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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돌, 연하남, 그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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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은호 언니도 있었네요! 우리 여기 앉아도 되죠?”
왜 결혼식을 테이블 형으로 앉아서 해야 하는 건지 참... 식사하면서 예식보면 더 집중 안 되던데...
나는 은아의 예식장 구조를 속으로 욕하면서 내 앞에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은 힐끗 한 번 보았다. 이미 자리에 앉으며 말하는 유하늘의 말에
내 눈치를 슬쩍 보는 현준씨. 괜히 나 때문에 눈치를 보는 것 같아 미안해진 나는 그냥 괜찮다고 말했고. 내 대답에 이미 앉아 있는 유하늘이
가만히 서 있는 정태웅을 끌어당겨 앉힌다.
“아까 보니까 박실장님 진짜 예쁘던데. 너무 부러워요- 박실장님 보니까 저도 막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 드는 거 있죠?”
4인용 테이블에 삥- 둘러앉은 네 사람. 그 중에 표정이 즐거워 보이는 사람은 유하늘 한 사람 뿐이었다. 정태웅은 나를 빤히 쳐다보고,
남현준씨는 나와 정태웅 사이를 눈치보는 것 같고, 나는 멍하니 딴 곳만 보고. 유하늘은 혼자 신나서 우리에게 뭔가 말을 하긴 하지만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은아에겐 미안하지만 그냥 얼른 예식이 끝나고 이 자리를 벗어났으면 좋겠다.
“아, 정태웅 유하늘씨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꽤나 무거워 보이는 카메라를 들고는 우리의 테이블 앞에 와서 정태웅과 유하늘의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묻는 남자.
딱 보니 신문사 기자 같았다. 아마도 두 사람이 이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것을 기획사에서 미리 언론에 흘려놨겠지.
“그럼요- 대신 예쁘게 찍어주셔야 해요!”
기자의 말에 가만히 있는 정태웅과 달리 정태웅 옆에 가까이 다가와 앉아 팔짱을 끼고는 다정한 포즈를 취하는 유하늘. 유하늘은 기자에게 까지
정말 다정하게 말한다. 이 순간 나는 그런 그녀의 성격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눈에 그다지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지만 정태웅은
최대한 어색한 표정을 풀고 웃으며 사진에 응한다. 이렇게 뒤에 떨어져 보니 두 사람 정말 잘 나가는 스타답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뭔가 맞는 사람이 함께 있다는 느낌이 참 씁쓸했다.
“어? 다들 여기 있었네! 와, 둘이 이제 공식적으로 발표했겠다. 아주 마음 편히 둘이 다니니까 좋지?”
기자가 사라지자마자 바로 나타난 또 다른 사람.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걸 보니 아마 이들과 친분이 있는 사람인 듯 하다. 얼굴도 익숙한 걸보니
연예인인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이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내는 것까지 일을 하고 싶지는 않으므로 이름을 기억해내는 건 통과시키고 싶다.
“에이, 선배 놀리지 마세요!”
“정태웅이 그렇게 좋냐. 얼굴 빨개지는 것 좀 봐라.”
아무리 연기라 하지만 정말 리얼한 유하늘의 표정. 그와는 조금 다르게 살짝 굳은 표정을 하고는 필요 이상의 말은 하지 않는 정태웅.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축하인사나 장난. 상황과 당사자 둘 사이의 갭이 느껴진다. 나도 지금 이 순간이 힘들고 괴롭지만, 그건 나만이 아니라
녀석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한다.
“어? 근데 현준이 옆에는... 아, 혹시 여자친구?”
“네? 아, 아니에요 형- 박실장님이랑 가장 친하신 친구 분이세요.”
“아아, 안녕하세요.”
