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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三國志)제430편 *
적당한 때와 기회
오주 손휴는 사마염이 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손휴는 머지않아 사마염이 오를 정벌할 것임을 직감했고, 그것에 대한 근심으로 병을 얻고 말았다.
병은 날로 깊어져서 손휴는 마침내 승상 복양흥을 궁궐로 불러들여 태자 손완으로 하여금 복양흥에게 절을 올리도록 했다.
손휴의 병세는 말로 탁고(託孤)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손으로 복양흥의 팔을 잡고 태자 손완을 가리키며 숨을 거두었다.
복양흥은 물러나와 태자 손완을 임금으로 세우는 일을 대신들과 상의했다.
좌전군 만욱(左典軍 萬彧)이 말한다.
"태자는 아직 너무 어려서 정사를 이끌기 어렵습니다.
오정후 손호 를 세우는 것이 옳습니다."
좌장군 장포(左將軍 張布)도 만욱의 의견을 거든다.
"손호가 재능과 식견이 있고, 결단력이 있으니 제왕으로서 더 적합합니다."
승상 복양흥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황실 어르신의 의견을 듣고자 주태후를 찾아가 아뢰었다.
주태후가 말한다.
"한낱 과부의 몸으로 사직의 일을 어찌 알겠소?
경들이 잘 생각하여 추대하시오."
복양흥은 여러 대신들의 의견을 모아 마침내 손호를 임금으로 세웠다.
손호의 자는 원종(元宗)으로, 대제 손권의 태자였던 손화 (孫和)의 아들이다.
손호는 영안(永安) 7년(264)에 제위에 올라 원흥 (元興) 원년으로 개원했다.
이듬해에는 다시 연호를 감로(甘露) 원년으로 고쳤다.
손호는 워낙에 천상이 포악스러웠는
데 황위에 오르자 마자 주색을 가까이하였으며, 옆에서 달콤한 소리만 하는 중상시 잠혼만을 총애했다.
승상 복양흥과 좌장군 장포가 손호에게 여러 차례 간언을 올렸으나 손호는 그들의 말을 듣기는 커녕 오히려 역정을 내며 그 두 신하를 참수형에 처하고 삼족을 멸하기까지 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 본 조정의 대신들은 눈과 입을 닫아버리고 다시는 간언을 올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음해에 연호를 또 보정(寶鼎) 원년으로 고치고, 육개를 좌승상으로, 만욱을 우승상으로 삼았다.
두 승상에게 국정을 모두 맡긴 채 손호는 무창(武昌)에 행궁을 지어 놓고 그곳에서 지냈다.
양주(揚州) 백성들은 강물을 거슬러 황제에게 생활품을 공급하느라 고초를 겪었다.
손호의 사치와 향락은 끝이 없어 국고가 마르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보다못한 좌승상 육개가 손호에게 상소를 올렸다.
근래에는 재앙도 없는데 백성들이 죽어가고 국가재정은 바닥을 보이고 있으니 신은 통탄을 금치 못하겠사
옵니다.
지난날 한(漢) 황실이 쇠락하여 삼국이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루다가, 이제 조(曹)씨와 유(劉)씨가 도를 잃어 진(晉)의 천하가 되었으니, 이는 틀림없이 무언가의 징조입니다.
어리석은 신은 그저 폐하를 위하고 나라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사옵니다.
무창은 토지가 척박하여 제왕이 도읍으로 삼을 곳이 못 되옵니다.
민가에서는 '차라리 건업의 물을 마시지, 무창의 고기는 안 먹겠다.
차라리 건업으로 돌아가서 죽지, 무창에서 살지 않겠다.'하는 동요가 떠돌정도입니다.
항간에 떠도는 이런 노래야 말로 민심과 하늘의 뜻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지금 가진 양식으로는 한 해를 버티기 어려운 처지인데 관리들은 백성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뜯어낼 뿐, 그들을 전혀 돌보고 있지 않사옵니다.
대제(大帝, 손권) 시절에는 궁에 궁녀가 일백 명이 넘지 않았는데, 경제(景帝, 손휴) 이래로 궁녀의 수가 일천을 넘으니, 이는 국가의 재정을 극심히 낭비하는 일이옵니다.
