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공항에서 출발한 우리는
서울에서 출발한 큰 딸을 만나 여행을 시작한다
언제부터인지
여행의 시작은 렌트카 인수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애월쪽으로 넘어와 미리 검색해 둔
하갈비국수 집으로 향한다
고기국수 먹어야죠
그런데 이 하갈비 집 뷰가 어쩜 이럴 수 있죠?
음식 맛집이 아니라 뷰 맛집인가요?
물론 음식맛도 아주 좋아요
갈비국수도 주문해봤는데 색다르고 맛나요
실내분위기도 국수집이 아닌 레스토랑 같다
대부분
고기국수 집엔 반드시 멸치국수를 같이 판매하던데...
여긴 멸치국수대신 국밥이 있다
그걸 주문했는데
내가 입맛에 안 맞는듯 한걸 눈치 챈
남편이 얼른 자기 비빔국수와 바꾸어준다
바닷가의
하얀색 탁자와 의자는
언제나 옳다
이번 여행 컨셉은 1일1 미술관, 1일1카페 방문
방문할 미술관은
김창열미술관, 유민 미술관, 아라리오 탑동미술관
이렇게 3군데다
딸들이 그린 동선으로 오늘은 김창열미술관부터 관람한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는지.
생각보다 많은 작품 수에 그저 황송한 기분마저 들었다
예약없이 왔다고 관람불가일 수도 있다는 안내에
가슴이 덜컹 했는데
간절한 눈빛이 통했는지
거리두기 방침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들여보내준다
예약없이 방문한 사람중엔
'겉만 구경하고 가지 뭐 '
하며 쿨하게 돌아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물방울들을 두고 어찌 발걸음이 돌려지는지......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로 되돌려보내기 위한 행위이다"
미술관을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건출물의 모습이
回(돌아올 회)를 형상화하고 있다고 한다
작가의 의도를 건축에 스며들게 한 노력이 보인다
책에서 읽은 물방울을 그리기 시작한 일화는
파리 유학시절 유화를 그려놓은 게 맘에 안들어
비용을 아끼려 캔버스를 재사용하기 물을 뿌려놓고 잠들었는데
다음날 맺혀있는 물방울이 너무 아름다워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화면의 밀도에 대해 고민하다가
프랑스의 일간지에 물방울을 가필하여 그리기 시작한다
신문지가 캔버스가 되고
오브제가 되어주니 물방울들이 기사를 정화시켜 읽어주는 듯 하다
마포에 맺힌 물방울
목판에 뿌려진 물방울
모래 위에서 대롱거리는 물방울
그 느낌이 미세하게 다르다
내가 가장 인상깊게 감상한 작품
너무 강렬하게 내 마음에 맺혔다고 할까
까만 적막함에 똑똑 떨어뜨린 물방울이
강렬하게 내 마음으로 떨어진다
깊은 심연에 떨어지는 청아한 물소리가 아주 잠깐 들리는 듯 하다
까불이 큰딸은
미술관에서도 저렇게 ...
카메라만 들이대면
순간에 포즈를 바꾸어 버린다
좀더 자세히 보고싶어
자꾸만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다
마치 저 물방울 진짜가 가짜야 하는 초등생처럼
다들 열심히 돌쌓기를 하는 중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들 저렇게 열심이지?
미술관을 나오면 자연스럽게 옥상으로 이어져 올라온다
건물에선 분명 옥상이었는데
걸어나오면 평지로 이어진다
분명히 1층으로 들어갔는데
여기서 보면 지하처럼 보이고...
건축설계가 아주 재미있다
미술관을 나오는데 한두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이
갑자기 와아 하고 쏟아져
차로 뛰어들어갔다
물방울을 그리는 화백의 모습이 담긴 팜플릿에
빗방울이 튀어
환상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어느것이 화백의 물방울이고
어느것이 빗방울인고
카페를 찾아가는 길
차창으로 보이는 바다빛이 너무 예뻐 감탄했더니
어느새 해변 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고 있는 남편
엄마의 한마디에 아빠는 척척 움직인다며
딸들이 한마디 한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흐린 날씨에도
바다빛이 너무 예쁘다
이 예쁜 바다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여행이란게 이런거지
일정에 없던 곳에서도 마음이 끌리면 잠시 멈추어 바라보는 것
제주 왈종미술관에서 구입한 우산좀 써 볼까?
동화같은 그림이 기분을 명랑하게 해준답니다
"엄마"
부르는 소리에 다시 되돌아왔다
난 더 걷고 싶었는데
엄마가 너무 멀리 가버릴 것 같은지 딸들이 부른다
마치, 더 가면 위험해요 하는 듯
숙소로 돌아오니
중정 유리창에 물방울이 맺혀있다
"어머나. 김창열화백이 언제 우리집에 다녀가셨지?
물방울 가득 그려놓으셨네"
편안한 밤
짠딸이 한라토닉을 만들어준다
많이 해본 솜씨인데....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술을 좀 할 줄 아는 녀석이다
얼굴이 빨개지지도 않으면서....
나도 적당히 술을 즐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늦은 저녁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고
난 커피내려 오두막으로 간다
나무로 지은 오두막이 제법 운치있어 좋다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자주 듣지 않는 주인장이 틀어놓은 재즈음악에 젖어본다
음악 선곡도 매너리즘에 빠져있을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아닌 누군가의 선곡이 신선하게 들릴 수 있다
오늘 하루 오락가락한 비가
양철지붕위에서 제법 분위기 있는 반주를 만든다
루프탑에서 내려다보니
엄마가 커피잔들고 음악에 취해 있었다고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올려다볼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고.
오두막 안에 들어가면
밖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걸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 오두막
고마워~~~
내일을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