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도로 일주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는 올해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중심 도시 피렌체에서 시작한다. 29일(현지시간) 아르노 강과 피렌체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어 '피렌체의 발코니'로 불리는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엘리트 선수 팀들은 팬들과 어울려 대회 시작을 축하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 뒤 피렌체의 역사지구 중심인 델라 시노리아 광장에서 출발한다.
자전거에 열광적이며 지로 이탈리아를 개최하는 이탈리아에서 투르 드 프랑스가 시작하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이탈리아를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당연히 피렌체가 출발 도시가 돼야 한다. 이 도시를 대표하는 사이클 영웅이며 세 차례 지로 이탈리아 챔피언을 지냈으며 두 차례나 투르 드 프랑스를 제패한, 그리고 무엇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백명의 유대인을 구해낸 '이탈리아의 쉰들러' 지노 바르탈리를 제대로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영국 BBC는 전날 전했다.
피렌체 근처 폰테 아 에마란 작은 마을에서 1914년 태어난 바르탈리는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사이클리스트 가운데 한 명으로 자라났다. 어린 시절 형 줄리오와 함께 미켈란젤로 광장을 거슬러 올라 피렌체의 아름다운 돔들을 굽어 보며 언젠가 위대한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 시절에는 잘 몰랐지만, 그는 최고의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는 물론, 훨씬 더 많은 일을 한 이로 기억된다.
2000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이탈리아 사이클 레이스의 아이콘"이라며 그의 부음은 사이클 성취에 주로 맞춰졌다.
부음도 빠뜨렸고 어느 다른 매체에서도 언급하지 않았는데 바르탈리는 박해받는 유대인들과 반체제 난민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 비밀스러운 삶을 간직하고 있었다.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지하 신앙 네트워크의 일부로서 바르탈리는 친구인 피렌체 추기경 달라 코스타가 주도한 지하운동이 인쇄한 가짜 신원 서류에 도장을 받기 위해 사이클로 수천km를 이동했다. 그들은 나치가 통제한 이탈리아 북부에서 유대인과 정치적 난민들을 탈출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레이스 저지를 여러 벌 만들어 사이클의 비상 도구함에 넣어 피렌체에서 제노바와 아시시까지 수천km를 달려 배달했다.
이 행동만으로도 그는 500명 이상을 살려낸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바르탈리의 챔피언이란 지위란 완벽한 위장술이 됐다. 검문 당할 때 "훈련 중"이라고만 말하면 누구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바르탈리는 자신을 정치에 이용하려던 파시스트 정권과도 맞섰다. 1938년 그가 투르 드 프랑스를 제패하자 파시스트 정권은 이탈리아인의 질주 본능이 대단함을 입증했다고 선전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같은 해 유대인들을 학교와 직장에서 축출하는 인종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한 정권에 저항하는 무기로 자신의 레이스 경력을 활용했다. 베니토 무솔리니가 우승을 축하했는데 바르탈리는 일절 응하지 않았으며, 공을 가톨릭 교회로 돌렸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이탈리아는 나치 독일과 동맹을 맺고 이탈리아의 유대인들을 체포하는 행동에 나섰다. 파르티잔(빨치산) 세력은 토스카나에서 완강했는데 이 지역이 남쪽에서 진격하는 연합군과 북쪽에서 남하하는 독일군이 충돌하는 접점이었기 때문이다. 이상적 인종을 숭앙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많은 토스카나인들처럼 바르탈리는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토스카나는 사이클하기에 최적인 지역이다. 올해 투르 드 프랑스가 거치는 곳들은 그저 즐기는 기분으로 자전거를 타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아래 네 군데 트레일을 달리는 것만으로도 바르탈리의 세계를 슬쩍 엿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1. 피렌체에서 폰테 아 에마까지: 강을 따라 바르탈리의 고향마을까지 시골길 8km를 달리는 짧은 코스다. 그곳에서 박물관을 찾을 수도 있고 피렌체 근교의 한적함을 만끽할 수 있다.
2. 투르 드 프랑스에 도전하기: 올해 투르 일정을 따라 첫 번째 오르막인 에밀리아와 로마냐의 경계를 이루는 발리코 트레 파기( Valico Tre Faggi)에 도전해보자. 자동차나 열차를 이용해 디코마노를 들머리로 삼으면 피렌체를 빠져나오는 체증을 피할 수 있다..
