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사비 백제의 영광! 백마강에 노을로 지다
7월 산성학교는 백제 망국의 회한 <부소산성>, 최후의 항전 요새 <가림성> 탐방 후 연꽃 만발 <궁남지> 산책
싱그러운 7월, 산성학교(교장 최연. 역사유적과 풍경답사 전문가, 전 서울학교·고을학교 교장) 제4강은 황산벌 전투와 백강 전투의 대패로 결국 나당연합군에게 부여의 사비 도성을 내어주고 의자왕은 공주(웅진) 공산성으로 도망친 백제 멸망 역사의 현장인 <부소산성>과 백제 멸망 후 백제부흥운동의 핵심 거점 산성으로 나당연합군과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가림성>을 탐방합니다. 아울러 연꽃이 만발한 <궁남지>를 천천히 돌아보며 힐링의 시간도 갖겠습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우리나라는 '산성의 나라'라 할 만큼 산성이 많습니다. 최연 교장샘은 그중 역사적 가치가 높고 이야기가 풍부하며 풍광이 빼어난 대표 산성들만 엄선해 일단 12강을 목표로 강의를 진행 중이십니다. 회원님께선 이번 소중한 기회를 꼭 잡으시기 바랍니다^^
▶최연 교장선생님의 <산성학교를 열며>
▲백제부흥군의 거점이며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부여 가림성Ⓒ한국관광공사
산성학교 제4강은 충남 부여, 백제 멸망의 현장 <부소산성>과 최후 항쟁의 요새 <가림성>을 탐방한 후 연꽃 만발한 <궁남지>를 천천히 산책합니다. 2026년 7월 26일(일요일) 열리며 오전 7시 서울을 출발합니다. 정시 출발하니 출발 시각 꼭 지켜주세요. 오전 6시 50분까지 서울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6번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 정문앞에서 <산성학교> 버스(온누리여행사)에 탑승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여는 모임에 이어,
이날의 답사 코스는 서울-가림성(사랑나무/충혼사/유태사묘/성흥루)-대조사-부소산성(삼충사/영일루/군창지/반월루/사자루/낙화암/고란사/서복사지)-왕궁터-궁남지-서울의 순입니다.
*답사 도중 막걸리를 곁들인 점심식사 겸 뒤풀이 시간을 갖습니다.
▲부여 <부소산성> <가림성> 탐방과 <궁남지> 산책 안내도Ⓒ산성학교
*코로나19와 독감 등 감염병 예방을 위해 참가회원님은 항상 차내·실내 마스크 착용, 손소독, 거리두기를 잘 챙겨주시기를 권합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부여 <부소산성> <가림성> 탐방과 <궁남지> 산책에 대해 설명을 듣습니다.
가림성(加林城)은 백제의 수도, 사비도성을 지키는 거점 산성이었습니다.
가림성은 금강 하류 부근에 쌓은 백제 시대 석성으로 금강을 따라 서해에서 도성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있어 수상 교통 방어의 거점을 담당하였습니다. 백제 시대 성곽 중 유일하게 연대와 당시의 지명을 알 수 있는 산성이고 또한, 부여 일대의 석성산성, 증산성, 청마산성 등과 함께 사비 도성을 보호하는 거점 산성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산 정상에 서면 금강이 유장하게 흘러가는 모습이 장관이고, 논산, 강경, 익산, 서천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이런 조망으로 서해에서 금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적을 막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사비성 외곽을 방어하는 거점이 됐습니다.
이 성은 백제부흥군의 거점이기도 하였습니다. 663년 당시 이곳을 공격하던 유인궤가 이 성이 험하고 견고하여 공격하기 어렵다고 한 것에서 난공불락의 요새지에 마련된 성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통일신라 시기에는 김유신과 천관녀 사이에 태어난 김시득 장군이 이곳에서 활동하며 당나라와의 기벌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가림성은 달리 성흥산성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가림성이 있는 산의 이름이 성흥산이기 때문입니다. 가림은 백제 시대 이 지방의 지명으로 사용된 기록이 있습니다. 현재의 이 지방 이름은 임천으로 백제 때 ‘백가의 반란’ 때문에 이곳의 이름이 강등되어 바뀐 것으로 보입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백제 동성왕은 501년 8월 가림성을 쌓고 궁궐의 호위를 총괄하는 위사좌평 백가를 보내 성을 지키게 하였는데 불만을 품은 백가는 동성왕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동성왕의 아들인 무령왕이 반란을 진압하고 그를 처형하여 시신을 백마강에 던졌다고 합니다. 높은 관리인 위사좌평이 성을 지키도록 하였다는 사실은 이 성이 전략적으로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산성의 형태는 성흥산(286m) 8부 능선에 테뫼식으로 쌓았으며 내성과 내성의 동남쪽으로 이어진 외성으로 조성된 이중성입니다. 내성은 백제 시대에 축조되었고, 외성은 고려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내성은 길이 1,325m, 면적 9만 2,568㎡ 규모이고 외성은 동문지의 북쪽에서 연결되며 길이 706m, 면적 3만 8,138㎡의 규모이며 성곽 높이는 3~4m입니다.
성안에는 남, 서, 북문 터와 군창 터, 우물터 3곳, 돌로 쌓았던 방어시설인 토축 보루가 남아있으며 정상부에는 통일신라 시대 건물지, 고려 시대 건물지, 조선 시대 담장 시설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북쪽 구간에는 백제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계속 수, 개축된 성벽 시설이 확인되었고 성내 시설로 백제 시대 석축 배수로, 통일신라 시대 집수지, 고려 시대 집수정, 조선 시대 집수지와 수구 시설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이어진 꾸준한 발굴조사로 백제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다양한 유물이 발굴되었습니다.
