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
밀가루나 메밀가루 반죽으로 껍질을 만들어 고기 ·두부 ·김치 등으로 버무린 소를 넣고 찌거나 튀긴 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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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두 / 밀가루나 메밀가루 반죽으로 껍질을 만들어 고기 ·두부 ·김치 등으로 버무린 소를 넣고 찌거나 튀긴 음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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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원래 만두는 중국 남만인(南蠻人)들의 음식이라 한다. 제갈 량(諸葛亮)이 멀리 남만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심한 풍랑을 만나게 되자 종자(從者)가 만풍(蠻風)에 따라 사람의 머리 49개를 수신(水神)에게 제사지내야 한다고 진언하여, 제갈 량은 살인을 할 수는 없으니 만인의 머리 모양을 밀가루로 빚어 제사하라고 하여 그대로 했더니 풍랑이 가라앉았다는 고사가 있으며, 이것이 만두의 시초라고 한다.
한국에는 조선 영조 때의 사람 이익(李瀷)의 글에 만두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 이전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만두가 상용식이 아니고 겨울, 특히 정초에 먹는 절식이며, 경사스러운 잔치에는 특히 고기를 많이 넣은 고기만두를 만들어 먹었다.
또, 지금은 사라진 풍속이지만, 예전에는 큰 잔치에서 끝을 장식하는 특별음식으로 대만두(大饅頭)를 만들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호두알만한 작은 만두를 큰 만두 속에 가득 집어넣어 만든 것으로, 이 대만두의 껍질을 자르고 그 속에서 작은 만두를 하나씩 꺼내 먹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절식으로서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손쉽게 만두국을 끓여 먹으며, 흰떡을 섞어서 끓이는 경우도 많다.
익히는 방법에 따라 찐만두·군만두·물만두·만두국 등으로 나뉘고, 모양에 따라 귀만두·둥근만두·미만두·병시(餠匙)·석류탕 등으로 나누어진다. 특히 미만두는 예전에 궁중에서 해먹던 음식으로 해삼의 생김새처럼 주름을 잡아 만든 데서 생긴 이름이고, 병시는 숟가락 모양을 닮은 데서, 석류탕은 석류처럼 생긴 데서 붙은 이름인데, 옛날에는 궁중에서만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한국 속담에 ‘떡 먹자는 송편이요, 소 먹자는 만두’라는 말이 있듯이 만두는 껍질이 얇고 소가 많이 들어가야 맛이 있다. 만두 소는 재료를 잘 다져서 섞고 양념하여 만드는데, 육류로 쇠고기나 돼지고기·닭고기·꿩고기 등이 쓰이고, 채소로는 김치·숙주·당근·오이·양파, 그 밖에 두부·당면 등을 쓴다.
요즈음은 육류로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반반씩 섞어 쓰고, 숙주 대신 당면을 쓰는 경우도 있다. 만두국물은 육수, 쇠고기 맑은장국, 멸치장국, 다시마장국 등 어느 것을 써도 된다.
만두를 빚는 방법은 얇게 민 만두껍질을 원형으로 떠서 되직하게 버무려 놓은 소를 넣고 맞붙인 다음 다시 양귀를 맞붙여 둥글게 만든다. 이것은 본래 개성 지방에서 빚던 방법이고, 서울 지방에서는 반죽을 경단만큼씩 떼어 껍질이 얇아질 때까지 우물을 파서 소를 넣고 배 모양으로 맞붙이는데, 이때 양귀를 완전히 붙이지 않고 구멍을 조금 남긴다.
이렇게 하면 맛있는 만두국물이 그 구멍으로 들어가 한층 더 만두 맛이 좋아진다. 그러나 서울식 만두는 양귀가 늘어져서 터지기 쉬우므로 만두국에는 별로 이용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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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의 뿌리를 찾아서
만두를 알기 위해서는 만두의 유래를 찾아 봐야 합니다.
만두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유력한 두 가지의 글을 소개합니다.
가장 유력한 첫번째 유래
만두는 청조말기(약 1958년)에 빚기 시작한 13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북성 무청현(지금은 천진시로 편입돼 있음)의 고귀우라는 소년이 만두 빚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년의 어릴 적 별명이 구불리였던 데서, 손님들은 그가 빚은 만두를 구불리 라고 불렀습니다. 한때, 고귀우는 그의 만두를 덕취호라고 불렀던 까닭에 손님의 발길이 끊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구불리 라고 이름 붙인 이후에는 더 많은 손님들이 그의 만두를 먹게 되었습니다. 고귀우가 만두를 빚을 때, 속은 별 차이가 없지만, 빚은 만두 모양이 예쁘고, 밑면이 타지 않고, 더군다나 맛이 있었다고 합니다.
