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아침까지 비(雨)는 계속 내렸다.
조찬(朝餐)을 가볍게 마치고 조금은 무겁고 들뜬 마음으로
제주79바2304(한광일)호에 올랐다.
호텔에서 성판악관리소 까지 가는 도중에 기사님께서 제주도 홍보 겸
한라산(漢拏山)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운한가라인야(雲漢可拏引也)에서 유래(由來)된 한라산은
“구름 속에서 은하수(銀河水)를 잡아당길 수 있다” 뜻이 담겨 있다고 하였다.
한라산의 높이는 남쪽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해발(海拔) 1,950m인데
제주인들은 “일단 구경오십시오”라고 소개(紹介)한다고 덧붙였다.
의역(意譯)을 잘한 거 같다.
성판악에 도착하여 차림단속을 새롭게 하고 산신령님께 인사도 없이
매표소를 지나쳐 줄달음치듯 발걸음을 옮겼다.
활엽수인 상록의 굴거리나무가 청초한 빛으로 반겨 주었다.
대부분 우의(雨衣)를 걸쳤지만 개중에는 우산(雨傘)을 들고 산행하는 등산객도 눈에 띄었다.
청승맞다고 해야 하나, 꼴불견이라고 해야 하나?
제주만의 특색인 특이한 돌이 깔려 있는 등산로(登山路)가 돋보였다.
서어나무며 참나무 조릿대 숲을 지나 얼마를 걸었을까?
해발(海拔) 900m 표지석(標識石)이 보였다. 웬일일까?
가랑비(雨) 그치고 가는 눈(雪) 발이 흩날리지 않은가?
이게 무슨 조화(調和)야! 한라산 신령님의 심술일거나.
900m를 지나니 가랑비(雨)가 가는 눈(雪) 발로 바뀌고 사방이 눈(雪)이다.
사라 대피소에서 급한 용무도 해결하고 아이젠도 착용하였다.(07:50)
사라 대피소까지는 완만한 눈길이라 걸음에 부담이 없었다.
12시까지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해야 정상(頂上)에 갈 수 있다는
표지판(標識板)을 보고 걸음을 서둘렀다.
1시간 정도 만 더 걸으면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倒着) 한다고...
오를수록 눈의 양이 많았고 즐길 수 있는 장면이 많았다.
여기저기서 눈길을 오르다 말고 추억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허기(虛飢)가 있다고 하는 회원이 이는 걸 보면 시간적으로 진달래밭 대피소가
멀지않았음을 시계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듯하였다.
차내에서 기사님이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라면과 간식(間食)을 하고 오를 수 있다고 하였었다.
남쪽 최고봉(最高峰)을 오른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을 정도로 거친 오름이 거의 없는
완만한 산길을 비(雨)를 맞으며 눈(雪) 길을 밟으며 오르기를 얼마...
왁자지껄한 걸로 봐서 진달래밭 대피소에 당도 한듯하다.(08:40)
급한 용무를 볼 사람과 간식을 즐길 사람은 여기서 해결해야 하나 보다.
실내로 들어서려면 아이젠을 풀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雪國)이 따로 없다.
한라산(漢拏山)의 순백(純白)의 자태(姿態)가 설국(雪國) 이였다.
여기가 용궁(龍宮)인가? 천궁(天宮)인가? 토궁(兎宮)인가?
아니면 서궁(鼠宮)인가?
누군가 그렇지, 무자년 이니까 서궁(鼠宮)이라야 해!
이럴 수가 있는가? 제주도의 특징, 한라산의 특징이란 건가.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부터 제법 경사진 오름이 나타나지만 멀리 백록담 오르는 길의
형형색색(形形色色)의 우의(雨衣)와 등산복 차림의 등산객(登山客)들의 행렬이
설경(雪景)과 어우러져 장관(壯觀)이 따로 없구나?
힘이 들어도 잠시의 쉼을 반복한 뒤에야 정상(頂上)에 도착한다고.
이럴 수가 있는 건가? 제주도의 특징, 한라산의 특징이란 건가?
기사님 말씀 따라 행운이 주어지면 백록담도 만날 수 있고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눈 덮인 한라산을 관조(觀照)할 수 있다고...
조금은 힘들어도 부푼 기대를 안고 간간히 추억도 만들어가며 서로 격려하면서 걸었다.
꽁꽁 언 손으로 풀었다 다시 채우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닐 것인 즉
실내 바닥을 아이젠을 채우고 다녀도 괜찮을 실내바닥을 만들어 놓았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였을 터인 즉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관광버스기사 겸 안내를 해주신 한광일 님 이 우리 일행을 불렀다.
왔던 길보다도 가야 할 길이 짧으면서도 험 할 수 있으니 안전하게 천천히
12시 이전에 백록담에 당도해야 점심도 마치고 추억잡기도 여유 있게 마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순간순간 변화가 무쌍하기 때문에 이렇게 궂은 날씨 때에도 백록담 설경(雪景)을
만끽 할 수도 있다 해서 서둘렀다.
그 말은 맞았다. 운무(雲霧)가 짙게 깔려 코앞이 안보일 정도였다.
오를수록 놓치고 싶지 않은 설경(雪景)에 눈을 땔 수가 없었다.
눈꽃(雪花)이며 상고대(무송:霧淞,수상:樹霜)며, 구상나무에 쌓인 눈은
기암괴석(奇巖怪石)을 방불케 하는 기기묘묘(奇奇妙妙)한 군상(群像)들.
시각(視覺)에 따라 코끼리, 사자 등 동물의 형상(形象)처럼...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 인간이 이런 조형물(造形物)을
어찌 인위적(人爲的)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싶었다.
자연(自然)의 조화(調和) 아니 우주(宇宙)의 섭리(攝理)라고 해야 하나?