이젠 누군지 떠올리기도 힘들만큼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테이블을 거쳐 갔다. 몇몇의 기자들이 사진을 또 찍어가기도 하고, 동료 연예인들이 와서
정태웅과 유하늘에게 말 한마디 걸고, 남현준씨와 인사하고. 나는 그 속에 왜 있어야 하나 애꿎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진 않았지만, 간혹 나의 존재를 알아차린 사람들이 똑같이 물어보는 질문. 남현준씨에게 여자친구냐고
누군가 또 물어왔고 남현준씨는 아까 계속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아니라고 말해주며 나를 소개시켜준다.
“아, 안녕하세요. 영화 재밌게 잘 봤어요.”
이 사람은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구지 얼굴을 보고 이름을 기억해야 하고 하는 수고가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얼마 전에 본 영화의
주연배우이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형식적인 말이긴 하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기에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보고자 영화의 얘기를 꺼냈고.
그러자 감사하다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고, 악수를 끝낸 후에 자신의 자리로 갔다. 그 배우가 가고 난 후 또 다시 할 말도 할 일도 없어진 나는
시계를 한 번 보고는 아직 예식까지 시간의 여유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하고는 일어섰다.
“누구세...! 깜짝이야...!! 너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솔직히 화장실을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핸드백에서 파우치를 꺼내어 파우더를 꺼내 몇 번 덧바르고는 탁- 소리가 나게 닫은 다음
마땅히 더 할 게 없어 손을 씻고는 물기를 말끔히 제거했다. 그리고는 거울을 보고 웃어봤다. 정말 어색하다. 남들이 보면 정말 민망하다고 느낄 만큼.
차라리 안 웃는 게 낫겠다 싶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핸드백을 들고 화장실을 나왔다. 그리고는 식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화장실에서 나와
걸으려 하는데 누군가의 손에 의해 내 손목이 잡혀 나는 끌려가는 꼴이 되었고 깜짝 놀란 나는 누구냐고 물으려 했는데 뒷모습이 너무 익숙했다.
녀석은 아무 말 않고 내 손목을 잡은채 어디론가 간다. 내 물음엔 대답도 안 한다.
“야, 여긴 갑자기 왜... 읍!”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비상구 표시를 따라 꺾더니 계단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나를 밀어 넣고는 바로 뒤에 들어와 자신의 큰 손으로 내 얼굴을
꽉 잡고는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숨쉴 틈 없이 갖다대는 녀석. 놀란 나는 밀어내려 했지만 녀석도 남자인지라 내가 밀어내는 손길에는 꿈쩍도 않는다.
평소와는 다르게 거칠게 안으로 파고드는 녀석의 혀가 불편했던 나는 고개를 돌리려고 하지만 그 역시 통하지 않는다.
고개를 흔들고 두 손으로 밀어내고 뭐라고 말하려고도 해보고 하지만 꿈쩍 않는 녀석. 결국 내가 녀석의 혀를 꽉 깨물고 나서야
녀석의 입술이 내 입술에서 멀어진다.
“하아... 하아... 정태웅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뭐하는 짓? 내가 내 여자한테 키스하는 것도 짓이야?”
불쾌했다. 아무 말 없이 이 곳에 끌고 와 나를 막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녀석이 기분이 안 좋은 건 알겠지만
지금 나 역시도 녀석만큼, 아니 녀석보다 더 기분이 좋지 않은데 녀석은 그런 나를 전혀 배려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기분이 나쁘다.
“갑자기 왜 그러는데.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누가 볼 거면 보라고 해.”
“기분 나빠.”
“뭐?”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 녀석이 왜 이러는지. 기분이 안 좋다는 건 짐작할 수 있고, 그래서 표정 역시 좋지 않은 것을 아까부터 눈치 채고 있었다.
