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서북부 최고(最古)의 근대문화재 일산역.
1933년 개축된 이래 75년째 제자리를 굳건히 지켜오고 있다.
1980년대 초반 일산읍내의 난개발, 1990년대 초반 일산신도시 입주로 주변이 온통 황폐화 되었어도
일산역만큼은 70년 전 그 모습 그대로를 유지해오고 있다.
경의선의 경기도 구간 중 일산역 만큼 주변 풍경이 어지러운 곳도 없지만,
또한 일산역만큼 옛 모습을 많이 지키고 있는 역도 없을 것이다.
역 곳곳에 몇 십년 전의 추억거리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일산역.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문화재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일산역 앞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산시장으로 유명하다.
5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수많은 할머니 분들이 장바구니를 이고 와서 장마당을 펼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는데,
그 때가 되면 일산역 앞 도로는 마비가 된다.
아파트로 뒤덮인 곳에서 이렇게 시골 읍내의 정겨운 풍경을 보는 일도 쉽지 않다.
"읍내"와 "시내" 사이에 끼어있는 일산역.
정말로 여기가 일산을 대표하는 역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초라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시골 간이역역의 정겨움을 듬뿍 담고 있는 역이기도 하다.
일산읍내와 신도시가 건설되었음에도 유일하게 일제시대 건축물로 남아있었기에,
2006년 12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 때문에 일산역은 전철 개통 후에도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
복선전철 개통 이후 구 일산역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정말로 궁금하기만 하다.
일산역사 내부는 사람이 몇 명만 들어가도 순식간에 꽉 찰 정도로 비좁다.
그렇기에 스토리웨이 같은 편의점이나 휴식을 취하면서 TV를 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고,
의자라고 해봤자 벽에 붙어있는 목조의자가 전부다.
표 사는 곳도 조그맣고 아담하다.
두 개의 창구지만 사용하는 창구는 오직 하나.
열차가 다가올 시간만 되면 표를 끊는 일 때문에 역무원 분들이 분주해진다.
경의선에서도 꽤나 비중있는 교행역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상.하행 시간표가 다른 어느 역들보다 더욱더 크게만 느껴진다.
시간표 위에는 1984년 처음으로 운행되었던 "새마을호"의 사진이 걸려있다.
1905년 경의선 완전개통 당시에 남대문역(현 서울역)을 출발하는 증기기관차 사진까지 당당히 걸려있다.
그야말로 '살아 숨쉬는 철도박물관'인 셈이다.
보기 힘든 귀중한 사진 자료까지 걸려있기에 일산역이 더욱 뜻깊게 느껴진다.
2007년 10월 선로 이설 공사로 인해 역 구내 풍경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경의선의 역들 중 가장 공정률이 낮은 일산역이지만,
그 일산역마저도 복선전철 공사의 폭풍을 피해갈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일산역, 탄현역의 이설로 인해 가좌역을 제외한 경의선의 모든 역이 옛 모습을 상당히 많이 잃어버렸다.
그 중에는 아예 옛 모습을 찾아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역도 있다.
일산역은 아직 그 정도의 수준은 결코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최근 들어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철도박물관에나 가야 겨우 볼 수 있었던 완목신호기가 있었던 자리지만,
그 자리에 완목신호기는 없고 역목이 햇살을 가득 담고 있다.
전철화 공사 때문인지 너무나도 순식간에 생을 마감해야 했던 완목신호기...
우리나라 최후의 완목신호기가 단지 "복선전철화" 때문에 아무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일산역에서 근무하다가 승객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한 두 역장 분들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비.
역장을 기리기 위해 비석까지 세운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훈훈해진다.
또 한 편으로는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두 역장 분들. 역사에 길이 남을 진정한 위인이다.
이설 이후에 초라하게 버려진 구 승강장이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인다.
간이역의 분위기가 물씬 피어나는 정겨운 승강장이었는데...
복선전철 공사 때문에 기존의 초록육교는 뚝 끊기고 빨간육교로만 이동할 수 있다.
신도시에서 구일산으로, 구일산에서 신도시로 넘어가기가 불편해진 셈이다.
열차가 들어오기 직전의 일산역은,
수많은 승객들로 바글바글 붐빈다.
새로 지은 승강장이 깔끔하기는 하지만, 역 특유의 정취는 많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그래도 일산역은 감히 진정한 간이역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옛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복선전철화의 때를 상당히 덜 탄 역이기 때문이다.
노반을 이설한 지 벌써 세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구 승강장까지 모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 뒷풍경 또한 몇몇 위협적인 아파트를 제외하면 전형적인 읍내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일산임에도 일산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반대편 일산신도시 쪽은, 아파트 숲으로 온통 가득차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일산, 백마역 앞에 어느 정도의 역세권을 형성해줬더라면 역앞이 활기찬 분위기였을텐데,
지금의 일산, 백마역 역세권은 공원과 대로변, 아파트단지 끝부분만 있는 썰렁한 변두리나 다름없다.
그나마 전철이 개통되면 역 앞이 상당히 붐비긴 하겠지만,
역세권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버스의 승객을 끌어모으기엔 상당히 불리할 것이다.
열차와 열차가 마주서는 곳, 일산역.
쌍둥이 통근열차가 서로 마주보면서 길을 비켜주고 있다.
밝디밝은 조명등 아래 아담하게 서 있는 일산역.
마치 시골로 내려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전철화 공사가 진행중이라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열차가 떠나고 난 후의 일산역은 한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경의선의 역들 중 옛 것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일산역.
도시 한가운데에서 75년 전 그 모습 그대로 갖추고 있는 도심 속의 문화재이다.
복선전철화가 완료된다 할 지라도 일산역 안의 여러 가지 "문화재" 들은 그대로 보존되어 주었으면 한다.
첫댓글 살아져버릴 경의선에 대해 잘 조명하신것 같습니다. 잘 읽고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