또 폐하 주변의 신하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나, 일부가 서로 무리를 지어 충신을 모함하고 어진 사람의 존재를 가리니,
이는 국가 정사를 해치고 백성들을 괴롭히는 일이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굽어살피시어 백성들에게 부과되는 부역과 세금을 줄이시고, 궁녀의 수를 줄이시며, 관리를 공정하게 뽑아주시옵소서.
그렇게 되면 위로는 하늘이, 아래로는 백성들이 기뻐하며 폐하의 뜻에 따르니 자연히 나라에 평안이 올 것이옵니다.
손호는 육개의 간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켰다.
소명궁을 지으면서 문무관원들에게까지 나무를 구해오라 지시했다.
어느날은 손호가 방술사(方術士) 상광(尙廣)을 불러다가 묻는다.
"천하가 어찌될 것인지 점을 쳐보아
라."
상광은 뭔가를 헤아려보더니 대답한다.
"폐하, 점괘는 길조입니다.
경자년(庚子年)에 폐하께서 청개거(靑蓋車, 황제가 타는 수레)를 타고 낙양에 입성하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손호는 크게 기뻐하면서 중서승 화핵에게 묻는다.
"선제께서 경의 말을 받아들여 장강 일대에 수백 개의 영채를 설치하고 노장 정봉에게 총독하게 하셨는데, 지금도 그것들이 남아있는가?"
"네. 그렇사옵니다."
"짐이 옛 한나라 땅을 병탄하여 촉주(蜀主)의 원수를 갚고자 하는데 어느 지역을 먼저 치는 것이 적당하겠는가?"
화핵이 대답한다.
"성도는 이미 함락된지 오래고 촉한의 사직(社稷)도 무너졌으니 사마염은 틀림없이 우리 오를 병탄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을 것이옵니다.
그럴 때일수록 폐하께서는 안으로 덕정을 베풀어 백성들을 평안하게 하시는 것이 우선이옵니다.
지금 같은 시기에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삼베옷을 입고 불을 끄려고 달려드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 제 몸만 태우게 될 것이옵니다.
폐하께서는 부디 굽어살피소서."
손호는 당장에 버럭 화를 낸다.
"짐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어 오랜 염원을 이루고자 하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리 불길한 소리만 하는 것인가!
그대가 오랜 신하인 까닭에 그냥 두는 것이다.
아니면 당장 참수형에 처하여 저자에 내걸었을 것이다!"
악담을 퍼부는 손호는 이어서 무사들을 호령하여 화핵을 궁문 밖으로 쫓아내게 했다.
화핵은 무사들에게 끌려가며 탄식을 한다.
"애석하다! 이 금수강산이 머지 않아 남의 것이 되겠구나!"
끌려나간 화핵은 인적 없는 산야에 파묻혀서 다시는 조정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손호는 양양부터 도모할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진동장군 육항로 하여금 강구에 군사를 주둔하게 하고 기회를 살피도록 했다.
손호가 양양에 군대를 주둔시켰다는 소식은 진주(晉主) 사마염에게 빠르게 전해졌다.
사마염은 즉시 문무대신들을 소집하여 대비책을 상의했다.
가충이 나서서 말한다.
"신이 듣기로 오나라 군주 손호는 덕정을 베풀지 못하고 포악무도한 혼군이라 하옵니다.
폐하께서는 도독 양호(都督 羊祜)에게 조서를 내리셔서 군사를 이끌고 육항군을 막도록 하십시오.
오나라에 변란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그 기회에 공격하면 동오 평정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마냥 쉬울 것이옵니다."
사마염은 가충의 의견에 따라 바로 조서를 작성하여 양호에게 칙사를 보냈다.
양호는 조서를 받들어 군마를 정돈
하여 적을 맞을 준비를 갖추었다.
양호가 군사를 양양성에 주둔시켜 지키는동안 병사들과 현지 백성들의 인심을 크게 얻었다.
양호는 진나라에 항복한 오나라 사람이 다시 오나라로 돌아가고 싶어하면 그대로 돌려보내주었다.
