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지율스님이 단식 중에 만든 '초록의 공명' 씨디롬 타이틀 10장과
스님이 한뜸한뜸 수놓은 눈물이 날 것처럼 아름다운 도롱뇽 그림 엽서들을 담은
우체국 소포 꾸러미를 받아서 열어 보았다.
스님의 건강과 뭇생명의 평화를 두 손 모아 기원하면서.
눈발 속에서 만난 매화
1.눈발 속을 걸으며
일찍 일어나 아침밥 준비를 하던 아내가 여느 때처럼 나의 늦잠을 깨웠다. 여태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던 나는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밖에 눈이 온다'고 하는 아내의 음성이 귓바퀴를 울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가로 다가가 소리 없이 내리는 하얀 눈을 두 눈을 비비며 환희에 차서 바라보았다. 벌써 영화의 은막같은 베란다 창문 너머 뒷동산의 솔숲과 대숲과 오동나무 가지에도 제법 쌓였다. 선아 순후 딸 아들 두 녀석들도 제 어미의 눈 소식에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차를 세워 두고 소리 없이 다정하게 내리는 떡가루 같은 눈발을 맞으며 새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인 대지에 매화꽃송이를 닮은 나의 선명한 발자국을 찍으며 학교 길에 나섰다. 가방을 메고 걷는 발자국마다 들려오는 오월 무논의 개구리 울음을 닮은 소리가 재미있어서 더욱 즐거웠다. 큰길가로 나서자 차들은 거북이 걸음에 미끄러지고, 길가에 차를 버린 사람들은 들리지 않는 즐거운 비명을 내며 흐뭇한 얼굴로 지나간다. 세상의 번뇌와 근심 걱정들 모두가 오늘 첫봄의 백설(白雪)에 잠들고 뭇사람들 모두가 아늑하고 행복하였으면 좋겠다.
첫새벽(元曉) 스님이 일천의 수행자들에게 설법한 천성산(千聖山) 화엄(華嚴)벌 무제치늪 그 맑은 물속에 깃들어 사는 말 못하는 꼬리치레도롱뇽과 뭇생명들을 연민하고 그 아이들을지키려고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청와대 앞 한길가에 앉아 목숨 건 백날 동안의 단식 절규를 하신 지율(知律) 스님은 이제 건강이 좋아지셨는지...... 자기집 뜨락의 나무들과 노는 개구장이 아이들을 호통쳐 모두 내쫓고 혼자만이 꽃대궐 집을 차지하고 사는 키다리 욕심장이 영감님 집에는 끝내 봄이 오지 않고 꽃도 피지 않고 새도 날아오지 않았다는 동화를 국민학교 이학년 어린 시절 수업시간에 신비로운 마음으로 읽은 생각이 난다. 노대통령님은 그 욕심장이 키다리 영감님은 아니신지...... 스님과 도롱뇽과 땅과 하늘의 뭇생명들 모두 평화롭고 행복하였으면......
아내가 이 새봄에 단발머리하고 단정한 교복 맞추어 입고 여중생이 된 딸아이를 뱃속에 가졌던 그 해 겨울이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구미 금오산(金烏山)을 나 혼자 오른 일이 생각난다. 발목이 푹푹 빠지는 눈밭을 지나 산모퉁이를 돌아서니 일망무제로 탁 트인 시야를 보여주었다. 등뒤의 바위 절벽에 새겨진 부처님이 사바 세계를 굽어보고 있었다. 난 아무도 모르게 눈을 밟고 서서 엄마 뱃속의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길 기원하며 부처님께 합장하였다. 그리고 돌아 나와 가지마다 설화(雪花)가 꿈속의 환상처럼 피어난 눈길을 걸어서 산꼭대기로 올랐다. 그날은 레이다기지를 지키는 군인들도 보이지 않았다. 정상의 암봉 절벽에는 암자가 위태로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한 여인의 낭랑한 독경 소리만이 법당의 꽃살문에서 새어 나올 뿐이었다. 암자 앞의 허공에 솟은 바위 봉우리에는 범종이 걸려 있었고 암자와는 구름사다리로 위태로이 이어져 있었다. 은설(銀雪)로 장엄한 극락세계에서 노닐다 온 그날이 함박눈이 내릴 양이면 생각나곤 한다.
추억들을 떠올리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출근길을 걸었다. 문득 중학교 시절 국어책에서 배운 당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의 시 한 머리가 떠오른다.
千山鳥飛絶
萬徑人踪滅
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산이란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길이란 길에는
사람 발길 끊어졌다.
외로운 배에는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
눈 내리는 차가운 강에서
호올로 낚시한다.
