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고장 강릉(江陵)<5>
<8> 강릉 단오제(端午際)
대관령 국사성황(國師城隍) / 대관령 산신(山神) / 위패(位牌)와 신목(神木) 모시기
강릉에서 열리는 강릉단오제(江陵端午祭)는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단오제 행사로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2005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강릉단오제는 대관령산신(大關嶺山神)과 국사성황(國師城隍)을 남대천 변 단오장에 모시고 제사하며, 산로안전(山路安全)과 풍작(豊作), 풍어(豊漁), 집안의 태평 등을 기원하는 제의(祭儀)이자 축제이다.
♣서낭=성황(城隍) - 같은 의미이다.
단오제의 주신(主神)은 신라(新羅) 시대 칼로 나라를 지킨 김유신(金庾信) 장군이 대관령산신(山神)이고, 대관령국사성황(國師城隍)은 불법으로 나라를 지킨 범일국사(梵日國師)이다.
범일국사의 탄생 설화를 보면 범일국사는 이곳 학산(鶴山)마을에서 태어났는데 강릉김씨 양갓집 규수가 우물(石泉)에 물을 길러 가서 바가지에 물을 푸는데 마침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가 떠있어 마셨더니 태기(胎氣)가 있었다. 열 달이 지난 후 처녀가 아이를 낳자 집 뒤의 언덕에 있는 바위 밑에 가져다 버렸다.
마음이 아파 이튿날 아침에 가 보았더니 학이 품에 안고 산짐승들이 젖을 먹이고 있었다.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 아이를 데려와 키우니 바로 범일국사인데 떠오르는 해를 받아 마시고 잉태된 아이라 하여 범일(梵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汎-뜰 범, 日-해 일>
이 범일(梵日)이 신라 최고의 고승(高僧)인 범일국사(梵日國師)이고 학산(鶴山)에 신라 말 불교의 대종단(大宗團)인 선문구산(禪門九山) 중 하나인 사굴산파(闍崛山派)의 총본산 굴산사(崛山寺)를 창건했다.
학산(鶴山)에 가면 학이 아이를 안고 있던 학(鶴)바위, 해가 뜬 물을 퍼서 마신 석천(石泉), 굴산사 당간지주(幢竿支柱) 등 수많은 유적들이 널려있다.
구산 서낭제(城隍祭) / 학산 서낭제(城隍祭) / 국사여서낭(國師女城隍-홍제동)
단오제의 절차를 보면 4월 15일, 대관령에 있는 산신각과 성황사에 가서 대관령산신제(김유신 장군)와 대관령국사성황제(범일국사)를 지내고 대관령 옛길을 따라 내려오다 산 밑에 있는 구산(邱山)에서 성황당(城隍堂)에서 서낭제를 올린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범일국사의 고향인 학산으로 가서 다시 서낭제를 지내고 홍제동 국사여성황사(國師女城隍祠)에서 봉안제(奉安祭)를 올린 다음 음력 5월 3일에 굿당으로 모시고 영신제(迎神祭)를 지내는 절차를 밟는다.
단오제의 줄거리는 대관령국사성황(大關嶺國師城隍-泛日國師), 대관령산신(大關嶺山神-金庾信 將軍), 국사여성황(國師女城隍)의 3존위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것인데 제향(祭享)은 정통(正統) 유교(儒敎)식으로, 축원(祝願)하는 것은 우리나라 민속신앙(民俗信仰)인 무속(巫俗) 굿으로 행하여지니 재미있다.
국사여성황(國師女城隍)에 대한 설화(說話)도 재미있는데, 강릉 홍제동에 초계정씨(草溪鄭氏) 경방댁(經方宅)에 무남독녀 외동딸이 있었는데 하루는 아버지 꿈에 대관령서낭신이 나타나 장가를 오겠다고 청하는데 정씨는 서낭신에게 딸을 줄 수가 없다고 거절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정씨 집 딸이 곱게 단장하고 마루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업고 달아났다. 처녀를 업고 간 호랑이는 산신이 보낸 사자였고, 산신(山神-김유신)은 처녀를 데려다가 아내로 삼았다는 줄거리이다.
그 산신이 정씨처녀를 데려다 아내로 삼은 혼배일(婚配日)이 음력 4월15일인데 해마다 이날 두 분을 합사(合祀)하는 의례인 대관령여성황 봉안제가 대관령에서 치러지고 홍제동 국사여성황사(國師女城隍祠)에서도 거행된다. 홍제동에 있는 국사여성황사는 2009년 건립되었다. 홍제동 국사여성황사에서 봉안제를 올린 후 국사여성황(國師女城隍)의 위패와 대관령에서 모셔온 신이내린 신목(神木)과 위패(位牌)를 남대천 굿당으로 모시는 화려한 영신(迎神)행사가 볼만하다.
