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서와 베이컨의 자화상이 말하는 것들
〈69〉이 사람을 보라
윤두서의 자화상은 외관을 통해 내면을 드러낸다. 정신을 가다듬어 올바른 상태에 놓고, 우주를 관통하는 이치를 응시하고자 하는 강고한 자아가 엿보인다. 사진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먼저, 윤두서(1668∼1715)를 보라. 윤두서는 17세기 조선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문인이었던 윤선도(尹善道)의 증손이다. ‘어부사시사’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윤선도가 함경도에 유배되었을 때, 큰아들에게 집안 관리 잘하라고 당부하는 편지를 쓴다. 그 편지는 ‘충헌공가훈(忠憲公家訓)’이라는 이름을 띠고서, 해남 윤씨 집안에서 대대로 전하는 가훈이 되었다. 그 가훈에는 도덕적인 삶을 사는 법, 자산 관리를 잘하는 법, 공부를 제대로 하는 법, (원한을 품지 않게) 노비를 적절히 때리는 법 등이 담겨 있다.
증손자 윤두서는 아마도 그러한 가훈을 마음에 새기며 자랐을 것이다. 그리고 집안의 기대에 부응하여 1693년(숙종 19년) 진사시에 합격한다. 그러나 해남 윤씨 집안은 당쟁에서 패배하게 되고, 그 여파로 윤두서에게도 더 이상 관로가 열리지 않게 된다. 이제 윤두서는 관직의 꿈을 접고 집안에 은거하면서 학문과 예술 활동에 열중한다. 그가 남긴 자화상은 한국 회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다.
윤두서의 자화상은 단지 대상의 외관을 묘사한 데 그치지 않는다. 외관을 내면을 드러내는 창구로 활용한다. 과연 어떻게? 정면을 응시하는 눈동자가 내면의 창구일까? 고대 중국의 사상가 맹자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람 속에 있는 것 중에 눈동자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눈동자는 그 악을 덮어두지 못한다. 가슴속이 바르면 눈동자가 맑고, 가슴속이 바르지 않으면 눈동자가 흐리다. 그 말을 듣고 그 눈동자를 보면,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가슴속을 숨기겠는가?”(存乎人者, 莫良於眸子. 眸子不能掩其惡. 胸中正, 則眸子瞭焉. 胸中不正, 則眸子眊焉. 聽其言也, 觀其眸子, 人焉廋哉.) 실로 윤두서 같은 눈동자를 한 사람이라면, 지조 있는 인생을 살았을 것 같다.
눈 못지않게 인상적인 게 털이다. 털은 자신의 일부이면서 일부가 아니다. 자신의 몸으로부터 자라난 것이기는 하지만, 잘려 나가도 통증을 느낄 수 없다. 충분히 자기의 일부가 아니기에, 잘 관리하지 않으면 추레한 꼴이 되고 만다. 수염을 깔끔하게 밀어버린 사람이 수염 기르는 사람보다 단정한 사람일까. 수염을 방치하는 사람보다야 단정한 사람이겠지. 그러나 수염을 맵시 있게 기르는 사람보다는 덜 단정한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수염을 밀어버리는 일보다 수염을 관리하는 일이 더 집요한 노력과 자기 통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풍성하되 정확한 비례를 유지하도록 잘 관리된 윤두서의 수염은 그에게 고도의 자기 통제력이 장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자화상이 윤두서의 실제 모습과 얼마나 닮았을까. 그것을 확인할 길은 없다. 자신을 추한 모습으로 그리고 싶은 사람은 드물다. 윤두서의 자화상이 보여주는 것은 윤두서의 실제 모습이라기보다는, 윤두서가 보고 싶었던 자기 모습일 것이다. 정신을 가다듬어 올바른 상태에 놓고, 우주를 관통하는 이치를 응시하고자 하는 강고한 자아. 윤선도의 자화상에 따르면, 인간은 감히 그 정도의 존재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자화상은 강고한 자아가 아닌 무엇이 오고 간 흔적, 그 자체를 자신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자신을 어여쁘게 이상화하고 싶은 충동 같은 것은 없다. 사진 출처 경매회사 크리스티 홈페이지, 미 휴스턴현대미술관 홈페이지
그러나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을 보라. 영국 화가 베이컨은 윤두서와는 달리 경주마 조련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말을 조련하는 일이라, 우주의 이치를 응시하기에 바쁜 조선 시대 양반이 할 일은 아니다. 아들이라고 태어났는데 별로 남자답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베이컨의 아버지는 인부들에게 아들을 채찍질로 때리라고 시켰다. 윤두서라면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말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노비라도 마구잡이로 구타하면 앙심을 품을 수 있으니, 잘 때려야 한다고.
구타당한 베이컨은 앙심 같은 것은 품지 않았다. 그는 맞는 것을 오히려 좋아했다. 오, 제발 더 때려줘. 베이컨을 때리고 나서 당황했을 구타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연구자 데즈먼드 모리스에 따르면, 베이컨은 자기를 고문한 사람들과 섹스를 즐겼다. 피학적 동성애자였던 베이컨은 남창으로 일하면서 돈을 벌곤 했다. 역시, 조선 시대 양반이 할 일은 아니다.
자화상 속에서 베이컨은 실로 두들겨 맞은 사람의 얼굴 모양을 하고 있다. 무엇에 두들겨 맞은 것일까? 인부들의 주먹에? 함께 피학적 성행위를 즐기던 애인의 채찍에? 아니면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던 동시대에? 그것도 아니라면 삶 자체에? 피학 성애자였던 그는 자신을 두들겨 패는 삶 자체를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랑의 결과가 그의 예술이다. 그가 예술가로 큰 성취를 이루자, 세상은 살갑게도 기사 작위를 제의했다. 베이컨은 이렇게 거절했다. “그런 명예를 받으면 늙어 보여서 싫어.”
베이컨의 초상화에는 강한 속도감이 느껴지는 붓질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무엇인가 지나간 것이다. 붓이 지나갔다. 충동이 지나갔다. 감각이 지나갔다. 생명이 지나갔다. 시간이 지나갔다. 무엇인가 왔다가 지나가 버렸다. 무엇이 오고 가든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강고한 자아를 그린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 오고 간 흔적이 바로 자신이라고 그린 것이다. 이 구타의 흔적과도 같은 붓질 너머에, 별도의 불변하는 자아 같은 것은 없다.
이게 베이컨의 실제 모습일까. 글쎄. 이것은 베이컨이 자기라고 생각한 모습이다. 베이컨은 생전에 자기 얼굴은 푸딩처럼 생겼다고 말했다. 자신을 어여쁘게 이상화하고 싶은 충동 같은 것은 없다. 베이컨은 과연 자신의 모습을 그저 뭉개버린 것일까. 그저 지워버린 것일까. 그래도 거기에는 흐릿하게 누군지 알아볼 수 있는 어떤 흔적이 있다. 베이컨의 초상화를 통해서 본, 인간이란 간신히 그 정도의 존재다. 그러한 존재는 가훈 같은 건 남기지 않는다. 베이컨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순간을 넘기려고 아무 말이나 한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