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세상에게
미움과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세상 것에 사로잡혀 진리를 외면한 사람들은
진리에 따라 사는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이다(복음).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다.”
복음의 말씀입니다.
믿는 이에게 박해는 당연하다는 가르침입니다.
누구나 박해를 싫어합니다.
반대만 해도 언짢은 기색이 역력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반대를 넘어 박해를 받아들이라고 하십니다.
화산은 활화산과 사화산이 있습니다.
활화산은 언제 터질지 몰라 위험하지만 주변에 온천을 만듭니다.
질이 좋은 온천수를 제공해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화산에는 위험도 없고 온천도 없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냥 구경거리가 될 뿐입니다.
신앙은 살아 있는 활화산이지 죽은 사화산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죽은 믿음’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활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와 봉헌과 공부가 없으면
신앙 역시 삶의 장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생에 부담을 주는 ‘거룩한 장식’으로 바뀝니다.
유혹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믿음의 길이 부담스럽다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신앙생활이 귀찮은 이유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지요.
그것이 현대의 박해입니다.
오늘날의 박해는 그런 모습으로 다가와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기도가 생명입니다.
기도가 없기에 주님께서 힘을 주셔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성당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무심코 왔던 성당이 하느님의 힘을 받는 장소였던 것입니다.
언제라도 성당에 오는 첫 목적은 기도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 아버지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그분의 뜻을 ‘당신의 생명’으로 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스승님의 이런 모습을 닮으려 애썼습니다.
훗날 그들의 삶을 지배했던 것은 스승님의 말씀과 행동이었지,
다른 무엇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의 단순한 이 모방은
현실을 사는 신앙인들에게 길잡이가 됩니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가치관이 있습니다.
‘물질과 소유’가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위치로 치닫고 있습니다.
젊음과 아름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위해 숱한 조직과 정보가 ‘쾌락주의’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공공연하게 실용주의를 표방합니다.
최고의 가치는 ‘나에게 유익한 것’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믿는 이들은 세상의 가치관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신앙인을 지배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문제가 생기면
너무 쉽게 세상 판단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성급한 출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는 제자들의 처신을 본받아야 합니다.
은총의 ‘이끄심’에 맡기려는 시도입니다.
‘내가 너희를 뽑았기에 너희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
삶이 힘들수록 복음 말씀을 기억하며
기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첫댓글 "믿음의 길이
부담스럽다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신앙생활이 귀찮은 이유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지요.
기도가 없기에
주님께서 힘을 주셔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삶이 힘들수록 복음 말씀을 기억하며
기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아멘
오늘도 잘 차려주신 밥상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은총가득한 주일 보내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