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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몇 가지 사실과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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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나, 이창호는 와일드카드를 원하지 않았다 ‘이창호의 부득탐승’ 출간을 두어 주 앞둔 어느 날 가까운 사람 몇이서 저녁식사를 했다. 책에 관련된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오랜만에 허물없이 어울리는 편안함 때문에 자리는 식사로 끝나지 않고 가벼운 와인, 맥주 한잔의 2차로 이어졌다. 와인 한잔, 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일상의 이야기를 나눈 2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전철역 계단을 내려가는데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괜찮으시면 한잔 더 어떠세요?” 뜻밖에도 이창호 9단이었다. 긴 시간 몰입하면 머리 위로 열이 솟구치는 ‘상기증’ 때문에 술을 끊다시피 해서 가급적 술자리는 피해오던 터였는데 이런 유혹을 어찌 뿌리치랴. 절친 김영삼 9단과 셋이 가진 오붓한 술자리에서 이창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농심 신라면배 와일드카드 문제였다. “저기요, 농심에서 만약에 이번에도 저를 와일드카드로 지명했을 때 제가 사양하면 (지명해준 농심에)실례가 될까요? 그동안 지명해준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한데 이번만큼은 정말 아닌 것 같아서요.” 평소 이창호의 성품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뜻밖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는 늘 ‘자력 본선진출’을 원했고 실패할 때마다 특히, 랭킹1위를 벗어난 이후로는 더욱 와일드카드 지명을 부담스러워했으니까. 담백한 성격의 YS도 ‘만일, 내가 너라면’을 전제로 ‘사양하는 게 옳다’고 말해 이창호의 생각을 지지했는데 나는 선뜻 ‘그러는 게 좋겠다’는 말을 해주지 못하고 ‘그런 의사를 농심에 전해볼 수는 있겠다’고 말했다. 마침, 이튿날 농심 신라면배 해설위원 김동면 9단과 약속이 돼있어서 의논해보자는 말을 남기고 일어섰다. 그런데 이튿날 확인한 결과 와일드카드는 이미 이창호로 결정돼 한국기원에 통보했고 발표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상태였다. 연륜이 깊은 해설위원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지적했다. “농심도 이번에는 고심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 와일드카드는 성적순으로 주는 게 아니라 후원사에서 대회 규정에 의한 지명의 권리를 행사하는 건데 손 위원도 알다시피 농심은 정서적으로, 성적뿐 아니라 기사의 인품도 따지는 꼼꼼한 회사다. 또 기업인만큼 중국시장에서의 인기도 고려하는데 ‘올해까지는 이창호’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창호 9단이 사양하는 건 모양이 더 나쁘다.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야 백번 이해하지만 어쨌든 그건 후원사의 지명권 행사를 거부하는 게 되고 또 농심에서 이 9단의 마음을 이해해 받아들인다 해도 그렇게 거부한 와일드카드를 이세돌 9단이 고맙게 받아들일까. 이미 지명한 사실을 은폐할 순 없다. 그런 일은 반드시 알려지게 돼있고 그 부작용은 더 크다. 그러니 이번에는 괴로워도 그냥 받아들이는 게 좋겠다.” 세상일이라는 게 허술해보여도 톱니바퀴처럼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있다. 그날이 그랬다. 해설위원과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하필이면 평소에 가본 적 없는 한국기원 옆의 가정식 음식점이었고 하필이면 그때 음식점의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이창호, 이도윤 부부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평소라면 그 시간에 그곳을 지나갈 이유가 없는 사람들인데. 해설위원이 손짓으로 두 사람을 불렀다. 내게 들려준 것과 꼭 같은 해설위원의 설명은 이미 와일드카드 사양을 굳게 결심한 이창호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이창호는 와일드카드 지명을 사양하는 일이 자칫하면 ‘내 마음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이기심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사심 없이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팬들은 모르지만 와일드카드 지명 안팎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와일드카드 관련 기사에 달린 많은 악플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해다. 