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의식(召命意識)
사람이 불만을 품고 화가 치밀어 오르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화가 난 사람을 두고 흔히 ‘뿔났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미켈란젤로의 작품〈모세>를 보면 모세의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나 있다. 어떻게 사람의 머리에 뿔이 날 수 있을까?
히브리어에서 ‘카란(qaran)’이라는 말은 ‘빛이 나다’라는 뜻과 함께 ‘뿔이 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성경 탈출기에서 모세가 시나이산에 올라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아 광야의 백성에게 돌아왔을 때, 모세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이 라틴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빛이 났다’는 표현이 ‘뿔이 났다’는 의미로 잘못 번역되었다. 그 결과 미켈란젤로는 모세의 머리에 뿔을 조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중세의 화가와 조각가들은 성경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최후의 만찬>이나〈천지 창조〉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어디에서 보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천장에 그려진 ‘천지 창조’ 벽화가 대리석 조각을 모자이크처럼 활용하여 표현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대리석에도 그렇게 다양한 색깔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모세는 영화〈십계〉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이다. 그의 삶을 돌아보면 참으로 흥미롭다. 모세는 본의 아니게 이집트 공주의 양아들이 되어 왕가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40년 동안 왕가의 법도와 삶을 배우며 성장했다. 그러나 40세가 넘어서면서 왕궁을 떠나야 했고, 정처 없이 광야를 걸었다. 그는 미디안 땅에서 이드로의 양치기가 되었고, 그의 딸과 결혼하여 평범한 삶을 살아갔다.
그리고 80세가 되었을 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새로운 삶의 길이 열린 것이다. 그 길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 백성을 이끌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일이었다. 모세는 다시 40년 동안 광야를 살아가며 히브리 백성을 이끌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12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모세의 삶을 보면 인생의 모든 시간이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왕궁에서 보낸 40년도, 광야에서 양을 치며 보낸 40년도, 백성을 이끌었던 마지막 40년도 결코 따로 떨어진 시간이 아니었다. 훗날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뜻과 사명을 품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각자에게는 저마다의 소명이 있다. 사람이 서로 다르듯 소명 또한 다르다. 어떤 사람은 병을 고치는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일을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정치를 하고, 누군가는 농사를 짓고, 누군가는 이름 없이 다른 사람을 돌보며 살아간다. 하는 일이 다르다고 해서 어느 삶이 더 귀하고 어느 삶이 덜 귀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각자 거룩하고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냇가에 놓인 돌 하나도 그저 아무 의미 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 역시 그저 우연히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나름의 몫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몫이 하늘이 우리에게 맡긴 사명이며, 우리가 살아가야 할 소명이다.
결국 인생은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삶의 과정에서 내게 주어진 소명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을 다한 뒤 하늘의 부르심을 받아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 내가 서 있는 자리도 결코 하찮은 자리가 아니다. 지금의 시간이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그것이 소명의식으로 살아가는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