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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911은 특이한 자동차다. 달리는 데 치중한 고성능 스포츠카이지만 현행 7세대(991)의 경우 무려 15개나 되는 가지치기 모델이 있고 보디 형태도 여덟 가지에 이를 정도로 하나의 자동차(스포츠카)에 다양한 컨셉트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은 범용 만족성은 911이 7세대로 진화해온 50여 년 동안 전세계에서 무려 85만 대 이상 팔린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911의 첫 번째 가지치기 모델(보디 스타일 기준)이 바로 타르가다. 독특한 유선형 디자인, RR 구동계, 2+2 시트 구성의 스포츠카로 요약되는 1세대 911(901)의 프로토타입이 공개된 1963년, 포르쉐는 이미 오픈톱 방식의 911을 준비하고 있었다. 쿠페인 911에 기초한 오픈 에어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는 차였다. 창업주 포르쉐 박사의 아들 페리와 그의 손주 알렉산더 그리고 한스-페터가 주도한 개발진은 전복사고 때 매우 위험했던 당시 컨버터블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B필러(일명 타르가 바)가 롤 바 역할을 하도록 설계하고 루프의 가운데만 오픈할 수 있는 세미 컨버터블 형태를 구상했다.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구가하던 영화배우 제임스 딘이 911의 전신인 356 스파이더를 몰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픈 기억이 있는 포르쉐 입장에서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컨버터블이 꼭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가장 큰 시장이던 미국에서는 안전기준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일었고 1970년대 중반 실제로 시행됐다.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카 쉐보레 콜벳에 T-톱이 적용된 이유이기도 하다.
최초의 911 타르가는 1965년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처음 선보인 데 이어 2년 뒤 판매를 시작했다. 당시 포르쉐가 우승컵을 휩쓸던 로드 레이스 타르가 플로리오(Targa Florio)에서 차명을 따왔다. 순수 컨버터블 모델인 911 카브리올레가 등장한 1982년까지는 루프를 열고 달리는 유일한 오픈톱 911이기도 했던 타르가는 1970년대 초 911 전체 판매대수의 40%를 차지했을 만큼 반응이 좋았다.
탈부착이 손쉬운 소프트톱이 A, B필러를 덮고 비행기 캐노피처럼 둥글린 리어 윈도를 갖춘 초기 타르가의 디자인은 3세대 911(964)까지 지속되다 4세대(993) 모델의 단종을 1년 앞둔 1996년 슬라이드 방식의 오픈 기능을 갖춘 글라스 루프 형태로 업그레이드되어 6세대(997)까지 쓰였다. 전동식 하드톱 컨버터블이 인기를 끌던 때였고 소프트톱을 얹은 911 카브리올레 모델과 차별화가 필요했기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선 글라스 루프가 제격이었다.
타르가는 1982년 카브리올레가 나올 때까지 유일한 오픈톱 911이었다. 지난 4월 말 이탈리아 바리(Bari)에서 ‘포르쉐 911 타르가 인터내셔널 프레스 론치’ 행사가 열렸다.
이튿날 본격적인 시승회가 시작됐다. 먼저 911 타르가 4 수동변속기 모델을 선택했다. 국내에서 시승차로 좀처럼 만나기 힘든 매뉴얼 모델인 데다 7세대 911 론칭 때 처음 선보인 세계 최초의 7단 수동변속기에 대한 호기심이 컸기 때문이다. 원래 스포츠카는 다이내믹한 드라이빙을 위해 엔진의 고회전 영역을 자주 활용하게 되는데 주행 때 엔진회전수를 낮추는 데 초점이 맞춰진 7단 수동변속기와의 궁합이 어떨지 매우 궁금했다.
오픈톱 상태에서 고속으로 달려도 거센 바람이 실내로 들이치지 않는다
강철로 된 안티 롤바에 알루미늄 커버를 씌운 타르가 출발에 앞서 변속레버 뒤쪽에 자리한 스위치를 작동해 루프를 열었다. B필러 뒤쪽 윈도가 뒤로 열리며 젖혀지는가 싶더니 소프트톱이 ‘Z’ 모양으로 접히며 리어 시트 뒤쪽 공간에 깔끔하게 수납된다. 그 위에 젖혀진 윈도가 다시 살포시 얹히면 끝~. 메이커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루프를 여는 데 걸리는 시간은 19초에 불과하다. 게다가 리어 파크 어시스트 시스템과 연동되기에 차체 뒤쪽 40cm 이내에 장애물이 있으면 소프트톱 개폐 기능이 차단된다.
