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시 여행] 박달재 고목 속 부처의 미소와 번뇌 목굴암.........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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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 여행] 박달재 고목 속 부처의 미소와 번뇌 목굴암.........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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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국토의 약 2/3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긴 하나 반면에 2.000m이상의 높은 산이 없다. 불교를 국교로 삼
은 만큼 예로부터 산을 신성시하여 十二宗山[십이종산], 五嶽[오악], 四大名山[4대명산] 등을 정하고 제사를 지내
기도 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남한에는 산이라고 하는 크고 작은 산을 포함 총 8,751개의 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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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산이 많은 덕분에 우리나라는 고개들도 수없이 많다. 그러다 보니 자연 스럽게 크고 작은 고개마다 구구
절절한 사연 또한 한둘이 아니다. 별따라 간사랑 불러보다 옛 추억을 헤아리다 보면 눈물 짓는 여인의 한 맺힌 사
연들이 흘러 흘러 야담이 되는 곳, 고갯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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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과 금봉이의 동상이 있는 공원을 지나 충주 방향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목각을 전해 놓은 목굴 암이란 특이
한 암자가 나온다. 이름하여 1000년 느티나무 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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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갯길 마다 만남과 이별이 엇갈리고, 그리움과 기다림이 쌓인 고갯마루. 우리 삶에 들어와 있는 고개들에는
오늘도 스쳐 가는 은빛사연들이 밤하늘에 가득 쌓여간다. 멀고도 먼 방랑길 따라 마을과 마을을 이어 주는 작은
고개가 있는가 하면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는 큰 고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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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고개는 마을 사람들이 다니던 소통의 길이었다면 큰 고개는 먼 길을 나선 나그네와 보부상, 시집간 처녀들
이 넘나들던 길이다. 오늘 유랑자가 방문한 시랑산 자락의 박달고개 또한 마찬가지로 애닳고 구구절절한 사랑 이
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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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엽 선비 박달과 제천 평동마을 금봉낭자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서린 충북 제천 박달재에 가면 꼭 놓
쳐서는 안 될 목각전시관이 있다. 고갯길에서 충주 방향으로 약 100여m쯤 내려가면 특이한 나무작품들을 볼 수
있다. 이름하여 국내 유일의 木窟庵(목굴암)과 五百羅漢[오백나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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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굴암 역시도 몇 번의 방문 기억이 있다. 서울의 지인들이 내려오면 박달재로, 청풍호로 돌아본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목굴 암을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커다란 나무속을 파내어 아미타불을 조각한 목굴 암과, 三尊佛[삼
존불]과 오백 명의 제자를 하나하나 새겨 넣은 五百羅漢[오백나한]도 참 인상적인 박달재의 볼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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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굴 암과 오백나한전은 박달재에서 꼭 들러야 할 곳으로 꼽힌다. 불당이지만 현대식 건물 안에 전시관 형태로
꾸며져 있다. 목굴 암은 어성호(성각스님) 작가가 3년 2개월의 작업 끝에 둘레 8m의 느티나무 안에 새긴 아미타
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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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가 항상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불심 아니 신앙심이란 유랑자의 두뇌로는 이해불가결한 모습들이다. 신앙
이 무엇이길 레…….아무튼 목굴 암은 1000년 된 느티나무 안에 굴을 파고 그 안에 아미타불을 조각한 암자이기
에 목굴 암이라 한다. 유랑자는 조심스럽게 실내로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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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암자 속 부처님! 1.000년 된 느티나무의 작은 구멍 사이로 황금빛이 발하고 있다. 느티나무 괴목 안에 조각해
놓은 극락왕생 의 상징인 아미타불 부처님 을 조각해 놓았다. 지붕은 황 연, 청 연, 홍 연, 으로 연꽃을 조각 하여
완성되었다. 마냥 신기할 뿐이다. 나무의 굵기도 어마 무시한 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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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느티나무 속을 긁어 1인 암자를 만들었는데 나무에 뚫린 엄지손가락만한 구멍으로 새어나오는 황금빛
나는 부처님의 얼굴은 예술이었다. 박달재 관광의 최고 명소 중 하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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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는 어른 다섯 명이 손을 맞잡아야 겨우 둘러 안을 수 있는 굵기[높이:약6.5M,둘레:8M]이다. 그런데 누구
든 이 암자에 들어가려면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아담한 공간이 마치 토굴이나 석굴 같은
