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의 감정 (외 1편)
아무것도 자기가 있을 자리에 없는 것, 이것은 무질서
아무것도 자기가 원하는 자리에 없는 것, 이것은 질서
브레히트
김지녀
시소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우리가 일제히 언니, 하고 불렀을 때
비인칭 주어처럼
길어서 다 부를 수 없는 이름처럼
언니는 해석될 필요 없이 거기에 앉아 있다
등을 돌리고 앉았다 일어섰다 땅! 땅! 날아가는 날들을 향해 몸을 던진다
언니의 하늘은 올리브색에 가깝다
오래됐군, 페인트 벗겨진 하늘을 팔레트 나이프로 긁어낸다
가루가 되어 쌓이는 오늘의 날씨
조금씩 갈라진 감정의 흰 뼈를
낙천적이거나 비관적인 저녁 쪽으로
우리는 두껍게 하늘을 덧칠한다
차가운 동상으로 언니를 기념한다
언니는 과묵하고 무심하고 작기도 한데
모랫바닥을 글자들로 구겨 놓고
어디로 가고 있을까
우리는 왜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을까
ㅡ시집 『시소의 감정』
오늘의 체조
여기는 걸어도 걸어도 똑같은 나무가 줄지어선 곳
식욕을 잃은 위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매달려 외롭다
외로움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하루에 세 번 밥과 약을 꼭꼭 챙겨 먹는 습관이 필요하다
이곳엔 이름 모를 병이 많고
설명할 수도 가늠할 수도 없는 아픔도 많다
특별한 치료법이 없이
갑자기 잠에 빠져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곳은 겨울, 아프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오늘의 체조는 혈액순환에 좋은 배 두드리기
팔과 다리를 가장 멀리까지 뻗어보기
심장이 뜨거워졌습니까
팔과 다리가 조금은 길어져 누군가를 안아주었습니까
치료될 수 있다는 믿음은 버릇이고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잠들지 못하고 구름처럼 뭉쳤다 흩어지는 사람들
사이로, 곧 눈이 내릴 것이라는 예보
부드럽게 사라지는 눈을 밟으며
나쁜 소식이 무성한 쪽으로
끼니를 거르고 침묵하는 쪽으로
사람들은 걸어갈 것이다, 남쪽에서 온 여행자들에게
눈 내리는 거리는 신선하고
밤은 혼자여도 외롭지 않겠지만
여기는 떠나온 곳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새벽이 되는 곳
밤이 밤으로 계속되는 곳
내일은 숙면을 위한 체조를 준비합니다
—《문장웹진 201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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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녀 / 1978년 경기도 양평 출생. 성신여대 국문과 졸업, 고려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2007년 「오르골 여인」 외 5편으로 《세계의 문학》 제1회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시집 『시소의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