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價紅裳(동가홍상).
우리는 흔히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말하며, 여럿 중에서도
그 모양이 좋고 보기도 좋은 것을 선택하겠다는 뜻으로 쓰고 있지만,
왜, “다홍치마”인지에 대해 語原(어원)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뿐더러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드물다.
그 이유는 치욕적이기 때문이다.
同價紅裳(동가홍상)은 1636년(인조 14) 12월에 발생한 청나라가 조선을 침입한
丙子胡亂(병자호란)에서 시작된다.청. 제국의 “태종”이 명나라를 공격하기
이전에 배후의 안전을 확보할 목적으로 조선을 침공하였고,
“仁祖”와 조정은 남한산성을 교두보로 항전하였으나, 청의 포위로 인한 굶주림,
왕실이 피난한 강화도의 함락, 남한산성의 포위를 풀기 위한 작전실패 등으로
仁祖(인조)는 삼전도(지금의 송파)에서 淸태종에게 三拜九叩頭禮(삼배구고두례)
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을 당하고, 소현세자를 비롯한 척화파
세력 및 貢女(공녀)등, 수많은 백성을 인질로 보낸다.
당시의 공녀로 가게 된 여인들의 복장은 처녀는 “홍상(紅裳)” 즉 다홍치마였고,
과부나 기생이 입던 치마는 “청상(靑裳)” 즉 푸른 치마였다.
淸(청)나라 사람들의 시각에서 볼 때는“같은 값이면 과부나 기생보다는 처녀가
좋다.”라는 시각에서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同價紅裳(동가홍상)”이 비롯되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홍치마를 차려입은 우리 아가씨께서는
뭐가 그리 좋은지 그네를 탄다. (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