찬란했던 사비 백제의 영광! 백마강에 노을로 지다
7월 산성학교는 백제 망국의 회한 <부소산성>, 최후의 항전 요새 <가림성> 탐방 후 연꽃 만발 <궁남지> 산책
싱그러운 7월, 산성학교(교장 최연. 역사유적과 풍경답사 전문가, 전 서울학교·고을학교 교장) 제4강은 황산벌 전투와 백강 전투의 대패로 결국 나당연합군에게 부여의 사비 도성을 내어주고 의자왕은 공주(웅진) 공산성으로 도망친 백제 멸망 역사의 현장인 <부소산성>과 백제 멸망 후 백제부흥운동의 핵심 거점 산성으로 나당연합군과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가림성>을 탐방합니다. 아울러 연꽃이 만발한 <궁남지>를 천천히 돌아보며 힐링의 시간도 갖겠습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우리나라는 '산성의 나라'라 할 만큼 산성이 많습니다. 최연 교장샘은 그중 역사적 가치가 높고 이야기가 풍부하며 풍광이 빼어난 대표 산성들만 엄선해 일단 12강을 목표로 강의를 진행 중이십니다. 회원님께선 이번 소중한 기회를 꼭 잡으시기 바랍니다^^
▶최연 교장선생님의 <산성학교를 열며>
▲백제부흥군의 거점이며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부여 가림성Ⓒ한국관광공사
산성학교 제4강은 충남 부여, 백제 멸망의 현장 <부소산성>과 최후 항쟁의 요새 <가림성>을 탐방한 후 연꽃 만발한 <궁남지>를 천천히 산책합니다. 2026년 7월 26일(일요일) 열리며 오전 7시 서울을 출발합니다. 정시 출발하니 출발 시각 꼭 지켜주세요. 오전 6시 50분까지 서울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6번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 정문앞에서 <산성학교> 버스(온누리여행사)에 탑승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여는 모임에 이어,
이날의 답사 코스는 서울-가림성(사랑나무/충혼사/유태사묘/성흥루)-대조사-부소산성(삼충사/영일루/군창지/반월루/사자루/낙화암/고란사/서복사지)-왕궁터-궁남지-서울의 순입니다.
*답사 도중 막걸리를 곁들인 점심식사 겸 뒤풀이 시간을 갖습니다.
▲부여 <부소산성> <가림성> 탐방과 <궁남지> 산책 안내도Ⓒ산성학교
*코로나19와 독감 등 감염병 예방을 위해 참가회원님은 항상 차내·실내 마스크 착용, 손소독, 거리두기를 잘 챙겨주시기를 권합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부여 <부소산성> <가림성> 탐방과 <궁남지> 산책에 대해 설명을 듣습니다.
가림성(加林城)은 백제의 수도, 사비도성을 지키는 거점 산성이었습니다.
가림성은 금강 하류 부근에 쌓은 백제 시대 석성으로 금강을 따라 서해에서 도성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있어 수상 교통 방어의 거점을 담당하였습니다. 백제 시대 성곽 중 유일하게 연대와 당시의 지명을 알 수 있는 산성이고 또한, 부여 일대의 석성산성, 증산성, 청마산성 등과 함께 사비 도성을 보호하는 거점 산성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산 정상에 서면 금강이 유장하게 흘러가는 모습이 장관이고, 논산, 강경, 익산, 서천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이런 조망으로 서해에서 금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적을 막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사비성 외곽을 방어하는 거점이 됐습니다.
이 성은 백제부흥군의 거점이기도 하였습니다. 663년 당시 이곳을 공격하던 유인궤가 이 성이 험하고 견고하여 공격하기 어렵다고 한 것에서 난공불락의 요새지에 마련된 성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통일신라 시기에는 김유신과 천관녀 사이에 태어난 김시득 장군이 이곳에서 활동하며 당나라와의 기벌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가림성은 달리 성흥산성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가림성이 있는 산의 이름이 성흥산이기 때문입니다. 가림은 백제 시대 이 지방의 지명으로 사용된 기록이 있습니다. 현재의 이 지방 이름은 임천으로 백제 때 ‘백가의 반란’ 때문에 이곳의 이름이 강등되어 바뀐 것으로 보입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백제 동성왕은 501년 8월 가림성을 쌓고 궁궐의 호위를 총괄하는 위사좌평 백가를 보내 성을 지키게 하였는데 불만을 품은 백가는 동성왕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동성왕의 아들인 무령왕이 반란을 진압하고 그를 처형하여 시신을 백마강에 던졌다고 합니다. 높은 관리인 위사좌평이 성을 지키도록 하였다는 사실은 이 성이 전략적으로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산성의 형태는 성흥산(286m) 8부 능선에 테뫼식으로 쌓았으며 내성과 내성의 동남쪽으로 이어진 외성으로 조성된 이중성입니다. 내성은 백제 시대에 축조되었고, 외성은 고려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내성은 길이 1,325m, 면적 9만 2,568㎡ 규모이고 외성은 동문지의 북쪽에서 연결되며 길이 706m, 면적 3만 8,138㎡의 규모이며 성곽 높이는 3~4m입니다.
성안에는 남, 서, 북문 터와 군창 터, 우물터 3곳, 돌로 쌓았던 방어시설인 토축 보루가 남아있으며 정상부에는 통일신라 시대 건물지, 고려 시대 건물지, 조선 시대 담장 시설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북쪽 구간에는 백제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계속 수, 개축된 성벽 시설이 확인되었고 성내 시설로 백제 시대 석축 배수로, 통일신라 시대 집수지, 고려 시대 집수정, 조선 시대 집수지와 수구 시설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이어진 꾸준한 발굴조사로 백제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다양한 유물이 발굴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