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좋아한다.
매니아는 아니지만 그 향과 함께 선물처럼 따라오는 차분해지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물론 드립커피가 제격이겠지만 시중에 나오는 제품 '카누' 처럼 순수하게 커피맛을 살린
아메리카노 종류를 좋아한다. 하루 석 잔쯤 그 맛을 즐긴다.
거의 혼자서 나서는 토요일 아침의 이른 산행에도 커피는 빠지지 않는다.
산행에서는, 커피 매니아라면 단숨에 촌스럽다고 무시(?)할 약간의 달달함이 섞인 커피가
좋다. 거기에 고급 꼬냑(브랜디)이나 위스키를 몇 방울 떨어뜨리는 사치를 누린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 풍광 좋은 곳에 앉아 마시는 그 커피의 맛은 자칫 혼자만의 세상에
몰입하기 쉬운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어 준다. 차(茶)가 주는 선물이다.
수십 년째 함께 하는 산행 일당 중 후배 하나는 설악산에 가거나 지리산을 2박 3일로
타도 드립 커피를 챙겨온다. 전에는 나 모르게 술병을 몇 개씩 배낭 아래에 숨겨 오던
후배가 지천명을 넘더니 커피 매니아로 바뀌었다. 술 대신 커피를 즐기니 왁자지껄함은
줄었으나 조용조용한 대화가 더 길어졌다. 담배는 한 후배만 남기고 모두 끊었다.
커피 매니아가 아니기에 여름날엔 아이스 커피를, 카페에서는 카페라떼를 즐겨 마신다.
십 년도 더 지난 날에 업무차 LA 에 한 달씩 출장을 여러차례 갔었다.
지겨웠다. 호텔 셔틀버스로 호텔과 공항을 오가는 일 말고는 움직이기가 아주 불편한 곳이
미국이다. 그때 호텔 건너편에 있는 스타벅스에 나가 캘리포니아의 맑은 하늘 아래 커피를
마시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별 일이 없었는 데도 허리가 지속적으로 아파와서 지인이 추천해 준 한약을 먹기로 했다.
커피와 술을 먹지 말란다.
술이야 좋은 자리에서만 마시지만 커피는 늘 마시는 것인데...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와 90 이 다 되어서도 성질 죽지 않은 채 혼자 계신 아버지를 뵙고
오던 어제밤 쉬 잠들지 못하고 김행숙의 현대시를 읽다가 문득 전에 읽은 노희경의 책을
잡았다. 결국 커피를 마셨다. 아침에 보니 200 쪽에 책갈피가 끼워져 있었다.
"인생은 사랑하면 되고,
행복하면, 더는 다른 목적이 없이 끝나도 좋은 것"
-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200쪽 -
2018. 10. 7
첫댓글 부모님 걱정에 잠못이룬다... 그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