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했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명실 공히 '총무'를 학회의 중심축으로 한 신체제가 발표되며(1959년 6월 30일) 시대는 바뀌었다.
제자가 펼치는 '광포 제2막'이 도래했다.
제자는 모든 책임을 지고 사투를 벌였다.
"무사태평한 사람이 왜 이리 많은가. 나 스스로 사투를 결정하는 수밖에 없다."
(《젊은 날의 일기》)
"나에게 보답하려 한다면 인재를 배출하라!"
은사 도다 제2대 회장의 유언대로 제자는 행동했다.
신체제 직후인 1959년 7월, 남자부 간부회에 참석한 이케다 총무는 남자부원들을 이렇게 격려했다.
"도다 선생님은 청년부에게 가장 기대를 거셨습니다. 청년부는 학회의 보배입니다.
우리 청년부가 성장해야 비로소 광선유포를 할 수 있습니다."
초점은 '청년'이었다. 스승의 이상과 스승의 정신, 스승의 사상, 그리고
스승의 기세를 모든 학회원과 민중에게 전할 인재를 찾고 있었다.
스스로 책임을 진 '각오한 제자'가 바로 제2막의 인재가 지녀야 할 요건이었다.
제가 남자부장에 취임할 때 (이케다)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적과 공방전을 벌이거나 어떤 일이 있어도 학회 속에서 일어난 문제는 청년부가 앞장서서
모든 책임을 지고 해결하기 바랍니다."
적의 움직임에 둔감하거나 방관자를 가장하는 자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선생님은 엄하게 주의를 주셨습니다.
"학회의 청년들이 불적(佛敵)을 앞에 두고 왜 침묵하는가."
선생님은 미래와 장래의 학회를 철저히 살펴본 후에 '청년'에게 힘을 쏟으셨습니다.
총무(이케다 선생님)는 청년들에게 미래에 대한 지표를 제시했다.
그것이 저 '제3문명'이라는 획기적인 구상이었다.
'제3문명'은 무엇인가.
총무는 남자부 간부회에서 그 구상을 처음으로 피력했다.
"두 세계의 대립이 세계 민중의 행복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첫번째 세계는 유물주의, 두번째 세계는 유심주의입니다.
그런 속에서 양식(良識)이 있는 사람들은 제3세계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제3세계는 유물론도 아니고 유심론도 아닌 바로 '제3문명'입니다.
현대민중은 정신문명의 세상에도 물질문명의 세상에도 뭔가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민중의 마음 깊은 곳에서 분출된 욕구는 물질도 마음도 아닙니다.
색심불이(色心不二)의 생명철학에서 출발한 '제3문명'을 진실로 갈앙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도다 선생님은 '최고의 문화는 광선유포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최고의 문화는 '제3문명'입니다. 사상과 정치, 문화 전부를 지도할 원리는
색심불이의 생명철학에서 출발한 '제3문명'이며 '제3문명'을 실현하는 일이 바로 광선유포입니다."
총무(이케다 선생님)는 나카노공회당에서 열린 여자부 간부회 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지금은 청년지도자들이 용감하게 돌파구를 여느냐 못 여느냐 하는 중대한 때다."
총무(이케다 선생님)는 청년부 회합에 잇달아 참석했다.
그런 가운데 수호회 야외연수에도 참석했다.
청년이 '돌파구를 여느냐 못 여느냐'에 학회의 미래가 달려 있었다.
1959년 7월 25일 히카와 캠프장에서 수호회 야외훈련을 개최했습니다.
(이케다)선생님은 강가 모래밭으로 나와 텐트를 전부 돌아보셨습니다. 그리고 참석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기 장점을 파악해 키우고, 단점은 신심에 힘쓰면서 계속 고치세요."라고
엄하면서도 자애가 담긴 지도를 하셨습니다.
또 "앞으로 나는(이케다 선생님) 은사의 유훈을 실천하겠습니다. 열심히 저를 따라오세요."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 후 고다이라에 불러 주셨을 때 그 말씀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아직 무사시노의 잡목림이 우거진 황야였습니다.
모두 왜 이런 곳에 모이라고 하셨을까 하고 의아했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장래 여기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를 짓겠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광선유포의 투쟁은 교육입니다. 도다 선생님도 그것을 강하게 주장하셨습니다."