속으로 많이 참고 있다는 것도 내 눈에는 다 보였다. 하지만 내가 그런 녀석을 파악하고 다 이해해주기엔 벅찼다. 우선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았으니까. 솔직한 심정으로 기분이 나쁠 때도 있었지만 나는 쿨하게 녀석에게 허락했고, 그런 이상 이 일로 녀석에게
고민하는 일을 만들어 주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웃을 수는 없어도 최대한 무덤덤하게 반응하려고 노력했다. 녀석이 날 보든 말든
난 그냥 가장 친한 내 친구 은아의 결혼식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분위기에 어울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녀석은 지금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 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내가 구지 표현하지 않아도 눈치껏 알아차려주길 바란 게
너무 큰 욕심이었을까. 결국 나는 내 감정의 선이 끊어지는 느낌을 받음과 동시에 지금 내 감정을 말로 표현해 버렸다.
기분 나쁘다고. 너와 억지로 한 지금 키스가 기분 나쁘다고. 순간 굳어지는 녀석의 표정을 보고 실수했나 싶었지만 실수했다고
사과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기분 나쁘다고. 너 지금 이런 행동 기분 나빠. 불쾌해.”
“기분 나빠? 불쾌해? 나랑 키스한 게 그렇게 싫어?”
“지금 니 행동 전부가 싫어. 키스한 것뿐만 아니라 날 여기로 데려온 거, 지금 이렇게 싸우는 거 다!!”
정태웅의 표정 따윈 살피지 않았다. 이기적이고 못됐다고 욕먹을 일이어도 상관없다. 지금 녀석에게는 내 생각만 하고 내 감정대로 행동하고 싶으니까.
내 말 끝에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서있는 녀석을 내버려둔 채로 비상구 문을 열고 나왔다. 뭔가 울컥하는 느낌이 들어 울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상황 파악 못하고 어린 애처럼 굴 나이는 지났다. 지금은 내 친구 은아의 결혼식이고, 그녀의 일생의 가장 행복한 날을 웃으면서 함께 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울면서 나 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찬 바람을 잠시 쐰 뒤에 마음을 가다듬고는 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다시 테이블로 돌아가 앉자 현준씨가 날 잠시 바라보더니 앞으로 다시 고개를 돌린다. 내가 앉고 잠시 후 예식은 시작되었고 녀석은 들어오지 않는다.
“오빠가 왜 안 오지...”
혼잣말 하는 듯 중얼거리던 유하늘이 우리를 보더니 ‘잠시만요.’라고 말하고는 나간다. 구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고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태웅이하고 밖에서 무슨 일 있었죠?”
“일은요, 무슨...”
은아의 결혼식을 애써 웃어가며 보고 있는데 나에게만 살짝 들릴 정도로 현준씨가 내게 말을 건넨다.
아니라는 내 대답에 더 이상 묻지 않고 신랑 신부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는 현준씨. 더 이상 묻지 않아주는 것이 고맙다.
“정태웅은 어디 갔어?”
“몰라. 그 자식 신경 쓰지 말고 얼른 사진찍자.”
결국 유하늘은 정태웅을 찾지 못했는지 얼마 후 혼자서 들어오고, 녀석은 식이 끝나갈 때까지 식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정태웅이 어디 갔냐고 묻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유하늘은 ‘급한 스케줄이 생겨서 가봤다’고 말하고는 혼자 사진을 찍으러
앞으로 나왔다. 은아도 사라진 정태웅이 눈에 보이는지 자신의 옆으로 다가선 나에게 조용히 묻는다.
“표정 보니까 제대로 싸웠구나...”
“안 싸웠어. 급한 일 있나보지. 야, 사진 찍는다.”
사진을 찍는다는 기사 아저씨의 말에 은아는 더 이상 묻지 못하고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어제 전화할 때에 우리 떨어져있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 지으면서 사진찍자고 그렇게 말했었는데... 지금 녀석은 이 곳에 없고, 이 곳에 있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웃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어제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
바로 어제 한 약속인데... 그다지 어려운 약속도 아니었는데...
“부케 너가 받아!”
“야, 딴 사람 줘-”
“싫어, 너 줄 거야! 자, 던진다!”
