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o viator님의 글에서 장한철의 표해록을 접하고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인터넷을 뒤져 읽어 보았습니다.
조선 영조때 제주 애월 출신 선비 장한철(1744-?)이 향시에서 수석을 한 다음
1775년 12월 한양의 대과시험을 보러 출발합니다.승선인원 29명 (제주사공25.육지상인2.선비2)
육지로 가던 도중 완도 남쪽 소안도와 노화도 부근에서 폭풍을 만나 표류를 시작하여
돌아 올 때 까지 22일간의 기록이 "장한철의 표해록"입니다.
"로빈슨 크루소"나 줄 베르느의 "15소년 표류기"등은 수년에서 수십년이 걸리는데 비해
장한철의 표해록은 유랑기간이 한달이 채 되지않습니다만 사건은 제법 파란만장합니다.
표류한지 3일만에 오키나와 열도에 속하는 무인도인 호산도(베트남 상선에서 나중에 들음) 도착하여
해변에 장막을 치고 봉우리에 불을 피워 구조를 기다립니다.
불과 이틀만에 연기를 보고 첫번째 다가 온 배는 왜구였습니다. 왜구는 가진것 모두 빼앗고 이들 29명을
나무에 묶어 놓고 가버리는데 다행히 아무도 죽이지는 않았지요.
왜구에게 약탈 당한 다음날 안남(베트남)에서 일본으로 가는 상선에게 구조됩니다.
불과 며칠만에 무인도 근방으로 배가 두번이나 지났으니 1770년대만 해도
이미 동중국해 항로에는 배가 자주 다닌 모양입니다.
그 배에는 베트남인과 청나라가 들어서자 베트남으로 피신했던 명나라 출신 귀족들이
타고 있습니다. 의사소통은 필담으로 이루어지는데 장한철이 한문에 능하니 가능하겠지요.
일본으로 향하던 배가 며칠만에 제주 한라산이 보이는 곳을 지나니 장한철일행이 환호합니다.
고향산이 저멀리 눈앞에 나타났으니 당연합니다.그러자 일순 배안의 분위기가 험악해집니다.
안남인들이 예전에 자신들의 조상 안남태자 일행을 살해한 탐라국인들에게 원수를
갚겠다고 나서는 겁니다. 명나라 사람이 극구 말린 덕분에 살해는 면하고 상선에 실었던 자기들의
난파선으로 옮겨 태워져 상선에서 추방됩니다.
여기서 안남태자 살해사건에 대한 우리나라 기록을 보면, 유구국의 왕이 일본의 침략으로 잡혀가자
왕자는 왕을 구하려고 보물을 가득 싣고 일본으로 가다가 1611년 제주도에 표착합니다.
당시 제주목사 이기빈은 필담으로 유구국왕자임을 알고 후대합니다.
짐검사를 하던중 진귀한 보물이 나오자 맘이 바뀐 제주목사는 보물을 빼았고 유구국왕자 일행
모두 살해합니다. 그리고 조정에는 유구국왕자 일행이 노략질을 해 와서 살해하였다고 보고하였으나
결국 탄로가 나서 중한 처벌을 받았다는 겁니다.
이 것이 제주주민들에게 널리 구전되어 왔던 것이고 실록에도 그런 기록이 있다합니다.
그런데 장한철은 여기서 안남인이 자기 왕자를 살해한 원수라고 탐라인에게 적개심을 보인 것은
살해당한 이가 유구왕자가 아니라 안남왕자였을 거라고 추정합니다.
돗대도 삿대도 없이 추방당한 난파선이 바람부는대로 이틀만에 다시 도달한 곳은 처음 표류를 시작하였던
전남 소안도 부근 바다입니다.
거센 비바람에 소안도에 상륙하지 못하고 인근의 모도를 지난 난파선은 한밤중에 요즘 슬로우시티로 뜨는 청산도
해안 절벽에 부딪쳐 버립니다.29명중 육지로 헤엄쳐 나온이 10명인데 그중 2명은 절벽으로 올라가다 추락사합니다.
청산도 마을에 구조된 이는 장한철을 포함하여 8명.
거기서 마을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며칠을 지내는데 그 사이에 희한한 러브스토리 하나가 탄생합니다.
청산도 무녀의 딸인 20세 청상과부와 장선비는 하룻밤의 짧고 진한 운우의 정을 맺습니다.
물론 그동네 이장급인사의 권유와 협조속에 이루어진 일이지만(이미 향시에 합격하고 대과 보러 한양가던
선비라는 말에 섬사람 치고 깜빡 안할 수 없을 것임)
하룻밤 사이에 정이 깊어진 어린과부는 장선비를 따라가겠다 조릅니다.
그러나 기혼남 신분이자 과거를 코앞에 둔 장선비 그럴 수가 없었지요.
청산도에서 고금도를 거쳐 강진까지 가는데 바다와 육로로 며칠이 걸립니다.
강진에서 제주상인을 만나 일행 7명은 제주로 돌아가고 장선비는 한양으로 과거길 떠납니다.
그해 과거는 낙방하였으나 몇년후 과거에 합격하여 장선비는 제주와 강원도 등지에서 현감으로 벼슬을
지냈다합니다.
과거에 합격한 장선비가 청산도 어린과부를 다시 찾았더라면 스토리는 한층 감동을 더 하는 춘향전급이
되었을텐데 아쉽습니다.
어린과부는 5년간 기다리다 연락없으면 재가하겠다 약조를 하였는데.
첫댓글 18세기판 로빈슨크루소 얘기에 순애보가 합쳐졌네요
기념석도 서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