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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지와(井中之蛙)
우물 속의 개구리라는 뜻으로, 식견이 좁아 세상을 모름을 이르는 말이다.
井 : 우물 정(二/2)
中 : 가운데 중(丨/3)
之 : 갈 지(丿/3)
蛙 : 개구리 와(虫/6)
(유의어)
정와(井蛙)
정저와(井底蛙)
정중와(井中蛙)
감중지와(坎中之蛙)
관중규표(管中窺豹)
야랑자대(夜郞自大)
정저지와(井底之蛙)
정중관천(井中觀天)
정중시성(井中視星)
좌정관천(坐井觀天)
정와지견(井蛙之見)
출전 :
○장자(莊子) 추수편(秋水篇)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
우리 속담 '우물 안 개구리'란 것이 있다. 우물 안에서 하늘을 쳐다보면 자그마한 원이 전부다. 그 속에 갇힌 개구리는 보이는 하늘이 당연히 전부라 생각한다. 널리 알지 못하는 좁은 식견을 비꼬거나 별로 깊지도 않은 지식을 제가 제일인양 우쭐대는 사람을 욕할 때 쓴다.
이것을 그대로 번역한 듯 똑같은 이 성어는 유사한 말이 많기로 유명하다. 먼저 우물이 붙는 감정지와(埳井之蛙), 정와지견(井蛙之見), 정저지와(井底之蛙) 외에 대롱 관(管)이 들어가는 관규려측(管窺蠡測), 관중규천(管中窺天), 관중규표(管中窺豹)가 있고, 맹인이 코끼리를 만진다는 군맹무상(群盲撫象)도 비슷한 말이 많다.
기상천외(奇想天外)한 비유로 우주만물을 흥미 있게 풀어내는 장자(莊子)에 이 말이 처음 나온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때 활약했던 제자백가 중에서 노자(老子)와 더불어 도가(道家)의 쌍벽으로 불리는 장주(莊周)의 저작이다.
외편(外篇)의 추수(秋水)편은 시간과 공간의 무한함과 인간의 미미함을 그려내고 있다. 첫 머리에 나오는 이야기에 비유가 실려 있다.
가을비가 때맞게 내려 온갖 냇물이 황하(黃河)로 흘러들자 강을 관장하는 신 하백(河伯)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이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흡족해 했다.
그러다가 강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북해(北海)에 이르러 동쪽을 보았더니 물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비로소 하백은 자기의 식견이 좁음을 한탄하며 북해의 신 약(若)에게 하마터면 후세의 웃음거리가 될 뻔 했다고 말했다. 약(若)은 하백에게 일러준다.
井蛙不可以語於海者 拘於虛也.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해 설명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좁은 장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夏蟲不可以語於氷者 篤於時也.
여름벌레에게 얼음에 대해 말해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여름만 고집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고 북해 약(若)은 하백 자신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대도(大道)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따와 우물 속 개구리는 바다를 말해도 알지 못한다(井中之蛙 不知大海)라고 쓰기도 한다.
일을 맡아 처리할 때는 주변에 미칠 영향까지 면밀히 분석해야 옳다. 좌우할 권한이 있다고 하여 자신이 제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독불장군으로 밀고 나가다가는 나중에 돌아오지 못할 정도로 망칠 때가 많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정중지와(井中之蛙)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뜻으로, 견문이 좁고 어리석어서 세상의 물정을 모르는 고집스런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우물 속에 갇혀서 넓은 세상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생각에 속박되어 다른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고 있는 교훈적인 내용이다.
황하(黃河)의 하신(河神)인 하백(河伯)이 물의 흐름을 따라 처음으로 바다에 나왔다. 그는 북해(北海)에 가서 동해(東海)를 바라보면서, 그 끝이 없음에 놀라 탄식하였다.
그러자 북해(北海)의 해신(海神)인 약(若)이 이렇게 말했다. "우물 안에서 살고 있는 개구리에게 바다를 이야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우물 안의 좁은 장소에만 살았기 때문이다(井中不可以語於海者 拘於虛也). 또 여름 벌레에게 얼음을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여름만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夏蟲不可以語於氷者 篤於時也)."