그 둘, 이창호는 사려 깊은 사람이다 이창호 9단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창호는 바둑 빼면 다 보통 이하’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어눌한 말투나 자신감 없어 보이는 평소 행동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그렇지만 그것도 오해다. 시간이 제법 흘렀으니 이젠 말해도 될 것 같다. 동일본 대지진 직후의 일이다. 한밤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이창호 9단이었다. 특유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건너왔다. ▶ 이창호, 이도윤 부부 “저, 이창혼데요. 일본 지진피해에 대한 성금을 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방송국이나 공공단체에 내는 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자문을 구한 이유는 하나다. 알려지는 게 싫다. ‘바둑국보 이창호’가 성금을 낸 사실이 알려지면 반드시 기사가 실린다. 조그만 선의가 크게 부풀려지는 일은 정말이지 달갑지 않다. 그런 뜻이다. 다행히 바둑계에 그런 움직임이 있었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사전에 알고 있었다. 한국기원도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 자유롭게 성금을 모아 일본기원에 전달할 것이라고 했다. 이창호의 선의는 원하는 대로 조용히 거기에 묻혀 보내졌을 것이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 이창호가 교회를 다닌다거나 성경을 열심히 읽는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지만 나는, 이창호가 사려 깊은 사람이란 걸 안다. 이런 일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또 밥 먹는 이야기다. 하긴, 제한된 시간 안에서 가까운 남자들끼리 만나 밥 먹고 술 마시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나 될까. 이창호 부부는 ‘스시히로바’라는 회전초밥 전문점을 좋아한다. 일본의 초밥보다 더 맛있지만 순수 국내브랜드다. 마침, 절친 YS도 ‘스시히로바’의 마니아였고 자주 어울리는 EPP휴먼네트웍스 강우석 대표가 ‘스시히로바’의 원조 마니아였기에 즉석에서 날이 잡혔는데 동갑내기 양건 9단과 최명훈 9단도 함께 했다. 과연, 초밥은 명성대로 훌륭했는데 남자들끼리 모인 초저녁 회전초밥 자리가 길어질 리는 없다. ‘이 집 우동은 꼭 맛을 봐야한다’는 강 대표의 말에 목구멍까지 차오르도록 게걸스럽게 먹어대고 따뜻하게 덥힌 일본 술을 곁들이며 만만치 않은 수다를 얹었지만 자리는 1시간이 조금 지나서 파장이 됐다. 문제는, 약속한 사람 중 한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워낙 가깝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조금 늦는다’고 양해를 구했기에 버리고(?) 갈 처지도 아니어서 근처의 바(BAR)로 이동해 가볍게 한잔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3, 40분이 지나 마지막 한 사람이 도착했는데 주차다 뭐다 해서 근처를 뱅뱅 돌며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데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문제가 생겼다. 그는 저녁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먼 길을 달려오느라 쫄쫄 굶은 상태였다. 주차할 곳도 눈에 띄지 않아 근처를 몇 바퀴 돌며 고생고생 겨우 합석했는데 하필이면 그 술집에는 식사는커녕 요기할만한 안주조차 없었던 것이다. 일행의 위장이 모두 포화상태라 어느 누구도 또 다른 식당을 찾아 일어설 생각이 없었다는 것도 그의 불행이라면 불행이었다. 위풍당당한 체구의 그(안 밝히려고 했는데 한국물가정보 노승권 이사)가 초췌한 얼굴로 땅콩과 포 조각을 조물락거리는 모습은 정말 안쓰러웠다. 그때 말없이 맥주 한잔을 홀짝거리고 있던 이창호가 슬그머니 일어섰다. 그때만 해도 모두 화장실을 생각했을 것이다. 한참을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누군가 ‘또 세수하나?’라고 중얼거리는데 이창호가 커다란 비닐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저기, 이거라도 좀 드세요.” 근처 어딘가에서 돈가스 도시락을 사온 거였다. 인스턴트에 가까운 도시락이었지만 밥은 따끈따끈해 보였고 함께 포장해온 국물도 김이 모락모락 올라 식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노 이사의 얼굴은 즉각 흡족한 웃음으로 가득차고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이 반전(?)에 조금 당황했는데 머릿속의 생각은 비슷했을 것 같다. 돌부처가 사다준 도시락을 먹게 되다니. 저녁, 굶을 만한데? 생각해보니 그건,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내가 오래 전부터 느껴온 이창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이따금씩 그걸 잊을 뿐. 그 셋, 이창호는 많은 것을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 ‘이창호의 부득탐승’ 출간을 전후해서 관련된 말들이 많다. 