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early bird 에 속한다. 밤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새, 솔직히 자는 시간은 내게 너무 아깝다. 깨어 있어 살아 있음을 느낄 때 비로소 살아갈 이유를 알게 된다. 우선 앞으로의 계획을 짜기로 했다. 이제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영어 공부도 좀 해야 하고 지치지 않고 두 가질 다 해내려면 체력 보강도 해야 하고.. 그렇게 해서 새벽 7시에 일어나 헬스장에 갔고 8시쯤 분당이 집이었던 나는 서울로 영어 회화 학원을 다녔다. 12시에는 압구정에서 점심 알바가 있었기 때문에 학원을 서울로 정한 것이다. 4시에 점심 알바가 끝나면 곧장 선릉역으로 가서 5시부터 호프집 알바를 뛰었다. 그렇게 모든 일과가 끝나면 밤 12시가 돼야나 집에 들어 올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다는 이유로 무식하게 용감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하라면 정말 못할 노릇이다. 한달에 90만원 정도의 월급을 타고 교통비 10만원과 헬스비 7만원 영어학원비 20만원을 빼고 나니 정말 한달에 겨우 50만원 정도를 저축을 할 수 있었다. 3달 까지는 그런 무쇠 팔 무쇠 다리 생활을 견딜 만 했으나 3달이 넘어가면서부터 몸도 쑤시고 마음도 헤이 해 졌다. 점심 알바는 시급이 4000원이었고 무거운 뚝배기들을 드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했다. 12시부터 반찬 정리를 하고 12시 반이 되면 교회 사람들, 특히 식당 주위에 다단계 조직이 있었는데 그들이 다단계 교육을 마치고 한꺼번에 몰려오는 바람에 숨 쉴 틈도 없이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가야 했다. 비둘기들이 공원에 뿌려진 모이를 먹으러 떼거지로 날아오듯이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한꺼번에 몰려드는 사람들의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호프 집 알바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바쁘진 않았지만 맥주 3000cc를 양 손에 들고 서빙해야 하는 일이 허다했고 특히나 테이블이 2층에까지 있어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한번은 몸이 너무 쑤셔서 스포츠 마사지나 받아볼까 하고는 엄마에게 얘기를 꺼냈다가 대판 싸운 적이 있다.
“어린 애가 무슨 스포츠 마사지야?”
“아니 스포츠 마사지가 뭐 어때서? 꼭 나이든 사람만 받아야한다는 편견을 버려.”
“ 그거 자꾸 해 버릇 하면 나중엔 그거 아니면 피로가 안 풀리는 거 같아서 계속 해야 되 는 거야.”
“그럼 어깨도 쑤시고 피곤이 안 풀리는 데 어떡하라고?”
“그럼 일 그만둬! 왜 그렇게 몸 혹사시키면서 고생하는데?”
순간 난 울컥 하는 마음에 눈물이 나왔고 그 쓸데없는 눈물과 함께 감정을 자제 하지 못하고는
“누군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돈이 필요하니깐 그렇지!”
하며 엄마한테 소리를 질렀다. 화가 난 엄마도
“돈벌어 올 필요 없으니깐 당장 그만둬!”
하며 짜증을 내셨다.
그 이후로 조금 더 그런 힘든 생활을 버티다가 결국엔 엄마 말대로 모든 알바를 정리 하고 영어 학원도 그만 두었다.
<캐나다에 왜 왔니?>
그렇게 5월이 되었고 이제 본격적으로 유학원에 찾아가 어학연수 준비를 하기 시작 했다. 우선 뉴욕 프로그램이 있는 유학원에 가기 전에 엄마가 아는 사람이 운영한다던 유학원에 들렀다. 많은 유학원들이 강남에 있다고 들었는데 그 유학원 또한 강남에 위치했다. 그 유학원 실장님이 앞서 말했던 바로 그 언니이다. 언니에게 내 목표는 1년 동안 어학연수를 해서 영어를 마스터 해오는 게 목적이고 돈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일을 병행하며 공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언니는 영어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건 효율성 면에서 많이 떨어진다고 했고 차라리 먼저 영어공부에 전념 한 후 나중에 그 영어 실력으로 일을 하라는 조언을 해 주셨다. 그렇다면 그 많은 어학연수 비용은? 그렇게 나는 즉석에서 부모님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기로 합의를 봤다. 나의 자급자족 계획은 창피하게도 물거품이 되었고 나중에 일해서 다 갚을 계획으로 기존 계획을 무마시켰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변경사항은 바로 어학연수를 갈 나라였다. 원래 뉴욕에 갈 계획으로 뉴욕에 대한 책도 사서 읽고 한참 뉴욕에 빠져있을 때였는데 언니는 또 나에게 캐나다가 뉴욕보다 물가도 저렴하고 안전하니 캐나다로 가라고 권유 하는 것이었다. 내가 원래 귀가 얇은 사람이었나? 아무래도 처음 혼자서 외국으로 나가는 거다 보니 막연하고 모든 것이 확신이 가지 않았던 거 같다. 누군가가, 정말 그런 분야에 대해 잘 아는 누군가가 넌 여기에 가서 이렇게 해! 하는 편이 나에겐 더 편하고 또 그런 걸 은근히 원하고 있었나보다. 혹은 나중에 벌어질 일에 대한 책임을 회피 하고 싶어서 일수도 있는 나의 나약한 모습이었다. 아무튼 그날 이후로 수속이 밟아졌고 며칠 후 언니는 내게 밴쿠버에 가라며 신체검사부터 시작해 학교 입학 원서 작성 및 비자 신청을 하게 했다. 언니는 한국 사람이 최대한 없고 효율적으로 공부 할 수 있는 곳을 알아 봐 주겠다고 약속 했다. 그 후로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나는 무사히 캐나다에 와 있었다.
첫댓글 흠~~ 님 참 열심히 하시는 것 같아요,, ^^;; 가끔 와서 글 읽을 때마다 제 머리속 다시 정리하고 돌아갑니다,, 하핫~ 글도 참 흥미진진하게 잘 쓰시고, 나중에 책으로 엮어도 되겠다,, 화이팅~~!! 얍얍!!
흥미진진하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