억지로 부케 받는 친구 역에 나를 세우고는 부케를 던진다는 박은아. 부케 받으면 6개월 안에 시집가야 한다고 하던데...
난 절대 6개월 안에 시집 갈 일이 없는데 참... 받기 뭐하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도 있고 한 지라 나는 그 자리에 섰고,
사람들의 하나, 둘, 셋 하는 소리와 함께 은아의 손에 있던 부케가 날아오는데...
“어?”
“잘 받았어, 은호야?”
“와-”
나는 손을 뻗어보려 했으나 뭔가 방향이 틀어진 듯한 부케. 내 근처에는 오지도 않고 구경꾼들 사이의 폭- 들어가더니
누군가의 손에 의해 부케가 도로 들려진다.
“어? 하늘씨가 받은 거야?”
그 많은 구경꾼들 사이에서 왜 하필 유하늘의 손에 부케가 들어간 건지. 부케를 든 그녀는 쑥스러운 듯 얼굴이 빨개지며 웃어보였고,
주변 사람들은 이러다 정태웅이 6개월 내에 프로포즈하는 거 아니냐며 한 마디씩 했다. 은아는 그런 상황을 보고는 내게 미안해졌는지
눈이 축- 쳐져서는 나를 보았고, 나는 괜찮다며 웃었다. 어차피 받아도 6개월 안에 시집갈 것도 아니었으니까...
“잘 다녀와. 몸조심하고- 민준씨! 잘 하시겠지만 그래도 부탁드려요-”
“은호씨 오늘 정말 수고하셨어요. 다녀와서 밥 한 번 살께요.”
“당연한 일 한 건데요, 뭘. 은아야 그럼 재밌게 놀다와!”
정신없던 예식이 다 끝나고 커플티를 나란히 입은 은아와 민준씨는 화려하게 꾸며진 웨딩카를 타고 호텔을 빠져나갔다. 호텔 정문으로
차가 빠져나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던 나는 이내 시야에서 차가 사라지자 뭔가 힘이 확- 빠지는 느낌이 든다. 결혼하는 친구가 은아가
처음은 아니지만 은아는 나에게 있어서 정말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내 친구였기에 그런 은아가 시집간다는 것은 나에게도
큰 의미가 있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렇게 보내고 나니 드는 허한 느낌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은호씨, 집까지 태워다 드릴게요.”
한참을 서 있다가 이제 나도 가야지 싶어서 뒤로 도니 현준씨가 서있다.
“아, 아니에요- 저도 오늘 차 가지고 나왔거든요.”
“피곤해 보이시는데 운전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럼요, 괜찮아요.”
“그냥 보내기 제가 불안해서 그래요. 그럼 저 안에서 우리 커피 한 잔씩 마시고 가요, 졸음도 깰 겸.”
호텔 안의 커피숍을 가리키며 말하는 현준씨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었던 나는 그러자며 커피숍으로 들어갔고 제일 안쪽에
위치한 쇼파에 앉았다. 푹신한 쇼파에 앉고 나니 오늘 하루 있었던 피곤했던 일들이 다시 생각난다. 특히나 정태웅 그 녀석이...
“뭐 마실래요?”
“아, 전 카페라떼요.”
“카페라떼 두 잔 주세요.”
메뉴판을 펼치지도 않고 대답하는 나와 나와 똑같은 커피를 시키는 현준씨. 종업원이 사라지고 우리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있었다.
마땅히 얘기를 나눌 만큼 친한 사이도 아니고, 서로 알게 된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 할 말이 없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음... 어색하죠? 하하.”
“아...”
“그냥 편하게 대하세요- 저 생각보다 나이 많지 않아요.”
자신이 생각보다 나이 많지 않다고 말하는 현준씨. 내가 현준씨를 나이 많게 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난 어리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연예인이라 그런지 나이라는 게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하하, 저 아마 은호씨보다 한 살 위 일꺼에요. 지금 스물여섯 맞죠?”