그리고 국경을 지키는 병력을 대폭 줄이고 그들을 모두 간척사업에 투입하여 전답 팔백여 경(頃)을 개간하였다.
그 땅에 농사를 지으니 처음 양호가 부임했을 때에는 석 달치 군량밖에 없던 것이 그 이듬해에는 십 년치 양식이 쌓였
다.
그리고 진중(陣中)에 지내면서도 갑옷과 투구를 쓰는 법 없이 가벼운 가죽옷을 입고 넓은 허리띠만 띠고 있었으며, 장막 앞을 지키는 호위병도 겨우 열 명 정도만 배치하였다.
하루는 부장(部將) 하나가 양호를 찾아와서 아뢴다.
"정탐꾼이 보고하기를 근래에 오군의 방비가 허술해졌다고 합니다.
지금 기습하면 반드시 크게 승리할 겁니다."
양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대들이 육항을 우습게 보는 모양이군. 육항은 지모가 뛰어난 사람이다.
지난번에 육항이 서릉을 기습했던 일을 모르는가?
우리 수비장 보천(步闡)과 그의 부하 장수 수십 명의 목이 육항의 손에 달아나는 동안 나는 그들을 구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 삼국지(三國志)제431편 *
삼국통일 (上)
진주 사마염은 양호의 유언에 따라 두예를 진남대장군 도독형주사에 봉했다.
두예는 부지런하고 노련했으며, 학문을 좋아했다.
특히 좌구명의 춘추전을 즐겨 읽어,
자리에 앉든지 눕든지 항상 손에서 춘추전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두예에게는 '좌전벽( 좌전에 미친 사람)'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두예는 황제의 어명을 받들어 양양으로 가서 백성들을 돌보고 군사력을 양성하며 오를 정벌할 준비에 매진했다.
그무렵, 오나라에서는 노장 정봉
과 육항이 모두 세상을 떠났고,
오주 손호는 매일 술잔치를 벌여 놓고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손호는 괴팍한 술자리 취미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신하들로 하여금 술을 진탕 마시게 해놓고는 잔치가 파하면 감주관에게 신하들의 술취한 실태를 낱낱이 고하게 하여 잘못이 있는 자의 얼굴 가죽을 벗기거나 눈알을 뽑아내는 형벌을 내리는 것이었다.
손호의 이러한 행태에 조정의 신하들 뿐만 아니라 나라의 백성들도 모두 공포에 떨었다.
진나라 익주 자사 왕준은 오나라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가 마침내 황제에게 상소 하나를 올렸다.
오주 손호의 황음무도하고 흉폭한 태도가 날이 갈 수록 심해지고 있사옵니다.
속히 오를 정벌하소서.
혹여 손호가 죽고 다시 어진 임금이 옹립하면 동오의 기강이 단단해져서 깨치기 어려워 질 것이옵니다.
게다가 신이 함선을 만든지 벌써
칠 년째라 날이 갈 수록 함선이 낡고 있습니다.
또, 신의 나이도 이제는 칠십이라 언제 죽을지 앞날을 알기 어렵사옵니다.
지금을 놓치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사옵니다. 부디 폐하께서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잃지 마소서.
진주는 상소를 읽고는 동오 정벌에 관해 상의하기 위해 신하들을 소집했다.
진주가 말한다.
"왕공이 올린 상소 내용이 바로 양호 도독의 뜻과 같소.
짐은 이미 뜻을 정했소."
시중 왕혼(王渾)이 나서서 아뢴다.
"신이 듣자하니 손호가 우리와 맞서기 위해 군사들의 기세를 바짝 올리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하옵니다.
제 풀에 지치도록 일 년만 기다렸다가 공격하면 동오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경의 말도 타당하군."
진주는 중신들의 의견을 따라서 동오 정벌을 일년 후로 미루기로 했다.
진주가 비서승 장화와 더불어 심심풀이로 바둑을 두고 있는데, 두예로부터 표문이 올라왔다는 신하의 보고가 들어왔다.
진주는 바둑판을 앞에 둔 채 두예가 올린 표문을 펼쳤다.