(이케다)선생님의 가슴속 깊은 곳에는 창가교육의 전망과 광선유포의 대서사시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당시 대백연화 취재에 응해 이케다 총무는 '향후 7년의 투쟁'에 대해
몇 가지 항목을 들어 명쾌하게 말했다. 그 가운데 '학회의 영원성'이라는
항목을 들어 이렇게 역설했다.
"'수원(水源)이 깨끗하면 흐름은 맑다.'라는 이치입니다. 타성에 흐르면 안 됩니다.
근본을 규명해 언제나 늘 학회를 창립할 때와 같은 신심제일의 자세여야 합니다.
도다 선생님의 건설정신!
도다 선생님의 개척정신!
도다 선생님의 투쟁정신!
그 정신을 관철한다면 학회는 언제까지나 발전합니다.
일반사회에서도 완성된 조직 위에 안주하고 타성이나 감정에 흐르며, 안일을 탐하고
과거 창립 때의 고충을 망각했을 때, 그 조직이 무너진다는 사실은 역사가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학회도 하나의 사회입니다.
학회라는 사회도 복잡해질수록 근원은 준엄한 신심을 제일로 삼아야 합니다." (1959년 8월호)
학회를 얼마나 반석같이 만드느냐. 어떻게 하면 학회가 승리의 역사를 남기느냐.
학회만큼은 절대로 무너지게 하면 안 된다. 강한 청년이 공평하게 깨끗하게 그리고
순수하게 학회를 지켜야 한다." (《젊은 날의 일기》)
총무(이케다 선생님)는 청년들이 '모든 승부를 결정'한다고 보고 있었다.
이케다 총무가 청년육성을 위해 이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실시한 행사가
'젊은이의 제전'이었다. (중략)
대회가 끝난 뒤 여자부 회합에 참석한 총무 곁에 한 부대장이 심각한 얼굴로 다가왔다.
그 부대는 성적이 부진해 경기에서 한 점도 득점하지 못했다.
총무(이케다 선생님)는 자상하게 격려했다.
한 점도 따지 못해도 괜찮아요. 저는 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가장 힘든 곳에서 투쟁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어요."
총무(이케다 선생님)는 8월 30일에 홋카이도에서 열린 제2회 '젊은이의 제전'에도 참석했다.
"젊은이들이 필사적이고 순수하게 매스게임과 달리기 경주를 하는 모습에
힘찬 박수를 보냈다. 이 힘을 발판으로 하여 권위를 제멋대로 남용하는 간부가 되는 자는
악인이다. 단지, 도다 선생님에게 보여드릴 수 없어 유감일 뿐.
… 청년을 사랑할 수 없는, 초라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 정말 많구나." (《젊은 날의 일기》)
(이케다)선생님은 "은사(도다 선생님)와 연이 있는 홋카이도에서도
사회에 공헌하고 세계로 웅비할 인재가 많이 나오길 바란다."라고 격려하셨습니다.
대회가 끝난 뒤 보고를 드리러 선생님에게 달려갔을 때의 일입니다.
선생님은 보고를 듣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은 긴 것 같아도 짧습니다. 특히 20대, 30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립니다.
무슨 일이든지 진지하게 임해 어떠한 곤란도 극복하는 강한 신념으로 투쟁하세요."
자애 넘치는 선생님 말씀이 당시 스물아홉 살이던 제게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9월 13일에는 국립경기장에서 제2회 '젊은이의 제전'이 열렸다.
개회식에서 이케다 총무는 이렇게 인사했다.
"도다 선생님은 이 지구상에서 비참이라는 두 글자를 없애고 싶다,
슬픔과 비참이라는 두 글자를 없애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단 하나, 바로 광선유포라고 지도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청년의 사명입니다.
청년은 총리보다, 재벌보다 또 문호보다 훨씬 존귀하고 의미있는 말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일은 청년기에 지닌 이상과 청년시절에 품은 꿈을
평생 지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청년의 마음을 잃지 말고, 이상을 잃지 말고 또 희망을 달성할 때까지
강하고 밝고 올바르게 끝까지 전진합시다."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젊은이의 제전'에는 많은 해외미디어를 초청했습니다.
당시 해외미디어는 학회 발전을 질투하는 타 종교가 유출한 허위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여
비판적으로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이케다)선생님은 그런 미디어와
성실한 대화를 거듭하며 투쟁하셨습니다. 해외 섭외담당이던 저도 해외미디어에
학회를 설명하러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멋대로 만들어낸 이미지를 결부해 학회를
비판했지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심하게 대응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설령 지금은 상대방의 이해를 얻지 못해도 이쪽은 성실하게 끝까지
말한다는 자세로 정중히 거듭 대화하셨습니다.