삿갓대신 우산 쓰고, 도롱이 대신 오리털 낡은 파카잠바를 입고, 외로운 배 대신 나이키 상표 운동화 신고, 나루끝 소티재 가는 길. 강물처럼 차들이 흘러가는 네거리를 은어 비늘떼 같고, 나비떼 같고, 봄비에 땅으로 흩뿌려지는 배꽃이파리 같은 눈발을 낚으며 나 홀로 걸어간다.
아직 채 녹지 않은 눈 속에서 어제께 완독한 우리 시대의 올곧은 선비 신영복 선생의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이란 책의 맨 마지막에도 바로 이 시가 실려있어서 더욱 반가웠다. 스무해 스무날이나 옥살이의 고초를 겪으신 선생이야말로 이 시에 등장하는 한매(寒梅)같은 우리시대의 '외로운 늙은이'이리라.
2. 매화를 닮은 스님
요즈음 나는 우리 학교의 이선생님과 다른 몇 분 사람들과 함께 덕민(德旻)스님의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강의를 들으러 경주여고 앞에 있는 불국사문화회관으로 목요일 밤마다 간다.
입춘이 지나고 이월 봄비 내리던 날에 강의법회를 집탁하시던 매화를 닮은 청수(淸瘦)한 비구니 스님께서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매화가 피고 봄은 종종걸음으로 온다'고 하셨는데, 경칩(驚蟄)을 하루 앞둔 지난 목요일에는 덕민 스님께서 '주지 스님께서 저의 방에 매화 한 가지를 꺾어서 꽂아 주셨는데, 어제오늘은 꽃이 피고 향기가 그윽하다'고 하시며 좋아하시었다.
스님의 두 시간 강의는 정말 금방 끝나서 늘 아쉽기만 하였다. 한 시간은 금강경을 강의하고, 한 시간은 동양고전들과 한시와 현대시를 덧붙여서 '금강경'의 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풀어주시었다. 옛날 서당에서처럼 가락을 넣어서 읊조리시는데, 그 흥취는 아무리 듣고 읽어도 싫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넓은 강의실 왼쪽은 불국사 회주 성타 스님, 주지 종상 스님을 비롯하여 학인 스님들이 자리를 메우고, 오른쪽엔 재가신자들이 많이 참석하였다. 따끈한 레몬홍차와 감잎차와 맛있는 고구마, 인절미, 송편들을 이름을 숨긴 보살님들이 번갈아 가며 마련하여 오셨다. 기쁘게 보시하는 정갈한 음식을 쉬는 시간에 도속(道俗)이 함께 맛있고 흐뭇하게 먹었다. '백운이 다한 곳에 스님들도 많아라' 고 한 옛 시처럼 나는 그저 연화장(蓮華藏)세계, 불국정토(佛國淨土)에 앉아있는 듯도 하였다.
부처님이 설법하고 스님이 풀어주는 '금강경'의 법향(法香)을 흠향하러 벌 나비가 꽃향기를 찾아들 듯 불원천리 신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유불도와 한시와 현대시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이러한 강의 법문은 여유와 인정을 잃어버리고 자본과 물신(物神)에 흥건히 몸을 적시고 사는 이 시대에는 이제 좀처럼 만나기 힘들어졌다.
스님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넘치는 업연(業緣)의 속진(俗塵)을 떠나서 부처님의 진리가 머무는 절, 속리산(俗離山) 법주사(法住寺)에서 출가수행의 길을 걸으셨다. 부처님의 말씀을 깊이 공부하기 위해 산아래 속세에까지 내려가시어 갓 쓰고 도포 입은 서당 훈장님을 오년 동안이나 스승으로 모시고 사서삼경 칠서와 노장과 한시를 다 배우고 마침내는 갓 쓴 선비 후학들을 가르쳤다고 하셨다. 출가하시기 전 젊은 날에는 시인 신석정(辛夕汀) 선생을 사사하여 현대시를 배우며 시인의 길을 가시려고도 하였다.
한 때에 코살라국 사위대성(舍衛大城) 밖 제따 태자의 숲 아나타삔디까승원에서 제자 수보리가 묻고 세존께서 설법하는 음성을 듣고서 진속(塵俗)의 뭇사람들 가슴에 들끓는 근심 걱정 하얀 눈이불 속에서 잠들기를 희원하여본다. '마하야나 큰 수레' 수승한 대승경전 '금강경'의 희유하고도 고귀한 지혜와 자비의 물결에 천지간 뭇생명들이 짊어진 괴로움 봄눈처럼 녹기를 희구한다. 작년 사월 초하룻날 시작한 법문(法門)은 바야흐로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제사(第四)-아름다운 행동은 집착이 없다'에 접어들었다.
