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농견관음(瀧見觀音)
농견관음의 농견은 ‘여울을 봄’이라는 뜻이다.
당나라 때의 일이다.
큰 가뭄으로 가흥현(嘉興縣)의 땅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졌다.
이대로 가뭄이 계속되면 흉년이 될 판이라
사람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약간의 농토만 가지고 있거나 남의 땅을 경작해 주며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걱정은 더욱 컸다.
그들 가운데 호(胡)씨라는 농부는
어머니마저 병석에 누워 계신지라
그가 느끼는 고통은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들판에서 나물을 캐다가 이웃과
다투게 된 호씨가 옥에 갇히게 되자 남은 가족들은 절망적이 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나물을 캐러 들판을 돌아다니던
호씨의 아내가 산 쪽에서 어떤 형상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그 형상은 폭포 옆에 있는 바위에 앉아서
폭포를 감상하고 있는 관세음보살이었다.
보살은 한가로운 모습이었지만 충분히 위의를 갖추고 있었다.
깜짝 놀란 호씨의 아내가
눈을 비비고 다시보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지랑이 속에서 헛것을 봤다고 생각한 호 씨의 아내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젓더니
다시 시선을 땅으로 돌려 나물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힘든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호 씨의 아내는 먹을 것을 찾아 다니다가
먼지 나는 밭과 말라붙은 여울 사이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호 씨의 아내가 가까이 가서 보니
땅에서 반쯤 나와 있는 법상(法像,불보살의 조각상)이었다.
즉시 법상을 캐낸 호씨의 아내가
흙을 털어내고 보니 관세음보살의 모습이었다.
법상은 비취색 유리기와로 만들어졌는데 그 모습이 아주 정교했다.
이에 보살의 얼굴을 자세히 보던 그녀는
얼마 전에 아지랑이 속에서 본 그 모습이라는 것을 알았다.
직감적으로 뭔가를 느낀 그녀는 관세음보살상을 근처의 절로 모셨다.
그때부터 호씨의 아내는 매일 시간을 내어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향을 피우고 정성을 다해 절을 했다.
오래지 않아 기적이 일어났다.
여전히 비는 오지 않았지만 관음성상이 나타난 곳에서
물이 솟아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은 마치 폭포가 떨어지는 기세처럼 솟아났는데,
옆에 있는 말라붙은 여울을 채우고 흘러가더니
가흥현을 가로지르는 강을 채우기 시작 했다.
갑자기 들리는 물소리를 듣고 몰려나온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저마다 물길을 내어 자신들의 논과 밭에 물을 대었다.
물은 가흥현의 모든 농토를 적실만큼 충분했다.
호씨의 아내와 관세음보살에 관한 이야기가 퍼지자
가흥현의 사람들은 호씨의 아내가 모신 관세음보살을
농견관음,혹은 관폭관음(觀瀑觀音)으로 불렀다.
사람들이 다시 여유를 찾아서인지, 아니면 호씨 부인의
공로 때문인지 호 씨도 무죄로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관세음보살님의 덕분이라고 여긴 호씨의 가족들은
더욱 열심히 농견관세음보살을 찾았다.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다.
그러는 가운데 가을이 되자 그해 농사는 대풍년이 되었고
호씨의 가족도 점점 형편이 나아져 여유있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관세음보살이 산 위의 폭포 옆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다면 그림 속의 보살은 호 씨의 집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보살의 뒤편에 있는 소나무를 보면 아니다.
이 소나무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소나무의 모습이다.
고려 후기에 이미 우리나라에 33관음이 알려진 것을 감안하면
이 땅에 노닐던 농견관세음보살은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위의 이야기를 놓고 보면 ‘농’은 여울이 아니라
‘물’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논이든 밭이든 농사를 지으려면 물이 필요하다.
농토 주변에 관개수로(灌漑水路)가 잘 발달한 요즘도
물을 대는 시기가 되면 농민들은 예민해진다.
그런데 당나라 시대처럼 하늘에서 내리는 비나 땅에서 나오는
물에 의지해야 하는 경우 물은 말 그대로 생명수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았고, 호 씨네 밭 옆에 있는 여울도
바짝 말라 있는 가운데 농견관음상이 발견된 곳에서 물이 솟아났다.
결국 이 물은 호 씨네 가족은 물론이고
인근의 사람들을 모두 살리는 생명수였다.
게다가 호씨의 아내가 본 관세음보살은 여울이 아니라 폭포를 보고 있었다.
따라서 농견관음은‘여울을 보는 관세음보살’이라기보다는
‘물을 보내 생명을 살리는 관세음보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라야 통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
진나라 때 축장서라는 유명한 사람이 있었는데
본래 천축(天竺인도)사람이었다.
그는 평소에 정성을 다해 관세음보살 모셨다.
뒤에 오(嗚 강소성 남부와 절강성 북부 지역) 지방에
살게 됐는데 이웃이 잘못하여 불을 냈다.
불은 옆으로 점전 번져 나가면서 크게 타올랐다.
마침 바람이 그의 집으로 불었기 때문에
그의 집은 큰 불길에 휩싸이기 직전에 놓였다.
이때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반대가 되더니
불은 물도 없이 저절로 꺼지고 말았다.
그러자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겼다.
이 때 한 불량소년이 있었는데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불이 스스로 꺼진 일을 의심했다.
그는 한 밤중에 축장서의 집에 침입하여 몇 번이나 불을 놓았다.
하지만 불은 그때마다 저절로 꺼졌다.
무서워진 불량소년은 그를 신인(神人신비의 힘을 가진 사람)이라고
여기고는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면서 용서를 빌었다.
“신인이 사시는 줄 몰랐습니다. 죄를 용서하시고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러자 축장서가 말했다.
“나는 신인이 아니고 신비한 힘도 없다.
오로지 언제나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보살님의 자비심에 의한 보호를 받아
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명나라 때 휘(徽 지금의 안휘성 서현 지역)에
성이 왕(往)씨인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곤륜산에 들어가 출입을 삼가며 3년 동안 몸과 마음을 깨끗이 했다.
그리고는 관세음보살에게 향공양을 올리기 위해 보타락가산으로 떠났다.
새해 첫날 짐을 꾸려 하산하려고 하는데
그의 가게 근처에 불이 났으니 빨리 돌아오라는 연락이 왔다.
이에 왕 씨는 “삼년의 정성들인 끝에 관세음보살을 뵈려고 하는데
어찌 가게 하나가 내 뜻을 막을 수 있겠는가. 돌아갈 수 없다.” 고 했다.
마침내 향공양을 끝낸 왕씨가 사는 곳으로 돌아가 보니
왕 씨의 집과 가게만 남기고 사방의 모든 건물이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고을 사람들이 연유를 알고 나서 놀라며 찬탄 했다.
위의 이야기들에 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또, 두 사람이 공양한 보살이 어떤 관세음보살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농견관세음보살과의 인연이야기로 전해져 온다.
이는 옛날 사람들은 ‘농견관세음보살이 보이지 않는 물로
불을 꺼준다’고 믿고 있었음을 의미 한다.
- 『우리곁에 계신 33 관세음보살 이야기』 / 방경일 -
|
첫댓글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_()__()__()_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고맙고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