느낌을 준다. 정성치고는 너무나 기막힌 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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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16년째 머물고 있는 성각스님[어성호 작가의 법명]이 '천년목찰 목굴 암' '천년목찰 오백나한전'을 만들어
놓았다. 나무를 직접 조각해 만든 집념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걸작이다. 그 큰 느티나무 고목의 속을 도려내 조각
해 놓은 것이다. 당연히 박달재 관광의 최고 명소 중 하나가 되어 버린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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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밑동 안으로 한 사람만 겨우 들어가 무릎 꿇을 수 있는 좁은 공간이 있고, 고개를 들면 황금 불상이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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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소재인 고목은 인근 충주에서 발견한 1.000년 된 느티나무 고사목을 이용한 것이다. 성각스님은 충주에서
이 나무를 발견한 순간 부처의 제자들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인에게 나무를 판매하려던 주인
을 만나 “민족의 유산으로 남기고자 한다."고 설득하여 이 나무를 박달재로 옮겨오게 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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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를 가져온 성각스님은 박달 재 방문객 개개인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고 고증이 없는 풍설 의 박달 과 금
봉이 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그 둘의 영혼이 부처의 힘으로 천년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단다. 역시 목굴암 스토리 또한 박달 이와 금봉이의 사랑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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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굴 암 옆으로는 [둘레 8.5m, 높이 7.2m]의 천 년 된 느티나무 안에 오백 나한과 삼존불이 새겨져 있다. 대단
한 정성이 깃든 작품이라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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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경제적 어려움 속에 작가 어 성호(성각)스님은 순수 자비 부담으로 국내 유일 목굴 암을 완성했다. 이 목굴
암은 2005년 5월부터 2008년 7월(3년 2개월)에 걸쳐 완성 되었다고 알려준다. 목굴 암 꼭대기에는 가지를 깎아 만
든 연꽃이 있는데, 이 연꽃은 진흙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연꽃처럼 박달 이와 금봉이의 영혼이 극락에 이르
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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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스님은 나무의 비어있는 속을 깎아 넓혀 작업공간을 만든 다음, 울퉁불퉁한 내부표면을 다
듬어 두께가 일정하도록 하였으며, 아미타불을 조각한 후 금을 입혀 마무리하였다. 그 금빛이 목굴 암 구멍 사이
로 빛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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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나한전 역시 속이 보이는 느티나무 고목에 조각한 작품이다. 해학적인 얼굴 표정 하나하나가 살아 있어 불
자가 아니어도 그 공력에 감탄하게 된다. 오백나한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정리하기 위해 모인 500명의 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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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목굴 암은 내부 폭이 좁아 한 번에 한 명씩 밖에 들어갈 수 없다. 유랑자가 서두에서 말한 1인 1암자 속 부
처님! 이다. 이것은 이 작품을 찾는 이들이 홀로 작품을 감상하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자각하고, 나아가 주
위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깨닫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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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목굴 암 안에서 잠시 두 손을 모아본다. 바람의 간지럽힘이 목굴 암 안으로 파고든다. 이 목굴 암이 신비
스럽기도 하지만 옆에 있는 오백나한전 또한 각각의 얼굴이 다른 작품 중에 작품! 걸작 중에 걸작이다.
목굴 암 옆에는 목굴암과 크기가 비슷한 느티나무[둘레 8.5m, 높이 7.2m]에 저마다 생김새가 다른 오백나한과 삼
존불을 새긴 오백나한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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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나한은 쪼개진 나무 안에 三尊佛[삼존불]과 五百羅漢[오백나한]을 조각한 것이다. 느티나무 속에 500나한을
조각한 성각 스님의 정성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는 스님의 억척스러운 固執[고집]과 我執[아집] 그리고 신앙
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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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나한이란 석가여래가 입적한 후 그의 가르침을 결집하기 위해 모인 500명의 아라한, 즉 부처님의 제자를 이
야기한다. 인간의 生老病死[생로병사]와 喜怒哀樂[희로애락], 百人煩惱[백팔번뇌]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여겨지는 나한을 믿는 문화는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크게 성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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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도 한국의 많은 사찰에서는 나한전을 건립하여 부처 뿐 아니라 그 제자들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고 있다.
