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학에서 보는 비장의 역할
비장의 장상학적인 기능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비(脾)의 주요 생리기능은 비주운화(脾主運化)와 비주통혈(脾主統血)이다.
(1) 비는 운화(運化)를 주관 한다
① 수곡정미의 운화
음식물에서 만들어진 영양물질은 비에서 흡수하여 폐로 운송되고 폐는 다시 심과 혈맥으로 주입하고 비기의 작용을 통해 전신에 운송되어 오장육부·사지백해(四肢百骸) 및 피모(皮毛), 근육(筋肉) 등 각 조직기관에 영양을 공급한다. 비기가 원활히 운행하면 소화흡수와 운송기능이 왕성하게 되나 그 기능이 좋지 않으면 배가 그득하거나 설사·권태·영양불량으로 몸이 마르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② 수액의 운화
비는 음식물의 영양물질을 운화하는 동시에 인체에서 필요로 하는 수액을 전신의 각 조직으로 수포해 전신을 윤택하게 한다. 비에서 수습을 운화하는 기능이 상실되면 수액이 장위에 정체되어 설사를 하거나 소변이 잘 나가지 않는 증상이 나타난다. 수습이 피부로 넘쳐나면 수종이 발생하고 복강 내에 머무르면 복수가 발생한다. 수액의 운화는 폐·비·신 삼장의 공통작용으로 완성된다.
(2) 비는 통혈을 주관한다
비는 중초의 기를 다스리고 영기를 만들어낸다. 영기는 맥 중의 기로써 혈을 통수하여 혈이 맥 외로 넘쳐나지 않도록 고섭(固攝)한다. 내경에 ‘비기가 혈을 통괄한다(脾統括血)’는 말은 ‘혈이 상하로 운행되는 것이 모두 비기에 의존하는데 비양이 허하면 혈을 통괄할 수 없다’는 뜻이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월경이 과다하거나 월경기간이 아닌데도 출혈하거나 배변 시 출혈하거나 코피가 나거나 멍이 잘 드는 증상들은 비 기허 또한 기저에 있을 수 있음을 고려한다.
비기허가 되면 비주운화와 비주통혈기능이 저하된다. 비주운화기능이 떨어지면 수습대사기능이 저하되므로 우리 몸에 좋지 않은 담(痰)이 만들어진다. 비기허로 몸내부의 수(水)가 정체되어 오래되면 음(飮)이 되고 이러한 음이 또 오래되면 습(濕)이라 하며 습이 졸아붙으면 담이 된다. 이러한 담은 경맥을 가로막을 수 있는데 혈관 내에서는 플라크가 될 수 있으며, 간기(肝氣)를 따라 올라가 목에서 매핵기가 될 수도 있고 림프절에 염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머리에서 모세혈관을 가로막아 뇌경색을 일으키기도 한다.
비기허로 인한 수습정체가 원인인 비만에는 보중익기탕에 수습을 처리하는 오령산, 방기황기탕 등을 고려한다. 주의할 점으로 비기허에 대표적인 생약으로 황기가 있다. 비의 운화능 저하로 수액을 전신에 공급하지 못하고 폐, 신기능 저하로 호흡이나 소변으로 배설도 잘되지 않으면 습이 쌓이게 된다. 이때 황기를 뚱뚱하고 살이 하얗고 땀이 많이 나는 자에게 쓰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황기가 든 처방을 썼을 때 가슴이 답답한 흉만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약을 쓸 때는 늘 보법과 사법의 조절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비장 관련 처방을 쓸 때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황기를 써서 가슴이 답답한 사람이라면 표의 수습 정체가 보이더라도 흉부의 열을 보다 신경 써야 함을 뜻한다. 이 때는 마황제나 시호제가 필요할 가능성이 크다.
- 예: 살결이 검고 가슴이 답답하고 비만한 자인데, 황기가 들어간 보기약을 먹고 숨쉬기가 더 불편하다.
→ 마행의감탕, 마행감석탕 등을 고려한다. 만일 변비기도 있다면 방풍통성산, 대시호탕 등도 필요할 수 있다.
후세방 중에는 보중치습탕(補中治濕湯)이 있다. ‘인삼, 백출 각 4g, 창출, 진피, 적복령, 맥문동, 목통, 당귀 각 2.8g, 황금 2g, 후박, 승마 각 1.2g’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초(中焦)를 보하고 습을 빼내어 수독에 의한 질병을 두루 치료한다.
