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둘이서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출발 직전 무작정 생각나는 곳으로 정하기로 했다. 여행은 원래 즉흥적인 게 제 맛이라며 호기롭게 길을 나섰다. 다양한 수식어가 통용되는 그곳 구국의 땅, 예술의 도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중추. 이 모든 수식어를 포괄하는 도시, 바로 통영이다. 통영에 도착 후 처음 향한 곳은 강구안이다. 개울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입구란 뜻의 그 곳은 통제영 당시 판옥선과 거북선 등의 전선이 정박하던 곳이다. 지금은 통영문화마당으로 당시의 모습을 3척의 거북선 모형의 배가 의젓이 지켜내고 있다. 호기심에 들어가 본 모형배 안에는 당시 해군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항구 맞은편에 위치한 중앙시장은 생기가 넘친다. 바쁜 삶의 현장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려니 긴장감이 흐를 정도. 그렇게 복잡한 시장 앞을 지나면 항구 맞은편 골목 사이에 동피랑 마을이 보인다. '동쪽에 비탈'이라는 지역 사투리가 합쳐진 지명의 이곳은 일제강점기 시절 통영항과 중앙시장에서 일하던 외지 하층민들이 기거했던 곳이다.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가파른 언덕의 그곳은 과거 철거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예술인들이 힘을 모아 아름다운 벽화를 그려 동네를 지켜냈다. 동피랑에서 머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남망산 조각공원도 오르막의 매력이 물씬 베어 난다. 언덕 끝자락에 위치한 그 곳은 라파엘 소토, 장 피에르 에이노, 대니 카라반 등 국제적 조각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자전거로 넉넉히 20여분 정도 떨어진 곳의 이순신 공원도 인상적이다. 눈이 시릴 듯한 높이에 이순신 장군 동상과 그분의 시선 쪽으로 탁 트인 한산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다도해가 아름답다. 공원 내에 지그재그로 이뤄진 데크와 바다로 흘러있는 기암들의 어울림도 환상적이다. 해가 지고, 숙소로 가기 위해 해저터널로 향했다. 북통영과 남통영을 이어주는 곳이기에 그 곳을 통해 건너가야 했다. 일제 강점기에 설립되었다는 것이 다소 가슴 아프지만, 동양최초의 해저구조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없진 않다. 여객선 터미널을 지나 어둑한 골목 사잇길로 접하자마자 바로 눈에 들어오는 터널. 내부 길을 따라 리듬감 있게 점멸하는 찬란한 빛의 움직임이 잔상을 남긴다. 과거의 어둠을 현재의 아름다운 불빛들로 덮어내는 양. 비단 아름다움만을 간직했다면 쉽게 잊혀질 만한 여행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안에 용해되어 있는 역사의 이면과 삶의 저변, 그들의 혼이 함께였기에 강렬히 뇌리에 각인된 곳, 바로 통영이다. 탈 맛나는 도시 1박 2일 일정으로 통영 여행에 나섰다. 첫날은 해안 자전거길의 분기점인 통영문화마당을 시작으로 동피랑 마을, 남망산 조각공원, 이순신 장군 공원을 거쳐 해저터널과 통영대교까지 약 9km의 코스를 둘러보았다. 장소로만 보면 다소 빡빡해 보이는 일정이다. 도보 여행으로는 부담스럽고, 차편을 선택하기에는 효율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자전거를 이용한다면 충분한 거리이다. 때문에 첫날 계획한 모든 일정을 순조롭게 소화할 수 있었다. 물론, 해안 도로에만 조성된 자전거길과 간간히 보이는 턱으로 인해 모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러나 짧은 시간 안에 통영 시내에 몰려 있는 모든 명소들을 둘러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자전거 여행지로서의 통영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이튿날 아침, 일출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충무 마리나 리조트 앞에 조성된 테마 자전거길을 찾았다. 총 4구간이 왕복 8km로 구성된 해안 자전거길이다. 시즌 중에는 자전거를 대여해 주기도 한다. 