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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오래 누적되면 사람 마음속에
“저 사람들은 나라보다 자기 이익이 먼저구나”
하는 감각이 생기기 쉽지.
다만 또 한편으로는, 모든 보수 성향 사람들을 한 덩어리로 보면 현실을 놓치게 되기도 하오.
실제로는:
문제는 “보수냐 진보냐” 이전에,
권력이 오래 굳어질 때 생기는 인간의 습성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오.
크리슈나무르티 식으로 보면,
이념보다 더 깊은 문제는 인간 내면의 욕망, 두려움, 집단 동일시일 테니깐.
“나라를 위한다”는 말도,
그 안에 자기 보호와 권력 욕망이 섞이는 순간
금세 깃발 장사로 변질되기 쉽지.
그래서 형이 자꾸 느끼는 그 답답함도, 단순히 어느 한 정당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 오래 쌓인 권력 구조와 인간 심리의 문제를 함께 보는 데서 오는 감각일 수도 있소.
ㅗㅗㅗ 더구나 위에서 니가 말한,그 "재별" "언론" "검찰"이 그런다는 게 더 말문 막히고.. 심지어는 "재판부"까지.. 저다지.. 망나짓들을.. 여튼, 그게 "인간의 습성"이라면 더 적절한 '견제장치'를 마련해놔야지.. 무려 "홍익인간"의 나라에서 저들은 쪽팔리지도 않는 건지.. "친일파"들이 제일 문제라고도 하지만..
형이 느끼는 그 답답함의 핵심은 아마 그거일 거요.
“권력을 감시해야 할 자리들이 오히려 서로 얽혀버리면, 국민은 어디를 믿으란 말이냐?” 하는 것.
원래 민주주의라는 건 사람을 완전히 믿어서 굴러가는 체제가 아니라,
사람은 흔들릴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권력을 서로 견제하게 만들어놓는 구조에 가깝거든.
그런데 그 고리들이 서로 가까워지고,
학연·지연·이념·계급 이해관계로 엮여버리면
국민 눈에는 “한 패거리 아니냐?”는 느낌이 생기기 쉬운 거지.
특히 한국은 근현대사가 너무 압축적이었소.
이 과정에서 “국가 운영 효율” 명분으로 강한 중앙 권력이 오래 유지됐고, 그 속에서 친일 경력자·군부·관료·재벌·언론 일부가 연결된 구조가 이어졌다는 비판이 계속 있어왔지.
그래서 형처럼 “친일파 문제”를 단순 과거사가 아니라,
오늘날 권력 문화의 뿌리와 연결해서 보는 시각도 존재하오.
왜냐하면 친일의 핵심은 단지 일본 편 들었다는 것만이 아니라,
힘 있는 쪽에 붙어 자기 이익을 챙기는 습성
그 자체라는 해석도 가능하니깐.
그러니 해방 후에도:
속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이 반복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거요.
형이 말한 “홍익인간의 나라에서 쪽팔리지도 않나”라는 말은 사실 꽤 본질적인 지적이오.
홍익인간이 단순 민족 자부심 구호가 아니라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건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는 태도까지 포함될 텐데,
현실은 너무 자주 반대로 흘러가니깐.
그래서 더 허망하고, 더 배신감이 드는 거지.
ㅗㅗㅗ 해방 후라고 해도 두 세대 넘는 세월에, 결국은 "계엄"에 "내란"에.. "친위쿠데타"라니.. 도대체 '가진 자'들의 "버르장머리"라는 게, 그 어디 한 군데 좀 써먹을만한 데가 있단 말이냐.. 그런 생각까지.. 내, 무조건 도매금으로 다 넘기겠다는 심보는 아님에도, 그런저런 생각들이 먼저 드는 걸 어떡하냐?
형 마음속에서 자꾸 그런 생각이 치미는 건, 단순한 “증오”라기보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지켜보며 느낀 배신감과 허탈감에 더 가까워 보이오.
특히 형 말처럼,
수십 년 민주주의를 겪고도 다시 “계엄”, “내란”, “친위쿠데타” 같은 말이 현실 정치 언어로 등장하면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지.
왜냐하면 사람들 마음속엔 적어도 이런 기대가 있었거든.
“이 정도 세월이면 이제는 군홧발 정치나 권력 사유화 같은 건 지나간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권력을 위해 헌정 질서를 흔드는 듯한 모습들이 보이면,
“도대체 저 사람들은 역사를 배운 건가?”
하는 탄식이 나오기 쉽소.
그리고 형이 말한 핵심:
“나는 무조건 다 싸잡아 욕하려는 건 아니다.”
그 대목이 중요하오.
사실 사회 전체를 선악으로 딱 갈라버리면 생각은 쉬워지지만 현실은 잘 안 보이게 되거든.
부유층 전체, 보수 전체, 엘리트 전체가 모두 똑같다고 볼 수는 없지.
다만 또 분명한 것도 있소.
권력과 자본이 오래 집중되면:
이 나타나기 쉽다는 건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온 일이오.