“네? 아, 네.”
“저 스물일곱이에요. 생각보다 어리죠?”
“네?”
“사람들이 은근히 저 나이 많게 보더라구요. 어린 정태웅이랑 붙어 다녀서 그런가.”
“나이 안 많아 보여요- 동안이신 거 같은데...”
“예의상 하시는 말씀인 거 아는데도 기분은 좋네요.”
예의상이 아니라 진짜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이 아닌데...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얘기해봤자 별로 진심으로 받아드릴 것 같지는 않아
나는 아닌데... 작게 말하자 알겠다며 현준씨는 시원스레 웃어 보인다.
“박실장님 결혼한 거 보면 안 부러워요?”
“아, 부럽다는 거 보다는 신기하기도 하고... 난 언제 할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은호씨는 언제 하고 싶은 데요?”
“저요? 글쎄요...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굉장히 잘 하실 거 같애요.”
“네?”
“남편한테요. 좋은 아내 노릇 잘 하실 거 같다구요.”
날 얼마나 안다고 그렇게 말하세요? 라고 묻고 싶지만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속으로 삼키고,
마땅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태웅이 녀석한테 하는 거 보면 그래요.”
“네?”
“지금 묻고 싶은데 못 물어보고 있잖아요. 지금 은호씨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냐고. 아니에요?”
“아... 그게...”
“은호씨랑 안면 튼 지는 얼마 안 되지만 저 오랫동안 은호씨 얘기 들었었거든요.
태웅이 녀석이 만나면 하루 종일 은호씨 얘기만 해요. 얼마나 팔불출인지.”
“아...”
“태웅이 녀석이 매일 자랑해서 궁금했었는데, 녀석이 쉽게 소개를 안 시켜주더라구요. 근데 만나보니까 알 거 같아요.”
“네? 뭐를 요?”
“왜 녀석이 은호씨를 사람들한테 소개시켜주지 않으려고 했는지.”
“아...”
“저 같아도 그랬을 거 같아요. 은호씨 정도 여자친구면 남들한테 소개하기 아깝거든요.”
정말 이 사람 사람 할 말 없게 만드는 게 주특기인 것 같다. 어쨌든 기분 좋은 소리기는 하지만 마땅히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던 내가 가만히 있자,
그럴 줄 알았다면서 일어서는 현준씨. 아직 커피도 다 마시지 않았는데 가야하나 싶어서 나도 일어날 생각으로 손에 백을 들었는데
나에게 그냥 앉아 있으라고 말한다. 뭐지...
“요즘 태웅이 녀석 때문에 힘들죠? 은호씨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전 절대 못 그랬을 거 같거든요.
힘드니까 그 녀석 밉고 그러죠? 그래도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정태웅 그 자식도 꽤나 지옥이거든요.”
무슨 말을 하나 싶어 그냥 듣고만 있었는데, 일어선 현준씨뒤로 보이는 정태웅의 모습에 상황 파악이 된 나는 다시 일어나려 했다.
“아무리 화가 나고 미워서 싸웠어도 바로 푸세요. 이런 시기에 싸우면 두 사람 둘 다 힘들어져요.”
날 도로 앉히며 말하는 현준씨의 말에 나는 더 이상 일어나려 하지 않았고 잘 얘기하라며 나가는 현준씨가 정태웅에게 뭐라 말하더니
이내 정태웅이 날 발견한 듯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을 향해 온다.
“앉으란 소리 안 할 거야?”
지금 상황을 만들어준 현준씨의 노력을 봐서라도 우선은 자리에서 바로 일어서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풀어져있거나 아까의 말들에 대해
사과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없다.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 앞까지 와서 앉지 않고 한참 서있는 녀석. 난 녀석이 그러는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그냥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러자 녀석 앉아있는 내게 먼저 말을 건네는 정태웅. 정태웅의 말에
나는 ‘앉아.’라고 말하고는 커피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이젠 나랑 같이 있는 것도 기분 나쁘냐?”