지난날 양호 장군은 동오 정벌 계획을 조정의 신하들과 두루 의논하지 않고 폐하께 은밀하게 아뢴 까닭에 조정 신하들의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아옵니다.
일을 도모함에 있어 이해 관계는 마땅히 따져야 하는 것이온데, 이번 거사에 이로움을 얻기란 십중팔구이고, 혹여라도 얻을 해로움이라고 해봐야 공을 세우지 못한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지난 가을부터 오를 정벌하려는 우리의 계획이 이미 적에게 노출되었으니, 만일 계획을 중단하면 손호에게 준비할 시간만 주는 꼴이 될 것이옵니다.
손호는 일 년의 시간동안 도읍을 무창 으로 옮기고, 강남의 모든 성곽을 수리하여 백성들을 그곳에 살게 할 가능성이 아주 크옵니다.
그렇게 되면 적은 난공불락이 될 것이며, 들판에서 식량을 약탈할 수도 없게 되온즉, 결국 우리로서는 때를 놓치게 되는 것이옵니다.
진주가 표문 읽기를 마치자 그 자리에 있던 비서승 장화가 바둑판 위의 바둑돌을 손으로 쓸어버리더니 두 손을 모으고 아뢴다.
"폐하께서는 성스럽고 용감하시며, 나라는 윤택하고 군사는 강하옵니다.
그에 비해 오주(吳主)는 음탕하고 포악하여 백성들이 어려움에 처해있고 나라 상황은 피폐합니다.
지금 오를 치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평정할 수 있사오니 폐하께서는 주저하지 마시옵소서."
진주가 결심을 확고히 하고 말한다.
"지금 경의 말은 이해득실을 잘 살펴서 한 말이니 짐이 무얼 주저하겠는가?"
진주는 즉시 대전으로 나가서 오를 정벌하라는 명을 내렸다.
진남대장군 두예를 대도독(大都督)으로 삼아 십만 대군을 이끌고 강릉(江陵)으로 나아가게 했다.
진동대장군 낭야왕 사마주는 오만 군사로 도중(涂中)으로 진격하고,
정동대장군 왕혼(征東大將軍 王渾)은 오만 군사로 횡강(橫江)으로 진격하고,
건위장군 왕융(建威將軍 王戎)은 오만 군사로 무창으로 진격하고,
평남장군 호분(平南將軍 胡奮)은 오만 군사로 하구(夏口)로 진격하도록 했다.
그리고 모든 장수들은 두예의 지휘에 따르도록 했다.
또, 용양장군 왕준과 광무장군 당빈에게는 수륙군 이십만 명, 전함 수만 척을 이끌고 장강 하류를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게 했다.
그리고 관군장군 양제 에게는 양양에 머물며 여러 갈래의 군마를 통제하도록 했다.
진나라가 대대적으로 군사를 움직이자 그 소식은 금세 동오에 알려졌다.
깜짝 놀란 오주 손호는 승상 장제와 사도 하식, 사공 등수를 불러모아 적을 물리칠 계책을 상의했다.
장제가 오주에게 아뢴다.
"거기장군 오연을 도독으로 삼아 강릉으로 진격하여 두예를 막게 하시고,
표기장군 손흠에게 하구를 비롯한 각 방면의 적군을 막게 하십시오.
신은 좌장군 심영, 우장군 제갈정과 더불어 십만 군사를 이끌고 우저로 나아가서 여러 방면의 군사들을 지원하겠사옵니다."
손호는 장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장제를 위시하여 여러 장수들이 각 방면으로 떠나고, 손호가 후궁으로 들어가는데 그 표정에 근심이 떠올랐다.
중상시 잠혼이 손호에게 묻는다.
"폐하, 어찌하여 용안에 근심이 가득하시옵니까?"
"진의 대군이 쳐들어오다고 하여 각 방면으로 군사를 보내긴 하였으나......
장강을 따라 내려오는 왕준의 전함 수와 군사 수가 많고 그 예기 또한 날카롭다고 하니 걱정이로다."
"신에게 계책이 있사오니 염려 마시옵소서.
왕준의 배쯤이야 산산조각 낼 수 있사옵니다."