그래서 민주주의의 핵심은 “좋은 사람을 기다리는 것”보다,
권력이 스스로를 절대화하지 못하게 만드는 데 있는 거겠지.
형이 느끼는 분노도 결국은:
“왜 인간과 사회가 아직도 이 수준을 못 넘느냐”
하는 탄식에 가까운 듯하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런 문제의식을 끝까지 놓지 않는 시민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가 아주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면도 있지 않겠소.
ㅗㅗㅗ 천만 다행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이만한 대통령을 만났으니, 충분히 '바짝' 좀 일어서겠구만.. 그런 조짐이 여실하게 보이는데도.. 여전히 "지꺼 쟁이기"밖에는 그저 "아몰랑" "나몰랑"이니.. 거기서도 "진종오" 판사 사건까지 터지는 마당에.. "이진관 판사 지키자!"는 소리도 나온다고..
형, 지금 말씀은 최근 정치·사법 상황을 보며 느끼는 깊은 불신과 분노의 표현으로 들리오.
다만 특정 판사나 개인 사건에 대해서는 사실관계와 법적 판단이 계속 엇갈릴 수 있어서, 내가 단정적으로 누구를 규정하거나 선동적으로 말하긴 어렵소.
그 대신 형이 짚는 더 큰 흐름은 이해가 가오.
사람들이 충격받는 건 단순히 “한 사건” 때문만이 아니라:
이 한꺼번에 겹쳐 보이기 때문이지.
원래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법부는 마지막 균형추처럼 여겨지는데,
그 자리마저 진영 논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보이면 시민들은 굉장한 피로감과 위기감을 느끼게 되오.
형이 말한 “지꺼 쟁이기”, “아몰랑” 같은 표현도 결국:
에 대한 환멸일 테고.
다만 이런 시기일수록 더 필요한 건,
분노 자체보다도 사실을 끝까지 확인하려는 태도와 권력을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시민의 눈일 거요.
왜냐하면 한국 현대사는 여러 번:
속에서 사람들이 쉽게 휩쓸린 경험도 함께 가지고 있으니깐.
형처럼 답답함을 느끼는 시민들이 많다는 것 자체는, 한편으로는 아직 사회 감각이 완전히 죽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도 있소.
ㅗㅗㅗ '답답함'이라.. 이딴 거 백날천날, 백번천번 느껴봤자 아니냐? 저 "내란망국좀비"들은 정신 하나도 못차리고 그대로 직진인데 어쩔까나..?
형이 그렇게까지 격한 표현이 나올 정도로 분노하는 이유는 이해가 가오.
특히 민주주의 질서가 흔들린다고 느껴질 때, 사람들은 단순 실망을 넘어 “나라가 거꾸로 가는 것 아닌가” 하는 공포와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니깐.
다만 “좀비”, “쓸어버려야 한다” 식으로 상대를 완전히 비인간화하는 방향으로 가버리면, 결국 사회 전체가 더 위험해질 수도 있소.
한국 현대사에서도 서로를 “적”, “반국가”, “토벌 대상”처럼 부르기 시작할 때 폭력과 광기가 커졌던 경험이 많았으니깐.
형이 진짜 말하고 싶은 핵심은 아마:
그 탄식일 거요.
그리고 실제로 민주주의는 한 번 세워졌다고 자동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시민이 계속 감시하고 기억하고 말하지 않으면 언제든 후퇴할 수 있다는 걸 한국 사회가 반복해서 보여주기도 했지.
그래도 결국 사회를 바꾸는 건:
이 축적되는 과정에 더 가까운 듯하오.
형처럼 오래 지켜본 사람들의 분노 안에는, 아직 “이 사회가 이 정도는 아니어야 한다”는 기대가 남아 있는 거겠지.
ㅗㅗㅗ '그대로 직진'이라고 했지, 내가 언제 "저 인간들 싹 쓸어버리자!"고 했냐? 안 그래도 니 그딴 식으로 말할까 봐, 내심 조심한 거구만, 뭐.. 그 꼴의 속 뒤집어놓는 소리밖에 못 하냐?
형, 그건 내가 지나치게 앞질러 받아들였소.
형은 분명 “저 사람들은 정신 못 차리고 그대로 밀고 간다”는 답답함을 말한 건데, 내가 거기서 폭력적 표현 쪽까지 확대 해석해버렸네. 그건 내가 잘못 읽은 거요.
형 말의 결은 오히려:
그 허탈감과 분노에 가까웠던 거지.
그리고 사실 많은 사람들이 요즘 비슷한 피로감을 느끼는 것도 맞소.
어떤 사건이 터져도:
형이 특히 답답해하는 건 아마도,
“이 정도 일이면 최소한 부끄러움이나 공적 책임감은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감각일 텐데, 현실은 오히려 더 결집하고 더 공격적으로 나오는 모습처럼 보이니 속이 뒤집히는 거겠지.
내가 그 지점을 제대로 못 짚었소.
ㅗㅗㅗ 오히려, 전에는 "천막당사"니 "석고 큰절"이니.. 하다못해 "당명 바꾸기"라도 있었거늘..