시동을 걸자 살짝 ‘푸득’거리는 듯한 특유의 포르쉐 노트(엔진 사운드)가 울린다. 시승차는 옵션인 스포츠 배기 시스템을 갖췄기에 스위치를 눌러 머플러의 플랩을 열었다. 그러자 V8 엔진 못지않은 박력 있는 엔진음이 흥을 돋운다. 시승차에 얹힌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은 최고출력 350마력/7,400rpm, 최대토크 39.8kg·m/5,600rpm을 내며 제원상 0→시속 100km 가속 5.2초(PDK 5.0초, 스포츠 플러스 모드 4.8초), 최고시속 282km(PDK 280km)를 낸다.
1단을 넣는 순간 기어레버를 쇠막대기(로드)로 묶어 놓은 것처럼 타이트한 변속감이 느껴진다. 여성 운전자에게는 조금 억센 느낌을 줄 수 있지만 이래야 스포츠카다. 참고로 포르쉐는 이미 2세대 전인 996부터 케이블로 기어 박스와 레버를 연결해왔다. 그러나 너덜거리지 않는 고유의 빳빳한 손맛으로 정평이 나 있다.
쭉 뻗은 고속도로에 올라 속도를 높였다. 7,000rpm을 넘겨 가속하자 2단에서 시속 120km 정도를 낸다. 4단까지 들어가면서 시속 200km를 훌쩍 넘겼는데 차선을 어디로 옮겨갈지 모르는 다혈질 운전자가 그득한 이탈리아 고속도로에서 독일 아우토반처럼 초고속으로 달리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에 5단이 물릴 즈음 오른발에서 힘을 뺐다. 오픈톱 상태에서 고속으로 달려도 거센 바람이 실내로 들이치지 않는다. 양쪽 사이드 윈도를 올리니 안락감이 뛰어나 마치 쿠페형 911 카레라의 선루프를 열고 달리는 것 같다. 물론 개방감은 컨버터블과 똑같다. 참고로 구조적으로 차체 뒤쪽에서 실내로 바람이 휘몰아칠 염려가 없는 911 타르가는 시트 뒤쪽 대신 앞쪽 윈드실드 상단에 윈드 디플렉터를 마련해 놓았다.
정속주행 때 순항력을 살피기 위해 5단에서 6단을 건너 바로 7단을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기어가 들어가지 않았다. 반드시 6단을 거쳐야 7단에 넣을 수가 있다. 최근 연비가 이슈가 되면서 연료절감을 위해 중간 기어를 건너뛰고 바로 고단으로 넣는 점프 시프트업이 에코 운전의 요령으로 자리잡았건만, 포르쉐 911에는 통하지 않았다. 7단 시속 100km일 때 엔진회전수는 1,900rpm 정도. 7단 기어가 맞물린 상태임에도 엔진회전수가 높은 편이다. 이는 토크 증배 작용이 없는 수동변속기인 데다 더블 클러치 방식의 자동변속기(PDK)보다 7단 기어비가 더 크기 때문이다.
7단 PDK 모델은 스포츠 스티어링 휠을 선택하면 스티어링 휠의 기어 셀렉터 대신 시프트패들이 달린다
타르가 4S는 7,400rpm에서 최고출력 400마력을 뿜어낸다
어느덧 굽이진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힐 앤 토 테크닉으로 3단과 2단을 오가며 타르가를 밀어붙였다. 시프트다운으로 강력한 엔진 브레이크를 걸 때마다 배기구에서 ‘빠바바빡’ 하는 공명음이 울린다. 수십 년 전 같은 이탈리아 하늘 아래 시칠리아 섬에서 열렸던 타르가 플로리어 레이스에서 포르쉐 경주차가 이렇게 달리지 않았을까?
워낙 노면을 단단히 붙잡고 스티어링 휠을 감으면 감는 만큼 돌아나가기에 타이어 슬립음조차 내기 어렵다. 코너를 돌 때 견인력이 더 필요한 바깥쪽 바퀴가 더 적극적으로 회전하는 느낌이다. 실제로 시승차(타르가 4)는 포르쉐 고유의 네바퀴굴림 시스템(PTM)이 달려 모든 바퀴에 저마다의 주행상황에 맞게 구동력을 배분하는 데다 7세대부터 옵션(타르가 4S는 기본)인 포르쉐 토크 벡터링(PTV)까지 갖춰 다이내믹한 몸놀림을 자랑한다. 그 결과 구형 911 카레라가 차체 뒤쪽이 둔중한 모터보트라면 신형 911 타르가 4는 마치 레일 위를 구르는 롤러코스터 같은 느낌이다.
