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에 ‘편차 제곱의 합’ 등장 킬러문항”… 정답률은 공개안해
[킬러문항 공개]
교육부, 최근 3년 킬러문항 26개 공개
교육부는 최근 3년 동안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올해 6월 모의평가에 출제된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26개를 26일 공개했다. 교육부는 대학에서 배우는 ‘벡터의 외적’ 개념이 동원된 수학 문제, ‘클라이버의 법칙’ 등 생물학적 지식이 등장한 국어 문제 등을 킬러 문항 예시로 제시했다. 하지만 해당 문제들의 구체적인 정답률, 오답률 등 객관적인 기준이나 ‘물수능’ 논란을 피해 갈 변별력 확보 방안은 이날 발표하지 않았다.
● 개념 결합-추상적 지문 ‘킬러’ 꼽혀
교육부가 밝힌 킬러 문항 기준은 크게 2가지 유형이다. 첫 번째는 다수의 개념을 결합해 문제 풀이 과정을 복잡하게 만든 경우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3학년도 수능 수학 영역의 22번 문항(문이과 공통)이다. 이 문제에는 미분과 적분에 나오는 ‘변곡점’이라는 개념도 포함돼 이과생에게 유리했다. 염동렬 충남고 교사는 “변곡점을 모르는 문과생은 문제를 푸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는 문항”이라고 설명했다.
국어는 추론해야 할 정보량이 지나치게 많은 비문학 지문이 킬러 문항으로 지목됐다. 2023학년도 수능 국어 17번을 풀려면 ‘최적의 직선 기울기’ ‘편차 제곱의 합’ 등 개념을 파악한 뒤 해당 내용의 의미를 지문에서 찾고, 또 보기의 내용을 적용하며 이해해야 한다.
교육부가 제시한 두 번째 킬러 문항의 유형은 낯선 분야의 전문 용어를 사용하거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지문이 포함된 경우다.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 영어 34번 문항은 ‘감각적 인식과 이성적 지식의 차이’를 다룬 지문이 등장했다. 서양 철학이라는 주제도 낯선데 문장구조도 복잡했다.
2022학년도 수능 국어 영역의 8번, 13번 문항도 같은 이유로 킬러 문항으로 지목됐다. 8번은 헤겔과의 가상의 대화를 기반으로 변증법에서 대립적인 두 범주가 하나로 통일돼 가는 것을 말하는 ‘수렴적 상향성’과 같이 어려운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된다. 또 지문에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은 탓에 고난도 추론을 해야만 문제를 풀 수 있다. 13번에는 금 태환(금 1온스에 35달러) 조항 등 경제 전문 용어가 등장했다. 이날 공개된 킬러 문항 사례는 영역별로 국어 7개, 수학 9개, 영어 6개, 과학 4개 문항이다. 수학 킬러문항은 모두 주관식이었다.
● EBS 지문인데 ‘교과 밖 출제’?
하지만 이들 문항 중 일부는 EBS 등에서 집계한 비공식 정답률이 30%를 넘는 등 ‘킬러 문항’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입시 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정답률이 10% 이내인 문항이 킬러 문항이라고 여겨져 왔다.
교육부는 이날 문항별 정답률은 공개하지 않았다. 수능 출제를 담당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도 수능 문항의 정답률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정답률을 공개하면 사교육 업체가 수험생과 학부모를 상대로 입시 컨설팅을 해준다며 더 현혹할 것이라는 부작용 우려가 컸다며 “2025학년도부터 공개할지 여부를 의견 수렴을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EBS 교재에 나왔던 지문이 출제된 문항도 킬러 문항 사례로 소개되면서 ‘교과 내 출제’ 기준이 모호하다는 논란도 일었다. 이번에 킬러 문항 사례로 언급된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 국어 영역 33번과 2022학년도 수능 국어 13번 등 다수 문제들이 EBS 교재를 활용한 문항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EBS 연계 문항이라도 학교 수업만으로 풀 수 없다면 킬러 문항”이라고 했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EBS 활용을 강조해온 교육부 방침과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 구체적인 변별력 확보 방안 빠져
교육부의 킬러 문항 사례 공개는 평가원이 그동안 밝혀온 출제 근거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번에 포함된 킬러 문항 중 하나인 2023학년도 수능 국어 17번 문항은 ‘클라이버의 기초 대사량 연구’를 다루는데, 평가원은 ‘정보의 객관성, 논거의 입증 과정, 과학적 원리 등을 비판적으로 이해한다’는 독서파트 성취기준을 이 문항의 출제 근거로 제시한 바 있다.
교육부는 킬러 문항을 배제하되 변별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혀왔으나 구체적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어떻게 출제될지는 9월 모의평가 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수험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수능을 불과 3개월 남겨둔 시점까지 올 수능의 출제 방향 변화를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현직 국어 교사인 A 씨는 “애초에 킬러 문항은 상대평가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라며 “공교육 정상화를 고려한다면 지문은 독서 교과서 수준으로 내고 문항에서 학생들의 사고력을 측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훈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