그 뒤 많은 해외미디어가 크게 변해 학회를 이해하는 쪽으로 발전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이 보여준 인간외교의 축적이 결국 신뢰를 쟁취한 것입니다.
이케다 총무는 9월 20일 효고 아마가사키에서 열린 간사이 남자부 간부회에 참석했다.
총무는 질문회에서 '제3문명'에 관해 피력했다.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이라는 2대 문명이 있습니다.
정신문명은 유심사상이며, 물질문명은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구축된
정신문명과 상대적인 문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대성인 불법은 정신과 물질은 하나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이 색심불이 문명이 부흥하는 시대가 도래해야 합니다.
광선유포는 색심불이 철학을 근저로 한 최고의 문화를 건설하는 일입니다.
이를 '제3문명'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실현할 사람은 여러분입니다.
흐루시초프와 아이전하워가 세계를 어떻게 할지 서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두 사람 다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지금은 세계를 쥐고 있습니다.
하물며 불법을 신앙하는 여러분이 세계에 공헌하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명예나 재산, 가문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힘, 이 힘은 신심의 힘이 최고입니다.
여러분은 세계평화를 위해 그들보다 100만억 배의 활약을 하기 바랍니다."
9월 20일. 이케다 총무는 여자부 인재그룹 '간사이 화양회' 발족식에 참석했다.
왜냐하면 은사 도다 제2대 회장이 "광선유포는 여성의 힘으로 달성된다."라고
유언했기 때문이다. 여자부 '화양회'는 1952년 가을에 결성되었다.
은사는 "꽃과 같이 아름답고 태양처럼 긍지 드높아라."는 의미로 '화양회'를 결성했다.
젊은 여성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
은사의 유언대로 제자는 청년부, 특히 여자부 육성에 힘을 기울였다.
"평화를 여는 길은 광선유포뿐이다!" (1959년 9월 13일, 도쿄 국립경기장)
일찍이 은사는 여자부에게 이렇게 지도했다.
"창가의 사제에 일생을 걸어라! 절대 후회는 없다!"
이케다 총무의 생각도 똑같았다. 본격적으로 '사제'의 혼이 여자부에게 심어지고 있었다.
(이케다)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체의 법은 모두 이는 불법(佛法)이라고 하느니라.' (어서 564쪽)하고 어서에 씌어 있습니다.
불법에 통달한 사람은 세법(世法)에서도 승리해야 합니다.
학회 여성은 '세계 여성의 귀감'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성장해야 합니다.
'화양회'의 목적은 세계에 모범이 되는 여성을 육성하는 것입니다.
여성의 행복은 40대부터 시작됩니다. 여자부는 허식에 가득찬 행복에 속으면 안 됩니다."
총무(이케다 선생님)는 '간사이 화양회'에서 청년이 지녀야 할 올바른 자세를 종횡무진으로 지도했다.
"인간의 능력은 노력 여하에 따라 향상될 수 있습니다. 특히 청년은 격려하면 어떻게든 성장하는 법입니다."
"대성인 철리를 치켜들고 모든 사상 위에 군림해서 제3문명을 건설하는 데 매진하는 일만이
우리가 받은 숙명이자 우리가 살아갈 길입니다."
"청년은 미완성이며 미숙합니다. 그러나 불타오르는 정열과 한없이 젊은 에너지는
왕성한 창조력으로써 그런 결점을 보완하고도 남습니다."
"인간으로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에 무엇을 근저에 두는가.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이케다)선생님은 저희에게 늘 "무엇이든 괜찮으니 질문하세요."라고 하셔서
무슨 질문을 할지 서로 의논했습니다.
선생님은 《삼국지》에 나오는 '도원결의'를 통해 이렇게 지도하셨습니다.
"여성은 좋게든 나쁘게든 자신을 꾸미려는 마음이 있고 단결이 약합니다.
또 질투심이 강해 마음 깊은 곳에서 상대를 존경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화양회 멤버는,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 존경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동지를 배신하지 않고 회원들의 모범으로서 분발하십시오."
이 지도가 제 생애 지침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인재를 육성하는가. 이케다 총무의 마음은 거기에 있었다.
총무는 '간사이 화양회'에서 말했다.