"수보리야! 남 서 북방과 사유(四維) 상 하의 허공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세존하! 수보리야! 보살이 마음이 짓는 모양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것의 복덕(福德)도 또한 이와 같아서 헤아릴 수 없느니라.......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무릇 있는 바의 형상이 모두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3.묵매 친 밤
금요일 밤, 포항문학사람들과 월례회를 하고 밤늦도록 이야기하다가 자리를 파하였다. 골동품을 수집하고 호고(好古) 취미가 있고 시도 쓰는 음식집 사장님이 백매화 청매화 가지들을 꺾어와 투명한 유리 물병에 가득 꽂아서 문간에 두고 있었다. 코를 가까이 하니 개화한 두어 송이가 뿜어내는 응향(凝香)이 제법 짙었다.
어제 점심 때는 학교 앞에서 우리 학교 부장선생님과 함께 맛있는 된장찌개를 먹었다. 작년 이맘 때 이선생님과 함께 와서 보았던 홍매(紅梅)가 유리창 너머 마당에서 그윽한 향기를 뿌리며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주인 영감님 말씀에 그저께 백설이 분분한 날에 매화가 꽃망울들을 터뜨리기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그야말로 눈 속에서 피어난 매화꽃이 아닌가. '梅經寒苦發淸香'이라! '매화는 매서운 추위를 겪고서야 깊고 새맑은 향기를 내뿜는다'고 옛 선사(禪師)는 말씀하셨다지.
세사(世事)의 홍류(洪流)가 한수(漢水)로 도도히 흐르는 한양 도성에서 나랏님을 모시고 벼슬살이를 하면서도, 동산에 보름달이 오르면 도산(陶山)의 매화를 그리워하여 매화기별을 담은 제자의 편지를 손꼽아 기다리셨던 퇴계(退溪) 선생의 시가 생각났다. 나도 쌓인 눈더미를 밟고 서서 꽃망울이 오롱조롱한 설중매(雪中梅) 한 가지를 꺾어 들었다.
매화꽃가지를 들고 교무실에 들어온 나는, 학생들이 도자기공방에서 빚어온 백자꽃병이 교실에 굴러다니기에 깨어질세라 수학담당 담임선생님께 갖다 드렸던 지난해 가을의 일을 상기하였다. 투박하고 못생겼지만 어린 학생의 순수함이 묻어나는 그 꽃병을 찾으니 벌써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그 동안 담임 선생님은 책상 위에 올려놓고 꽃 대신 골프공을 꽃병 주둥이에 올려놓았다. 못생긴 꽃병은 몇 달 동안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학생과 선생님 모두에게서 버림을 받았던 것이다.
미술담당 이선생님 책상 위를 살폈다. 이번엔 눈빛을 닮은 꽃병이 연필꽂이로 쓰이고 있었다. 연필을 뽑고 물을 채우려 속을 보니 지난여름에 꽂았던 마른 난초꽃잎이 먼지와 함께 바람에 날려갈 뿐이었다. 매화꽃가지를 꽂아서 이 선생님 책상 위에 몰래 올려놓았다. 오늘 아침에 보니 앙증맞고 샛붉은 매화꽃 세 송이가 피어나 있었다. 넓고 넓은 교무실에 매화꽃을 반겨 맞는 사람은 이선생님과 나 둘뿐이었다. 둘만이 이심전심으로 말없이 개화 소식을 즐길 뿐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다 그물대신 흰쥐 한 마리씩을 움켜쥐고 전자가 눈처럼 뿌려지는 사이버 세계의 강물에서 정보의 피라미들을 낚는 일에 몰두하고 있을 뿐이었다.
벌써 오래된 일이다. 분재를 좋아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학교 가까이에 있는 식물원에 가서 봉오리 맺힌 매화화분을 집에 사왔다. 며칠이 지나자 새하얀 눈송이를 닮은 매화꽃송이들이 우리집 거실에 그윽한 향기를 뭉게뭉게 피워 올렸다.
다산(茶山)선생의 '죽란시사(竹欄詩社)' 옛 일을 떠올렸다. '살구꽃이 피면 한 차례 모이고, 복숭아꽃이 피면 한 차례 모이고, 한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한 차례 모이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 서지(西池)에 연꽃이 피면 구경하기 위해 한 차례 모이고, 국화꽃이 피어나면 한 차례 모이고, 겨울에 큰 눈이 오면 한 차례 모이고, 세모(歲暮)에 화분의 매화가 피면 한 차례 모인다......'
