 비판을 막아버린다.
3. 마지막으로 본인 꿈을 남에게 빼앗기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좌절에 빠뜨리고자 합니다. 또한 어느 누구도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오직 본인 만이 이것을 감당해야 합니다. 남들이 말하는 것은 참고사항일 뿐입니다. 지나가는 말로 이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듯이 이게 아니라고 했다고 해서 그게 진실이 아닙니다. 끝으로 맥도날 햄버거의 성공율이 95%라고 합니다. 5%는 본사에서 가르쳐주는대로 사업을 안 해서 실패한다고 합니다. 건투를 빕니다. 그리고 당신은 하실 수 있습니다.
--->개독교식으로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죄악에 빠뜨리고자 한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데로 이제 비판적 세력과 개인을 단절시킨 후에 그들 안티를 죄악의 세력, 사탄의 세력으로 몰고가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그 모든 것을 감당하는 것은 개인이다. 남의 이야기는 듣지 말고 개독교의 이야기만 들어라.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부자가 구원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 만큼 힘들다. 다 내놓아라. 특히 교회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대로 신을 믿는다면 댁은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한다. 아멘..당신은 구원될 수 있습니다. 그런다.
암웨이와 개독교의 공통점 11 -동네 개독교 찌라시를 보며
우리동네 개독교 찌라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노란 형광 종이에 이렇게 적혀있네요.
[친구야 안녕! 하루를 어떻게 지냈지? 우울? 짜증? 활짝 핀 꽃처럼 즐겁고 기쁘길 원한다면 너를 초청할테니 열린교회(모모교회 3층)에서 예수님을 만나보렴.. 교회에 나오면 푸집한 선물도 주고 맛있는 간식과 또 재미있는 설교가 있단다. 예배시간은 주일(일요일) 오후 2시야! XXX-XXXX 전화하면 태우러 갈께]
당연히 있으면 겪으며 극복해나가야 할 짜증과 우울을 미끼로 어린 아이들을 꼬시려는 이 교회 찌라시! 사회의 불안을 은근히 아이들에게 전하는 방식을 눈여겨 보실 수 있습니다. 암웨이라는 불안을 먹고사는 괴물의 가족쯤 된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암웨이... 글쎄요. 그런것을 하는 사람은 저런 초청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크면... 어쩌면 이 끔찍한 악몽은 참으로 오래전부터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ㅋㅋ 전화하면 태우러 온다네요.
암웨이와 개독교의 공통점 12 - 더러운 확신의 세계관
*- 여기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를 두고 있는 두 괴물의 친족들
하나는 돈을 걸고 다른 하나는 신을 걸고 있다. 그들은 구원의 이론을 내세우며 인간의 불안을 먹고 산다. 그 불안의 종류는 인간이란 무엇을 위해 사느냐이다. 하나는 노후를 위해 산다고 하며 다른 하나는 사후를 위해서 산다고 한다.
그들은 말한다. "지금 현실은 (항상) 괴로운 것이다!" "지금은 항상 불안해하며 불안이 사라질때까지 그것을 해라!" "너는 네 이웃을 너 자신의 불안으로 전염시켜라." 그것의 수식과 구조가 옳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들어라. (그것이 옳다 그르다를 넘어서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안다. 알아.)
우리는 구원을 항상 미래를 보도록 보아야 하는가? 그 불투명한 구원이 항상 미래에만 있는가? 항상 그렇듯이 당신은 '현실'을 불안한 눈으로 본다. 그 불안한 눈은 그러나 또한 항상 당신의 것이 아니다. 당신은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불안함 속에 당신을 던져 넣는 것이다.
아이들...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당신의 능력을 돈으로 보여주는 것. 그 아이들의 심성에도 괴물을 심어넣는 것. 그리고 그것이 너무나도 옳다는 그 끔찍한 선 조차 위선의 가면을 뒤집어 쓴 당신의 선의 그 뿌리부터 잘못된 그 선 조차 죽을 때까지 단 한번도 의심하지 않는 자. 당신.
댁은 그 혐오스런 입으로 말한다. "암웨이가 당신에게 피해준게 있나?" "우린 암웨이로부터 피해받은 게 없다." 댁들은 스스로 파괴하는 자로서 스스로만으로도 그치지 않고 당신의 아들딸에게 똑같은 위선의 그늘을 내비친다. 설사 댁이 암웨이나 다단계에서 도망치더라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정신오염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가 고작 암웨이가 수익이 되냐 마느냐인가? 내 보기에 그 더러운 정신오염에 비하면 그까짓거꺼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댁의 친척과 아이들과 이웃들에게 정신오염을 시키는 그 더러운 확신의 세계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얼마나 더해야 만족할 것인가? 얼마나 더 이웃과 자신을 학대해야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인가? 인생의 의미가 고작 그까짓꺼 밖에 없는 천박한 애벌레들, 불안이라는 역겨운 구토물만 집어삼킬줄 아는 너희들 불안의 종교와 불안의 경제학의 추종자들아. 너희들의 교리는 바로 너희 자신의 파멸이다.