따라서 식견이 좁은 사람에게 도(道)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배운 바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曲士不可以語於道 束於敎也). 그러나 당신은 지금 좁은 개울에서 나와 큰 바다를 바라보고 자기의 부족함을 알았기 때문에, 이제 더불어 큰 진리에 대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왕망(王莽)이 전한(前漢)을 멸하고 세운 신(新)나라 말경, 마원(馬援)이란 인재가 있었다. 그는 관리가 된 세 형과는 달리 고향에서 조상의 묘를 지키다가 농서(隴西: 감숙성/甘肅省)에 웅거하는 외효(隗囂)의 부하가 되었다. 그 무렵, 공손술(公孫述)은 촉(蜀) 땅에 성(成)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참칭 (僭稱)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외효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해 마원을 보냈다. 마원은 고향 친구인 공손술이 반가이 맞아 주리라 믿고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공손술은 계단 아래 무장한 군사들을 도열시켜 놓고 위압적인 자세로 마원을 맞았다. 그리고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옛 우정을 생각해서 자네를 장군에 임명할까 하는데, 어떤가?" 마원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천하의 자웅(雌雄)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는데 공손술은 예를 다하여 천하의 인재를 맞으려 하지 않고 허세만 부리고 있구나. 이런 자가 어찌 천하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마원은 서둘러 돌아와서 외효에게 고했다. "공손술은 좁은 촉 땅에서 으스대는 재주밖에 없는 우물 안 개구리[井中之蛙]였습니다." 그래서 외효는 공손술과 손잡을 생각을 버리고 훗날 후한(後漢)의 시조가 된 광무제(光武帝)와 수호(修好)하게 되었다.
이 고사는 '부지대해(不知大海)'와 함께 한 구(句)로 쓰이니 곧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말해도 알지 못한다[井中之蛙 不知大海]'는 뜻으로 쓰인다. 줄여서 '정와(井蛙)' 또는 '정저와(井底蛙)'라고도 한다.
그렇다! 우리 대한민국은 70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이기고 때로는 뼈를 깎는 아픔도 겪어가며 이제는 세계무대에서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는 선진 국가가 되었다. 모든 분야에서 이른바 '기적(奇跡)'이라는 신화를 이룩한 셈이다.
경제발전이 그렇고 첨단기술, 체육 및 예술을 포함한 문화발전이 그렇다. 그런데 유독 정치(政治)와 안보(安保)분야에서만 제자리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듯하다. 그 이유는 우물 안의 개구리 정도의 사람들이 정치(政治)를 운운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알려고 하지 않는 알량한 자기 고집에 단단히 묶여서 자기가 아니면 대한민국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엄청난 착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공동체 환경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다른 사람은 할 수 있고. 반대로 남이 할 수 없는 일을 나는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공동체의 환경이 조성될 때 상부상조(相扶相助)하여 삶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상부상조하면서 살다가 간혹 남을 다스리는 위치에 서게 되면 정중지와(井中之蛙)의 환경으로 회귀하려는 속성이 있다. 그런데 이 속성은 권력(權力)과 재력(財力)이 있을 때 더욱 강하게 작용함을 알 수 있다. 특히 정치를 오래 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크게 드러나는 고질적인 병폐인 것이다.
좀 더 대중(大衆)과 함께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신선하면서 원칙과 법(法)을 준수하는 지도자가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대한민국이다. 지도자를 꿈꾸는 자들이 정중(井中)을 벗어나 대해(大海)를 보았으면 좋으련만….
종지그릇은 많은 물을 담지 못한다. 그릇이 작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여! 국민소득 4만불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때 아직도 정중지와 노릇을 하고만 있겠는가?
정중지와(井中之蛙)
황하(黃河)의 신(神)이 있었고, 북해(北海)의 신이 있었다. 하백을 황하의 신이라 불렀고, 북해약을 북해의 신이라 했다. 하백은 늘 생각하기를 "황하 만큼 큰 곳은 없어" 하고 지냈었는데 어느 날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고 깜짝 놀랐다. 때 마침 북해약과 마주쳤다.