보오얀 막걸리와 나물 안주와 닥종이를 장만하여 두고 그날 분재원에 함께 갔던 선생님들을 부부가 다정히 손맞잡고 우리집으로 오시도록 기별하였다. 수석(壽石) 바구니와 매선(梅仙)을 두레상 위에 올려놓고 그날의 주빈으로 모시고, 우리들은 하얀 사기 대접으로 막걸리 몇 사발을 대작하며 밤이 깊도록 정담을 나누었다. 새봄의 기운이 온 몸에 취흥으로 일어날 쯤, 가슴에 붓 한 자루를 품고 온 이선생님께서 일필휘지 한시를 쓰고, 옥골빙기(玉骨氷肌)의 매화들을 쳐내려 갔다. 꽃과 돌과 붓과 먹과 사람이 술을 통하여 한 기운으로 돌아가서 종이의 설원(雪原)에다 순식간에 검은 발자국을 남겼다.
아직도 차가운 기운이 남아 있지만 공기가 투명하였던 어느 해 이른 봄날이었다. 통도사 극락전 뜨락을 거닐다 노스님을 닮은 늙은 매화가 새파란 하늘을 향하여 짙붉은 꽃망울들을 탁탁 터트리던 자태를 넋을 잃고 나 홀로 보고 왔다. 그 일이 가슴에 맺혔다가 그날 밤에야 묵매(墨梅)가 되어 눈앞에서 되살아나는 듯도 하였다.
4.춘설 흩뿌린 아침
지금 예닐곱 해 전 매화 벙글던 그 첫봄 그날 밤에 쓴 글발과 노매(老梅) 그림은 작년 봄에 이사온 새집의 거실 벽에서 옹골진 등걸과 웅숭 깊은 뿌리를 하고 시퍼런 소(沼)의 이무기처럼 움틀고 있다.
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늘 가락을 품고 살고
매화는 한평생 춥게 살지만 향기를 팔지 않네
梅악迎春帶小寒
折來相對玉窓間
故人長憶千山外
不耐天香瘦損看
*악:꽃떨기 악(愕자에서 마음 심 변 떼고 초두를 올린 글자)
봄을 맞는 매화송이 찬 기운을 띠었기에
한 가지 꺾어내어 옥창(玉窓)에서 마주 보네
산 첩첩 저 밖의 벗님네 그리워라
여위고 축나는 천향(天香)을 못견디리
아! 내일 아침엔 일찍 일어나 찬물에 얼굴 씻고 퇴도만은(退陶晩隱) 노선생의 저 칠언 절구를 천천히 읊조리며 단풍나무 무늬결 아롱진 거실 마루에 가만히 단좌(端坐)하련다.
선생은 일흔 연세로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도 매화를 지극히 아꼈다. 경오년 섣달 초사흗날 이질로 설사가 있자 매형(梅兄)에게 불결하면 내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하며 곁의 분매(盆梅)를 다른 데로 옮기라고 하였다. 초여드렛날 아침에 새봄의 꽃을 피우려고 선생의 방에서 겨울을 나고 있던 매화분에게 물을 주라고 곁의 사람에게 이르셨다. 그 날 맑았던 날씨가 저녁 무렵에 갑자기 흰구름이 지붕 위로 모여들고 눈이 한 치쯤 내렸다. 잠시 뒤에 선생은 누운 자리를 정돈하라하고 제자들이 부축하여 몸을 일으켜드리자 앉아서 돌아가셨다. 그러자 구름은 흩어지고 눈은 개었다. 선생은 솜털처럼 가볍게, 눈발처럼 흔연히 천지자연의 큰생명으로 돌아가셨다.
황병기님이 연주하고 오동판 가야금 명주실 열 두 줄이 흩뿌리는 가락 '춘설(春雪)'을 맞이하리라. 베란다 너머 뒷동산의 백설 뒤덮어 쓴 청솔가지와 댓이파리 하얀 눈빛으로 더욱 빛나는 대숲과 앙상하고 구불구불한 가지마다 목화솜 이불인양 하얀 눈을 덮고 자는 오동나무 영감과 눈떨기 나뭇가지 사이로 포로롱 날개짓 하는 굴뚝새들과 보조개가 예쁜 중학생 새내기 딸아이와 함께.
그리고 천성산 화엄벌 무제치늪, 저 새맑은 눈동자를 한 꼬리치레 도롱뇽과 뭇생명과 다시 기운을 차리신 지율 스님이 이 서설(瑞雪) 나리는 새봄에 다정한 인사 나누기를 부처님과 일월성신(日月星辰) 천지신명(天地神明)님께 빌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