다시 바리 시내로 접어들었다. 복작거리는 번화가에 들어서자 스티어링 휠을 잡은 손에서 슬쩍 땀이 난다. 10년 전 이탈리아 출장 때 렌터카 운전을 하다 고생했던 기억 때문이다. 이 나라는 정말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게다가 이번 시승회에서는 이탈리아 현지 이벤트 대행사가 코스를 건성으로 입력했는지 내비게이션까지 이상했다. 분명 느낌으론 직진이 맞는데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날 정도로 폭이 좁은 이면도로로 좌회전하도록 안내한다. 편안한 세단을 몰았어도 부담스러울 골목길에서 정통 스포츠카, 그것도 수동변속기 모델을 탔지만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1963년 초대 911(코드명 901)을 개발한 페리 포르쉐도 “아프리카 사파리에서 르망(서킷)으로, 다시 극장으로 그리고 뉴욕 거리로 몰고 갈 수 있는 유일한 자동차”라며 매일 탈 수 있는 포르쉐 스포츠카의 고유 가치를 강조한 바 있다. 게다가 스포츠카로는 내구성도 뛰어나 지금껏 생산된 모델의 2/3가 아직도 굴러다닌다.
바리 시내 중심부에 자리한 포르쉐센터에서 새차를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이 열렸다. 911 타르가 프로덕트 디렉터 에르하르트 뫼슬레(Erhard M?ssle) 박사는 원조 타르가 모델이 탄생한 배경에 대해 “오픈톱 모델의 점유율이 17%에 달했던 당시 미국 시장에서 안전규정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고정형 메인바(타르가 바)를 결합한 컨버터블을 개발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또 “한때 911 전체 판매량의 40%를 차지하며 새로운 스포츠카 세그먼트를 개척한 타르가 모델은 1996년부터 20년 동안 전동식 글라스 루프를 얹으며 진화했고 이번 7세대 911 버전을 통해 초기 컨셉트를 고스란히 살린 모던 클래식으로 재탄생했다”고 밝혔다.
변속레버 뒤쪽의 스위치를 누르면 19초 만에 톱을 열 수 있다
그의 말처럼 B필러 역할의 타르가 바와 소프트톱, 랩 어라운드형 리어 윈도로 요약되는 오리지널 클래식 타르가의 DNA를 계승한 새차는 첨단 루프 시스템이 달린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마그네슘 소재로 뼈대를 만들었고 특수한 안감을 덧대 단열, 방음 기능을 높였다. 타르가 바는 강철로 된 안티 롤바를 기초로 다이캐스트 알루미늄으로 커버를 씌웠다. 또 오리지널 모델과 마찬가지로 전용 배지를 붙여 아이덴티티를 강조했다. 구형(997) 타르가와 마찬가지로 네바퀴굴림 4와 4S로 출시된다.
이번에는 타르가 4S를 몰 차례다. 타르가 4S는 노말 모델보다 실린더의 보어를 확장해 배기량을 키운 수평대향 6기통 3.8L 엔진이 얹힌다. 제원상 최고출력 400마력/7,400rpm, 최대토크 44.9kg·m/5,600rpm을 낸다. 시승차는 더블 클러치 방식 7단 자동변속기(PDK)를 갖췄다.
바리 시내에 있는 포르쉐센터에서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됐다
햇살이 워낙 뜨거워 톱을 닫고 출발했다. 쿠페형 911 카레라와 다를 바 없는 안락감이 느껴진다. 게다가 안전성도 최고다. 자료를 보니 타르가의 보디는 6개의 에어백과 포르쉐 고유의 사이드 임팩트 프로텍션 시스템 등으로 안전성을 보강한 카레라 4 카브리올레를 기초로 만들어졌다. 포르쉐는 ‘911 타르가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오픈톱 스포츠카’라고 자신했다.
