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청산행
어린이날에 이어진 오월 첫째 토요일이었다. 근래 미세먼지는 더러 끼었으나 황사는 드물었다. 그런데 일기예보는 주말은 내몽골에서 발원한 황사가 우리나라까지 덮쳐 시야가 좋지 않을 거라 했는데도 나는 도시락을 챙겨 길을 나섰다. 바깥으로 나가니 우리 지역은 황사가 예보만큼 짙지 않아 시야는 괜찮았다. 계절의 여왕다운 오월의 거리 메타스퀘어 가로수는 날로 푸르러갔다.
집 앞에서 210번 버스를 타고 창원중앙역으로 나가 용추계곡으로 들었다. 봄이 되어 용추계곡으로 들기는 처음이니 오랜만이었다. 신록이 싱그러운 휴일을 맞아 산행객들이 더러 있을 법도 하였는데 워낙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발길이 끊겨 적요하기만 했다. 계곡 들머리는 아카시 꽃이 피어 바람결이 일렁거렸다. 계곡 바위틈으로 물소리가 졸졸거리고 산새들도 덩달아 화음을 넣었다.
용추계곡은 지난해 초가을 우리 지역을 엄습한 태풍으로 많은 비가 내려 곳곳의 등산로가 유실되었다. 행정당국에선 오는 여름까지 복구를 끝낼 테니 산행객들은 우회로로 안전하게 다니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숲속 나들이 길을 더 올라가 우곡사 갈림길을 지났다. 포곡정으로 가는 바위 계곡 가장자리 쉼터에서 잠시 앉아 쉬었다. 물소리와 새소리를 계속 공으로 들을 수 있었다.
쉼터에서 일어나 계곡을 따라 올랐다. 계곡 양편 숲은 연두색 신록으로 눈이 부실 정도였다. 공룡발자국 화석을 지나 포곡정에 닿았다. 보름 전 지역 사회단체에서 주관한 비음산 철죽제 행사장이었지 싶다. 나는 갈림길에서 진례산성 동문 터를 향해 오르다가 커다란 소나무 그루 아래서 잠시 쉬었다. 가져간 곡차를 비우면서 명상에 잠겨 무욕무심의 시간을 보냈다. 삼림욕을 즐겼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가파른 비탈을 올라 진례산성 동문 터에 닿았다. 왼쪽은 용추고개를 거쳐 정병산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비음산과 대암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두 곳 다 아닌 고개를 넘어 가파른 산비탈로 내려섰다. 희미한 등산로가 있긴 했으나 사람이 잘 다니질 않아 묵혀 있다시피 했다. 임도까지 내려가면 진례 평지마을 가는 길과 만난다.
나는 등산로를 벗어나 숲으로 들어 취나물과 바디나물을 몇 줌 뜯었다. 응달이라 나물은 그리 쇠지 않은 편이었다. 부엽토가 쌓인 숲을 한동안 걸으면서 산나물을 뜯어 모았다. 그 어디쯤에서 평지마을 가는 임도로 내려섰다. 남산재와 평지마을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 길가에 아주 큰 너럭바위가 나타났다. 내가 그곳을 지날 때면 쉬었다가 가는 자리로 때가 일렀지만 도시락을 비웠다.
임도는 저 멀리 아득한 신월마을까지 길고 긴 길이었다. 중간에 대암산 꼭뒤로 오르는 숲으로 드니 함안 조 씨 선산이 나타났다. 두벌 두릅을 몇 줌 꺾고 취도 더 뜯어 보탰다. 등산로를 벗어난 숲에선 비비추 군락지도 만났다. 비비추는 너무 많아 조금만 채집했다. 산나물을 뜯으면서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집으로 가져갈 형편이 아니기에 누구에게 어떻게 처분하느냐의 문제였다.
아까 점심을 먹을 때는 대암산을 넘어 대방동으로 내려가려고 생각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가파른 산비탈을 타고 넘으려니 힘이 부쳤다. 둘러가는 길이 좀 멀긴 해도 평지마을에서 진례로 나가 장유를 거쳐 창원으로 가려고 마음을 바꾸었다. 그러면서 장유 사는 예전 근무지 지인에게 문자를 넣었다. 바깥바람 쐬러 거제로 나가 산나물을 건네받을 처지가 아니라는 회신이 왔다.
평지마을에서 찻길까지 걸어 장유로 가는 버스를 탔다. 장유에 사는 퇴직 교장에게 전화를 넣었더니 진주 근교 고향마을에 가 있어 산나물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비록 산신령님의 허락을 받지 않은 산채이긴 해도 뜯느라고 고생은 좀 했다. 집 근처 와 같은 아파트단지에 사는 초등학교 친구에게 전화를 넣었더니 해결되었다. 친구도 아내 병수발 하느라 고생이 많음은 내가 잘 안다. 17.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