하백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이렇게 큰게 뭔지 알려주십시요" , "우물안의 개구리에게 바다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요. 자기가 사는 곳에 구애받기 때문이 아니겠소? 마치 여름 벌레가 얼음에 대해 말 할 수 없으니 안다는 건 여름 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오. 한쪽만 아는 사람은 도(道)를 알 수 없을 것이니 그건 자기가 배운 것에 속박되기 때문이오" 북해약은 거기까지 서두 삼아 말했다.
이제 핵심적인 한마디 말로 끝내기로 했다. "이제 그대는 좁은 지역을 나와 바다의 광대함을 알았소. 비로소 그대와 더불어 진리에 대해 이야기해도 좋게 되었다는 것이오" 짧은 이야기 같으나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할 것이다.
우매한 사람,고집스러운 사람, 그리고 아집에 사로 잡혀 전혀 다른 세상을 볼수 없는 자를 빗대어 말하는 것이리라 넓고도 넓은 세상 같으나 모든 세상은 어찌 보면 한 우물속일 수도 있으며 그보다 더 작은 것은 내 자신의 우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란 그 마음속에 넓이와 깊이를 알 수가 없을 정도로 크고 넓기도 하지만 소갈머리 없다는 말 처럼 자신의 마음을 닫아버리면 천하에 보잘 것 없는 살덩어리에 불과할 뿐이다. 허나 그 가슴을 열어 모든 것을 포용하고 받아줄 수 있는 마음을 열수만 있다면 천하의 장강과 북해의 바다도 다 담을 수가 있을 것이다.
바로 큰 사람이다. 자기 생각 속에만 빠지고 오랫동안 한 우물속에서 살다 보면 정중지와(井中之蛙)의 대상이 되어 세상의 속 좁은 자로 전락해 버릴 수가 있기에 인간들에게 패러다임(혁신적 변화)을 요구하는 것이다.
진리가 있으나 그 진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경우 그 진리가 사악이 되어 영원히 우물속에 빠져 큰 세상을 볼수 없음을 정중지와는 말하고 있다. 조용하게 생각하고 바른 마음과 큰 마음을 통해 진정한 도를 알아 도인이 되라는 말이다.
마치 하백 처럼 자신만이 도를 안다고 생각하며 으시대며 살아 왔지만 만물속에 들어있는 수만가지의 이치(理致)를 모르고 글자적인 틀에 매여 세상을 살아간다면 그 어찌 도인이라 할수 있겠는가?
참도인은 세상속에 만들어놓은 하늘에 바른 이치를 깨닫고 믿어 그 행함의 결과로 얻어지는 기쁨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얻을수 있을 것이다. 창세부터 비유나 비사로 감추어 놓았다는 성경 말씀을 굳이 들지 않드래도 말이다.
나만이 알고 있는 작은 우물에서 벗어나 참된 진리속으로 나를 보낼수 있는 힘과 능력을 기르는것 바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도가 나 라는 것을 알았으면 싶다 인간의 속성은 참 도인을 만나는 것에서 부터 다시 시작한다. 도인(천부)는 말씀이요, 빛이요 생명이라 해서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 평생의 꿈이라 했다.