3. Ciclopista del Trammino: 트람미노 사이클 패스(Trammino cycle path)는 피사에서 시작해 오래 된 철로를 따라 바다까지 이른다. 사이클 경력에 관계 없이 모두가 쉽게 즐길 수 있는 하루 코스로 맞춤이다.
4. 화산 바이킹: 토스카나의 휴화산 중 하나인 몬테 아미아타(Monte Amiata)는 환상적인 산악자전거 트레일 망을 갖고 있다. 사이클을 마친 뒤 천연 온천에서 몸을 녹일 수도 있다.
여행자들은 피렌체에서 남쪽으로 110km가량 떨어진 테론톨라(Terontola) 열차역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는데 바르탈리에게 헌정된 동판이 그 역에 있다. 바르탈리는 챔피언으로 유명했기에 파르티잔 세력과 그는 군인들과 경비원들이 난민들을 태운 열차에 시선을 돌리지 않게 하려고 파파라치 각본을 고안해냈다.
바르탈리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눈을 감을 때까지 떠벌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선행을 얘기하면 자신이 도운 사람들을 배신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들이 순수한 뜻에서 한 일이 아니라 자신을 알리기 위한 행동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들 안드레아는 2014년 2차 대전 당시 숨은 영웅들의 무용담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 My Italian Secret'에 출연, "아버지는 저 말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제게 맹세를 시켰어요"라고 털어놓았다. 안드레아는 30대 때 이 얘기를 처음 들었다고 했다.
바르탈리가 2000년 세상을 뜨자 그의 아들, 친구들, 그가 도왔던 이들을 통해 조금씩 그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알려졌다. 그가 도운 이들 중에는 어릴 적부터 가족과 함께 지낸 조르지오 골덴베르크가 있는데 바르탈리는 그를 지하실에 숨겨줬다. 그 뒤 책들과 영화들이 만들어졌고, 지난해에는 런던 웨스트엔드 뮤지컬로도 제작돼 시즌 내내 공연됐다.
안드레아는 앞의 영화에서 아버지가 남긴 말을 들려주며 스스로를 영웅으로 보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스포츠 업적으로만 기억되고 싶단다. 진짜 영웅들은 다른 사람들 영혼과 가슴, 혼령과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들 때문에 고통받은 사람들이란다. 그들이 진짜 영웅들이지. 나는 그저 사이클리스트야."
마우리치오 브레스치는 지노 바르탈리 사이클링 뮤지엄의 관장인데 그의 부친 안드레아 브레스치는 바르탈리의 친구였다. 마우리치오는 1986년 바르탈리를 기리기 위해 박물관을 세우자고 처음 제안했을 때를 회상했다. "처음에 지노는 그 아이디어에 동의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친구들과 가족, 미디어와 대중들이 더 좋아라 했지만 이 위대한 사이클 선수를 설득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고 했다. "끝내 지노가 ‘좋아,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이클리스트를 위한 사이클 박물관이 돼야 해’라고 말하더라."
뮤지엄은 2006년에야 문을 열었다. 신문 스크랩들, 선수 카드들, 개인 서류들, 자전거들, 사진들과 본인이 기증한 1948년 투르 드 프랑스 우승 트로피 등이 전시됐다. 선친이 2020년 세상을 등지자 마우리치오가 관장 직을 맡아 제한된 인력과 기금으로 빠듯하게 명맥을 잇고 있다.
바르탈리의 이야기는 29일 트루 드 프랑스 참가자들이 폰테 아 에마에 이르면 국제적인 조명을 받을 것이다. 대회로선 정치적 소요가 극심했던 2차 세계대전 전과 후에 한 차례씩 우승한 바르탈리가 강철같은 사이클리스트다. 10년의 간격을 두고 우승한 일은 전례는 물론, 그 뒤로도 이룬 이가 없었던 대단한 성취다.
BBC는 투르 드 프랑스가 바르탈리의 선행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사이클 업적만을 홍보하고 있다면서 그의 이타적이며 겸손한 선행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을 바꿨는지 피렌체 사람들만이 아니라 토스카나 사람들, 나아가 전 세계 사람들이 알아 인간 내면의 깊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사람들이 아무리 어려운 때라도 스스로 믿는 일을 꿋꿋이 해내는 가르침을 얻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아내에게 남긴 말이다. "좋은 일이란 어떤 일을 하는 것이지,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옷 위에 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다는 메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