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무르시듯이
우리도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무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복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라고 하십니다.
어떤 삶이 그것일는지요?
사랑의 출발은 ‘생각’입니다.
생각이 많기에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예전엔 사랑이 아니라 ‘사량’이었다고 합니다.
생각 ‘사’(思)와 헤아릴 ‘량’(量)이 사랑의 원래 글자라고 합니다.
생각이 적으면 사랑 역시 식습니다.
그건 우리의 체험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만 생각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답을 주셨습니다.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그분의 계명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실천은 용서였습니다.
용서하며 살아야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이 됩니다.
용서는 어렵습니다.
단순히 잊는 행위가 아닙니다.
한순간 용서하려 들기에 늘 실패합니다.
용서에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미워한 세월만큼은 아니더라도 시간을 가지고 노력해야 합니다.
용서는 끊임없이 닦아야 하는 덕이기 때문입니다.
세월은 약이 아니라 마취제일 뿐입니다.
기억이 살아나면 미움도 되살아납니다.
사랑으로 덮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날 용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한 용서를 체험하면 주님의 사랑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열한 살에 나병에 걸린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발병하였다는 사실을 안 아버지는 고민 끝에
아이를 가족과 격리시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소록도에 나환자촌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거기로 아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이를 그곳에 두고
홀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바삐 살면서 아이를 잊고 지냈습니다.
40년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는 아이가 보고 싶어서 섬으로 다시 갔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껴안으며 울면서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한시도 잊은 날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 달라고 40년 동안 기도해 왔는데
이제야 제 기도에 응답이 왔네요.”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자식이 나병에 걸렸다고 무정하게 버리고,
한 번도 찾지 않은 애비를 원망하고 저주해도 모자랄 텐데
왜 나를 기다렸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저는 여기 와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 뒤로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비참한 운명까지도
감사하게 만들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속으로 이렇게 다짐을 했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내 아들을 이렇게 변화시키신 분이라면
나 또한 마음을 다해 그분을 받아들이겠다’(『행복 편지』에서).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른 사람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보여 주는 실화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비참한 운명까지도
달리 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어려운 역경을 이겨 나갔던
소중한 기억을 떠올려 봅시다.
첫댓글 "그분의 계명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실천은 용서였습니다.
용서하며 살아야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이 됩니다.
용서는 어렵습니다.
단순히 잊는 행위가 아닙니다.
사랑으로 덮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한 용서를 체험하면
주님의 사랑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구구절절 심금을 울립니다
그러나
주님안에 머무르기가 쉽지 않아예.
그렇지만
1%래도 주님 믿고사는 신자라면
주님 사랑 안에 충분히 머무르도록
노력은 해야겠지예.
가슴에 담고 감사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