▶️ 井(우물 정)은 ❶상형문자로 丼(정)은 본자(本字)이다. 우물의 난간을 나타낸다. 옛 글자의 가운데 점은 두레박을 말한다. ❷상형문자로 井자는 ‘우물’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井자는 우물을 그린 것이다. 우물은 지하수가 있는 곳을 찾아 땅을 파 내려가는 방식으로 만든다. 지하수를 찾고 나면 흙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돌을 쌓고 우물 난간을 만드는데, 井자는 우물의 난간을 그린 것이다. 井자는 갑골문에서부터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은 글자이기도 하다. 소전에서는 井자에 두레박을 표기한 丼(우물 정)자가 쓰이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일본을 제외하고는 쓰이지 않는다. 그래서 井(정)은 (1)정성(井星) (2)정괘(井卦)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우물 ②우물 난간(欄干) ③정자꼴 ④저자, 마을 ⑤정전(井田) ⑥조리(條理), 법도(法度) ⑦왕후의 무덤 ⑧64괘의 하나 ⑨별의 이름 ⑩반듯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싸움터의 적당한 곳에 세워 사람이 올라가서 적진을 정찰하도록 만든 망루를 정루(井樓), 우물물을 정수(井水), 우물을 관장하는 신을 정신(井神), 짜임새와 조리가 있음을 정연(井然),우물의 밑바닥을 정저(井底), 질서와 조리가 정연한 모양을 정정(井井), 바둑판처럼 종횡으로 된 간살이나 건물의 중앙에 있는 간을 정간(井間), 염분이 녹아 있는 지하수를 퍼 올려서 채취한 소금을 정염(井鹽), 우물에 지내는 제사를 정제(井祭), 천연 석유를 채취하기 위해 땅 속으로 판 우물을 유정(油井), 인가가 모인 거리나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을 시정(市井), 더운물이 솟는 우물을 탕정(湯井), 팔을 펴면 오목해지는 어깨 위의 가장 높은 곳을 견정(肩井), 물맛이 좋은 우물을 감정(甘井), 지붕이 없는 우물을 노정(露井), 물이 맑지 아니한 우물을 탁정(濁井), 첫 새벽에 길은 깨끗한 우물물을 정화수(井華水), 물을 긷고 절구질하는 일이라는 뜻으로 살림살이의 수고로움을 정구지역(井臼之役), 우물 속에 앉아서 좁은 하늘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소견이나 견문이 좁음을 정중관천(井中觀天), 우물 속에서 불을 구한다는 뜻으로 어리석어 사리에 밝지 못함을 정중구화(井中求火), 우물안 개구리라는 뜻으로 세상 물정을 너무 모름을 정중지와(井中之蛙) 등에 쓰인다.
▶️ 中(가운데 중)은 ❶지사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물의 한가운데를 상하로 통하는 세로 금으로 중심, 중앙을 뜻함과 형제를 위로부터 차례로 伯(백), 仲(중), 叔(숙), 季(계)라고 일컬을 때의 仲(중)으로서 쓰인 것이다. 또는 깃대의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❷상형문자로 中자는 ‘가운데’나 ‘속’, ‘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이전에는 中자가 무언가를 꿰뚫는 모습을 그렸던 것으로 해석했었다. 그러나 갑골문이 발견된 이후에는 이것이 군 진영에 깃발을 꽂아놓은 모습을 그려졌던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中자는 진지 중앙에 펄럭이는 깃발을 그린 것으로 ‘가운데’나 ‘중앙’을 뜻하고 있다. 中자가 ‘중앙’이라는 뜻으로 쓰이다 보니 때로는 ‘속’이나 ‘안’, ‘마음’과 같은 사물의 중심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中(중)은 (1)일부 한자로 된 명사(名詞) 다음에 붙이어 그 명사의 뜻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과정임을 나타냄 (2)등급 같은 것을 上中下(大中小)로 구분할 경우 그 가운데 등급 중등(中等) (3)중국 (4)장기판에서 끝으로부터 둘째의 가로줄을 이르는 말 (5)마음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가운데 ②안, 속 ③사이 ④진행(進行) ⑤마음, 심중(心中) ⑥몸, 신체(身體) ⑦내장(內臟) ⑧중도(中途) ⑨절반(折半) ⑩장정(壯丁) ⑪관아의 장부, 안건(案件) ⑫가운데 등급 ⑬중매(仲媒), 중개(仲介) ⑭중국(中國) ⑮버금(으뜸의 바로 아래), 둘째, 다음 ⑯가운데에 있다 ⑰부합하다, 일치하다 ⑱맞다, 맞히다, 적중시키다 ⑲급제하다, 합격하다 ⑳해당하다, 응하다 ㉑뚫다 ㉒바르다, 곧다 ㉓가득 차다 ㉔이루다, 이루어지다 ㉕고르다, 고르게 하다 ㉖간격을 두다 ㉗해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바깥 외(外)이다. 