한마디로 표현 할 수없는 환상적(幻想的)인 황홀(恍惚)함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신비로운 정경(情景)에 흠뻑 빠진 나머지 발걸음이 더딘 듯...
백록담을 향해서 걷는 발걸음이 어찌나 많고 더디던지...
마음은 부질없이 바뿐데 빨리 나가질 못한다.
백록담에 오르는 중생(衆生)들로 인하여....
▶ 한라산에 오르다. 동능정상(頂上:1,950m).
드디어 올랐다. 앞서 간 일행들이 자리를 펴고 기다리고 있었다.
백록담 언저리에서 백록담은 보지 못한 체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오찬(午餐)을 시장으로 즐겼다.
한광일 님이 “백록담이 보인다.” 라고 탄성(歎聲)을 냈다.
식사를 중단하고 얼른 보았다.
운무(雲霧)가 서서히 걷히더니 위용(威容)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한라산 백록담 언저리에서 내려다보니 가히 환상적(幻想的)이라 할 수 있는 장관(壯觀)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순간을 놓일세라 작품잡기에 질서는 안중에도 없고 찰칵 찰칵....
운무(雲霧)가 전혀 없는 맑은 날이라야 백록담을 보게 된단다.
우리 일행은 억수로 운(運)이 좋았나보다.
웅장한 분화구(噴火口)의 모습이지만 밑바닥까지 하얀 눈으로만 덮여서인지
신비로운 모습은 덜한 듯하다.
사방을 둘러보니 탁 트인 제주 앞바다의 모습과 오르면서는 볼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장면이 연출 되었다.
운무(雲霧)가 서서히 걷히니 순백(純白)의 자태(姿態)를 드러내지 않은가?
순간을 놓일세라 렌즈에 담으려 애써 보지만 등산객들에게 장애가 되니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잡아 보았다.
운무(雲霧)가 서서히 걷히더니 위용(威容)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 운무(雲霧)가 걷히니 백록담(白鹿潭)의 위용(威容)이 드러나고...
또 한편에서는 “바다가 보인다” 라는 탄성(歎聲)이 들렸다.
덜덜 떨면서 오찬(午餐)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풀어 놓은 물건들을
정리 하려는 데 와~~! 하고 탄성(歎聲)을 하기에 바라보니 꽉 끼어 앞을 분간 할 수 전경(全景)이 한 순간에 확 트이더니 바다가 보이고 설경(雪景)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은가.
또 한편에서는 “한라산 설경(雪景)이 보이다” 라는 탄성(歎聲)이 들렸다.
▶ 운무(雲霧)가 걷히니 한라산 설경(雪景)이 한 눈에 보이고...
한 순간 무아경(無我境)에 빠진 듯하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한라산 설경을 어찌 한마디로 표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걸 뭐라고 표현하는가?
장관(壯觀)이라고 하는가? 정경(情景)이라고 하는가?
정경(情景)! 황홀(恍惚)한 장관(壯觀)?
바다 쪽을 바라보려니 지금까지 애를 쓰고 기어 올라왔던 한라산 설경이
한 눈에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지 않은가? 수묵화(水墨畵)라고 해야 하나?
10분도 안돼서 다시 운무(雲霧)가 서서히 움직이더니 그 황홀한 모습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앞서간 사람들이나 뒤에 올라 간 사람들이나 그 순간을 만나지 못했으면 허사였을 것이다.
이래서 뭐든 때(Time)가 중요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해보았다.
어쩜 우리네 인생살이도 때(Time)가 중요하다는 생각 말이다.
하산 계획이 관음사 쪽이었으나 폭설(暴雪)로 인하여 통제(統制)가 이루어져 올라왔던 길로
하산 할 수밖에 없었다.
관음사 쪽이면 어떻고 성판악 쪽이면 어떠하랴?
꿈에도 그리던 한라산(漢拏山)에 올라 한라의 300여개의 오름 중에서 가장 큰 위용(威容)을
자랑하는 백록담(白鹿潭)과 설경(雪景)을 보았고 담았으면 되었지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우중에 신령스런 한라산을 겁도 없이 발을 드려 놓은 지 4시간 30여분 만에 힘겹게 백록담에
당도한 보람이 있었다.
백록담에 12시 까지는 당도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오를 때 추억 만들기를
놓친 곳을 내려오면서 추억 만들기도 하면서 여유 있는 마음으로 하산 할 수 있었다.
▼ 다정(多情)이 설병(雪病) 될라...
4시까지만 성판악에 도착하면 계획에는 차질이 없기 때문이었다.
지치긴 하였어도 오를 때 보다는 내려오는 걸음이 수월하고 가벼웠다.
동심(童心)으로 미끄럼을 타면서 내려오는 일행도 있었다.
그래도 조심은 하면서 말이다.
우리 속담(俗談)에 “다 된 밥에 코 빠트린다” 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일행이 한 분도 사고 없이 산행(山行)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함께 한 산우(山友)회원과 임원진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화기애애(和氣靄靄)한 모습이 좋았고 하산하면서
귤껍질이며 비닐봉지, 빈병 등을 주어서 가지고 온 것은 자연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순수한 모습에 감동 받은 산행인들이 많았으리라 여깁니다.
아무쪼록 바쁜 와중에도 삶의 여유를 얻고 자연과 어우러져
또 다른 삶의 지혜를 배웠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한라산 산행을 마치고 용담 해수사우나에서 땀과 비(雨)와 눈(雪)으로
범벅이 된 몸뚱이를 씻고 덤장식당에서 조촐하게 만찬(晩餐)을 마치고
광주행 아시아나항공기 편으로 광주에 도착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산행은 의미가 깊기 때문에 차분히 정리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