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3. 큐티
시편 2:5 ~ 9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
관찰 :
1) 진노하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 5절 ~ 6절.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 본 시편은 다윗의 왕위에 대하여 말하는 것같이 시작되었으나 이제는 완전히 현실의 세계가 아닌 이상적인 세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확실히 이상 세계입니다. 공의가 존재하는 세계, 불의가 불의로 판명되고 공정한 처벌을 받는 세계 즉 다윗이 본 메시아의 통치의 특징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처럼 언젠가 메시아가 와서 공의를 실천하고 하나님의 뜻을 세울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믿었던 메시아 사상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상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시편을 “메시아적 시편”이라고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편들 중 신약 저자들이 인용한 것이 15편입니다. 그 중에서도 시편 2, 45, 110편 등은 장차 오실 메시아가 우리를 통치할 ‘왕’이시며‘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 하나님 그 자신이시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특히 시편 2편에서는 ‘왕’과 ‘아들’이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메시야의 정체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 메시아적 시편은 메시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확증되었습니다. 신약 저자들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복음을 전파하셨는데, 그 복음 내용이 곧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 안에 임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고 왕을 모시고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세상에 있으며 세상 법칙에 순응해야 하지만, 이보다 더 높은 하나님 나라의 왕의 통치 하에 살아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메시아가 왕으로 완전히 통치하는 시기는 아직도 미래에 속합니다. 시편 2편 말씀은 바로 이런 미래의 시기를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 하나님은 그 통치권을 아직도 보유하고 계십니다. 현상만 볼 때 이를 알지 못하고 갈등하며 분을 내던 사람들도 말씀을 통하여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 통치권을 아무에게도 양보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통해서 엄청난 위로를 받게 됩니다. 이는 세상의 정글의 법칙대로, 악인의 뜻대로 이 세상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공의로운 왕이 하나님의 성산에서 명하시는 뜻에 따라 공의가 실현되리라는 것입니다.
2)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 7절.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 이 ‘왕’은 다윗처럼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리라고 시편 기자는 그 왕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왕은 천사들보다도 높고 세상의 왕들보다도 높은 분이십니다. 이 분은 인간 이상의 분이십니다. 유대인들은 시편 2편에서 부활 사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약 저자들이 시편의 이 부분을 인용할 때는 부활과 결부시켜서 설명했습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가 왕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구약 저자들은 예언을 했던 것입니다.
- 우리의 ‘왕’되시는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었지만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죄를 어깨에 메고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그가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고 왕좌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믿고 있던 시편 2편에 약속된 메시아를 정작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내셨건만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 뿐만 아니라 많은 세상 사람들이 메시아가 오셔서 이미 메시아적 시편을 입증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심지어는 예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불신과 상관없이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고, 또 장차 “네가(메시아)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하는 부분도 예수님께서는 실현하실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종말의 때에 이루어질 이 사실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계 19:11). 그때까지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메시아에게 주신 ‘이방 나라’ 곧 ‘땅끝’까지 이르러 왕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의 통치에 대하여 전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내게 구하라
- 8절.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 하나님의 아들이신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의 통치를 증거하는 자들에게 그 나라와 그 나라의 사람들을 유업으로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소유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이 구원받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 동참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가치도 생명의 가치보다 더 우월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영생을 소유하게 되는 이들을 위하여 구하고 그 구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은혜에 동참하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일에 부르심과 동역하심으로 일하시는 우리 주님이 위대하고 놀랍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 9절.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의 양상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다시 오시면 완전히 다르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인내하시고, 사랑으로 통치하셨지만, 주님이 다시 오시게 되면 그 때는 철장으로 박살을 내시는데, 마치 질그릇을 깨부수듯이 그렇게 박살을 내실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전혀 봐주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완전히 공의로운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의 인애가 아니라면 우너래 이렇게 전혀 봐주는 것이 없이 박살이 나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주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두려움이 없다면, 즉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다면 결국 하나님의 엄위하신 심판을 피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두려운 줄 아는 인생이 복된 이유입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언제나 사랑과 인내로 우리를 다루실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불의가 넘치는 것을 참아주시고 계실 뿐이지 결코 내버려 두실 분이 아니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세상에 공의를 실현하실 수 있는 능력자 이십니다. 그 누구도 여호와 하나님처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처럼 공의로 통치하실 수 있는 존재가 없습니다.
2)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서 하나님 나라에 속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그 나라의 통치를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으로 하여금 그 나라에 들어가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3) 예수 그리스도께 구하는 것은 결국 생명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게 필요한 것을 달라고 구하는 것은 다른 종교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모습입니다. 물론 그 종교에서 그렇다고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도는 주님께 나라와 민족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하는대로 얻을 수 있게 되는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의 일에 그렇게 동참할 수 있는 놀라운 자리에 부름을 받게 된 것입니다.
4) 주님의 통치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은 결국 주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때는 전혀 봐주시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질그릇을 깨뜨릴 때 조금만 깨뜨리거나 봐주지 않습니다. 완전히 박살을 내서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이제껏 숨기고 가리우던 모든 죄악들은 다 드러나게 되고, 자신의 존재가 박살이 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비단 예수님이 다시 오셔야 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주님이 심판을 하시게 되면 그런 역사는 일어날 것입니다. 단지 주님의 은혜로 지금 그런 심판이 유보될 따름입니다. 그렇기에 회개할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죄악이 숨겨지는 것은 결코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적용 :
1)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운 줄 알아야 합니다. 2023년을 보내고 2024년을 맞이하는 시간을 민영, 찬영, 병조 모든 가족이 함께 모여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 때도 여호와를 경외함에 대해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어디에 있건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운 줄 알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싫어하는 존재가 되자고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진정 그렇게 살기를 소원합니다.
2)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또 하나님이심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구함으로 나라와 민족을 얻게 되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놀라운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게 될 것을 또한 소원합니다. 미야마까지 와서 미얀마와 미얀마의 백성들을 구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의 선하신 은혜를 구하고 또 구하게 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속해서 이 세상에서의 심판을 피하는 것이 지혜인 줄 믿습니다. 주님, 정말 주님을 생각할수록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고 소원하게 됩니다. 2024년 주님의 공의가 제 삶의 과정에서 온전히 드러나게 되기를 간절히 간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