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樵童)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산 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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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가을 어느 날 6·25전쟁 때 전투가 치열했던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 기슭이다. DMZ(비무장지대) GP(소초)장으로 근무했던 한명희 육군소위(ROTC 2기, 1964~1966년 복무)가 부하들과 순찰을 하고 있었다. 북한강 상류가 휘감아 도는 비무장지대 잡초 우거진 산모퉁이를 돌아 양지 바른 비탈길을 지날 때였다.
그는 문득 흙에 가려진 돌무더기 하나를 만났다. 눈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 한 소위는 깜짝 놀라 멈칫했다. 저절로 쌓인 돌이 아니었다. 뜨거운 전우애가 감싸준 무명용사 무덤임을 알았다.
적과 싸우다 숨진 한 군인이 잠든 그곳엔 전쟁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묘비처럼 꽂혀있던 썩은 나무 등걸, 녹슨 철모, 소총 한 자루, 고즈넉이 피어있는 산목련…. 전사한 사람이 누구인지, 누가 묻어줬는지 모르지만 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이끼 돼 맺힌 채 초라한 돌 더미로 쌓여있었다. 젊은 소대장은 시를 지어 땅속에 누워있는 묘 주인의 넋을 달랬다. 꽃다운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몸 받친 고인에게 경례를 하고 고개 숙였다.
그로부터 몇 년 뒤 한 소위는 제대를 해 TBC(동양방송) 음악부PD로 일할 때였다. 우리음악과 가곡에 열정과 관심을 쏟고 있던 그는 방송일로 자주 만나던 장일남 작곡가로부터 “신작가곡 노랫말을 몇 곡 써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그때 그의 머리를 스쳐간 장면이 떠올랐다.
군 시절 가슴 아리게 봤던 첩첩산골의 이끼 낀 돌무덤과 그 옆을 지켜 섰던 하얀 산목련이었다. ‘비목’ 가사는 그렇게 만들어졌고, 장 작곡가의 곡이 붙여져 노래로 태어났다. 묘비처럼 꽂혀있던 나무 등걸은 ‘이름 없는 비목’으로 표현됐다. 나무 비란 뜻이다. “백암산 골짜기의 이름 모를 나무비(목비, 木碑)가 절화(折花)의 아픔, 요절(夭折)의 미학으로 분장하고 오늘에 환생한 것”이라고 한 씨는 설명하고 있다.
첫댓글
예전 여고때 비목으로
가창시험을 봤었지요
음치인 저는 죽을만큼 싫었지만
듣는건 좋아했어요
가슴이 뜨끈뜨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