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별 논술도 킬러문항 출제 못하게 한다
[사교육 경감 대책]
교육부 “위반대학, 정원축소 등 불이익”
사교육 대책… 공정수능 출제점검위 신설
교육계 “킬러문항 기준 모호, 혼란 우려”… 대통령실 “사교육카르텔 사법조치 고려”
정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뿐 아니라 대학별로 치르는 논술 등 입시에서도 고교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초고난도 ‘킬러 문항’을 확실히 배제하겠다고 26일 밝혔다. 수능 출제위원은 교수 비중을 낮추고 현장 교사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 올해 수능부턴 출제 단계에서부터 이를 점검할 ‘공정수능 출제 점검위원회’도 신설된다.
26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했다. 이달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수능에서 공교육 과정 이외의 문제는 출제를 배제하라고 지시한 지 11일 만이다.
교육부는 킬러 문항 배제를 통해 ‘공정 수능’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출제 단계에서부터 ‘공정수능’을 검증하는 자문위원회와 점검위원회를 가동해 킬러 문항을 솎아낸다. 현재 수능 출제위원의 45%는 고교 교사, 55%는 교수로 구성되는데 교사의 비중을 더 높이기로 했다. 학교에서 실제 고3 학생들이 배우는 문제를 많이 출제하자는 취지다.
대학이 자체적으로 출제하는 논술, 구술 평가도 철저히 검증한다. 교육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분석에 따르면 2023학년도 입시에서도 서울 지역 15개 대학 중 14개 대학 자연계열 수학 논술 문제에서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가 출제됐다. 전체 185문항 중 66개(35.7%)에 이른다. 기존에도 교육부가 논술, 구술 등 대학별 시험을 점검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교육부는 킬러 문항 배제 방침을 어긴 대학을 매년 공개하고 입학정원 축소 등의 불이익 조치를 강력히 실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최근 수능과 모의평가에서 출제된 킬러 문항 사례 26개도 공개했다. 전문용어와 추상적 지문, 다수 개념이 결합됐거나 대학에서 배울 법한 이론 등이 포함된 문제들이다. 교육부가 수능 킬러 문항 출제를 인정하고, 이를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이날 대통령실 관계자는 “(사교육 이권 카르텔에) 사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면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부총리는 “이번 기회로 또 다른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일부 학원들의 불안 마케팅, 공포 마케팅에 현혹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런 문항들이 학생들의 사교육 의존을 높인 것은 맞지만 킬러 문항의 명확한 기준이 무엇인지 발표되지 않아 학생들이 더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정부가 사교육 종합대책을 발표한 것은 2014년 박근혜 정부 이후 9년 만이다.
내년 수능 출제, 교수보다 교사 중심… 출제위원 강의-집필 금지
현재 55%인 교수 비중 낮추기로
대학합격선 등 입시정보 상세 공개
초등 의대반-영어캠프 등 감독 강화
26일 교육부가 발표한 사교육 대책의 핵심은 공교육만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내신 등 대학입시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학교 수업을 정상화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가 역대 최대인 26조 원에 달했다는 문제의식이 담겼다. 초등생 때부터 대입에 ‘올인’해 킬러 문항 대비를 위한 ‘선행 학습’을 시작하는 사교육 구조를 이대로 놔둘 순 없다는 뜻이다.
● 출제위원-학원가 ‘카르텔’ 끊어내기
교육부는 올해부터 수능 출제 과정에서 현장 교사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가동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는 현장 교사 중심의 ‘공정수능 평가 자문위원회’가 신설된다. 시험 출제 전 공교육 과정의 지문과 어휘, 풀이 방법 등을 고려한 출제 전략을 출제위원들에게 제시한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공교육 과정 밖의 ‘킬러 문항’이 출제되지 않도록 사전 차단하는 것이다.
출제 단계에선 현장 교사 위주로 구성된 ‘공정수능 출제 점검위원회’를 신설한다. 이는 평가원과 별도로 각 시도교육청이 외부 추천을 받아 꾸리게 된다. 국어 영어 수학은 영역별로 3명씩, 탐구영역도 물리, 윤리 등 총 8개 계열별로 2, 3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교육부는 “문항들이 공교육 과정에서 다뤄졌는지 현장 감각에 맞춰 점검하는 이중 장치”라고 설명했다.
내년 11월 시행되는 2025학년도 수능부터는 현재 출제위원의 55%를 차지하는 교수 비중은 대폭 낮추고 교사 위원은 늘린다. 그동안 교수 중심으로 문제가 출제돼 초고난도 ‘킬러 문항’이 탄생했다는 지적을 반영한 조치다. 대학에서 배우는 수학 개념을 활용한 문제가 출제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교육부의 판단이다.
출제위원들과 사교육 업계의 카르텔을 깨기 위한 제재도 강화된다. 현재는 출제위원 경력을 밝히는 것만 금지하는데, 앞으로는 수능 관련 강의나 집필, 자문 등 영리행위를 대폭 제한한다. 출제위원 경력을 활용한 ‘재취업’을 막아 사교육 업계와의 유착 관행을 끊겠다는 것이다.
● 대학 출제 논술-면접도 손본다
그동안 수능 외에도 수시전형의 대학별 논술, 구술 시험이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이에 교육부는 이런 시험이 교육과정과 수준을 벗어났는지도 철저히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현재도 정부는 매년 ‘선행학습 금지 위반 대학’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논술 문항 등을 점검한다. 하지만 지난해 치러진 2023학년도 입시에서도 서울대 등 4개교가 교육과정 밖에서 문제를 출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능 킬러 문항을 없애면 ‘풍선효과’로 대학들이 지나치게 어려운 논술, 구술 문제를 출제할 것을 우려해 나온 조치”라고 설명했다.
지필고사와 수행평가 등 고교 내신평가에서도 사교육을 유발하는 문항이 출제되지 않는지 감독을 강화한다. 내신은 대입 수시전형 학생부종합전형 등에 반영되는 자료로, 수시 진학을 노리는 학생들이 특히 신경 쓰는 항목이다. 지난해 시민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조사 결과 전국 10개 고교 1학년 수학 시험의 216개 문항 중 54개(25%) 문항이 고교 성취기준을 벗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 ‘초등 의대반’ 사교육도 점검 강화
‘초등 의대반’ ‘영어캠프’ 등 신규 사교육 분야 감독도 강화한다. 입시업계는 학부모의 불안 심리를 이용해 새로운 사교육 과정을 끊임없이 내놓는데, 교육당국의 관리와 위법 행위 단속은 그에 못 미친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습비 초과 징수 등 편법 운영 사례를 적극 찾아내고, 운영 실태도 학부모들에게 자세히 알리겠다”고 말했다.
입시 정보를 사교육에 덜 의존하도록 정부가 대입 정보도 더 상세히 제공한다. 대학별 대입 전형 평가 기준, 평균 합격선 등 선발 결과를 대입정보포털에 지금보다 상세히 공개해 학원 의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EBS를 통해 사교육 수요를 흡수할 수 있도록 기존 유료였던 EBS 중학프리미엄 강의를 무료로 제공한다. 책임학년제가 도입되는 초3, 중1 기초학력 미달 학생에게는 별도 사교육이 필요 없도록 ‘학습도약 계절학기’를 신설해 교원이나 대학생 멘토가 집중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박성민 기자, 전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