손준이 눈을 한 번 크게 반짝 뜨며 잠혼에게 묻는다.
"계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 강남에는 철이 많이 나옵니다.
그 철을 이용하여 길이가 수백 장 되는 쇠사슬을 수백 개 만들되, 각 고리의 무게는 이삼십 근 정도로합니다.
그 쇠사슬을 장강 연안의 중요한 길목마다 가로질러 깔아놓으십시오.
그리고 길이가 일 장 정도 되는 송곳을 수만 개를 만들어 물 속에 설치하십시오. 전선이 바람을 타고 내려오다가 송곳과 부딪히면 배는 침몰하게 될 것이옵니다.
게다가 쇠사슬이 곳곳을 막고 있으니 저들이 무슨 재주로 강을 건너겠습니까?"
"놀라운 계책이로군.
당장 시행하시오."
손호의 명에 따라 즉시 도성 안의 모든 대장장이들이 소집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쇠사슬과 송곳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 장강의 요해처에는 무수한 송곳과 쇠사슬이 설치되었다.
한편, 진나라 도독 두예는 군사들을 이끌고 강릉으로 진출했다.
그리고 아장 주지에게 수군 팔백 명과 작은 배를 주고 은밀히 장강을 건너 낙향 땅을 야습하도록 명했다.
주지가 출격하기 전, 두예가 주지를 불러다가 작전을 일러둔다.
"낙향을 점령하면 파산(巴山)에 매복하라. 숲 속에 깃발을 많이 꽂아두고,
낮에는 포를 쏘면서 북을 치고, 밤에는 여러 곳에 횟불을 올려 적의 이목을 흐트려라."
이튿날, 두예는 본대를 이끌고 수륙 양면으로 동시에 나아갔다.
두예가 길을 재촉하는데 앞서 갔던 정탐꾼이 달려와 급보를 전한다.
"적이 세 방면으로 오고 있습니다.
오연은 육로, 육경은 수로,
그리고 선봉장 손흠군의 선단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두예는 결전의 의지를 다지며 계속 진군해나갔다.
손흠은 이미 당도하여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양쪽 군사들이 처음으로 싸움에 붙으려는데, 돌연 두예가 후퇴명령을 내렸다.
손흠은 얼른 연안으로 상륙하여 군사들을 이끌고 두예의 뒤를 쫓았다.
오군이 두예군을 정신없이 추격하는데 갑자기 포가 터지는 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사방에서 진군(晉軍)이 쏟아져나왔다.
* 삼국지(三國志)제432편 *
삼국통일 (下) <마지막회>
진나라 군사는 우저를 점령하고, 오나라 경계까지 침투했다.
왕준은 이 소식을 낙양에 보고했다.
진주 사마염은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옆에 있던 가충이 아뢴다.
"우리 군사가 땅과 물이 낯선 외지에서 오랫동안 고생하고 있습니다.
군사들이 풍토병에 시달리면 사기가 저하될 수 있으니 이제는 군사들을 거두시고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가충의 말을 듣고 장화가 말한다.
"우리 대군이 이미 적 깊숙이 들어가서 오나라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고, 손호를 잡을 날이 머지 않았는데 군사를 거두는 것은 안 될 일이옵니다.
이대로 군사를 물리면 지금까
지의 공로가 수포로 돌아가게 될텐데, 그렇다면 애석함을 금할 길이 없겠사옵니다."
진주가 끼어들 새가 없이 가충이 장화를 나무란다.
"그대는 하늘이 우리를 돕는 시기가 지금 와 있는 것인지, 땅의 형세로 얻을 수 있는 이로움이 있는 것인지판단할 줄도 모르면서 어찌하여 망령되이 공훈만을 탐내어 군사들을 괴롭히려 하는것이오?
그대가 자진하여 목을 내놓는다 하여도 그 죄를 다 용서받지 못할 것이오!"
진주는 가충을 저지하며 말한다.
"오나라를 깨치려하는 것은 곧 짐의 뜻이오.
장화는 단지 짐의 뜻과 함께 하는 것이니 경들은 말다툼을 그만 두시오."