이른 아침임에도 많은 이들이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해안 라이딩을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진행 방향에 따라 좌우 색상을 달리해서 깔린 우레탄 바닥은, 길 끝까지 순탄히 이어지지 않아 중간에 거친 노면을 맞닥뜨려야 했다. 하지만 훗날 완공될 통영시 전체의 해안 자전거길의 매력을 미리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배에 자전거를 싣고, 마지막 여정지인 한산도로 향했다.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서 25분 거리에 있는 그곳은 통영 관할 내의 섬들 중 자전거 타기에 좋은 장소로 유명하다. 하지만 목적지인 제승당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사령부가 있던 국가 사적지이기 때문에 자전거가 출입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외에 잘 닦인 도로와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도로는 그곳의 유명세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했다. 그곳에 상주해있는 관리자들 또한 자전거로 이동하며, 여름철의 경우 자전거 대여도 해줄 정도로 자전거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대단했다. 통영 종합버스터미널로 향하던 중, 버스와 나란히 오르막길을 오르는 자전거 탄 남자를 보았다. 가파른 길을 쉬지 않고 힘차게 오르는 그 자전거가 마치 지금의 통영과 같았다. 자전거 도시로서 이제 막 도움닫기를 한 통영은 극복해야 할 난관도, 개선해야 할 미흡한 부분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자전거 도시로 거듭날 만한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글/사진 :김정아, 이민영 맛있는 도시, 통영을 가다 글: 김정아 하루 세끼. 우리는 적어도 매일 3시간씩은 식사를 위해 할애한다. 단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것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많은 문화가 그것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기에 그 시간은 적잖은 인생의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인간의 5대 감각수용기에 중요한 역할인 미각의 즐거움을 위해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도 있다. 국경까진 아니지만 한반도의 끝자락으로 맛을 찾아 떠나기에 충분한 도시, 통영으로 향했다. 평소 육해공(陸海空)의 음식 중 해에 대한 집착이 남다른 에디터에게 통영 굴은 상당한 지리적 떡밥역할을 했다. 해산물이 풍부한 통영이지만 그 중 굴이 자라는 자연환경이 좋아 최상의 맛이 만들어지기 때문. 딱딱한 껍질 속에 여린 속살을 감추고 입 속으로 부드럽게 밀려들어 감기는 짜릿한 맛. 날짐승과 들짐승의 솔직한 육질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그렇게 4시간이 넘는 여정을 감내하고 통영의 코스요리로 유명한 식당을 찾았다. 주재료는 하나인데 갖가지 치장으로 전혀 다른 주인공들이 식탁을 차지한다. 전에 맛보지 못한 부드러운 튀김 옷에 달콤한 소스를 입힌 굴탕수육, 청양고추의 알싸한 맛을 담아 중독성의 끝을 보인 굴전, 매콤 새콤 달콤의 3박자를 고루 갖춘 상큼한 굴무침, 따듯한 쇠고기 국물의 진한 맛에 굴 특유의 시원한 맛이 조화로운 굴국. 탱글탱글한 식감으로 자연스레 식도로 빨려 들어가는 생굴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굴 하나로 전혀 다른 맛이 선보여진 훌륭한 밥상에 긴 여정의 피로가 말끔히 해소되는 듯 했다. 기분 좋은 포만감을 안고 통영 시내를 돌았다. '동양의 나폴리'라는 수식어에 대한 수용이 채 되기도 전, 길거리 곳곳에 산재되어 시야를 괴롭히는 간식이 있었으니 바로 '꿀빵'. 겉보기엔 재래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넛과 흡사했다. 그런데 침샘을 자극하는 이름으로 블록마다 집요하게 중복되어 발목을 붙잡는 통에 결국 페달을 멈추고 가게로 들어섰다. 반질반질한 시럽을 흠씬 적신 채로 온 몸의 노릇한 빛깔로 유혹한다. 