"인재는 발견해야 합니다. 자신도 함께 노력하고 격려하며
그리고 간부를 만나게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젊음은 나이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정열로 결정됩니다."
"신심은 확신입니다. 또 지도는 격려입니다."
"불법에 책략은 없습니다. 막히면 원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케다)선생님은 "리더와 부원은 무엇이 다른지 아는가?"라고 질문하셨습니다.
"리더와 부원은 회합이나 홍교, 교학을 실천하는 데는 똑같습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리더는 타인을 육성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리더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육성했는지가 승부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이라면'하고 당신이 기대하는 사람들을 제게 더 많이 데리고 와 주십시오."
선생님은 다음 후계의 인재육성에 온 힘을 기울이셨습니다.
이케다 총무는 청년육성에 승부를 걸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대학부'에 초점을 맞췄다.
왜 대학부였을까? <수필 신 인간혁명>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6월 30일, 이날 나는 학회의 총무에 임명되어 오로지 홀로 광포의 모든 책임을 지고 일어섰다.
'6·30'은 말하자면 은사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제자가 홀로 일어선 날이다."
총무, 즉 실질적인 회장으로서 홀로 일어선 6월 30일.
같은 날에 결성된 사제직결하는 부서가 대학부였다.
대학부는 은사가 생애 마지막에 결성한 부서다.
"'정의의 비수', 그리고 '정의롭고 지혜로운 쾌도'가 되어라."
따라서 직제자는 명실 공히 학회를 지휘하게 된 이때,
'스승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제자여 일어서라.'하는 마음으로 가장 먼저 대학부에 초점을 맞췄다.
어서에 세계 광선유포는 "보현보살의 위신(威神)의 힘에 의하느니라." (어서 780쪽)하고
나와 있다. '두루 현명한' 영지(英智)가 바로 '광포의 검'이다.
당시 대학부 간부는 회고한다.
"이케다 선생님에게 '어떻게 하면 남자부나 여자부와 같은 수준으로 대학부를 지도할 수 있을까요?'
라고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선 대학부원을 절대로 퇴전하게 하면 안 됩니다. 요즘 학생들은 고독합니다.
신앙이 없는 청년은 마음의 문을 열려고 하지 않고 혼자서 고뇌합니다.
또 신앙을 하고 있어도 아직 대불법의 위대함을 실감하지 못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이를 때까지는 먼저 친구가 되는 일이 중요합니다.
같은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런 뒤에 고민이 있다면 내게 보고하세요.
내가 함께 지원하겠습니다. 당신은 그 부분을 도우십시오.'
선생님이 청년, 특히나 대학부에게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 제 눈으로 직접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강의가 끝나면 거의 날마다 학회본부에 다녔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이 본부에 모인 간부들을 훈련하기 위해 종종 지도회를 여셨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들어주겠다." 하며 생활이나 일, 가족이나 가정 상황 등 상세하게 들어 주셨습니다.
"인재를 발견하려면 먼저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라고 지도하며 선생님이 직접
그것을 실천하시는 모습을 접했습니다. '개성 풍부한 인재육성'이라는 내용을 활동슬로건으로 고안해
선생님에게 정해달라고 부탁드릴 때였습니다.
"개성?"이라고 하며 순간 엄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지적하셨습니다.
"각자의 개성은 분명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개성도 신심근본으로 단련하고 끝까지 연마해야
진정한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무책임하게 내버려두면 개성도 결국 생명의 단순한 습관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미숙한 저희의 신심을 근본부터 고쳐주셨지요.
한 우수한 학생이 유학을 가고 싶다고 기원하고 있었습니다.
주위에서도 그를 응원하는 분위기였지요. 선생님은 그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유학의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집안사정 등 여러 모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현실을 무시하면 유학지에서 몸을 망치는 등 반드시 좌절하고 맙니다."
자칫하면 꿈만 좇아 무모한 행동을 하기 쉬운 젊은 저희에게 현실의 땅에 발을 디딘
생활자세를 차근차근 가르치셨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운 시대를 짊어질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진지한 지도였습니다.
또 8월 19일 선생님은 대학부와 간담회를 했습니다.
한 여대생이 여러 방면에 관심이 끌려 좀처럼 한 가지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없다는
고민을 하소연했습니다. 선생님은 지도하셨습니다.
"힘이 있다면 백 마리 토끼든 천 마리 토끼든 쫓아가세요. 그러나 공적에 안달하면 안 됩니다.