신목(神木)을 모신 제관이 맨 앞에 서고 뒤따라 꽃으로 뒤덮인 화개차(花蓋車) 안에 위패를 모시고 그 뒤를 제관(祭官)과 무녀(巫女)들이 따르며, 그 뒤를 관노가면희(官奴假面戱) 춤꾼들과 농악대가 흥겨운 가락을 연주하며 흥을 돋우고 시민들이 뒤따르며 시내를 한 바퀴 돈 다음 단오장 가설신당(假設神堂)으로 가서 위패(位牌)를 모시고 영신제(迎神祭)를 올리면 본격적인 단오굿이 시작된다.
관노가면희(官奴假面戱) / 남대천변 단오제장(야간) / 영신(迎神) 행렬
강릉단오제의 진행을 세분(細分)하여 보면,
음력 3월 20일부터 시작하여 5월 6일까지 약 50일 간에 걸쳐 진행되는데 절차상 제1단오부터 제8단오까지로 세분되어 진행된다. 예전에는 음력 3월 20일에 제례상에 올리는 신주(神酒)를 담갔다고 한다.
4월 1일, 초단오(初端午-제1단오) - 헌주(獻酒)와 무악(巫樂)을 연주. 4월 5일 - 신주(神酒) 빚기 시작
4월 8일, 재단오(再端午-제2단오) - 헌주(獻酒)와 무악(巫樂)을 연주.
4월 15일, 제3단오 - 대관령 산신제와 대 국사성황제 봉안, 신목(神木) 모시기, 홍제동 봉안제(奉安祭)
4월 27일, 제4단오 - 무당굿 시작
5월 1일, 제5단오 - 위패를 단오장으로 모시는 화개(花蓋) 행렬 및 무당굿, 그리고 관노가면극 공연
5월 4일, 제6단오 - 무당굿과 관노가면극
5월 5일, 제7단오 - 무당굿과 관노가면극<단옷날>
5월 6일, 제8단오 - 산신과 국사서낭 봉송(奉送), 행사를 마무리하는 소제(燒祭) 행사
이런 절차를 거쳐 음력 5월 6일에 모든 행사가 끝나는데 강릉 단오제는 단오굿과 관노가면극을 중심으로, 그네, 씨름, 줄다리기, 윷놀이, 궁도 등의 민속놀이와 각종 기념행사가 함께 벌어진다.
예전에는 경포대(鏡浦臺) 앞뜰에서 한시(漢詩) 경연대회도 있어 징이 울리고 커다란 깃발에 운(韻)자를 걸어 올리면 갓을 쓴 어르신들이 자리를 깔고 줄을 맞추어 앉아서 붓을 들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시상(詩想)을 구상하던 모습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들의 백일장(白日場)도 열렸다.
또, 가장 중심이 되었던 민속놀이의 한가지로 농악경연대회도 있었는데 내 어릴 적에는 마을마다 농악대(農樂隊)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경연대회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마을마다 없으니 시범으로 공연하는 정도이다.
관노가면희(官奴假面戱)는 강릉 관아(官衙)의 노비(奴婢)들이 가면을 쓰고 놀던 놀이가 전해오는 것이다.
그 밖에도 각종 서커스단 공연도 있고, 예전에는 말들이 공연하는 곡마단(曲馬團)도 왔는데 당시 어르신들은 ‘말광대’라고 부르던 기억이 난다.
한 가지 더 첨언(添言)한다면 축구를 빼놓을 수 없는데 예전부터 강릉은 축구의 고장이라 이를 만큼 축구를 사랑하는 고장이었다. 단오 때면 매년 강릉상고(현 제일고)와 강릉농고(현 중앙고)의 시합이 벌어졌는데 승부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싸움이 벌어지기 일쑤였고, 싸움이 없는 해면 어르신들은 ‘에이, 올해는 싱겁게 끝났네...’ 하고 서운해 하시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나의 모교(母校)인 강릉고(江陵高)의 야구부가 전국대회를 석권하면서부터 갑자기 야구의 고장으로 탈바꿈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야구의 불모지(不毛地)였던 강릉에서 2020년, 봉황대기(鳳凰大旗), 대통령배(大統領杯) 등에서 전국에 명성을 떨치던 강호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거머쥐었으니 놀라운 일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