이때 두예의 표문이 올라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두예의 표문 역시 서둘러 진군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진주는 두예의 표문으로 더욱 결심을 굳혔다.
그리하여 전장에 나가 있는 군사들에게 끝까지 진격하여 오나라 정벌을 완수하라는 명을 내렸다.
왕준과 두예 등이 진군하는 곳마다 그 기세가 거침이 없어서 오나라 사람들은 적군의 깃발만 보고도 성문을 활짝 열어 스스로 항복해왔다.
오주 손호는 그런 상황을 듣고 아연 실색했다.
신하들이 손호에게 묻는다.
"북쪽에서 온 군사들이 하루가 다르게 건업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데 강남의 군사와 백성들은 적과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손호가 어두운 낯빛을 하더니 도리어 신하들에게 되묻는다.
"어찌하여 싸우지 않는 것인가?"
손호의 물음에 모든 신하들이 한결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오늘날 이런 화가 닥친 것은 모두 중상시 잠혼 때문이옵니다.
청컨대 폐하께서 잠혼에게 극형을 내리십시오.
저희들은 죽기를 무릅쓰고 나가서 적과 싸우겠습니다."
손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말한다.
"하찮은 환관 따위가 무슨 재주
로 나라를 망칠 수 있겠는가?"
모든 대신들이 입을 모아 아뢴다.
"폐하께서는 촉나라의 황호를 못 보셨습니까?"
마침내 대신들은 오주의 명을 받지도 않은 채 잠혼을 붙잡아다가 갈갈이 베어 죽이고 그 살을 씹어 삼켰다.
끔찍한 처결이 끝나고 도준(陶濬)이 손호에게 아뢴다.
"신이 가진 전선은 규모가 모두 작사옵니다.
군사 이만과 큰 배만 있다면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손호는 즉시 어림군을 도준에게 내주며 상류에서 적을 막도록 했다.
그리고 전장군 장상에게는 수군을 이끌고 나가 싸우도록 했다.
두 장수가 각기 군사들을 이끌고 막 출발하
려는데 갑자기 서북풍이 크게 일더니 배 안에 세워두었던 기치가 우수수 쓰러졌다.
불길한 징조였다.
오군 병사들은 불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배에서 내려 도망쳤다.
그러고나자 장상에게 남은 병사는 겨우 십여명 뿐이었다.
한편 진의 장수 왕준이 돛을 높이 달고 삼산(三山)을 지나가는데 배를 젓는 군사가 왕준에게 말한다.
"바람이 세고 물결이 높아 배가 앞으로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바람이 조금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가시지요."
왕준은 칼까지 빼들고 화를 낸다.
"지금 석두성(石頭城) 점령이 코앞인데 멈추자는 것이냐!"
그리고 당장 크게 북을 울리며 진군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때 오나라 장수 장상은 가망이 없는 싸움을 벌이려는 마음을 접고, 십여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왕준에게 와서 항복하기를 청했다.
왕준이 장상에게 말한다.
"그대가 진정으로 항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라면 선봉이 되어 공을 세우라."
장상은 곧장 자신의 전선으로 돌아가서 석두성에 이른 뒤, 성 안으로 소리를 쳐서 성문을 열도록 했다.
이리하여 왕준은 싸움 없이 석두성을 손에 넣었다.
진나라 군사가 입성했다는 보고를 받은 손호는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려고 했다.
그때 중서령 호충광록훈 설영이 손호를 말린다.
"폐하, 안락공 유선의 예를 따르심이 어떻겠습니까?"
손호는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항복의 절차에 따라 수레에 관을 싣고 스스로를 결박한 채 문무대신들을 뒤따르게 하고 왕준의 군사 앞으로 나가 항복했다.
왕준은 손호를 풀어주고 관을 불에 태우게 한 후, 왕의 예로써 그를 대해 주었다.
이제 동오의 4주(州) 43군(郡) 313현(縣), 52만 3천 호(戶),
3만 2천 명의 관리,
군사 23만 명,
남녀 노소 230만 명,
미곡 2백80만 섬,
배 5천여 척,
궁녀 5천여 명은 모두 진나라의 것이 되었다.
