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는 당근 생필품이지. 근데 생필품치곤 꽤~ 비싸.
생필품을 비싸게 팔아먹는 놈이나 그걸 그대로 놔두는 정부나 순..
하긴.. 유일한 소비자들인 여성들이 이 문제를 왈가왈부하기는커녕 구입하는 것조차 창피스러워하는데 뭘 기대하겠냐만은..
그렇다. 대다수의 여성들은 그걸 창피해한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이 생활필수품을 구입하기 위해 들른 수퍼마켓이라든가 약국의 계산대에 떡 버티고 서 있는 사람이 남성일 경우(잠깐, 근데 약국에선 이걸 왜 파는거지? 이게 약인가?)
주저주저하다 결국엔 차마 그걸 들고 카운터로 가지 못하고 빈손으로 그냥 나와버린 기억이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있겠지.
참, 멀쩡히 돈 가지고 가서 목적하는 물건이 멀쩡히 눈앞에 존재하는데도 사오지 못하는 이런 뭣같은 경우가 세상에 또 있을까.
계산하는 사람이 여성이라 별 부담 없이 계산할 수 있게 되는 경우에도 또 나름대로 웃기는 일이 발생해.
어느 동네에 있는 어느 상점엘 가든 이 물건을 파는 사람들(여성들)은 하나같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야.
-"내용물이 절대로 비치지 않는 새까만 비닐봉지" 바로 이거지.
물론 고객이 먼저 검은 봉지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지만
필히 감춰야 할 몹쓸(!) 물건인 생리대를 들고 집에까지 걸어야할 여성고객을 배려하는 마음씀씀이에서
이들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친절하게도 기꺼이 구석에 따로 매달려 있는 까만 비닐을 뜯곤 하지.
아마 초경을 치를 무렵이었을 거야. 학교에서 말은 많이 들었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월경현상이 나타나는데..
-소녀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상징인 초경은 누구나 거쳐야할 단계이며..
-완전한 여성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가진 이 성스럽고 신비스런 현상은 이제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증명이고..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같이 참으로 좋은 말들.
참, 좋은 말들.
하, 하, 하, 골때린다.
난 분명히 그렇게 들었어. 아름다운 일이라고. 어른이 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지라고.
제길 말은 분명 번지르르했어. 교과서도 자랑스런 문구들로 가득차 있었어.
(자, 지금부터 본격적인 나의 의문퍼레이드가 시작된다.
호호.. 첫번째 의문.. 나보다 똑똑한 사람 천지사방 빽까리에 많을 테니 누가 답좀 알려줘.)
내가 들은 말들은 모두 그렇게 아름답고 성스러웠는데.
그. 런. 데.
그 런 데 왜.
현실은 왜 아름답지 못하지..?
현실은 왜 고귀하지 못하지? 현실은 왜 자랑스럽지 못할까?
왜 여자들은 자부심은커녕 죄인처럼 눈치보고 깊이깊이 감추면서 사는거냐구.
왜 사람들은.. 특히 여자들이 더욱- 생리를 더러운 것 취급할까?
내가 생리대를 잘 숨기지 못하면 왜 엄마는 화를 내는거지?
왜 슈퍼마켓 아줌마는 생리대가 죽어도 안보이게 꼭꼭 싸서 팔아야 되는 걸까?.
처녀난자의 시체와 자궁벽이 혈액과 함께 한달에 한번씩 며칠간 흘러내리는 이 생리적 현상은
물론 신비스런 인체의 오묘한 조화이며 생명 잉태의 고귀함을 나타내는 여성들만의 특권이랄 수 있어.
그런데.
그런데 왜 이 아름답고 고귀한 생리현상이 죄처럼 취급받아야 하는지..? 지저분한 일이라고 생각되어야 하는지.. ?
그것도 가장 자랑스러워해야할 여성들이 오히려 수치스러워야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지?
난 정말 맘에 안든다.
사실 난 첨부터 싫었어. 아기를 낳게 될 몸이니까 소중히 아끼라는 선생들의 소리부터 싫었어.
그게 신성하고 고귀한 거라는 건 알겠는데
여성 이꼬르 아기낳는사람, 이라는 공식이 싫어.
말로는 생리가 아름답고 자랑스런 현상이라고 지껄이면서
생활속에선 전전긍긍 어떻게든 감춰야할 비밀처럼 취급받는 현실이 싫어.
CF속에 당당히 등장한다고 우리생활 속에서도 당당해진 건 아니야. 결코.
위스퍼화이트흡수날개소피사이드개더매직스한달에한번마법어쩌구하는 열라 이쁜 광고들만 나오면 대수냐구.
현실은 마법같지도 않고 절대 아름답지도 않은걸..
어째서 그게 비밀이어야 하지?
어째서 나는 내가 지금 생리중이라는 사실을 남에게 '들키지' 않아야만 하지?
어째서 나는 생리가 쪽팔린 일이라고 생각해야만 하지?
어째서 화장실 갈때마다 그걸 가방에서 잽싸게 꺼내서 다시 잽싸게 호주머니에 쑤셔넣고 신주단지 모시듯 숨겨야만 하는 거지?
남자친구가 보든 직장상사가 보든 천천히 꺼내서 당당히 손에 들고 화장실 가면 안되나?
상대 누구한테든 지금 생리통이 심해서 컨디션이 안좋다고 그냥 말해버리면 안되나?
계산원이 남자든 여자든간에 아무렇지 않게 카운터에 올려놓으면 안되나?
어째서 나는 행여 남의 눈에 띄일세라 새까만 봉지를 준비해야만 하지?
투명한 비닐속에 과자봉지와 함께 넣은 채로 길거리로 나서면 안되나?
어째서 생리대가 울오빠 눈에 비쳐서는 안되는 거지?
울오빠가 가게 갈때 덤으로 생리대도 부탁하면 안되나?
왜?
왜 안 되 는 건 데 ? 난 이 해 를 못 하 겠 으 니 누 가 설 명 좀 해 주 겠 어 ?
(이 시점에서 두번째 의문. 비약이 심하다고 생각되면 반박해봐. 진지하게 들을 의향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