“좋지는 않아.”
“이은호.”
“주변 사람들 눈 있어 목소리 높이지 마.”
불쾌하다고 했던 내 말이 분명 녀석에겐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말일 것이다. 어쩌면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걸 잘 아는 나지만 더 이상 녀석을 배려할만한 마음이 우러나오질 않는다. 머리와 마음이 따로 논다.
“나 그냥 다 때려치울까?”
“뭐?”
“나 가수고 뭐고 다 때려 치고 이은호만 보면서 살까?”
“어린 애같이 굴지 마. 하고 싶은 일 포기하면서 나한테 오는 남자 내가 싫어.”
“그럼 나보러 어떡하라고... 어떡해야해? 이은호 지금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거 눈에 다 보이는데.
너 지금 얼마나 마음 아파하는지 내가 다 아는데. 알면서 아무것도 못해주는 내가 얼마나 병신 같은데.”
“내 걱정 하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애처럼 울지 마. 자, 얼른 눈물 닦아.”
예전 같았으면 내가 손을 뻗어 녀석의 눈물을 닦아주었겠지만, 지금 이 곳은 탁 트인 호텔 로비에 있는 커피숍이고 많진 않지만 사람들도 꽤 있다.
참 야속하게도 나는 언제부턴가 우리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더 먼저 반응한다. 내가 손을 뻗어 건넨
손수건을 받지 않고 울음을 그치지 않은 상태로 빤히 날 쳐다보는 녀석.
“이은호, 진짜 냉정하다. 너 은근히 잔혹한 거 알아?”
“알아. 우선 울음부터 그치고 말해.”
냉정하고 잔혹하다는 말. 그래, 지금 녀석에 눈에 비춰지는 내 모습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 나는 냉정하고 잔혹한 게 아니라
강하게 보이기 위해 속으로 참고 이를 악 물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힘들다고 투정부리면서 녀석이 하는 일을 망치게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도 거의 본능적으로 나보단 녀석의 생각이 앞섰다.
“알았어. 이은호 너 뜻이 뭔지 알았으니까 갈께.”
“조심히 가. 아까 사람들이 너 찾더라. 유하늘한테.”
내 말엔 대답도 않고 벌떡 일어나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호텔을 빠져나가는 녀석. 그런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뭐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서로가 힘들어하면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내가 왜 좀 더 참지 못하고
녀석을 더 힘들게만 만드는 것인지... 정태웅을 보내고 나서야 후회가 된다. 그리고 솔직한 심정으론 겁도 난다. 이러다 지쳐서
내가 녀석을 돌아서버리게 될까봐.
사람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는 말처럼 나도 그렇게 생각해왔다. 누군가를 만나면 언젠간 헤어지게 된다는 것.
그 언젠가가 언제인지 몰라서 그렇지 결국엔 헤어진다는 것을. 하지만 정태웅 그 녀석과 만나면서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녀석과 영원히 함께 한다는 생각을 한 것도 아니다. 그냥 녀석과는 하루하루 함께 있는 게 좋았고, 그 감정이 녀석과 연인이 된 이후로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일이 없었다. 그냥 녀석과 함께 있는 것이 좋고 녀석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녀석이 가지고 있는 직업의 특수성 때문인지 앞으로의 미래보다는 현재 닥치게 될지도 모르는 일들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헤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별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지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친다. 녀석에게 표현을 하지는 못했지만 꽤나 힘들다. 잘 나가는 스타의 애인 자리로 있으면서
나는 정말 많이 지쳤다. 마음이 많이 약해졌다. 그래서 이런 이상한 생각까지 하나보다. 내가 마음을 굳게 먹고 잘 버텨야, 그래야 되는데...