그 중에는 이창호의 말을 정리한 내게 쏟아지는 이런 비아냥거림도 있다. “이창호는 어눌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의 글이라고 하기에 문체가 너무 매끄럽다. 좀 이창호의 체취가 느껴지게 쓸 수 없나?” 무슨 말인 줄 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모르는 사실이 있다. 이창호의 말투가 어눌한 것이지 이창호가 어눌한 사람은 아니란 사실이다. 그 차이는 작지 않다. 아주 가까운 두 사람의 얘기를 들어본다. “이창호는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가 많아요. 굳이 ‘나 알고 있어’라고 말할 필요를 못 느끼는 거죠. 언젠가 ‘다 알면서 말 안하는 거지?’라고 물으니까 그냥 피식, 웃더군요. 음흉해요.” 김영삼 9단의 말이다. 또 있다.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된 이도윤 씨의 얘기다. “사람들은 오빠가 얼마나 똑똑한 줄 잘 모르는 거 같아요. 책도 많이 읽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보면 정말 모르는 게 없더라고요.” 맞다. 우리는 그동안 오직 바둑을 통해서만 이창호를 봤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진짜 이창호를 모를 수도 있다. 10여 년 이상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가 보여준 바둑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가진 사람이라고 느끼긴 했지만. 이런저런 인연으로 5년 전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졸저를 냈는데 그때 이창호가 내게 해준 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이 책 제목, 어떻게 정하셨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인데….” 전주를 오가며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많은 인터뷰를 챙기면서 제법 발품을 팔았지만 책 제목을 이창호와 상의해본 적은 없었다. 그냥 취재하면서 자연스럽게 느껴진 이창호의 삶이 그렇기에 ‘가능하면 이 제목을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출판사에 제의한 거였는데 그게 제일 좋아하는 말이었다니. 진심이 통한 것 같아 기뻤다. 그 인연이 다시 ‘이창호의 부득탐승’을 출간하는 데까지 이어졌는데 몇 차례 변화가 있었다. 처음에는 2006년에 출간된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의 개정판을 이야기하다가 이창호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보자는 말에 혹해서 이창호-손종수 공저로 발전(?)했다. 물론, 이창호의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솔직히 말하면, 거기서 멈춰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창호가 말하고 손종수가 정리한 뒤 이창호 이름으로 출간하는’ 완성판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글 좀 쓰고 이창호와 가깝다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산적했다. 시간도 이창호에게나 나에게나 그렇게 우호적인 친구는 아니었다. 어쨌든 책은 나왔다. 이 책을 통해 진짜 이창호는, 2006년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를 출간했을 때 내가 생각했던,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어눌한 이창호’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해질지 모르겠다. 아무쪼록 이창호와 출판사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독자들에게 불편한 독서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창호는 ‘나는 천재가 아니’라고 한다. 2006년 나는 ‘이창호는 틀림없는 천재’라고 했는데 많은 이야기를 나눈 뒤 ‘나는 천재가 아니’라는 이창호의 말에 공감하게 됐다. 마음속에 공명을 일으킨 몇 마디 말을 골라 옮겨본다. 대개의 사람들은 천재의 재능을 먼저 발견하지 못한다. 다만 그 행위의 비범한 결과를 보고 비로소 천재라고 부를 뿐이다. 따라서 천재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린다면, 다음과 같은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모든 아이들을 천재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니다. 문제가 있을 때,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오래 생각할 뿐이다.” 아이에게 성급하게 무엇을 하라거나 무엇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았던 부모님. 부모님은 그것이 아이를 위하는 일이라기보다 부모의 욕심과 집착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아이의 미래를 좌우할 재능은 어느 곳에 감춰져 있다가 언제 돌발적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가능하면 아이가 스스로 최선의 재능을 찾을 수 있도록, 많은 것을 경험하고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좋다. 