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간 목요일
루카 16,19-31
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화요일 강론 때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을 합시다.
섬기는 삶을 살아갑시다.’ 하는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구나...’ 하는 것을
다음날 바로 느꼈던 거 같습니다.
아이들과 서울에 공연을 보러 갔다 왔는데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즐거워야 하는데, 마음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아이들의 행동과 말에서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면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한다든지,
말을 걸면 기분 나쁜 표정으로 대답을 한다든지,
자기 자리나 자기 먹을 거만 챙기는 이기적인 모습들 때문에 그랬던 거 같습니다.
지적을 할까 말까 하고 고민을 하다가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요.
식사를 하기 전에 사장님이 물통과 컵을 가져다 주셔서 물통을 들고 물을 따랐습니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아이에게 숟가락 통을 건네며 ‘숟가락 좀 놔봐~’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보니, 그 아이가 자기 숟가락 젓가락만 꺼내놓고 숟가락 통을 닫아 두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너 것만 놓지 말고 다 놓으라고...’ 했더니, 살짝 인상을 쓰면서 숟가락을 놓는데,
그 표정을 보고 화가 많이 났고 화를 쏟아 놓으려다가,
‘아니다. 이런 아이들, 다시는 신경 쓰지도 말고 관심도 갖지 말자...’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포기하고 무관심하려는 마음이 조금 낯설어서 붙잡고 들여다보았는데요.
이런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다른 신자 분들을 대할 때와 아이들을 대할 때의 내 모습이 다른 거 같다.
보통 신자 분들을 대할 때는 찾아 나서기도 하고, 기다리기도 하고,
갈등이 있으면 풀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
부부관계나 노인 분들의 마음을 잘 모를 때는 책을 찾아 읽어가면서 알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도 많이 하는데...
아이들을 대할 때는 찾아 나서지도 않고, 다가가지도 않고,
게으름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변화되어 과정을 인내로이 기다려주지도 못하는 거 같다.
원인이 뭘까..
아마도 아이들을 섬기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인 거 같다.
아이들을 섬기려 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말 하고,
기다리고, 받아들였을 거다. ’
그래서 그 때부터 ‘아이들을 섬기는 일이 뭘까?’ 라는 것을 고민해 보았는데요.
다음의 이야기가 조금 도움이 된 거 같습니다.
어느 랍비의 아들 하나가 오랫동안 정서장애를 겪고 있었답니다.
증세가 점점 심해져 옷을 다 벗고 뒤뜰에 쭈그려 앉기에 이르렀습니다.
아이는 마치 칠면조가 된 것처럼 골골 소리를 냈습니다.
몇 시간이나 며칠 동안이 아니라 몇 주가 가도록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했습니다.
아무리 달래고 애원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내로라하는 심리치료사들이 다 동원됐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소년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면서 가족들과 슬픔을 나눠왔던 아이 아버지의 친구가
혹시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나섰습니다.
랍비의 친구는 뒷마당으로 들어가더니 옷을 모두 벗었습니다.
그리고 아이 곁에 앉아서 칠면조처럼 골골거리는 소리를 냈습니다.
며칠은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동안을 지낸 뒤 아이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이젠 칠면조도 셔츠를 입을 때가 됐다고 생각하는데, 어때?”
고민이 된다는 듯 여러 차례 골골거리던 소년이 마침내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둘은 셔츠를 걸치게 됐습니다.
다시 며칠이 지난 뒤에, 랍비의 친구는
“칠면조가 바지를 입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고 제안했습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옷을 찾아 입혔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쯤 시간이 흐르자 랍비의 아들은 정상적인 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 거 같은데요.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에게는 랍비 친구와 같이 아이들을 위해서 옷을 다 벗을 수 있는 용기가 없었던 거 같다.
어른이라는 옷과 신부라는 옷과 조용하다는 이미지의 옷을 입고,
중학생 여자 아이들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고,
유치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거 같다.’
아마도 제가 아이들을 섬기는 일은 그들 무리에 동화되어 노는 일인 거 같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랍비의 친구가 아이처럼 벗어서 아이를 치료한 걸 보면,
‘나도 해 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거 같습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도 이천년 전에 하느님이라는 옷과 지위를 모두 벗어버리시고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언어로 이야기하셨기 때문에
인간이 구원과 생명의 길을 알게 된 걸 생각하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하루, ‘나’도 예수님처럼 누군가를 섬길 수 있도록
노력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아이들과 지하철을 탔다.
환승하기 위해 긴 복도를 지나가는데,
3학년 아이와 5학년 아이가 아무 이유 없이 앞으로 막 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웃고 좋아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6학년 아이가 나를 보며 이런 얘기를 했다.
“아직 애들이에요~”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