“주제넘게 참견하는 거 같아서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걱정돼서 그냥 갈 수가 있어야지 말이에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참을 울었다. 사람들이 있으니까 소리 내어 울지는 못하고 손등을 타고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는 것을
상관치 않아 하고 계속해서 울었다. 그런 내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는지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저 아가씨 우네.’라고 한 마디씩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는 것을 멈출 수 있지는 않았다. 지금은 너무 울고 싶었으니까. 울고 나야 내가 강해질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우는데 앞의 쇼파에 누군가 앉는 듯 하더니 목소리가 들린다. 아까 정태웅을 이곳으로 부르고는 가버린 현준씨다.
“이제 더 안 울어도 되요?”
현준씨의 목소리를 듣고도 나는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오히려 ‘엉엉-’ 소리를 작게 내면서 울었다. 그러다 결국 테이블에 엎드려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니까 마음이 조금 편해지더라. 힘들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더라. 그렇게 울고 나서 앞에 앉아있는
현준씨가 신경 쓰인 나는 창피하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
“창피하죠?”
진짜 할 말 없게 만드는데 자격증 소유한 사람 같다.
“은호씨 술 못 먹죠? 음... 그럼 뭘 해야 하나...”
하다니 뭘... 뭘 하잔 소리인지...
아직도 새빨갛게 충혈 되어 눈이 퉁퉁 부어버린 내 앞에 앉아서는 계속 눈을 돌려가며 혼잣말을 하는 현준씨.
얼른 집에 들어가 씻고 쉬고 싶지만 저렇게 앉아 있는 현준씨를 혼자 두고 갈 수 없어 나는 그냥 가만히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아! 생각났다. 얼른 가요.”
“네?”
현준씨의 혼잣말의 끝은 날 이끌고 나가는 것이었다. 주차를 하지 않고 들어 온 것인지 호텔 로비를 나오자마자 바로 앞에
현준씨의 차로 보이는 차가 세워져있었고 나를 보조석에 밀어 넣어 앉히고는 자신도 곧 운전석에 가서 앉는다.
“안전벨트는 혼자서 할 줄 알죠?”
“저기... 현준씨...”
“우선 가봐요. 가서 얘기해요. 자, 얼른 벨트부터 매요.”
무작정 자신 뜻대로 하자는 현준씨의 말에 좀 당혹스럽긴 했지만 오늘 같은 기분에 혼자 있으면 더 감성적으로 되서 정말 해서는 안 될 생각까지 할 것 같아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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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올리고 싶었는데 과제에 치이다 보니 오늘 올리게 되었어요~ 죄송합니다ㅠ
아, 오늘 내용은 저도 뭔 소리인지 잘 모르고 그냥 써내려갔던 것 같아요. 그냥 은호의 입장에서 쓰려니까 저도 막 우울해지려는 거 있죠?? ^^;;
지금 힘들어 하고 있는 은호와 태웅이를 언제까지 지치게 할지는... 고민 중 입니다!! 하하...;;
우선 오늘 31편을 마지막으로 당분간 언제 찾아올 수 있다고 말씀을 드릴 수가 없을 것 같네요ㅠ
틈틈히 써서 한 편 완성되면 바로 올리도록 노력할테니까 조금만 이해해주시구요~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듯한 31편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l교쟁이버즈님, 완전내스타일님, 럭ㅋl서l븐님, ㅋㅌ ㅋ ㅇ님, 꼴통머리소녀님, 짱구액션가면님, 돌똘이님,
구짓말님, 하늘을날다♡님, 졸려ㅠ_ㅜ님, 핑크공주♥님, 토순리님, 피키랑영이랑님, 퍼플그림자님,
Trust0님, 두시삼분님, 니가곰탱이냐님, 아리거얄님, 아르노님,
다들 너무너무 감사해요~ 제가 한분한분 다 기억하고 있는 거 아시죠?? ^^ 다음 편에도 힘이 되는 댓글 부탁드려요~
첫댓글 처음으로 댓글다는데.......현준이 드디어 은호한테 대쉬하는 건가요?????????? 태웅이 힘들듯!! 암튼 너무 재밌어요!!