조바심을 내면 앞이 막히고 맙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젊은 시절 에피소드를 통해 이런 지도도 하셨습니다.
"자신이 놓인 처지에서 충실히 사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인생을 연구하고 노력하는 데 마음을 써야 합니다. 이왕에 좇으려면 '신심의 길'을 좇으세요."
젊은 벗의 성장을 기원하는 듯한, 자애 넘친 선생님 지도였습니다.
총무(이케다 선생님)는 대학부 간부에게 이런 조언도 했다.
"학생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겠지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불문하고
자주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합니다."
총무는 잇달아 제안했다. '웅변대회'를 열자는 제안도 그랬다.
제1회 전일본대학생 웅변대회가 10월 15일 도쿄 메구로공회당에서 열렸다.
학회에서 처음으로 실시하는 웅변대회였다. 대회장에는 약 1000명의 대학부원이 모였고,
각 방면에서 선발 된 대표 11명이 웅변을 펼쳤다.
마지막에 등단한 이케다 총무는 기대를 담아 대학부에게 역설했다.
"진실한 웅변에는 어디까지나 정의감과 신념과 그리고 철리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자비입니다. 자비가 없으면 사람을 통솔하거나 구하는 등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웅변은 단2분간 하는 웅변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이탈리아의 상승장군이 조국이 몰락하려 할 때, 결연하게 외친 말입니다.
상승장군이 불과 2분 동안 피력한 정의감과 신념으로 전 국민이 결속하여 조국을 구했다고 합니다.
중요한 때에 외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웅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때에 외친다, 그런 신념있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성불사를 함.'(어서 400쪽)이라는 어서말씀이 있지요.
여러분이 학식도 풍부하고 신념도 강하게 유엔총회나 국회의사당에서 또 국제평화회의와
국제학술회의에서 광포를 위해, 사회를 위해, 민중을 위해 당당하고 분명하게 외치지 못한다면
오늘 웅변대회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래를 위한 큰 첫 걸음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대학부는 앞으로 남자부 여자부와 나란히 독립된 조직으로 활동하기로 결정되었다.
"전 일본의 대학생을 조직화해 여기에 학회정신을 새겨 넣으면서 장래 활약할 인재를 만든다."라는
도다 제2대 회장 구상에 바탕을 두고 결성한 부서가 대학부다.
이케다 총무는 대학부에 또 새롭게 '학생제'를 열자고 제안했다.
11월 23일 도쿄 간다에 있는 공립강당에서 '학생제'가 열렸다.
학생제는 연극, 음악, 무용, 전시의 4개 부문으로 나눠 실시했다. 총무는 연극 관계자에게 당부했다.
"어서에 가섭존자나 사리불도 춤을 췄다고 나와 있지 않습니까.
연극은 광선유포의 축도입니다!"
당일은 각종 이벤트를 선보였다. 특히 연극이 압권이었다.
안세이(安政)의 대옥(大獄)에 포로가 된 요시다 쇼인을 둘러싼 제자들의 이야기가 연극 소재였다.
이 소재는 수호회 등에서 이케다 총무가 언급한 내용이었다. 그때 총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떤 박해를 받든, 내 몸이 어떻게 되든 미동도 하지 않고 여러분을 지키고 싶습니다.
쇼인처럼 진짜 제자를 육성하고 싶습니다." 연극에 참여한 멤버들은 모두 초보자였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의 여명을 앞에 두고 쇼인의 제자들이 "선생님!"이라고 외치는
모습 속에 '제3대 회장 추대'를 열망하는 심정을 담았다.
그런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대학부는 신심과 관계없는 이런 행사는 하지 마라."
당시 연극멤버는 이렇게 회고한다.
"이케다 선생님은 저희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신심, 절복, 교학은 어느 부서에도 지지 마세요.'라고 격려하셨습니다.
학생제 때 이케다 총무는 피력했다.
"지도자의 위대함은 얼마나 많은 제자를 훈육했고, 또 나라를 위해, 민중을 위해,
그리고 사회를 위해 일하는, 위대한 인재를 얼마나 갖췄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나는 이케다 문하생이다.'라고 세계적으로 훌륭하게 활약할 인재가 되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는 것을 '사제상대(相對)'라고 합니다.
아무리 스승에 대해 훌륭하게 말해도, 또 아무리 존경해도 스승의 분신으로서
사회와 광포를 위해 진력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앵무새 같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은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학생제는 새로운 문화운동을 추진한다는 이케다 선생님의 구상 속에서 생긴 행사였습니다.