오전에 몰았던 타르가 4보다 강력한 성능을 지녔지만 PDK 덕분에 부담이 없다. 7단 상태에서 시속 100km 때 엔진회전수도 1,600rpm에 불과해 정속 크루징 때 연비가 더 뛰어날 것 같다. 실제로 911의 PDK 모델은 제원상 연비와 가속력이 수동변속기보다 빠르다. ‘자동변속기는 구조적으로 수동보다 연료를 더 소모하고 주행성능이 떨어진다’는 기존 자동차 공학이론을 뒤집어버린 것이다. 속칭 외계인(?)이 만든 장비라고 할까? 시승차는 제원상 0→시속 100km 가속 4.6초(스포츠 플러스 모드 4.4초), 최고시속 294km를 낸다. 참고로 7단 수동변속기가 달린 타르가 4S의 성능은 0→시속 100km 가속 4.8초, 최고시속 296km다.
변속패들을 이용해 기어를 바꿔가면서 연이은 커브길을 돌아나가자 사람이 기계보다 못하다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기자는 수동변속기가 달린 고성능 자동차를 몰 때 트러블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힐 앤 토 테크닉에 더블 클러치 기술까지 결합해 고리타분하게 운전한다. 따라서 아무리 재빨리 다운시프트를 해도 PDK보다 빠를 수 없다.
카브리올레와 다른 타르가의 독특한 변신 퍼포먼스가 레이스에서는 더 그렇다. 한 개의 코너에서 0.5초씩만 늦어져도 열 번이면 5초나 쳐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포르쉐는 1980년대 PDK를 962 경주차에 얹어 르망 24시간 레이스를 휩쓸었고 2008년부터 911(997)에 양산형을 달기 시작했다. 모두 업계 최초인데 오늘날 팔리는 포르쉐의 75%가 PDK를 선택할 정도로 호평을 받고 있다. 서킷용 머신이면서 일반도로를 달릴 수 있는 911 GT3의 PDK는 1/1000초 만에 변속이 이뤄지는데 이 정도면 역사상 최고의 F1 레이서 슈마허라도 백기를 들 수밖에 없다.
다른 장점도 있다. 7세대 911의 PDK 모델에는 상황에 따라 엔진과 구동축의 연결을 차단, 달리던 관성으로 타력 주행하는 코스팅 기능이 더해졌다. 포르쉐의 자료에 따르면 100km 주행 때 1L의 연료를 아낄 수 있다. 절대 무시 못 할 수치다.
지난 47년 동안 10만 대 이상의 타르가가 팔리며 오픈톱 스포츠카로 고유의 가치를 입증했다
해안도로가 나타났다. 완만하게 굽어진 도로에서 스로틀 온 상태로 진입, 스피드를 계속 올리며 빠져 나가는 고속 코너링을 시도했다. 갑작스런 요철을 지나면서 차체가 살짝 흔들렸지만 타르가 4S의 기본 장비인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가 충격을 흡수해 안정성을 잃지 않았다. 시승차는 차체의 롤을 막아주는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PDCC)까지 옵션으로 달려 더욱 그랬다.
온종일 911 타르가 4와 4S를 몰고 쏘다녔지만 육체적인 피로감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원기가 재충전된 것처럼 기분이 산뜻했다. 물론 스포츠카를 탈 때 느끼는 고유의 압박감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스트레스가 아닌 스릴로 다가온다. 게다가 타르가 고유의 오픈톱으로 안락하면서도 시원한 개방감을 실컷 만끽했기에 상쾌하기까지 하다.
포르쉐가 911에 고집하는 RR 구동계는 원래 경제성에 초점을 맞춘 비틀에서 선보인 메커니즘이다. 구조적으로 스포츠카에 불리하지만 오히려 어떤 메이커도 흉내낼 수 없는 911 고유의 특징이 됐다. 타르가도 마찬가지다. 포르쉐가 남들이 가는 방향(컨버터블) 대신 새로운 해법으로 내놓은 생소한 컨셉트였지만 이제는 독보적 입지를 자랑한다. 이처럼 정통 스포츠카이면서도 안전하고 안락한 오픈톱 자동차라는 점에서 포르쉐 911 타르가를 대신할 수 있는 라이벌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 지난 47년 동안 팔린 10만 대 이상의 타르가가 이를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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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름 신기한 디자인이었는데 계속 관찰해보니 어딘가 불편할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 디자인.
국내에서 본적이 없는거 같다는;;; 요즘 하늘이 막힌 차가 영 불편하네요;;
@쓰이[김수희] 나는 PC에서 보면 사진이 안나와 영 불편해.
@클럽아우디[황문규] 피씨로 보지 마세요;;; 가 아니고 있다 시간되면 안그래도 수정하려구요 스맛폰으로 옮긴건데 다음 구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