용례로는 중도에서 끊어짐을 중단(中斷), 한가운데를 중심(中心), 사방의 중심이 되는 곳을 중앙(中央), 사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나 자리 중추(中樞), 일이 되어 가는 동안 중도(中途), 치우침이나 과부족이 없이 떳떳하며 알맞은 상태나 정도를 중용(中庸), 사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나 자리를 중추(中樞), 두 사물의 사이를 중간(中間), 일을 중도에서 그만 둠을 중지(中止), 중간에서 이어줌을 중계(中繼),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함을 중립(中立), 길을 가고 있는 동안 도중(途中), 하늘이나 하늘 가운데를 공중(空中), 마음 속을 심중(心中), 도시의 안을 시중(市中), 정신을 집중시킴을 열중(熱中), 눈의 안이나 마음속을 안중(眼中), 코의 밑과 윗입술 사이의 우묵한 곳을 인중(人中), 돌에 박힌 화살촉이라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때로는 믿을 수 없을 만한 큰 힘이 나올 수 있다는 중석몰촉(中石沒鏃), 터무니없는 말로 헐뜯거나 남을 해치려고 속임수를 써서 일을 꾸밈을 중상모략(中傷謀略), 일을 하다가 끝을 맺지 않고 중간에서 그만 둠을 중도이폐(中途而廢), 마음속의 욕망을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 외부의 사악을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함을 중경외폐(中扃外閉), 중립을 취하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음을 중립불의(中立不倚), 보통 사람은 감당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중인불승(中人弗勝), 마음속에 일정한 줏대가 없음을 중무소주(中無所主), 덕성이 발라서 과불급이 없는 화평한 기상을 중화지기(中和之氣), 시작한 일을 완전히 끝내지 아니하고 중간에 흐지부지 한다는 중도반단(中途半斷)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 즉,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지남지북(之南之北) 등에 쓰인다.
▶️ 蛙(개구리 와, 개구리 왜, 두견이 결)는 형성문자로 哇(와)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벌레 훼(虫; 뱀이 웅크린 모양, 벌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圭(규, 와)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蛙(와, 왜, 결)는 ①개구리 ②음란(淫亂)하다 ③사특(邪慝)하다(요사스럽고 간특하다) 그리고 ⓐ개구리(왜) ⓑ음란하다(왜) ⓒ사특하다(왜) 그리고 ㉠두견이(두견과의 새)(결) ㉡불여귀(不如歸)(결) ㉢제결(鶗鴂: 소쩍새)(결)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개구리 밥을 와반(蛙飯), 개구리의 우는 소리를 와성(蛙聲), 개구리 헤엄을 와영(蛙泳), 개구리의 다리에 붙은 살로 담근 젓을 와해(蛙醢), 개구리 볶음을 와초(蛙炒), 개구리의 우는 소리를 와폐(蛙吠), 빛깔이 붉은 개구리를 적와(赤蛙), 빛깔이 검은 개구리를 흑와(黑蛙), 청개구리를 우와(雨蛙), 참개구리나 청개구리를 청와(靑蛙), 개구리에게 예경한다는 뜻으로 변변치 못한 인물에 대하여 우대함을 기롱하여 이르는 말을 식와(式蛙), 성균관의 개구리라는 뜻으로 자나깨나 책만 읽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을 반와(泮蛙), 금개구리를 금선와(金線蛙), 우물 안 개구리를 정정와(井庭蛙), 우물 밑의 개구리라는 뜻으로 소견이나 견문이 몹시 좁은 것을 이르는 말을 정저지와(井底之蛙), 우물안 개구리라는 뜻으로 세상 물정을 너무 모름을 정중지와(井中之蛙), 우물 안 개구리라는 뜻으로 견문이 좁고 세상 형편에 어두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감중지와(坎中之蛙), 봄철 개구리와 가을 매미의 시끄러운 울음소리라는 뜻으로 무용한 언론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춘와추선(春蛙秋蟬), 매미가 떠들썩하게 울고 개구리가 시끄럽게 운다는 뜻으로 논의나 문장이 졸려함을 이르는 말을 선조와명(蟬噪蛙鳴), 개구리와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댄다는 뜻으로 서투른 문장이나 쓸데없는 의논을 조롱해 이르는 말을 와명선조(蛙鳴蟬噪), 지위의 고하나 현우의 현격한 차이를 이르는 말을 운룡정와(雲龍井蛙)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