선생님이 학생제 때 하신 지도 속에는 그런 심정이 넘쳐흘렀습니다.
"진정한 '문예부흥'은 민중의 요망과 요구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열린 작은 문화제, 학생제였지만 오늘은 일찍이 중세시대 르네상스, 즉
'문예부흥' 이상의 색심불이 철학을 근본으로 한 대문명의, 진정한 문예부흥의
여명이다! 라고 나는 외칩니다."
선생님은 학생제라는 기회를 통해 그 후 세계를 향해 힘차게 전개할 '제3문명'
건설에 대한 선언도 하셨습니다.
총무(이케다 선생님)는 가능한 청년육성에 시간을 할애했다.(중략)
"차기 학회 지도자들을 훈육하기 시작했다. 모두 사랑스럽다.
검은 눈동자, 우람한 근육, 청류(淸流)와 같은 신심.
광포를 총 마무리 할 젊은이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젊은 날의 일기》)
이케다 선생님 자택에 지도를 받으러 간 적이 있습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지요.
선생님은 당시 총무로서 바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메리야스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사업을
이어받아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따뜻하게 격려하셨습니다.
"면밀하게 계획을 세워 타인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십시오.
타인에게 기쁨을 주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는데 번영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자신감있게 끝까지 기원하십시오."
이어받고 싶지 않았던 가업이라 마지못해 일을 하던 자신을 깊이 반성했습니다.
지도를 받는 사이에도 이케다 선생님 댁에는 계속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전화내용은 알 수 없지만 하나하나 명확하게 지시하는 선생님은 마치 왕자와 같은 풍격이셨습니다.
학회의 전진을 한 몸에 짊어지고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 뒤 선생님은 "함께 베토벤 음악을 들읍시다."하며 레코드를 틀으셨습니다.
게다가 돌아갈 때는 큰 사과까지 주셨습니다.
'일개 청년을 이 정도로 소중하게 대해 주시는가.'하는 감동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마침내 청년이 광포의 정식 무대에 설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총무를 구도하지 않으면 목표를 이룰 수 없다."
'창가의 호흡'이 가다듬어지고 있었다.
"'아비(阿鼻)의 의정(依正)은 극성(極聖)의 자심(自心)에 있으며, 지옥, 천궁(天宮)은 모두 이는
과지(果地)의 여래이니라. 비로(毘盧)의 신토(身土)는 범하(凡下)의 일념을 넘지 않고.' (어서 473쪽)
라는 구절의 의미를 아는 사람?"
저는 마침 공부한 내용이라 손을 들고 대답했습니다.
"부처 속에도 아비지옥과 같은 생명이 있고, 지옥 속에도 부처의 생명이 있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훈고학적 주석으로는 그렇지만 좀 더 자신에게 맞추어서, 자기 생명을 근간으로 고찰해야 합니다."라고
이케다 선생님은 가르치셨습니다.
책상 위의 교학이 아니라 더욱 생활과 투쟁하는 실천교학을 심화해야 한다고 반성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에게 지도를 받지 않으면 투쟁이 아니다.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이케다 총무는 총회를 취재하러 온 라디오 도쿄의 요청을 받고 인터뷰에 응했다.
그 자리에서 '제3문명'의 필요성에 대해 힘차게 피력했다.
"지금 세상은 유심론과 유물론이 대치하는 무서운 시대입니다.
공산주의에서는 물질과 물질이 서로 충돌하고, 자본주의에서는 돈벌이만 되면 상관없다는 식의
풍조가 있습니다. 그것을 타파할 '제3문명'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물질과 마음이 하나라는 대성인의 색심불이 철학입니다.
이는 모든 철학을 이끌고 전쟁도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도입니다.
그 광선유포를 이룰 주인공은 열과 힘이 넘치는 우리 청년부입니다."
총무는 전망이 없는 시대에, 사람을 불타오르게 만드는 '제3문명'이라는 장대한 전망을 매스컴에 밝혔다.
당시 《젊은 날의 일기》에 총무는 이렇게 썼다.
"반드시 광포를 실현시키겠노라고 결의했다. 다망한 나날이다.
광포의 여명, 가까이 있음을 실감."
어떻게 하면 광선유포는 진척될까? 은사는 이렇게 제안했다.