태웅이랑 은호 너무 힘들어보여여..ㅠㅠ현준이 또 옆에서 들어오네여..은호 너무 불쌍해여..ㅠㅠ
으으 아니에요~! 긴장감 엄청 조성되는걸요- 아아 바쁘시구나,, ㅠㅠ 그래도 기다릴께요~! 다음에는 태웅이랑 은호 이쁘게 다시 붙게해주세요~! 저놈의 하늘인가 뭐시긴가는 좀 훠~~~이~~~~ 쫒아주세요 ㅋㅋ 은호가 스타일바꾸는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ㅠㅠㅠ태웅이랑 은호랑 싸우면 안되는데 ㅠㅠㅠㅠㅠ 기다릴게요! 얼른오세요 ㅎㅎㅎ
이런.ㅠ 태웅이랑 은호랑 알콩달콩 모드로 빨리 돌아오면 좋겟어욤ㅠ 작가님도 빨랑 돌아오세요~ 기다리겟습니당ㅋ 감사해요 작가님~~~
어서 둘이 화해했으면 좋겠어요
♡
빨리 화해하길..
괜히 싫어지는 하늘이.. ㅋㅋ 해피엔딩 보고싶네요 ㅎ
담편 보고싶은데 그래도 기다릴께요, 둘이 화해 빨리됐으면 좋겠어요 ㅠㅠ
너무재밋어요~! 바쁜생활에활력을불어넣주는것같네요<읭?ㅋㅋㅋㅋㅋㅋ이게왠..ㅋㅋㅋㅋ쨋던담편기대할게융~!
현준이는 사랑의 큐피트~? 매일매일 기다린 만큼 보람이 있네요^^ 담편은 조금 더 해피하게 해주세요~~
ㅠㅠ 빨랑 공개해버리지
꺄악 은호랑태웅이 이대로헤어지는건아니죠?ㅠㅠ 힝힝 재밍ㅆ어요!다음편도기대할께요! 화이팅!!!~
태웅이 화이팅!!! 그냥 스캔들 그거 엎어버려욧!!!!ㅠㅠ
헉 저도 시험공부다 뭐다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새 연재가 되었는지 - 아 저도 우울한데요, 태웅이의 마음도 이해가고ㅡ 은호의 마음도 이해가는데요 은호가 좀 뭐라그럴까. 그런거 있잖아요. (모르시나?웅-) 어쨌든 그런것. 태웅이를 사랑하는데 표현을 잘 못하는 것도 아니고, 여하튼 은호가 좀 아닌것 같아요. 하지만 은호의 성격이잖아요. 26년동안 그렇게 살아왔는걸. 그렇잖아요. 어쨌든, 뭐. 하늘이가 얄미시럽고-그래요. 도훈이는 딱 한눈에, 아 저놈 은호에게 찝쩍댐. 그런거 였는데 아니 하늘이도 그런건 알겠는데, 은호에게 하는 행동들 있잖아요. 막 언니 언니! 이쁨-상큼함.예의 바름 그런거 폴폴 풍기면서 언니언니 안녕하
세요 막 그런거. 그게 진짠지 아닌지 모료게쪄용 작가님 힘내야해요. 저 지금 기분 무지 않좋은데 더 우울해져버렸어.ㅠㅠ
작가님~~ 소설 잘보고 있어요~~ 그런데요 ㅠ0ㅠ 18편이 없나봐여 검색을 해도 않나오던데 ㅠ0ㅠ 올려주세요 ㅠ0ㅠ
저도 기억하시겠네요^^
오늘 첨으로 쫙~~~읽었어요... 빨리 32편으로 돌아오시길...^^
학교다니느라 이제서 보는건데 너무 재밌어요~! 근데 은호랑 태웅이 어떡해요..ㅠ 잘됐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