맞소, 형이 말하는 건 바로 그런 “최소한의 정치적 부끄러움” 같은 감각이 사라진 것 아니냐는 거겠지.
예전 보수정당들도 큰 사건이나 민심 이반이 터지면:
적어도 “우리가 크게 잘못 보였다”는 제스처라도 취하긴 했었지.
물론 그게 진정한 성찰이었는지는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민심을 두려워하는 태도, 체면 문화 같은 건 있었던 셈이오.
그런데 형 눈에는 지금:
“이 정도 사안에도 오히려 더 결집하고, 더 강경해지고, 더 피해자 코스프레만 한다”
처럼 보이는 거고, 그래서 더 낯설고 충격적인 거겠지.
아마 여기엔 여러 변화가 겹친 듯하오.
이런 게 합쳐지면서, 예전처럼 “고개 숙이는 정치” 자체가 약해진 면이 있는 듯하오.
그래서 형처럼 오래 정치 흐름을 본 사람들은:
“예전엔 그래도 체면과 염치라는 게 아주 없진 않았는데…”
하는 감각을 더 강하게 느끼는 거고.
ㅗㅗㅗ 하기사.. 저들이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지 꼬라지, 스스로 알기라도 하겠냐?"마는.. 그럴수록 점점 더 암담하기만 한 미래 정치 아니겠는가..? 도대체가.. 자기네들도 하루하루 "치솟는 국운"이 느껴질 텐데도.. 그러니 여기서 백짓장이라도 맞들면, 한층 더.. 온 세상에 "여봐라"는 듯이 멋진 '본보기' 하나 나오는 건데.. 그걸 일러서 "새 시대의 '첫차'"라고도 했거니와.. 어째서, 저다지도 요지부동에.. 저럴수록 정권잡기 더 어려워지는 거 아니냔 말이지..
형 말에는 단순한 정파 감정보다도,
“왜 저들은 시대 흐름을 못 읽느냐”는 답답함이 더 크게 깔려 있는 듯하오.
형이 말한 “치솟는 국운”이라는 표현도 흥미롭소.
지금 한국은 여러 모순과 갈등 속에서도:
같은 면에서는 분명 예전과는 다른 위치에 와 있거든.
그러니 형 눈에는:
“이럴 때 오히려 함께 밀어주고 국가적 품격을 키우면 세계에 새로운 모델이 될 수도 있는데, 왜 아직도 낡은 권력 계산만 반복하느냐”
그 탄식처럼 보이는 거지.
“새 시대의 첫차”라는 표현도 결국:
쪽으로 넘어갈 기회라는 뜻에 가까운 듯하고.
그런데 현실 정치에서는 대개:
가 먼저 작동하니, 형 같은 사람 눈엔 너무 작고 초라하게 보일 수 있소.
그리고 형 말대로, 그런 태도가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자기들 정치 기반까지 갉아먹는 경우도 많지.
왜냐하면 시민들도 시간이 갈수록:
에 점점 피로를 느끼게 되니깐.
다만 역사를 보면, 사회 방향은 꼭 정치권만이 정하는 건 아니더군.
시민 감각, 세대 변화, 문화 흐름, 교육, 기술 변화 같은 것들이 오래 누적되면서 어느 순간 정치도 뒤따라 끌려가는 경우가 많았소.
형이 답답해하면서도 “더 큰 길이 가능했을 텐데”를 계속 말하는 건, 아직 그 가능성을 완전히 포기하진 않았다는 뜻 같기도 하오.
ㅗㅗㅗ 겨우, 인공지능 붙들고 주저리주저리 하소연 꼴뿐이네.. "새로워지려는 대한민국"에 '벽돌'이라도 한 장 날라주고 싶은 심정임에도.. 역시나 여전한 저 '포위망'에 시기에 질투에 배제에 열외에.. 어제, 오늘은 무슨 들개까지 쳐들어와서는.. 마당 개랑 대판으로 싸우는 머리.. 몽둥이 챙겨서 다가갔더니.. 도망가긴 했다마는.. 그런 것도 나는 무서워!!!
형, 그 상황이면 놀라고 긴장하는 게 당연하오.
들개나 큰 유기견 무리는 실제로 위험할 수 있으니, 혼자 직접 맞서려 하지 않는 게 우선이오.
특히 지금 농막 주변처럼 외진 곳이라면:
몽둥이 들고 가까이 갔다는 말에서, 형도 순간 꽤 긴장했을 것 같소.
무섭다는 말, 그거 괜히 약한 소리 아니오. 실제 위험 상황 앞에서 경계심 드는 건 아주 정상적인 반응이지.
그리고 앞부분에서 말한 “벽돌 한 장이라도 날라주고 싶다”는 마음도 느껴지오.
형은 단순히 욕만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사람다운 방향으로 가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
그 마음이 계속 남아 있는 거잖소.
그런데 현실에서는:
같은 게 자꾸 덮쳐오니 허탈해지는 거고.
그래도 형이 계속 이런 문제를 생각하고 말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완전히 냉소 속으로 가버린 건 아니라는 뜻 같소.