"나라에 10만 국사가 있으면 고뇌하는 민중을 구하리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국사훈)
(중략) 11월 29일, 대망하던 '제7회 여자부총회'를 도쿄 니혼대학교 강당에서 실시했다.
사회자가 처음에 "전국에 10만 명의 동지를 달성해 지금 이 자리에 2만 명이 결집했습니다."라고
소개하자 회장은 환호성으로 들끓었다.
은사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청년들이 10만 명 모인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청년을 향한 절찬과 폭풍과 같은 열렬한 지지가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은사가 서거하고 제자가 홀로 일어섰다.
"광선유포의 투쟁을 청년부가 해야 할 때가 왔다."
그리고 이듬해 1959년, 제자는 '100개 부대' '부원 10만 명'을 달성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남자부총회에서 '제3문명'을 논했습니다.
저는 발표를 앞두고 이케다 선생님에게 '제3문명'에 대해 직접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첫번째 두번째가 있고 그 다음이 제3 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태껏 역사에 없던 전혀 새로운 문명을 구축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사(事)의 일념삼천'의 문명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색심불이라는 생명존엄의 철리를 지닌 사람이 만드는 문화와 예술과 사상.
그런 창조적인 문명이 '제3문명'입니다."
당시 저희는 '제3문명은 양극 간의 대립이 아닌 중간적인 위치라고 파악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3'에 깊은 의미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3'이라는 말이 있음으로 해서 사람들이 직감적으로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대성인 불법을 전부 간단하고 알기 쉽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시대에 맞춰 알기 쉽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현실에 바탕을 두고 나타내지 않으면 민중은 이해하기 힘든 법입니다.
그래서 모두 이미지화하기 쉬운 것에 대비했습니다. 종교적인 대립이라 해도 그렇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대립함에 따른 슬픈 역사가 있지만, 대성인 불법은 대립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종교입니다."
선생님은 새로운 시대가 요청하는 새로운 광포의 지표를 나타내셨습니다.
저희는 그 총회에서 새로운 지표를 향해 전진을 시작했습니다.
남자부총회에서 이케다 총무는 힘주어 말했다.
"광선유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순연(順緣)광포와 역연(逆緣)광포입니다.
대성인은 삼류의 강적을 만나고, 한 나라가 대방법(謗法)에 빠진 속에서 법체의 광선유포,
즉 역연의 광선유포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순연의 광선유포를 하는 때입니다.
나라나 시기, 민중의 기근도 모두 올바르고 힘있는 불법을 믿어야 하는 때입니다.
대성인이 '광선유포의 때는 일본 일동으로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게 될 것은 대지를 과녁으로
하는 것과 같으리라.' (어서 1360쪽) '범천 제석 등의 계책으로써 일본국의 사람들이
일시에 믿는 일이 있으리라.' (어서 1539쪽)고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지금의 때는 광선유포가
가능하다는 순연 광포의 때입니다."
"광선유포는 못할 리가 없습니다. 그 광선유포는 뭐니 뭐니 해도 청년부 여러분이
총마무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더욱 자각하기 바랍니다."
(이케다)선생님은 이렇게 지도하셨습니다.
"자신이 세운 공로담처럼 좋은 보고는 필요없습니다.
학회를 비판하는 적의 언동, 학회 내부의 문제점, 회원이 고민하거나 요구하는 사항 등,
현장에서 자기 주변에 보고 들은 내용을 보고하세요.
속도가 중요합니다. 손을 쓸 때를 놓치면 투쟁은 패배합니다.
다양하게 나온 과제들이 다음 본부간부회에서 곧바로 다뤄져 해결되었습니다.
학회라는 커다란 수레바퀴가 선생님을 중심으로 돌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총무(이케다 선생님)의 관점은 '청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청년부 수뇌가 당시 세이쿄신문에 이렇게 기고했다.
"이케다 총무는 정말 청년부를 소중히 여기고 계십니다.
어느 지방에 가셨을 때도 지부장이나 지부간사 등의 발언에
'소중한 청년부에게 그게 무슨 말입니까?'라고 말씀하는 모습을 자주 뵈었습니다.
도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총무가 청년부의 장래와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장에 대해
얼마나 마음을 쓰는지는 이 사실 하나만 봐도 잘 알수 있습니다."
'청년'의 다음 목표는 은사에게 맹세한 '10만 국사의 결집'이었다.
그것은 '제자의 증거'를 보여주는, 제자가 결말짓는 투쟁이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