이 약의 구성은 보기제와 수습을 처리하는 약, 기울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기운과 활력이 부족한 사람, 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은 사람의 붓기와 수종이 동반된 비만을 생각한다.
이와 같은 '보기(補氣)+수독(水毒) 제거'의 의미를 내기 위해 한약제제로는 다음과 같이 구성하여 활용한다.
보중익기탕+오적산, 보중익기탕+방기황기탕, 보중익기탕+오령산, 보중익기탕+방기황기탕+오령산
습의 정체를 피하기 위해서는 유제품, 튀긴 음식, 가공 식품, 설탕, 청량음료, 술 등을 피하는 것이 좋다.
그 외 전통의학에서는 스트레스로 인한 간기울결, 위열(胃熱), 양허(陽虛) 등을 비만의 원인으로 꼽는다. 이들을 해결하는 것은 생활습관의 개선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피하고 잘 자야하며 너무 맵거나 자극적인 음식 또한 간과 위를 자극하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양허는 에너지 대사의 효율이 떨어지는 것으로서 비의 운화기능저하와도 관계가 깊으며 비만과 관련하여서는 특히 부신기능, 미토콘드리아의 구조와 기능, 인슐린 저항성 등과 관계가 깊다.
이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역시 지나친 탄수화물 섭취, 청량음료 등의 섭취를 하지 않아야 하며 잠을 충분히 자고 최소 하루 40분 이상의 운동을 하는 등 생활의 개선과 함께 에너지 대사의 효율을 높이는 영양소의 섭취가 필요하다.
그리고 비장을 위주로 수습대사를 설명했으나 수습대사의 근본은 신계(腎界)에 있으므로 신음(腎陰) 및 신정(腎精), 신양(腎陽)을 보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아래에 전통의학의 치법을 <표>로 정리한다.
비만병은 본허표실이 많다. 기허를 중심으로 비허와 신허증이 많고, 기체, 담탁, 수습, 습열, 어혈 등의 표증이 있다. 치료는 공보겸시(攻補兼施)를 원칙으로 한다.
일부에서는 마황이 포함된 방제들을 기반으로 하여 비만에 대해서 만든 처방들을 활용하고 있다. 마황이 들어간 방제의 기원은 상한론에서부터 시작된다.
상한론에서 마황이 포함된 방제로는 마황탕, 계강조초황신부탕, 계2마1탕(계지2마황1탕), 계2월1탕(계지2월비1탕), 계마각반탕, 마황가출탕, 감초마황탕, 마황부자감초탕, 마황부자세신탕, 마행감석탕, 마행의감탕, 마황순주탕, 반하마황환, 소청룡탕, 대청룡탕, 월비가출탕, 월비가반하탕, 갈근탕, 오두탕, 사간마황탕, 후박마황탕, 환혼탕 등이 있다.
상한론에는 배설에 관심을 기울인 처방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점을 비만에도 활용할 수 있다.
아래 <표>에 상한론을 비롯해서 동의보감에 수록된 비만에 활용 가능한 처방들을 정리했다.
△상한론과 동의보감에서 비만에 도움되는 처방들과 주의점
특히 조심해야 할 비만으로 내장비만(복부비만)이 있다.
내장비만이란 복강 안쪽 내장 사이를 커튼 모양으로 연결하고 있는 장간막(그물막)에 내장지방이 많이 쌓인 것을 말한다. 체중과 허리둘레가 모두 비만인 그룹은 정상인 그룹에 비해 당뇨병(2.7배), 고혈압(2.2배), 이상지질혈증(고중성지방혈증 2.0배, 고콜레스테롤혈증 1.6배, 저HDL 콜레스테롤혈증 1.6배)에 걸릴 확률이 2배 높았다.
내장지방은 축적이 잘 되는 만큼 분해도 잘 되며 내장지방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혈관에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을 분비해 위험하다. 결과적으로 혈압을 높이며 혈전을 만들기도 한다.
허리둘레가 남성은 90cm, 여성은 85cm가 넘으면 내장비만이 의심되는데, 배꼽 옆 부분의 살을 손가락으로 잡아서 살이 2cm 이상 잡히면 피하지방이 많은 것이고, 2cm 이하로 잡히면 내장비만일 확률이 크다. 내장지방의 개선에는 위 <표>에 제시된 혈울비만(血鬱肥滿), 복중창만, 복중 실열, 복부비만 처방이 도움이 된다.
- 예: 도핵승기탕+대시호탕<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