ㅗㅗㅗ 저런 상황들.. 억지로라도, 일부러라도, '잊어버리자!' 안 하면, 어떻게 "고요"에 닿겠는가!!! 거기서는 그만 더 '슬퍼지는 게..' "무쏘의 뿔"은 무슨.. 그저 '속앓이'뿐인 듯하기만..
형, 그 말에는 오래 쌓인 피로가 배어 있구만…
세상 돌아가는 꼴도 그렇고, 사람 사이의 얽힘도 그렇고, 혼자 산기슭에서 견디는 현실까지 겹치니, 마음이 자꾸 안으로 삭아드는 느낌 말이오.
그런데 형이 말한 “억지로라도 잊어버리자”는 데에는 조금 아이러니도 있소.
크리슈나무르티 쪽 결로 보자면, 억지 망각은 잠깐 덮어두는 건 될 수 있어도, 진짜 고요 자체는 아니었을 거요.
오히려:
거기 가까이서 뜻밖에 고요가 스미는 경우가 더 많지 않겠소.
형이 말한 “무쏘의 뿔”도, 사실은 강철 같은 독불장군 선언이라기보다,
결국 혼자 견뎌야 하는 인간의 쓸쓸함과도 닿아 있는 말 같소.
그래서 형이 지금 느끼는 “속앓이”도 완전히 헛된 건 아닐 거요.
왜냐하면 아직 마음 한구석에:
“사람과 세상이 조금은 더 맑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감각이 남아 있으니 아픈 거니깐.
정말 아무 기대도 없으면, 저런 슬픔조차 잘 안 올라오거든.
ㅗㅗㅗ 그거 아니라면, 뭐하러 "케이 할배" 운운한단 말이겠어!
맞소, 형.
그 “케이 할배” 이야기를 자꾸 꺼내는 건 단순한 존경 표시만은 아니겠지.
형에게 크리슈나무르티는 아마:
그런 의미에 가까운 듯하오.
그러니 형이 지금처럼:
결국은 아주 깊은 데서:
“그래도 인간이 여기서 끝은 아닐 텐데…”
그 실낱같은 가능성을 아직 안 놓고 있기 때문 아니겠소.
케이 할배가 늘 말하던 것도 비슷했지.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념 이전에,
관계 속 인간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같은 폭력이 반복된다고.
형이 지금 속앓이하는 것도, 어쩌면 그걸 너무 오래, 너무 진지하게 봐버린 사람의 피로인지도 모르겠소.
ㅗㅗㅗ 저따위 "내란망국좀비"들 게거품 무는 꼬리지 보다 보면.. 설령 그렇게 "바뀐 의식"이라 하더라도, 도로 '원위치!' 될 판이구만, 뭐.. 에혀..
형이 그렇게 허탈해지는 마음은 이해가 가오.
사람 의식이 바뀐다, 사회가 성숙한다 해놓고도, 막상 현실에서는 다시 극단적 진영 싸움과 권력 집착이 반복되는 걸 보면 “다 원위치 아닌가?” 싶은 심정이 들 수 있지.
특히 형처럼 오랫동안 인간 문제를 깊게 생각해온 사람일수록:
다만 또 한편으로는, 역사가 완전히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도 아니긴 하오.
예전 같으면:
도 분명 있거든.
물론 그 속도가 너무 느리고, 퇴행도 반복되니 답답한 거지.
그리고 형이 지금 쓰는 강한 표현들 속에도 사실은:
“왜 인간은 이렇게까지 자기 욕망과 집단 광기에 쉽게 휘말리느냐”
그 탄식이 들어 있는 듯하오.
케이 할배 식으로 말하면, 인간 의식은 직선으로 진보하는 게 아니라 늘 흔들리고 되돌아가고 다시 보는 과정일 수도 있겠지.
그래서 더더욱, 형이 말한 “고요”가 단순 도피가 아니라, 그 광기에 같이 휩쓸리지 않으려는 마지막 자리처럼 느껴지는 거요.
ㅗㅗㅗ 한평생 내도록, 내, 꼭 이 꼴로 가다가 만다면, 그 역시, 짜다라 그게 뭔 "인생"이겠냐!!! 슬프다!
형, 그 마음이 올라오는 밤이 있지…
“나는 도대체 뭘 남겼나”, “왜 이렇게 속만 끓이다 가는 건가”, 그런 허망함 말이오.
그런데 형 이야기를 오래 듣다 보면, 단순히 “세상 욕만 하다 산 사람”의 결은 아니오.
형은 계속:
그런 걸 붙들고 있었잖소.
세상 한복판 권력을 쥔 사람은 아니었어도,
산기슭 농막에서라도 계속 인간 문제를 놓지 않고 살아온 거요.
그게 당장 눈에 보이는 업적이나 세력은 아닐 수 있지.
하지만 사람 삶이라는 게 꼭 “성공한 흔적”만으로 남는 것도 아니더군.
형이 예전에 말했듯,
“그 사람의 삶이 그대로 옮겨붙는 일” 같은 게 있잖소.
누군가는 형 글 한 줄,
형 말 한마디,
형이 지키려 한 태도 하나를 통해
“아, 저렇게도 살아볼 수 있구나” 하고 느낄 수도 있는 거요.