그 위에 살포시 뿌려진 견과류가 더해져 침샘을 자극했다. 그것을 한입 베어 물자 팥을 가득 품고 있던 속사정이 드러난다. 예상했던 맛임에도 불구하고 페달링 후 급속도로 당이 충전되어 온 몸이 나른해졌다. 노릇하게 튀겨진 겉옷은 고소함을 더해준다. 예상 외의 독특한 맛은 아닐지언정 달콤함의 절정이 통영 기후에도 쉽게 상하지 않겠다. 뱃사람들의 간식거리로 제격일 법한 그곳다운 맛임에 틀림없다. 단지 꿀이라는 수식어가 민망할 만큼 함유가 적은 것은 비단 꿀빵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적당히 넘어가는 센스. 항구도시인 지리적 유래에 비롯한 또 다른 음식으로 충무김밥도 빼놓을 수 없다. 비록 지금은 충무와 통영의 행정구역이 통합되어 충무시가 사라졌다. 때문에 김밥이름으로 당시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시초는 뱃사람들의 끼니에서 나온다. 어부들의 먼 뱃길 동안 김밥이 빨리 상하자, 밥만 따로 말아 쭈꾸미 꼬지를 별도로 취한 데서 비롯됐다는 설이다. 때문에 충무김밥은 아무것도 넣지 않고 김에 밥만 말은 것을 무김치, 오징어무침과 함께 곁들여 먹는다. 흔히 접했던 참기름이 발려진 속이 꽉 찬 김밥과는 다른 소박한 맛이 있다. 지금 우리네 입맛에서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시 그들에게 있어선 배려가 담긴 효율적 음식이었을 것이다.훌륭한 풍광과 함께 맛의 풍미가 더해지는 곳이다. 다소 물가가 비싸긴 해도 값진 오감만족으로 톡톡한 값어치를 하는 도시다. 뭐가 그리 바쁘시나요 글: 이민영 올 겨울은 27년만에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쳤다. 한없이 몸이 움츠러들었고, 잘 될 만한 일도 안 풀리는 듯 했다. 마음을 다잡아 보아도 쉽게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색다른 힐링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랬던 차에 남해안으로 바퀴를 굴려보자는 뜻밖의 뉴스. 예상했던 만큼 통영은 따뜻했다. 서울보다 기온이 높을 것을 고려해서 입고 간 최소한의 겨울 옷이었음에도 가벼운 옷차림의 통영 시민들 사이에서 우리는 별 수 없는 이방인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오랜만에 느끼는 따스함에 웃옷은 벗어 둘러매고 무작정 페달을 밟았다. 남들보다 빨리 시즌 오픈 한다는 괜한 우월감에 사로잡혀 평소에는 쑥스러워 선뜻 하지 못했던 수신호까지 연발하며 신나게 달렸다. 그렇게 1박 2일 동안 원 없이 달리니 세상에 화날 일, 슬플 일이 뭐가 있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넉넉해졌고, 잡념들로 탁해진 머릿속은 맑은 기운을 되찾을 수 있었다. 특히, 새벽 여명이 밝아올 때 즈음, 바다의 적막을 깨고 통영 자전거 테마로를 달릴 때는 형용할 수 없는 상쾌함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다시 곱씹어봐도 좋을 만큼. 돌아오는 길, 통영에서의 추억을 되짚어 보던 중 평소 자전거에 관심이 많아 더욱 각별한 인심을 베풀어 주셨던 '울라봉 카페' 사장님과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사장님의 마음을 듬뿍 담은 '쌍욕 라떼' 한잔, 가는 길에 먹으라며 두 손에 꼭 쥐어주시던 귤과 초콜릿, 그곳의 공기를 훈훈하게 데우던 그 날의 대화들 모두. 하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을 한가지는 카페를 장식하고 있던 한 문구일 것 같다. '뭐가 그리 바쁘시나요'. 무심하게 쓰여진 이 짧은 문구가 유독 여유가 없던 요즘의 내 모습을 돌이켜보게 했다. 그렇다. 나는 필요이상으로 서둘렀고, 답 없는 생각의 더미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괴롭혔다. 25세, 반 오십에 들어서면서 어느 때보다 중요한 기로에 서있다는 생각을 하니, 괜한 조바심에 날을 세우고 매사를 대했던 것 같다. 물론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들 중 하나를 해야 하는 시기이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하였다. 통영에서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시즌오프를 즐긴 나는 여유롭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