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강영숙
왜 사세요? 답이 있나요? 나도 몰라요. 그냥 사는 겁니다.
무거운 짐 진 삶이 좀 가벼워지네요. 비 오는 날, 비를 몸에 흠뻑 맞으며 걸으면 웃음이 나와요. 왜 웃음이 나오는지 몰라요. 그럴 때 '그냥' 이라고 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슬피 울고 있잖아요. 그럼 괜히 콧등이 시큰거리다가 그냥 같이 울어버려요. 나도 모르는 슬픔이 저만치 가는 소리가 들리지요. 누가 밥을 사주었는데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냥이라는 걸. 사랑이라는 걸.
난 그런 '그냥' 이라는 말이 좋다.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말. 들여 놓은 생각 없이 아니 어쩌면 이유 없이 그렇다는 것. 같은 의미라도 단 두 자의 정의는 넓기도 하고 새털같이 가볍기도 하다. 심지어 구구한 설명이 구차하다고 생각할 때 두루뭉술하게 그냥이라는 말로 간단히 규정하기도 한다. 그건 보자기 같은 말, 그냥이니까 '그냥 사랑해. 그냥 줄게 그냥,,' 그냥은 마치 맨발로 세상을 걸어도 된다고 속삭이는 경쾌한 음악 같다.
살면서 얼마만큼의 '그냥'이 있었을까. 어쩌면 나를 키운 것의 팔할은 도처에서 알게 또는 모르는 사이에 어떤 식으로든 그냥 받아 누린 것, 그 순전함의 선물일 것이다. 언제나 그것은 열려있는 사람의 가슴에서 툭 튀어나온다.
그 지고지순의 가치에 가 닿으면 삶에 대해 경건함과 겸손에도 도달할 진대 자신을 가두지 않는 마음으로 와서 가끔은 선물처럼, 어느 땐 기적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다가와 수줍어하며 곁에 앉는다.
영화<포레스트 검프>는 작품 전체가 '그냥'의 운동장이다.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는 사랑하는 것도, 일도, 달리기도 그냥에서 출발한다. 검프의 뜻은 '멍청이'이다. 그렇다면 그는 바보일까. 내게 영화는, 영리한 처세로 성공한 사람들이 과연 잘 사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검프를 사는 건 어때?라며 다가오는 것과 같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도 같은 거야. 네가 무엇을 고를지 아무도 모른단다."라고 한 엄마의 말에 포레스트는 자연스럽게 그날을 꺼내든다. 선택의 순간마다 관계에 대한 순수힘에서 출발하는 그의 삶은, 행복이 어디로부터 오는가에 대한 한 편의 시 같다.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데ᆢ. 라며 내 잣대로 생각했다면 제니와의 사랑도 끝내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삶에는 얼마나 많은 계산이 발목을 잡고 지치게 하는가. 때로는 감취진 수(數)들로 하루하루는 얼마나 두려운가. 그럴수록 그 속에 그냥은 청량하고 따뜻한 꽃으로 피어난다. 내가 그 영화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삶이 복잡해지면서 숨 쉬고 싶은 공간을 그의 그냥에서 찾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것을 가슴에 많이 안고 사는 존재의 무거움과는 달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