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3일째 여전히 날씨가 좋다. 일행은 먼저 센다이 성터(靑葉城址)를 찾았다.
성은 허물어지고 성터만 남았지만 옛날의 웅장했던 자태를 짐작하게 했다.
미야기(宮城)번의 초대 藩主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 1567~1636)가 축조한 성이다.
다테 마사무네의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
다테 마사무네는 본래 명문가 출신이기도 하지만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츠의 동군에 가담했기 때문에 승리한 뒤 논공행상에서 공로을 인정 받아
62만석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이 것은 임진왜란 때 참전하여 그와 같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온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59만석이나 이웃한 아마가타 번주인 모가미 요시나가(最上義光)의
57만석보다 많은 영지를 받은 것이다.
仙台市는 인구가 100만명이 넘는 동북지방의 중심도시 답게 시가지가 잘 정비돼 있다.
다테 마사무네는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오른쪽 눈을 실명해서 獨眼龍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내려오다보니 다테 마사무네와 영부인의 캐리카츄어같은 것이 설치돼 있어 장난삼아 포즈를 취했다.
다테 마사무네의 세력이 대단했다는 것은 북해도의 노보리베츠(登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다테시대촌(伊達時代村)이 있었던 것으로도 증명이 된다. 여행중에 가보신 분도 많을듯 하다.
내친 김에 야마카다번의 번주 모가미 요시아키(最上義光 1546~1614)) 얘기를 해야겠다.
그는 다테 마사무네의 외숙이 되는 인물이지만 서로 愛憎의 관계로 지내다가 세키가하라전투 때
다테와 연합하여 서군의 우에스기 가케가츠(上杉景勝)을 격퇴함으로서 이에야쓰에게 공로를
인정 받아 야마가다번의 초대 번주(大名)가 되고 57만석의 영지를 차지하게 됐다.
이번 여행에선 야마가다현 관내를 많이 둘러봤는데, 모가미가와(最上川)이란 강 이름도
그의 이름(姓)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사실여부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이 번엔 가보지 못했지만 야마가다(山形)시의 가죠공원에는 모가미 요시아키의 동상이 있다고 한다.
이 날 오후에 돌아오는 길에 아키우(秋保) 폭포를 찾아갔다.
이 지역은 아키우온천(秋保溫泉)으로 유명한 곳이나 온천욕은 하지 못했다.
이 아키우 폭포는 높이가 55미터로 南紀의 나치폭포, 日光의 게곤노 다키(華嚴 폭포)에 이어
일본에서 세번째로 높은 폭포라고 한다.
끝으로 이 번 여행에서 관심을 끌게한 인물 마츠오 바쇼(松尾芭蕉)가 쓴 여행기
'오쿠로 가는 작은 길 (奥の細道)'이 우리 말로도 번역돼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인터넷으로
구매를 했더니 어제 집으로 배달돼 와서 대충 읽어보고 이 여행기를 쓰는데 참고를 했다.
2008년에 전남대 김정례 교수가 번역한 것인데, 바쇼의 여행기는 간단 간단하게 쓰여져 있고
가는 곳 마다 하이쿠를 남겼다. 그러나 하이쿠에는 문외한이라 대충 훑어보는 정도에 그쳤다.
하여간 이 번 여행을 통해 일본이 자랑하는 시인이자 여행가 한사람을 알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이상으로 3회에 걸친 센다이, 야마가타 여행기를 마칠까 한다. (2010.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