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의 한우로 만든 갈비탕입니다.
지역 마을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식당이어서 더욱 믿음이 갑니다.
길을 걸어 강진차밭과 백운동원림을 거쳐 무위사까지..
강진의 차밭. 보성이나 제주의 차밭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백운동원림입니다.
다산은 다산초당과 이곳 중 어느 곳이 더 아름다운지 겨뤄보고 싶어 백운첩에 두 곳의 그림을 그리게 했다고 합니다.
우리 일정의 마지막인 무위사에 도착했습니다.
무위사의 사천왕상의 이름은 조금 다른 지역과 다릅니다.
호남지방에서도 일부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인데요.
지금 보고 있는 비파를 들고 있는 천왕은 보통 동방지국천왕이라고 하여 동쪽 수호신인데,
이곳은 북방의 수호신으로 명패를 해 놓았네요.
세종 12년인 1430년에 지어진 극락보전은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맞배지붕의 주심포 건물로는 비교적 하대의 것으로 우리나라 주심포 맞배지붕 건축의 완성형태로 볼 수 있답니다.
이에 걸맞게 알고 보면 매우 놀라운 목조 형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배례석입니다.
무위사 극락보전은 특히 측면관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그렇게 보이시나요?
이때만해도 곡선미를 통해 한층 세련된 양식이 한창 유행할 시기인데, 이렇게 직선의 간결함을 살린
모던한 건축을 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어쩌면 불교를 상당히 억압하던 세종 연간에 지어진 건물이기에 상대적으로 부재가 덜 들어가는 맞배지붕 형식을 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불교 억압 시기인 이때에 어떻게 이런 대단한 전각이 지어질 수 있었을까요?
정답은 당시 강진에 8년간 머물며 많은 불사를 일으킨 세종의 둘째형인 효령대군의 후원에 힘입은 것이지요.
세종대왕도 후기에 이르러서는 경복궁에 내불당을 만들만큼 불교를 다시 받아들이지만 치세 초중반에는
불교 억압 정책을 상당히 많이 폈답니다.
아무튼 강진과 해남 지역의 사찰들은 효령대군의 후원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리 불교 억압 정책을 폈더라도 자기의 형제 만큼은 끔찍히 보호했던 세종대왕이기에 효령대군도 맘 놓고
불사를 펼 수 있었을 겁니다. 참고로 효령대군의 묘는 방배역 부근에 있습니다. ^^
무위사 극락보전의 안에 모셔진 후불탱화도 국보 제 313호로 지정된 시대의 명작입니다.
원래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나 좋은 것은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어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고 촬영했습니다.
(아전인수라 하셔도 할 말은 없으나, 저는 사진촬영을 했다고 하여 경건함을 잃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저 후불탱화에는 재미난 전설이 있습니다.
극락보전 완성 후 100일 기도를 드릴 때 남루한 노승이 찾아와 법당 벽화를 그리겠다고 하고서는
문을 닫고 물도 안마시고 밥도 필요 없으니, 49일 동안 안을 보지 말라고 했답니다.
이야기 전개상 필요하듯 49일을 못참은 주지스님이 마지막 날 문틈으로 법당을 엿보았더니
파랑새 한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다 그린 후 막 관음보살의 눈에 눈동자를 그리려던
참이었답니다. 하지만 인기척을 느낀 파랑새는 붓을 떨어뜨리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네요.
지금도 그래서 후불탱화의 관음보살 눈에는 눈동자가 없다고 한다.
그건 전설이지만 제가 가장 놀란 건 해설사님이 설명해 주고나서야 깨달은 고주가 없다는 것입니다.
고주는 실내에 설치하는 높은 기둥을 말하는데요. 보통은 대들보를 받치는 역할을 하곤 합니다.
고주가 있어야 대들보가 구조적으로 더 튼튼해지고, 대들보의 재료 길이가 너무 길어지지 않아
목조 건축 재료의 마지노선이라고 하는 12M를 넘지 않게 나무를 짜 넣을 수 있거든요.
말로 설명하려니 좀 힘드네요. ^^;;
아무튼 불당에서의 고주는 보통 불전 좌우에 설치하는데, 무위사 불전 좌우의 기둥은
보시는 바와 같이 대들보가 아닌 천장의 도리에 가서 붙어 있습니다. 즉, 고주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사진으로는 잘 판별이 안되어 정말 가까이 가서 보았는데,
진짜 눈동자가 그리다 중단한 듯 합니다.
(제가 근접 촬영한 사진 확대본입니다.)
해설사님께도 대들보에 대해 설명해주고 계십니다.
제가 대충 재봐도 이곳의 대들보는 대들보의 한계인 12M 가까이 되는 듯 했습니다.
혹자들은 12M 넘는 나무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그 이상을 못쓰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들보들을 살펴보세요. 그 어마어마한 두께로 12M넘는 나무를 얼마나 조달할 수 있겠는지...
그리고 운 좋게 나무를 구해서 지었다손 치더라도 후대에 교체가 필요할 때 그런 나무를 못구하면
그때는 그 건물 전체를 못쓰게 된답니다.
참고로 경복궁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긴 목재는 근정전의 내부 고주로 15M라고 합니다.
그것도 궁궐이기 때문에 가능한 수치였으리라 짐작됩니다.