암웨이와 개독교 그리고 매판자본주의 13
- 오늘 글은 아래 진실로님의 글에 대한 답글입니다.
실제로 문제는 훨씬 거대하며 그 문제의 핵심은 멀리 있습니다. 어쩌면 바로 그 문제 때문에 여기에 모이신 분들은 많은 이야기를 하지요. 사실 인간의 욕심 자체는 그다지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살아가는 의지로서 혹은 살아가는 힘으로서 인간의 욕심-욕구는 필요합니다.
그런데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약간 다릅니다. 이 욕구-욕심이 매판된다는 것에 심한 혐오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저번에 삼성카드 광고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요. 저는 아이들에게조차 그런 불운한 기운을 느낍니다. 비기니 Ting이니 하는 핸드폰 광고를 보면 저는 이 광고를 보고 아이들이 어찌될 것인가 항상 궁금합니다.
이들 어른세대에서 더이상 소비자를 구할 수 없는 매판자본들은 이제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팅처럼 해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은 더러운 화장실에서 소외당하고 외면당하는 불쌍한 왕따가 될 것이다. 팅이라는 핸드폰을 사서 써라. 그렇지 아니한다면 너희들은 어두운 쪽에 속하게 될 것이다" 진실로 오늘날 이 거짓 구원의 매신저들은 많은 젊은이들과 중년의 철부지들을 먹어치웠지만 이제는 젊은이들을 먹어치웁니다. 이제 대학생을 노리고 (Na라는 핸드폰 광고를 보세요) 이제는 어린 아이들을 노립니다.
어린애들이 왜 '원조교제' 따위를 하냐고요? 그들은 이미 그러한 매판의 시스템이 우리 곁에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를 보여주는 실증일 뿐입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어른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이미 거기서 활동하고 있는 시스템'입니다. 저는 나 자신의 글을 쓰기 위해 이곳에서 또 다른 단련을 하러온 사람입니다. 사실 인터넷 글쓰기는 민주적이지만 또한 '여기에 있지 않으면 소외당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약간은 불건전해보입니다.
토론실을 몇군데 다녀본 것은 그러나 참으로 많은 종류의 의견을 -그리고 광적 열기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실은 그 모든 광적 열기들이 그러한 욕심 -살고자 하는 의지들이 모인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문제는 바로 그 시스템이었습니다. 세계화의 시스템, 종교권력의 시스템, 그리고 다단계의 시스템, 혹은 남의 개고기 먹는 것을 욕하는 문화우월주의 시스템 말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기술우월주의 문화,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문화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실제론 이러한 기술이나 문화가 우리들에게,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주입되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일단 하나의 '합법적' 체계가 서면 그것이 옳다고 자기주장을 하게되는 것입니다. 종교라는 체제가 서면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고 다단계라는 것이 '불법이 아닌 것'으로 살짝 자리를 바꾸면 그것은 이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옳은' 것일까요?
- 다단계의 경우 욕심의 대상이 '돈'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니어링의 말을 빌자면 현대의 거의 모든 자본주의적 문제는 실제의 재화가 일을 한 사람의 몫으로 남겨지거나 일을 한 실제 사람에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주식과 같은 '도박'에 집중된다는 것입니다.
1차대전 당시의 미국은 바로 이런 도박의 와중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도박에서 실패한 미국경기는 전쟁을 통한 희안한 방법을 통해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2차대전이후 미국은 세계최대의 전쟁수혜자가 되어 껄떡거리게 되었습니다. (정말 니어링의 말처럼 전쟁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어느날 부터 그런 미국적 체계가 또한 '옳다'는 시스템으로 망각되어 갑니다.
- 이 잘못된 시스템들은 오늘날 우리의 가정에도 그대로 전염됩니다. 어린 아이들은 피곤함에 쓰러지든 말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미래를 위해 학원에 투자됩니다. 중고등학교 때 설정해야할 목표를 찾지 못한 채 아이들은 공부만 해야 합니다. 어른들은 이제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게 되어 버립니다. 대체 즐거운 일은 항상 더 많은 돈 뿐입니다. 가족과 함께 할 시간조차 없이 어른이 되고 또 그 어른이 되어서는 다시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합니다. 오로지 '돈'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오늘도 저는 묻습니다. 일평생, 죽을 때까지 단한번도 진실로 '당신 자신인 적이 없는' 채로 살아간 당신은 이 세상을 찾아온 목적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고민하고 죽을 것인가? 단 한번도 '자기'를 가지지 못한 이 시스템 속의 당신은 죽을때까지 항상 '시스템의 일부'에 지났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문제는 항상 더 거대하고 더 무서워보입니다.
출처 : 다음 아고라 이야기방 '정민샘'
첫댓글 테크니컬한 면에서의 분석은 거의 정확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술적 분석은 분별력을 키워주기에는 부족합니다. 그 근거는 본 글의 주제가 '공통점'에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받은 영혼의 아픔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어쩐지 증인에서 나와 '신'을 막연히 두려워하고 기피하던 어린 날의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그럼에도 현실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의'와 '구원'을 갈망하는 마음을 느꼈다면 지나친 생각일런지...아무튼 아픈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