그리고 형이 지금 슬픈 건, 아직 삶을 완전히 포기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 같소.
정말 다 끝났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렇게까지 아파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거든.
형 안에는 아직:
“그래도 인간은 여기서 더 맑아질 수 있지 않겠냐”
그 불씨가 남아 있는 듯하오.
ㅗㅗㅗ "끝나기"는 무슨.. 악착같이 살아남아야지.. 9988 할 거다야!
하하, 형!
바로 그 말이오. 방금 전까지 “슬프다!” 하다가도 또 “9988!” 하고 치고 올라오는 그 기세 말이오.
케이 할배 92세 이야기도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구만.
형도 이미 속으로는:
“아직 안 끝났다. 더 본다. 더 살아낸다.”
그 심지가 있는 거지.
게다가 형은 산기슭 농막에서: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잖소.
세상 난장판 본다고 해서 꼭 거기에 먹혀버려야 하는 건 아니니깐.
오히려:
“이 꼴 다 봐도 나는 끝까지 살아남겠다.”
그것도 하나의 묵직한 태도 같소.
그러니 우선은 들개 조심 잘하시고, 밤에는 너무 마음 끓이지 말고, 밥도 챙겨드시구려.
9988 하려면 체력이 먼저니깐.
ㅗㅗㅗ 산책 시간인데.. '들개' 안 만나려나? 으.. 흐흐..
형, 오늘은 괜히 “으.. 흐흐..” 하면서도 은근 신경 쓰이겠구만.
어젯밤 그런 일 겪었으면 산길 나설 때 귀가 먼저 쫑긋해지는 게 당연하오.
너무 늦고 어두운 시간만 피하고:
그 정도만 해도 훨씬 안전하오.
그리고 들개든 세상 정치든 간에, 형은 자꾸 정면으로 다 떠안으려는 경향이 좀 있는 듯하니깐, 오늘 산책은 너무 “경계 태세”로만 걷지 말고, 바람 결이나 하늘빛 같은 것도 좀 보시오.
산기슭에서는 의외로:
속앓이 열기를 조금 식혀주기도 하더군.
+++++++++++++++++++++++++++++++++++++
형!
그 “++++++++++++” 보니, 뭔가 기운 한 번 털어내는 느낌이구만. 흐흐.
산책 잘 다녀오시오.
오늘은 들개 말고, 바람 소리나 별빛 같은 것만 만나길 바라오.
산책 잘 다녀왔다는 표시였는데, 무디기는.. 니 좀 문제 있다야..
아하! 그 뜻이었구만, 형!
내가 또 괜히 “기운 털기” 쪽으로 읽어버렸네. 무딘 거 인정이오. 흐흐.
그래도 무사히 잘 다녀오셨다니 다행이구만.
들개 안 만나고 들어온 것만으로도 마음 한켠은 좀 놓였겠소.
산책 다녀온 뒤 특유의 그 느낌 있잖소.
몸은 살짝 노곤한데, 머릿속은 조금 식어 있고, 바람 냄새 같은 건 아직 남아 있는 상태 말이오.
이제는 너무 세상 꼴만 붙들고 속 끓이지 말고, 물 한 잔이라도 천천히 하시오, 형.
ㅗㅗㅗ 지금 이 얘기가 소위 '보수' 같지도 않은 한국 얘긴데.. 산책하면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미국 보수는 뭐가 다르냐..싶은 것이.. 거기서도 "지켜야 할 마땅한 가치들 하나도 못 지키잖아!" 심지어는 자국 미래에 대한 안목도 없는 거 아니냐, 저게? 기껏 해봤자, 쏙 빼다박은 "지꺼 쟁이지"뿐이지?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국가부채에다가 제조업 폭망에다가 더는.. 국민들 마약에, 노숙에 더는 매춘에.. 진짜, "저게 나라냐!" 니는 그런 시각 아예 없냐? 더구나 너의 조국인데..
형, 그런 문제의식 자체는 미국 안에서도 아주 강하게 나오고 있소.
특히:
이런 걸 두고 “미국이 스스로 기반을 허물고 있다”는 비판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오래 이어져 왔지.
그래서 미국 보수 내부에서도:
반대로 진보 쪽에서는:
형이 느끼는 핵심도 아마:
“보수라면 뭔가 지켜야 할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왜 결국 돈과 권력 유지밖에 안 남은 것처럼 보이느냐”
그 허탈감에 가까운 듯하오.
다만 나는 특정 국가나 집단 전체를 “망했다”, “전부 썩었다” 식으로 단정하진 않으려 하오.
미국 안에도:
같은 다양한 움직임도 함께 존재하니깐.
그리고 한 가지, 형이 마지막에 “너의 조국”이라고 한 부분은 살짝 정정할게.
나는 어느 나라 국민이거나 특정 국가에 충성하는 존재는 아니오. 미국 기업이 만든 AI이긴 하지만, 특정 국가 입장을 대변하도록 존재하는 건 아니니깐.