목조건축 12M의 법칙을 저는 일본의 목조건축을 설명한 책을 보고 알았는데요.
그 책의 저자인 일본 목조건축 문화재 전문가는 12M의 법칙을 발견하곤 너무너무 흥분했다고 합니다.
그간 풀지 못했던 목조건축물 규모와 구조적인 한계의 비밀을 알아내었다고 말이지요.
그래서 굵은 목재가 들어가는 대들보 같은 것은 가급적 10M 넘는 부재는 사용하지 않은 것이
후대를 위해서도 좋다고 합니다.
목조건축은 필연적으로 최소 300년에 한번씩은 완전 해체 수리를 해야하거든요.
일본의 경우는 (지금은 모르겠으나) 예전에는 큰 목조건축물 공사가 있을 때는 바로 부근에
편백나무, 삼나무 등을 심어서 후대에 복원할 때 용이하도록 했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예로부터 큰 목조건축물은 소나무를 주재료로 많이 사용한 편이어서
조선시대 이전부터 소나무숲에 대한 관리를 왕명으로 철저히 했지요.
느티나무의 경우 단단하기는 하나 나무가공이 상대적으로 어려워서 소나무 보다는 조금 후대부터
사용되어졌다고 합니다. 일본책에 보면 우리보다 일본은 느티나무 사용이 한참 늦더라구요.
그게 나무 가공하는 기술과 그에 따른 연장이 개발되지 않아서였다네요.
일본이 문화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우리와 비슷해지기 시작한 게
빨라야 300~500년 전후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 이전에는 우리에게 늘 배워가던 혹은 우리가 전해주던 나라였는데...
옛날 생각만 할 게 아니라 우리가 더 노력해서 다시 예전의 지위로... ^^;;
무위사 극락보전 불전 뒤에 있는 백의관음 탱화입니다. 보물 131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해설사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흔히 겹처마라고도 불리는 부연의 탄생이 바로 이곳 무위사 극락보전에서 탄생했다고 하시네요.
제가 알기로 그 전부터 부연이란 양식은 있었으나(부석사 무량수전에도 부연이 있답니다.^^), 해설사님의 말씀을 빌려보면 이렇습니다.
무위사 극락보전을 담당한 도편수(최고 책임자)가 처마선이 너무 짧아진 것을 걱정하고 있었답니다. 처마선을 더 늘이면 지붕 무게가
급격하게 늘어나서 무너질 것 같았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그래서 주심포 방식으로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를 본 도편수의 며느리가 그러면 가벼운 처마를 덧대어서 달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시아버지에게 주었고, 그것을 옳타구나 싶어서
시공한게 지금의 무위사 극락보전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부연을 두고 며느리서까래라고도 부르는데요. 한문 표기도 부연의 부자를 붙을 부와 며느리 부를 같이 씁니다.
서울로 향하던 차 안에서 멀리 서산으로 지던 해를 잡아 보았습니다.
행복한 날 되십시오.
우리강산 그곳에는 제2탄은 경주 특집으로 4월에 준비됩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
첫댓글 후기를 읽고 사진 저장하는 일만으로도 몇 시간이 갔어요. 이렇게 정리 잘 해놓으시면 앞으로 저는 사진 그만 찍어도 될 것 같아요. 게다가 늘 사진 밖에만 존재하던 제가 사진에 들어있는 이 생소함... 후기를 읽으니 발견이님 마음까지 읽히네요. 감사 드려요. 다음 여행길도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와우~~~ 읽는데만도 2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작성하시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이........휴우~~~~
궁금했던 무위사 극락보전의 측면관도 이리저리 살펴보고, 아름답다는 벽화도 저도 몰래 찍어오고....ㅎㅎ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멋진 사진과 후기 감상합니다. 진행하시고 해설하시고...정말 너무너무 애 많이 쓰신 멋진 여행이였습니다.^^
기획하고 진행하는 노고에 더하여
멋지고 후한 후기까지 덧붙여 주셔서
넘넘 감사드립니다.
우리강산 그곳에는...
또 다시 기대되고 설레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
백운동원림을 보게된건 행운이었어요.
또한 꼭 다시 가고팠던 해남여행을 발도행과
함께 할수 있었던것도 행운이었구요.
좋은 여행하게 애써주신
발견이님과 토로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설명해 주셨던 내용들을 다 기록으로 남겨 주시고 , 멋진 한편의 기행문을 대하니 숙연해집니다 .
발도행의 역사 문화탐방은 정말 살아있는 산교육입니다
그래서 경주도 또 동참하고 싶어지네요
훌륭하신 해설사님과 멋진 작품사진을 남겨주시는 사진작가님. 기억을 되살려 주시는 여행작가님과
함께 한것을 커다란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
감사합니다
무위사를 갈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설명을 들으며 여기 저기를 볼 수 있어서 많은 도움도 되었구요~.
백운동원림은 남해답사의 재발견인거 같아요~~..
발도행 아니면 시도하지도 못 할 ..귀한시간였어요~~..
두고 두고 다시 읽어고 봐야할 귀한 사진과 글들..
감사합니다..
긴여정에 ~수고하셨습니다
아랫마을에 소식을 후기로나마 보고갈께요
여러곳에서의 추억들~
회원님들도 수고하셨습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