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그린 만다라
정끝별
눈이나 모래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다
어릴 적 나도 물로 그림을 그리곤 했다
티벳 승려들은 돌을 갈아 그 가루를 물들여 그림을 그린다
갈수록 좁아지는 대롱에 색색이 돌가루를 넣어 대롱 한끝 한끝에 숨을 불어넣는다
가시인 듯 촉수인 듯
대롱 끝에서 피어나는 다반사의 만화경
거기서 누군가 울고 있다 나도 때때로 눈물로 그림을 그린다 죽어가는 엄마를 요양병원에 두고 올 적 엄마 눈에 피었던 만단정회, 자주 와!
몇 명의 승려가 몇 날 며칠의 기도처럼 그려낸 그림은 그대로 쓸어 담겨 강물에 뿌려진다
돌가루에 숨을 불어, 없던 꽃을 피워냈으니
단숨에 쓸어, 없던 자리로 되돌려놓았으니, 그래 엄마!
눈이든 물이든 눈물이든
모래든 돌가루든 뼛가루든
고관절을 잃고 밤낮으로 기저귀에 그리는
오순이라는 오랜 이름의, 엄마가 그리는
— 《현대시》 2023.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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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 198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평론)로 당선.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은는이가』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모래는 뭐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