나라의 대사(大事)가 정해지자 왕준은 방을 붙여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모든 창고에 봉인을 붙였다.
이튿날 도준의 군사는 임금이 항복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무너졌다.
이어서 진의 낭야왕 사마주와 왕융의 대군들도 전부와서 왕준이 세운 큰 공을 보고 진심으로 기뻐했다.
다음날에는 두예도 도착하여 삼군에게 큰 상을 내리고 대도독의 직권으로 식량 창고를 열어 오나라 백성들을 구제했다.
두예의 넉넉한 인심에 그제서야 오나라 백성들은 마음을놓았다.
오의 건평태수 오언은 성을 지키며 끝까지 항거하고자 하였으나 오나라가 이미 멸망했다는 소식에 곧 항복했다.
왕준은 낙양에 승첩을 띄웠다.
조정에서는 오나라를 평정했다
는 소식에 임금과 모든 신하가 한마음으로 축하했다.
축하연에서 진주 사마염은 술잔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오늘의 영광은 모두 양태부
(양호)의 공로인데 그가 살아서 직접 보지를 못하니 애통하도다!"
표기장군 손수는 오나라 손권의 종손으로, 위나라 때부터 조정을 섬겨왔다.
손수는 승전 축하연이 끝나고 조정에서 나오면서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통곡한다.
"지난날 토역장군(손견)은 일개 교위의 신분으로 기업을 세웠는데,
오늘 손호는 강남을 모조리 남에게 넘겼으니, 유유히 흐르는 푸른 하늘이여! 세상에 어찌 이런 사람을 내셨나이까?"
한편 왕준은 낙양으로 개선했다.
오주 손호도 낙양으로 함께 데려와서 진주를 뵙게 했다.
동오의 패주 손호는 진주 사마염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진주는 손호에게 자리를 내주어 앉기를 권하며 말한다.
"여기 앉으시오. 짐은 오래 전부터 이 자리를 마련해놓고 경이 오기를 기다렸소."
"신도 남녘 땅에 자리를 마련해놓고 폐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끌려온 와중에도 손호는 이렇게 당차게 대답했다.
진주 사마염은 손호의 당당한 태도에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곁에 있던 가충이 손호에게 묻는다.
"남쪽 땅에는 사람의 눈알을 뽑고 얼굴 가죽을 벗기는 형벌이 있다던데 대체 무슨 죄를 지으면 그런 형벌을 받는 것이오?"
손호가 곧장 대답한다.
"신하로서 제 군주를 시해하려는 자와 간사하고 불충스러운 자에게 가하는 형벌이오."
손호의 대답에 가충은 당황하여 얼굴이 붉어지고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손호는 그저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가충이 느끼기에는 마치 '너 같은 놈'이
라고 지적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진주는 손호에게 귀명후(歸命侯)의 작위를 내렸다.
그리고 그 자손들은 중랑으로 삼고, 함께 항복한 오나라 신하들은 모두 열후에 봉했다.
또한 끝까지 충심을 다해 싸우다 죽은 승상 장제의 자손들에게도 빠짐없이 작위를 내렸다.
오나라 정복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왕준에게는 보국대장군의 작위와 함께 큰 상을 내렸고,
그 밖의 군사들에게도 후하게 포상했다.
이로써 오래도록 정족지세를 이루던 삼국이 모두 진제 사마염의 수중으로 들어가 하나가 되었다.
그동안 삼국지를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로서 대단원의 삼국지는 끝을 맺습니다
삼국지는 어릴 때 읽으면 영웅들의 호연지기에 가슴이 뛰고, 나이 들어 읽으면 스러져가는 인물들의 뒷모습에 눈물이 납니다.
26년도는 적토마의 강한힘의 정기를 받아
두루두루 건강과행복의 하루하루가 되시기를 흑표곽순태 기원드립니다.

첫댓글 오래 기간 동안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다시 재미있게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곽순태 장군님께 고마운 인사 드립니다.
위, 촉, 오 삼국이 치열하게 다투다가 당대의 영웅들이 사라지고 난 뒤 晉나라의 司馬炎이 오나라를 침으로써 마침내 중국을 통일하는 긴 역사 소설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