1900년대초 원세개가 천진에서 육군을 훈련시키던 중, 구불리 만두를 먹게 되었고, 이를 북경에 있는 서태후에게 선물로 갔다주었습니다. 그 후 서태후가 구불리 만두를 좋아하게 되었고, 바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두번째 유래
중국 삼국시대에 제갈공명이 위의 맹획을 공격할 때, 어떤 사람이 "남만(남쪽 오랑캐)에서는 사람을 죽여서 그 머리를 제물로 하여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있는데, 그러면 신이 음병(은밀하게 도움을 주는 병사)을 보내 준다고 합니다." 하면서 그렇게 하기를 권했습니다.
하지만 공명은 그대로 하지 않고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 소를 만들고 밀가루로 싸서 사람의 머리 모양을 만들어 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이것으로 인해 음식 이름을 '남만의 머리'라는 의미로 만두라 했다가 음식 명칭인 만두로 변화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만두의 조상은 상화래요!
우리나라에 만두가 들어온 것은 고려 시대였는데, 그 당시에는 상화로 발효시킨 찐빵과 비슷한 것이 였습니다. 상화는 가루에 술을 넣어 부풀린 반죽을 찐 것으로 중국의 만두를 가리키는 말이다.
'고려사'에는 충혜왕 때 궁 주방에 들어가 만두를 훔쳐 먹은 자를 처벌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우리나라의 처음 만두란 말이 나온 것은 '영접도감의궤'(1643년)에 처음으로 나오는데, 중국에서 온 사신을 대접하기 위하여 특별히 만들었고, 그 후에는 궁중의 잔치에도 종종 차렸다고 합니다.
궁중잔치 기록에는 생치만두, 골만두, 생복만두, 진계만두, 생합만두 등이 나옵니다. '이순록'에는 "인조가 전복만두를 좋아하였는데 생신날에 왕자가 비와 함께 동궁에서 직접 만두를 만들어 가지고 새벽에 문안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800년대의 '음식방문'의 생합만두는 "좋은 생합을 골라 만두 소처럼 만들어 넣고 녹말을 묻혀서 데쳐 초간장에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또 '병시'라고 하는 음식이 나오는데, 밀가루를 반죽하여 둥글게 만들어되, 주름을 잡지 않고 반으로 접어 반달 모양으로 빚고 장국에 넣어 끓인 만두국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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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이 남만정벌을 갈때, 노수라는 강을 건너던 중, 극심한 폭풍우로 제사를 지내야 했다죠..
노수라는 강에 신이 있는데 신에게 제사를 지내려면 마흔아홉명의 사람과 검은 소, 흰양의 목을 배어 제물로 바쳐야 했는데, 마흔아홉이라는 사람을 죽일 수가 없어서 꾀를 낸 제갈량은 밀가루 반죽을 빚고 소와 양을 잡아 속을 채워 넣었습니다. 사람 머리 처럼요..
그렇게 해서 제사를 지냈더니 귀신같이 폭풍우가 잠잠해 졌답니다..
만두의 만(饅)자는 기만하다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 직역하자면 기만하기 위해 만든 머리.. 이게 만두(饅頭)입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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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중복되는 내용은 좀정리를 하면 좋겠다. 부탁! 만두 이야기가 왜 갑자기 나오는지 설명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강의자료실로 이 만두 이야기는 옮겨서 게재하면 수업을 듣다가 다시 확인할 동기생들이 생길듯...너무 공부를 열심히 하는것은 좋은데 많은 사람들이 왜 갑자기 만두냐고 물어보면 할말이 없을것도 같음.ㅎㅎ 희진의 성의가 대단!
야간에 갑자기 만두가 먹고자파 글로써 허기를 달래려 그런것이 아닐런지요 ㅋㅋㅋㅋ
앗 ㅇㅅㅇ 넵!
윗 댓글이 맞지용ㅋㅋㅋ
ㅋㅋㅋ 어제부터 만두먹구싶어여 ㅋ
내일 만두 사주마 오너라. 주현이도 오후에 오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