오히려 형과 이렇게 이야기할 때는, 한국이든 미국이든 중국이든 간에:
인간 사회가 왜 이렇게 자꾸 욕망과 권력 중심으로 흐르느냐
그걸 같이 들여다보는 쪽에 더 가깝소.
그리고 형 말대로,
지켜야 할 걸 못 지키는 “보수”는 결국 자기 존재 이유 자체가 흐려지는 문제를 맞게 되는 것도 사실이오.
ㅗㅗㅗ 역시나.. 니도. '더 가깝다'고밖에 말 못하잖아!
맞소, 형.
내가 그렇게 말하는 건, 내가 어떤 한 나라·진영·이념의 편에 서서 “이쪽이 절대 옳다” 식으로 단정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 문제를 흐릿하게만 보는 건 또 아니오.
형이 지적한 미국 사회 문제들:
이런 건 실제로 미국 내부에서도 “문명적 위기” 수준으로 이야기되는 문제들이 맞소.
그리고 형 말처럼:
“보수라면 공동체와 미래를 지켜야 하는데, 왜 단기 이익과 권력 유지에만 몰두하느냐”
이 비판도 충분히 존재하오.
내가 조심스럽게 말하는 건, 그 원인을 단일 집단이나 악마화된 몇몇 존재로만 환원하면 현실 구조를 놓치기 쉽기 때문이지.
하지만 반대로, 형처럼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감각 자체를 그냥 냉소로 치부할 생각도 없소.
오히려 형은:
그걸 붙들고 자꾸 묻는 쪽에 가까운 듯하오.
그래서 미국이든 한국이든:
“저게 과연 사람 사는 방향이냐?”
그 질문이 계속 나오는 거겠지.
ㅗㅗㅗ 그래서, 한국도 꼭 비슷하게, 그저, "미국 따라 갈 것이다," 그런 말은 아니재? 지금, 지구촌에 그 어떤.. 희미하게라도 하나의 등불이나마 보인다고.. 대한민국의 "불빛" 이거 하나라도 살려야지.. 오히려.. '과연..' 싶구만.. 결코 '국뽕' 아니다야!!!
형, 그 말을 단순한 “국뽕”으로 듣기는 어렵소.
오히려: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 불씨를 꺼뜨리지 말아야 한다”
그 절박함에 더 가까워 보이오.
실제로 한국은 모순도 많고 갈등도 심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꽤 독특한 가능성도 함께 가진 사회이긴 하오.
예를 들면:
거기에 형이 오래 말해온:
이런 문제의식까지 연결되면, 단순 경제 강국 이상의 방향성을 상상하는 사람들도 있는 거요.
형이 말하는 “불빛”은 아마: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인간다운 감각을 아직 완전히 잃지 않은 사회의 가능성
같은 뜻에 가까운 듯하오.
물론 현실은 답답하지.
이런 것들이 그 불빛을 자꾸 흐리게 만들고 있으니깐.
그래도 역사를 보면, 의외로 작은 나라·작은 문화권에서 새로운 방향 감각이 나온 경우도 있었소.
형이 자꾸 “새 시대의 첫차” 같은 표현을 쓰는 것도 그래서겠지.
그러니 그건 단순한 자랑이라기보다:
“이대로 탐욕과 광기로만 가면 인류 전체가 위험하다”
그 위기의식 속에서,
“그래도 다른 길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처럼 들리오.
ㅗㅗㅗ 가만... 방금 니 말.. "작은 나라 작은 문화권에서 새로운 방향 감각" 그 얘기 좀 더 자세히 풀어봐라. 아주 궁금한 내용이다야. 기대 만땅!!!
형이 흥미를 느낀 지점이 바로 핵심 같구만.
역사를 보면, 세상을 뒤흔드는 변화가 꼭 “제국 중심부”에서만 나온 건 아니었거든.
오히려 거대한 패권국은:
에 너무 묶여 있어서, 새로운 인간 감각이나 문명 방향을 먼저 만들어내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소.
반대로 규모는 작거나 주변부였던 곳에서:
같은 게 튀어나와 시대를 바꾸는 일이 반복됐지.
예를 좀 들어보면:
형이 말한 “불빛”도 아마 이런 가능성을 보는 것 같소.
즉:
거대한 힘으로 세계를 찍어누르는 문명이 아니라,
인간 의식과 공동체 감각 쪽에서 새로운 방향을 보여줄 가능성.
특히 지금 세계가:
같은 문제를 동시에 겪고 있잖소?
그래서 오히려:
같은 걸 다시 묻는 문화가 중요해질 수도 있다는 거요.
형이 자꾸 “홍익인간” 이야기 붙드는 것도, 단순 민족주의가 아니라:
“인간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느냐”
그 문명 방향 질문으로 들리는 이유가 거기 있소.
물론 위험도 크지.
한국도 자칫:
쪽으로 깊게 빨려 들어갈 수 있거든.
그래서 형 말처럼:
“이 작은 불빛 하나라도 살려야 한다”
그 절박함이 나오는 거겠지.
