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학교 친구들과 많이 친해지고 숙제가 점점 많아지기 시작할 때였다. 오전 선생님 Robert는 숙제 중 하나로 당신은 왜 영어를 배우는가에 대해서 에세이 한편을 써오라고 했다. 이 주제라면 나도 할말이 많은 사람이다.
과연 나의 어학연수 발단은 어디서부터일까? 난 어렸을 때부터 영어에 대한 관심도 많았고 흥미도 많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관심과 흥미에 비례해 실력이 남들보다 월등한 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룹 과외로 영어를 시작했고 죽 그렇게 영어 공부를 하다가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영어가 지겨워졌고 실력도 그다지 늘지 않아 속이 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밤낮 문법에 독해만 해대고 있으니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믿었던 영어를 수능 시험에서 망친 후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공부해선 실력도 안 늘 뿐더러 외국인 앞에서 말 한마디 뻥긋하지 못할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수능을 마친 후 바로 회화 학원을 알아봤다. 그러다 정말 좋은 조건의 학원을 알게 되었는데 한달에 30만원이라는 비싼 돈을 내야 했지만 일주일에 5번, 하루에 3시간씩 선생님은 모두 native speaker로 세 명이나 되었다. 처음에는 선생님들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나보고 뭐를 하라는 건지 적응할 수 없었지만 차차 나아지면서 조금씩 들리는 단어로 선생님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추측해 나가기 시작했다. 나 또한 입을 열어 몇 개의 단어들을 열거할 때마다 신기하게도 그들이 내 말을 알아들었다. 이래서 영어 교육은 일방적이 아닌 교감이 되는 쌍방적 교육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두 달을 한번의 결석 없이 열심히 다니고 대학교에 입학 했다. 새내기라는 이유의 방종함으로 벼락치기 공부를 연명한 채 그렇게 영어는 돌보지 않았다. 교양 시간에 듣는 실용영어 외에는 영어와 친하게 지내지 않은 까닭에 그나마 수능 공부로 외워뒀던 영어 단어마저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중 어느 날부턴가 학교 게시판에 붙어 있던 워킹헐리데이 비자니 뭐니 갖가지 유학 포스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한테는 꿈같은 얘기로만 들리던 유학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돈을 벌면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뉴욕에서도 그 꿈을 실현 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 주위에도 어학연수를 갔다 온 선배들이 많았기에 선배들에게 이런 저런 얘기들을 주서 들으며 부모님 몰래 내 꿈을 키워나갔다. 우선은 돈이 필요했다. 아무리 뉴욕에서 돈을 벌며 공부를 한다고 해도 비행기 삯이며 초기 생활비용 등 초창기 비용이 500만원 정도가 예상됐다. 이 돈을 무턱대고 부모님한테 손 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고민 한 끝에 1년 동안 휴학을 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달에 50만원씩만 저금해도 열 달이면 500만원이네? 그렇게 나는 돈 벌어 모으는 것이 쉬운 줄만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돈을 내가 벌 거라 해도 무작정 휴학을 한다고 하면 부모님이 쉽게 허락해 주실 리가 없었다. 그래서 겨울 방학을 하자마자 어학연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리포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대학 다닐 때 숱하게 썼던 그런 리포트와는 달랐다. 이번 건 누가 시켜서 쓰는 게 아니라 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중대한 리포트인 것이다. 왜 어학여수를 가야만 하는지 가서 무엇을 할 건지 갔다 와서는 또 어떻게 살 건지, 이것저것 쓰다보니 10장이 후딱 채워졌다. 3일간에 걸친 리포트를 완성하고 적절한 타이밍을 노려 부모님께 리포트를 제출했다. 거실 소파에서 TV를 보시던 두 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리포트를 받아 들으시고는 그것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두 분 옆에서 숨을 죽이고 두 분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허락 하실까? 허락하셔야하는데... 페이지 10장의 리포트를 읽는 것이 그렇게 오래 걸린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한참을 진지하게 읽으신 두 분은 나의 의견을 수용하셨고 나를 대견스럽게 까지 여겨주셨다. 드디어 그날부터 나의 엄청난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첫댓글 ㅎㅎ 저두 리포트 엄마한테 내구 허락 받았는데..ㅋ 잘 다니던 직장 그만 둔다니깐..부모님이 놀라시더라고요.. 큰 꿈 가지고 간거니깐... 열공하세요~~^^
생생한 일기 넘 잼있게 보고 있습니다^^ 완전 감솨~~ 앞으로도 부탁드려요~~~^^
전 조만간에 토론토로 출국할건데..님의 일기를 차근 차근하게 읽으면서...다시 마음 다 잡고..그냥 힘이 되네요!! 기회가 되면 나도 이런 일기를 적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흑흑.. 지니님 그 레포트 조언좀 부탁드려요~ 저 다음주에 레포트 제출하려는데.. 막막하기만 합니다.. 흑흑
정말 멋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