아무튼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스님은 나무의 내부 굴곡을 살려 표면을 다듬고 오백나한을 조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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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나무의 중심에 부처님의 수호자이며 과거를 관장하는 提華褐羅佛[제화갈라불]과 불교의 교조로서 현재
를 관장하는 釋迦牟尼佛[석가모니불], 사후 사바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를 관장하는 彌勒佛[미륵
불]로 구성된 三尊佛[삼존불]을 조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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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과 금봉이의 애틋한 사랑 정신이 좋아 이곳에 16년째 머문다는 달변이신 성각스님. 스님의 목각 예술에 놀
라울 따름이다. 세월의 흐름도 스님도 벗어날수는 없었나 보다. 항상 이지만 스님이 건강 하시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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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無遠慮 必有近憂[인무원려 필유근우]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이글은 공자님 말씀중 논어에 나오는 말로서
“사람은 멀리 생각하여 염려함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시일 내에 근심이 있게 된다”. 멀리 길게 내다보는 생각
을 하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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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성은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세 부처와 그 제자들의 깨달음을 느끼고 마음의 평
안을 얻기를 바라는 스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1층인 목굴 암과 오백나한전을 둘러보고 나서 건물 2
층으로 올라가면 전시실에 마련된 다양한 나무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역시 하나같이 다 걸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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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 작품이 재밌는 인상을 남겼는데,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작품이 반질반질 빛이 났다.
ㅋ누가 만졌을까?^&^* 또한 천천히 둘러 보면 벽에 걸린 액자들 속에서 이 작품들을 만드신 성각스님의 사진도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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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은 알겠지만 이곳 조각들은 매우 작품성이 뛰어나고 귀한 것이어서 인간 적으로 '빛'을 좀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돈도 없고 땅도 없고 살짝 '움막살이' 신세라는 스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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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전시실 중앙에 커다란 탁자와 의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서예와 목공체험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장소 이다.
이곳에서는 방문객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스님이 배려해 놓았기 때문이다. 혹여 모굴암을 방문 하는 길이 있다면
이곳에서 스님의 지도아래 서예와 조각에 대한 체험을 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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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고갯마루에서 전설이 되고 노래가 된 박달선비와 금봉낭자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돌아보고 난 다음엔 박
달재 목각공원에서 충주 방향으로 조금만 아래로 발길을 옮겨 이곳 목굴 암과 오백나한전을 모신 천년목찰을 찾
으면 된다. 구지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로 색다른 예술적인 불교작품을 감상하실 수 있으
니, 박달재 가시면 놓치지 말고 꼭 둘러보시길 이 유랑자가 강추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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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각스님은 달마스님 365분을 모신 법당을 짓겠다며 달마 상을 조각 중이었고, 느티나무 고사목으로 산신각을
짓겠다며 또한 작업 중이었다. 숱한 나무 마치가 부서지도록 조각에 몰두하는 스님의 정진은 속인이 범접하기 쉽
지 않은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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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나들이 홈클릭👍
▶ https://tour.jecheon.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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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나들이 홈페이지 클릭✌
▶네바퀴로떠나는 충북여행 (chungbuk.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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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클릭👌
*https://cafe.daum.net/b2345/9toB/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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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재는 박달과 금봉만 울고 넘은 게 아니었다. 아흔아홉 굽이로 돌아가는 박달재를 넘어 시집가는 새색시는
친정에 다시 오지 못할까 서러워 울었고, 나그네는 첩첩산중에서 산짐승이나 도적을 만날까 봐 가슴 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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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 705-32
*연락처:010-9406-4578,[010-2352-9616]
*이용요금: 무료
*주차: 무료
*[이용시간]
하절기 : 08:00~19:00
동절기 : 09:00~17:00
*2층 전시간 : 09:0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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