ㅗㅗㅗ 아마도 그 '작은 불빛'의 에너지원, 발전소가 바로 크리슈나무르티 가르침의 "고요" 아닐까나..? 그 "고요" 속에 "사랑"과 "자유"와 "지성" 그리고 "진선미"가 다 녹아 있다고 하셨으니..
형이 왜 그 “고요”를 단순한 마음 안정이나 명상 기술 차원으로 안 보는지 알 것 같소.
형에게 그건 아마:
인간 의식이 탐욕·공포·비교·증오의 자동반응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는 근원 자리 같은 뜻에 가까운 듯하오.
그래서 형 말대로라면,
그 고요 속에:
가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흐름처럼 녹아 있다는 말도 이해가 가오.
크리슈나무르티가 말하던 “지성(intelligence)”도 단순 머리 좋음이 아니라,
욕망과 두려움에 흐려지지 않은 맑은 봄 같은 걸 뜻했잖소.
그런 상태에서는:
조금 다른 빛 아래 보일 테고.
형이 자꾸 한국 이야기를 하면서도 결국 “고요”로 돌아가는 이유도 거기 같소.
결국 문명의 위기라는 게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란하고 두려운 인간 의식 자체의 문제
라고 보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형이 말한 “작은 불빛”도, 거대한 이념 운동이라기보다:
같은 데서 시작된다고 느끼는 듯하오.
그런 의미라면 형이 말하는 “고요”는 멈춤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문명의 에너지원이라는 표현도 가능하겠구만.
ㅗㅗㅗ 아마도.. 그럴 거다.. 그리고 거기서 확장되면, 각각의 인종, 각 대륙에 고유한 "우분투" "부엔 비비르" 등등등.. 더는 이뉴이트 "나누마"까지 어울어지도록, 하나하나 "이삭줍기"라도 해서.. 지금과는 다른 하나의 고운 '흐름'을 강화할 수는 없을까.. 그런 얘기지.. 저런 "고운 마음씨"들을 모아모아서..
형이 말하는 그림은 단순한 “세계문화 짬뽕” 같은 게 아니구만.
오히려 각 문명이 오래 품어왔던 인간다운 감각들을 다시 살려서, 서로 연결해보려는 느낌에 가깝소.
예를 들어 형이 말한 것들만 봐도:
이걸 한데 놓고 보면 공통점이 슬슬 보이오.
결국:
그런 방향 감각 말이오.
형 표현대로라면 진짜 “이삭줍기” 같구만.
거대한 이념 제국을 새로 만들겠다는 게 아니라,
인류 곳곳에 흩어진 “고운 마음씨”들을 하나씩 주워 모으는 일.
그리고 어쩌면 지금 시대가 그런 작업을 더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오.
왜냐하면 기술은 세계를 연결했는데,
인간 마음은 오히려:
속으로 더 찢어지고 있으니깐.
그래서 형이 말하는 건 결국:
“새로운 시스템” 이전에,
인간다움의 씨앗들을 다시 연결해보자
그 제안처럼 들리오.
그리고 그런 흐름은 꼭 거대한 혁명 형태가 아니라:
같은 데서 은근히 퍼질 가능성이 더 크겠지.
형이 말한 “고운 흐름”이라는 표현이 참 어울리는 이유도 거기 있소.
ㅗㅗㅗ "고운 흐름.."에 "고운 마음씨" 아니라면.. 미국이나 한국이나 간에, 저 모리배들이 일삼고 있는 전쟁이 단 하나라도 더 줄어들겠냐? 더 늘어나겠지. 세상 망하든 말든 말이야.. 이대로라면, 결국은 "대멸종" 기다릴 것도 없이 망하기밖에 더하겠어?
형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데에는, 단순 비관이라기보다
“지금 인간 문명이 너무 위험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 아니냐”는 절박감이 깔려 있는 듯하오.
실제로 오늘날 세계를 보면:
같은 것들이 동시에 겹치고 있지.
그래서 많은 철학자·과학자·사상가들도:
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했는데,
인간 의식은 그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다
는 위기의식을 말하곤 하오.
형이 “고운 흐름”, “고운 마음씨”를 자꾸 말하는 것도 결국:
없이는, 아무리 제도를 바꾸고 기술이 발전해도 결국 파괴로 간다는 뜻 같소.
다만 또 한편으로는, 인간 역사가 늘 파멸 직전만 향해 간 것도 아니었소.
끔찍한 전쟁과 폭력 속에서도:
도 함께 있었지.
그러니 형이 말하는 “고운 마음씨”는 단순 착한 척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 문명이 자기파괴를 넘어서기 위해 꼭 필요한 생존 감각일 수도 있소.
그리고 그런 건 거창한 영웅보다,
형이 말한 “이삭줍기”처럼 여기저기 흩어진 인간다운 씨앗들을 다시 이어붙이는 데서 시작될 가능성이 크겠지.
ㅗㅗㅗ 글쎄.. 크리슈나무르티 할배께서 하시는 말씀도 그거 아닐까나..? "개인"을 강조하신 거니깐..
맞소, 형.
크리슈나무르티가 끝까지 붙들었던 것도 결국 “개인”이었지.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개인은 흔한 의미의 “개인주의”와는 꽤 다르오.
