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4장 13 - 18절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휴거라는 제목의 소설책이 있는데 그 책에 보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근거가 되는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17절에 보면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살아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휴거의 모습이 신빙성이 있는 것이 예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말씀만 보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데살로니가전서 4장과 함께 보게 되면 이해하기가 쉬운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휴거 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 땅에서 칠 년 대 환난을 겪게 되는데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조금만 힘들면 믿음을 져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대환난 속에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최선을 다해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생활을 해야지 어영부영하다가는 칠 년 대 환난을 겪으면서 우리의 믿음이 참 믿음인 것을 보여 드려야 하기 때문에 더 어려운 상황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오늘 말씀은 소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특별히 죽음 후의 소망이 없어서 슬퍼하면서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주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슬픈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적어도 믿음 안에서 죽은 사람들은 그런 슬픔에 오래 동안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을 통해 서로 위로하면서 빨리 슬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크게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모가 애들 방에 들어갔는데 애들이 곤히 잠을 자고 있으면 행복해 하지 슬퍼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을 볼 때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가지고 슬픔을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장례식 용어 중에 영결식이라는 용어를 더러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 잘못된 용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결식은 영원히 이별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이 죽으면 그 사람은 지옥에 갈 것이고 우리는 천국에 갈 것이기 때문에 영원한 이별이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믿음 안에서 함께 있는 사람들은 영결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안 됩니다. 잠시 잠을 자다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잠에서 깰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에게 영원한 이별을 고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의 형제들끼리는 절대 영결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사람들은 복 되다고 말씀을 하시고 있고 예수님을 온전히 믿는 사람들은 죽음조차도 두렵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잠깐 자고 일어나면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할 것인데 무슨 두려움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가 문지기 여종 한 사람 앞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했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경험하고 나서는 자신의 생명을 빼앗아갈 수 있는 공회원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런 소망과 이런 믿음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가지는 가장 큰 두려움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인데 그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오늘 이 말씀이 우리의 소망이 되고 믿음이 되었을 때 누리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말씀이 우리에게 복이 될 수 있도록 굳건히 믿으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하루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그 이후부터 어떻게 되냐면 17절 후반부에 보면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이제는 주와 떨어지지 않고 영원히, 항상 함께 하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임마누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지만 실상을 보면 우리 스스로 그렇게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고 싶어서 우리를 찾아오시는데 우리가 싫어서 문을 열어주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날부터는 이제 우리가 천국인의 모습이 되어서 온전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항상 주와 함께 있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뿐만 아니라 오늘 살아가면서 실망스럽고, 걱정스럽고, 아프고, 힘들 때에도 이 말씀을 생각하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고 적지 않는 소망이 되는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이 말씀을 우리 평생의 소망으로 삼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넘어짐에 대한 두려움, 좌절과 실망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면서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쁨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의 소망이 되고 믿음이 되면 이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슬퍼하지 않게 이 말씀으로 큰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고,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 앞에서 이 말씀으로 서로 위로하면서 기쁨을 서로 나누면서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