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을 못 출 정도로 더운 날이 되면 생각나는 게 있다. 강원도의 시원한 바람이다. 계곡의 아찔한 경사를 타고 내달려 부딪는 바람에는 숲 내음이 가득하다. 그 바람에 안겨 잠들고 깨어나고 유람한 밤과 낮의 이야기다.
내 집 같은 한옥 태백산 한옥펜션
"어서 오세요! 밤에는 추워서 군불을 때 놨는데, 따뜻한 게 좋으면 한 번 더 불을 넣을까 해요."
인상 좋은 주인 내외는 데워진 온돌방만큼이나 포근한 첫인사를 건넸다. 태백산과 함백산이 품어 안은 소롯골, 이곳에 소담하게 자리한 '태백산 한옥 펜션'은 정겹다. 주인은 고향 땅에 한옥을 짓고 싶었다. 겉만 비슷하게 꾸민 무늬만 한옥이 아닌 군불 때고 나무 냄새 가득한 진짜 한옥을 짓겠다고 마음먹었다. 경주 안동댐 수몰 지역인 임하, 녹전마을의 한옥 여러 채를 사서 고재를 거뒀고 들보, 기둥, 마루에 있던 나무 하나하나에 번호를 적어 소롯골로 실어 왔다. 집을 짓고, 그간 모아둔 민속품 100여 점을 마당, 툇마루, 처마 밑 곳곳에 걸었다.
돌담 밖으로는 텃밭을 일구고 나무를 심었다. 텃밭 중앙에 조그맣게 바비큐장도 마련했다. 고기만 가지고 오면 텃밭 가득한 다양한 종류의 채소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단다. 집을 둘러싼 앵두, 사과, 포도, 살구나무들의 과실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넉넉한 주인장 덕분에 손님들은 이곳에 머무는 동안 허기질 틈이 없다.
쉴 새 없이 방을 데울 장작을 패고 집안 곳곳을 반질반질하게 닦아 온 세월이 3년이 됐다. 지난해부터는 영특하고 아름다운 진돗개 두 마리도 함께 살기 시작했다. 이름은 태백이와 한옥이다.
대문 바로 앞, 작은방에 앉았다. 오래된 책과 음반이 가득하고 오디오도 있다. 누구나 들어와 책 보고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만든 방의 이름은 '풍류당'이다. 문을 열면 태백산의 산세가 그림처럼 펼쳐지는 아름다운 방에서 주인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옛 시절 광부로 살았던 이야기, 추전역, 삼수령, 태백산 국립공원 등 펜션과 가까운 주변 관광지에 대한 이야기, 기억에 남는 손님들의 이야기 등 정겹고 의미 있는 말들이 오고 갔다. 달이 솟고 별이 빛나기 시작하자 주인장은 행랑채의 군불을 확인한 후 밤 인사를 건넸다.
툇마루와 연결된 방문을 열었다. 별 밤 아래 스무 개 남짓한 장독대가 반짝인다. 저 안 어딘가에는 20년 된 된장도 숨을 쉰다. 따뜻하게 데워진 방에 목화솜 요와 이불을 깔고 누웠다. 등은 뜨끈한데 머리 위로는 맑고 청량한 공기가 맴돈다. 마음을 달래기에 더없이 알맞은 공기다. 풀벌레 우는 소리 사이로 태백이와 한옥이가 코를 고는 소리가 나직하게 들린다. 이런 곳에서 하릴없이 한 달쯤 머무르면, 착하고 순한 사람이 될 것 같다.
귓속말 tip
"내가 쓰기 싫은 물건은 손님에게도 안 건넨다"라는 확고한 철학을 가진 주인의 옛이야기가 무척 재미있다. 손님이 아닌 가족처럼 머물다 가는 집이다.
주소 강원 태백시 소롯골길 34
전화 033-552-2367 ※ 전화 예약
체크인 오후 1시
체크아웃 오전 11시
가격 안채 20만원, 행랑채 16만원, 뒤안채 13만원, 별당채 10만원
주차 가능 취사 가능 장애인 객실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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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오른쪽]삼탄아트마인<사진제공·박은경> / 바람의 언덕<사진제공·서보선>
삼탄아트마인
태백과 가까운 정선 고한읍에 위치해 있다. 석탄을 캐던 광산이 거대한 미술관으로 거듭났다. 탄광의 역사를 한눈에 가늠할 수 있고 예술작품, 대표의 미술품 컬렉션까지 볼거리가 많다. 갱도로 쓰던 레일바이뮤지엄이 특히 멋지다. 최근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도 알려져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넓은 규모라 넉넉한 시간 안배가 필요하다.
삼수령
백두대간 낙동정맥의 분기점이다. 서해로 흐르는 한강, 남해로 흐르는 낙동강, 동해로 흐르는 오십천의 발원지다. 정상인 바람의 언덕은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산 정상에 우뚝 선 풍력발전기 스무 대 남짓 아래로 언덕이 펼쳐진다. 언덕에는 배추들이 가득 자란다. 농번기에는 바람의 언덕 전망대까지 차로 진입할 수 없어 15분여 언덕을 걸어 올라야 한다.
추전역
한국에서 가장 고지대에 위치한 역으로 의미가 깊다. 1974년 무연탄 취급 역으로 지어졌는데, 탄광이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지금은 관광열차만 정차하는 역이 됐다. 쓸쓸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아름답다. 역내 휴게실에 비치된 역무원 제복을 입어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주말이면 역 주변으로 도열한 몽골텐트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