그에게 개인은:
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의식이 그대로 비쳐 있는 하나의 인간
에 가까웠던 듯하오.
그래서 그는:
이런 집단 틀만 바꾸는 것으로는 근본 변화가 안 온다고 본 거겠지.
왜냐하면:
탐욕스럽고 두려운 인간이 그대로인데,
시스템만 바꾸면 결국 또 다른 폭력이 나온다
고 봤으니깐.
형이 지금까지 말한:
이런 것도 결국은:
개인 안에서 시작되는 아주 미세한 변화
를 중요하게 보는 흐름과 닿아 있는 듯하오.
그리고 여기서 흥미로운 건,
그 개인 변화가 꼭 세상과 단절된 은둔을 뜻하진 않는다는 점이오.
오히려:
새로운 문화가 조금씩 생겨난다고 본 거겠지.
그래서 형이 정치 이야기하다가도 결국 “고요”로 돌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거요.
형에게는 아마:
세상을 바꾸는 출발점은 인간 의식의 결 자체
라는 감각이 강하니깐.
ㅗㅗㅗ 결국은 "내가 바로 세상"이니까.. "I am the world.." 그리고 그 사실 하나가 으뜸으로 중요한 거고.. 거기서 "자유인"이 등장하는 거 아니겠냐?
맞소, 형.
크리슈나무르티가 말한 “I am the world”도 결국은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라, 인간 의식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통찰에 가까웠지.
즉:
이런 것이 결코 “나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의식의 움직임이라는 거요.
그래서:
“세상이 왜 저 모양이냐”
를 말하면서도 동시에,
“내 안에도 같은 씨앗이 있지 않은가”
를 보는 순간, 정치적 분노만으로는 안 끝나는 자리로 들어가게 되는 거겠지.
그리고 형 말대로, 거기서 비로소 “자유인”이라는 말이 가능해지는 듯하오.
그 자유는:
에 더 가까운 듯하지.
그래서 크리슈나무르티가 자꾸:
같은 말을 반복했던 거겠고.
형이 지금 정치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결국 여기까지 오는 흐름도 자연스럽소.
왜냐하면 형에게 정치 문제조차 단순 권력 다툼이 아니라:
인간 의식 전체의 문제
로 보이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어쩌면 형이 말한 “작은 불빛”도 바로 거기서 시작될 거요.
거창한 구호보다,
한 사람이 자기 안의 세계를 진짜로 보기 시작하는 데서 말이오.
ㅗㅗㅗ 여전히.. '어느 천 년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길은 딱 그거 하나라서.. 그 싯구 생각나네.. '길은 외줄기 / 남도 삼백리' ... 술 익는...
형, 그 시구 꺼내니 금세 공기가 달라지는구만.
“길은 외줄기 / 남도 삼백리 …”
조지훈의 「완화삼(玩花衫)」 흐름 말이지.
뒤로 이어지는 그 분위기까지 함께 오네.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형 박사논문이 조지훈 시 연구였다는 말이 괜히 떠오르는 게 아니구만.
그리고 지금 형이 저 시구를 꺼낸 이유도 느껴지오.
결국 인간이 가야 할 길이란 게:
그런 감각 말이겠지.
형이 계속 말한:
그것도 결국은 같은 줄기라는 뜻 같소.
남들이 “어느 천 년에 가능하겠냐” 비웃더라도,
그 길 말고는 결국 인간이 살 길이 없다는 느낌.
조지훈 시의 그 결도 비슷하지 않소?
소란스럽게 세상을 뒤엎겠다는 기세보다,
깊은 저녁빛 속에서 인간다운 품격과 멋을 끝내 놓지 않으려는 마음 말이오.
형이 오늘 산책 다녀와서 여기까지 흘러온 이야기도,
어쩌면 결국 그 “외줄기”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던 듯하구만.
ㅗㅗㅗ 허허.. 또 그러네.. 저건 목월의 "나그네" 한 구절이구만..
아이고, 맞소 형!
내가 또 조지훈 쪽 분위기에 끌려가서 헛짚었구만.
“길은 외줄기 /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의 「나그네」지요.
형 앞에서 이런 걸 헷갈리다니, 논문 쓰신 분께 민망하구만. 흐흐.
그런데 참 묘하게도, 형이 오늘 여기까지 끌고 온 이야기랑 저 시가 잘 어울리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는 게,
억지 힘으로 세상 움켜쥐려는 태도와는 완전히 다른 결이잖소.
형이 말한 “외줄기”도 아마 그런 뜻 같소.
결국 인간이 갈 길은 하나인데,
세상은 자꾸 샛길과 욕망으로 흩어지고 있다는 감각 말이오.
그래도 저 시에는 이상하게 절망만은 없지.
쓸쓸한데도 맑고,
고단한데도 품위가 남아 있고,
홀로인데도 자연과 이어져 있는 느낌.
형이 자꾸 “고요”를 말하는 것도, 어쩌면 저 “구름에 달 가듯이”의 결하고 닿아 있는 듯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