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가족이 나를 늘 지켜보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일이다. 재능이란 가족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자라는 나무다 재능을 가진 상대를 넘어서는 방법은 노력뿐이다. 더 많이 집중하고 더 많이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바둑에는 ‘복기’라는 훌륭한 교사가 있다.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준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스승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까운 사람과 한의원을 찾았다가 대기실에서 집어든 ‘포브스코리아’에 선생님의 인터뷰가 게재돼 있었는데, 거기 스승의 훈육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제 스승이신 세고에 선생님의 정신세계는 일반인과 차원이 달랐어요. 도인에 가까우셨어요. 저에게도 프로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라고 하셨죠. 바둑을 계속 두면서 ‘인간됨’을 강조한 선생님의 가르침을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스승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확실히 보여주셨어요. 선생님께선 ‘제자가 가는 길을 터주는 것이 스승이다’라고 하셨어요. 한국에 와서 이창호를 내제자로 받아들였을 때도 선생님의 가르침을 꼭 실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모든 ‘느림’은 절대적인 느림이 아니다. 빠르게, 좀더 빠르게 질주하는 현대생활의 모든 사고방식에 대한 상대적 느림이다. 상대적 느림은 ‘감속(減速)’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바둑의 속도는 외형으로 드러나는 행마의 속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 감춰진 인식의 속도, 판단의 속도가 중요하다. 몸에 맞는 옷과 같은 것, 바로 적정의 속도가 핵심이다. 그것을 달리 표현하면 ‘균형’이다. 바둑을 두는 사람이라면 더구나 프로라면 누구나 ‘자만이 곧 패착’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때때로 함정이 된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자만에도 단계가 있다. 스스로 교만한 줄 모르는 것이 자만의 포석이고, 아예 겸손한 척하는 것이 자만의 중반이며, 심지어 자신이 겸손하다고 착각하는 것이 자만의 끝내기다. 그것이 내가 30년 가까이 반상을 마주하며 수없이 많은 실전에 임하면서 비로소 깨닫고, 가장 경계했던 부분이다. 순류(順流)에 역류(逆流)를 일으킬 때 즉각 반응하는 것은 어리석다. 거기에 휘말리면 나를 잃고 상대의 흐름에 이끌려 순식간에 국면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다. 바둑만큼 ‘상대적’이라는 의미가 잘 드러나는 게임도 없다. 상대가 역류를 일으켰을 때 나의 순류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상대의 처지에서 보면 역류가 된다. 그러니 나의 흐름을 흔들림 없이 견지하는 자세야말로 최고의 방어수단이자 공격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중요한 승부에서 패하고도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 사람은 이미 프로가 아니다. 그것은 인품과 무관하다. 승부사에게 패배의 아픔은 항상 생생한 날것이어야 한다. 늘 승자가 될 수는 없지만 패자의 역할에 길들여져서는 안 된다. 위험한 곳을 과감하게 뛰어드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다. 뛰어들고 싶은 유혹이 강렬한 곳을 외면하고 묵묵히 나의 길을 가는 것도 용기다. 이럴 때 승부의 포인트는 누가 먼저 인내를 깨뜨리느냐에 있다. 재기발랄한 신세대들의 도전이 갖는 열정과 패기의 에너지는 대단히 매력적이지만 선행자들에 대한 존중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어제가 없었으면 우리의 오늘도 없다. 나도 이제 기성세대가 되어 잔소리를 입에 담을 나이가 된 것일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겸손과 자존심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꺾이지 않는 단단한 자존심을 가진 사람만이 진심으로 겸손할 수 있다. 바둑교실의 문을 기웃거리는 수많은 보통 어린이들에게 ‘설렘 가득한 너의 그 얼굴이 20여 년 전 나의 얼굴이며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
첫댓글 아! 그런 숨은 뜻이 있었군요!.........
참으로 대단 합니다!
뭔가 다른 포스가 느껴집니다!
예전부터 항상 존경하고 좋아한 창호느님 +_+
참 잘 읽었습니다. 역시 이창호는 국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