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목)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택시로 인근에 있는 추사관으로 갔다. 세한도 모습을 한 추사관 건물인데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했다. 추사관 뒤로 추사선생이 위리안치되었던 집이 있다. 초가집 담에는 가시나무를 심어 놓았고 마당에는 ‘추사김선생적려유허비’가 우뚝 서 있다. 이곳은 추사가 유배와서 두 번째로 머물던 주민 강도순의 집터다. 추사는 이곳에서 ‘추사체’를 완성했고 국보인 ‘세한도’를 그렸고, 초의스님을 비롯한 당대의 명사들은 물론 제주도민들과 빈번히 교류했다고 한다. 추사는 평생 붓 천여 자루가 다 닳고, 벼루 10개가 닳아 구멍이 뚤릴 정도로 글씨를 썼다고 한다. 가파른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면 추사의 가문과 일생, 글씨와 세한도 등이 잘 정리되어 있다. 세한도는 추사 나이 59세 되던 1844년, 제주도에 유배 온지 5년이 되었을 때, 제자인 이상적에게 그려준 작품으로 제자인 역과 우선 이상적은 수승 추사가 귀양살이 하는 동안 연경에서 구해온 귀중한 책을 정성으로 보내주엇다. 추사는 그 고마운 마음의 표시로 ‘세한도’를 그려주었는데 이상적은 이 작품을 연경으로 가져가서 당시 추사가 고류하던 중국의 옹방강, 완원 등에게 보여주고 발문을 받고, 당시 국내 문인들의 발문도 받아 세한도 작품에 이어 붙였는데 그 발문 길이가 엄청 길다.
추사관을 나와 택시를 타고 한림항으로 가서 비양도행 배를 탔다. 비양도는 한림항에서 빤히 보이는데 배 시간은 약 15분이다. 불과 1천여 년 전에 화산이 폭발해서 생긴 섬으로 제주도에서 가장 어린 섬인 셈이다. 왼편 해안가로 섬을 돌아가면 용암이 굳어 형성된 코끼리바위, 새바위, 호니토 등이 있고, 바닷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만들어진 염습지 ‘펄랑못’이 있는데 해송과 억새, 대나무 등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펄랑못’에는 야생식물들이 군락하고 있으며 겨울철에는 청둥오리, 바다갈매기 등의 철새가 서식한다. 낮은 돌담 안에 널찍한 잔디밭과 아담한 건물이 있길래 살펴보니 한림초등학교 비양분교인데 지금은 휴교 중이다. 조금 더 걸으니 선착장이 있고 그 앞 식당에서 보말칼국수를 먹고 1시 반 배로 한림항으로 나왔다.
한림항에서 택시를 타고 4·3평화공원으로 갔다. 제주시를 거쳐 한참을 가는데 꽤 거리가 멀다. 요금은 39,000원이 나왔다. 제주4·3평화공원은 제주시 봉개동 넓은 분지에 자리잡고 있는데 기념관 안 전시관 입구는 완만한 경사로 내려가는 지하 동굴로 되어 있다. 경사진 긴 굴은 제주섬에 지천으로 널린 용암동굴을 나타내는데 4·3 당시 수많은 제주민들이 살기 위해 산으로 오르거나 동굴로 숨어들었다가 토벌대에 발각되어 죽임을 당했다. 이 공간을 통해 관람객들은 70여 년 전 4·3의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처음 만나는 어두운 방에는 아무런 글자도 새겨지지 않은 비석 ‘白碑’가 누워있는데, ‘白碑’는 흰 비석이 아니라 빈 ‘비석’을 뜻한다. ‘白碑’ 위로는 나선형의 천장이 높게 이어져 있고 천장은 하늘이 보이게끔 구멍이 뚫려 있다. 가장 어두운 역사 현장에 진실규명의 빛이 비치기를 염원하는 뜻이 담겨있는 듯하다. ‘봉기,항쟁,폭동,사태,사건’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온 제주4·3은 아직까지도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흔들리는 섬-해방과 좌절’ ‘바람타는 섬-무장봉기와 분단거부’ ‘불타는 섬-초토화와 학살’ ‘흐르는 섬-휴유증과 진상규명 운동’ ‘평화의 섬으로 거듭나다’로 구분된 전시실에는 역사적 사실과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주4·3특별법’에 따라 2003년 확정된 정부 보고서인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는 4·3사건 인명피해를 2만 5천∼3만 명으로 추정했다. 그중 여성과 노인 어린이가 1/3에 달하는데 남녀노소 가리지 않은 과도한 진압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념관을 나와 옆 언덕에 위령단이 있고 그 아래로 희생자 명단이 빽빽이 새겨진 검은 돌이 둥근 담을 하고 서 있다. 그 아래로 둥근 돌담 안쪽으로 ‘飛雪’이란 제목의 조각 작품 ‘변병생 모녀상’이 있는데, 이는 초토화작전이 벌어지던 1949년 1월 6일, 변병생(당시 25세)과 그의 두 살배기 딸이 거친오름 북동쪽 지역에서 피신도중 희생되었고, 후일 행인에 의해 눈더미 속에서 이 모녀의 시신이 발견되었던 사실을 형상화 한 것이다. 이 모녀상은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이 두 생명의 넋을 달래고자 설치되었는데, 흰 눈밭 위헤 웅크려 어린 아기를 안은 여인의 모습이 보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제주4·3평화공원에서 버스를 타고 제주시 동문시장으로 와서 기념품 등 선물을 조금 사고 생선회와 매운탕으로 저녁을 먹고 제주공항으로 향했다.
그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제주 올레길을 무사히 완주하고 한라산과 인근 섬을 두루 둘러보았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걸으면서 하는 독서”라고 하는 말이 있다. 이번 제주올레여행을 통해서 제주의 속살을 자세히 살펴보고, 제주의 아픈 역사와 제주민들의 핍박과 통한의 서러움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신체와 정신도 나름 단련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 하태용군과 몇 차례 동행한 신민성군 등 여러 친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좋은 친구들 덕분에 먼 길을 재미나고 신나게 걸어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끝
첫댓글 희국이 글에 지난 여정이 참 자세히도
쓰여있네요.
다소 힘든 데도,고생한 때도 있었지만,
멋진 .도전이었습니다. 완보기 쓰느라 수고했습니다.마지막 두번을 같이해준 민성친구한테도 고마음을 전합니다.
친구들 제주올레길 갈때 정보 필요하면 any time 전화주시구려.
지리산둘레길,올림픽아리바우길 ,제주올레길 완보에 이어,가을쯤엔 청송에서 영양,봉화를 거쳐 영월까지 가는 외씨버선길을 가고싶은데,그때는 많은 동참하에 추진코자 합니다,폭삭 속았수다
친구들 제주 올레길 완주를 축하합니다
대단한 용기 와 실행에
존경심이 절로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