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고한 마음
예수님은 오늘 한 배를 타고 있는 제자들만을 대상으로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싶으셨으나, 제자들의 영적인 깨달음이 아직도 수준에 미치지 않아, 앞서 행하신 빵의 기적 이야기를 되짚어 그 의미를 다시금 일깨우시는 것으로 만족하시는 듯합니다.
예수님 보시기에 제자들은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함으로써 믿음이 없음을 드러냈던 (어제 복음의) 바리사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너희 마음이 그렇게 완고하냐?”
본디 예수님은 오늘 미래의 지상 교회를 책임질 제자들을 위한 교육 주제로 누룩을 선택하셨던 것 같습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누룩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술을 만드는 효소를 지닌 곰팡이를 곡류에 번식시켜 만든 발효제를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누룩은 술보다는 빵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반죽을 부풀게 하는 효모(酵母)를 말하며, 비유적으로는 부패와 타락의 뿌리를 가리키곤 합니다(1코린 5,6-8; 갈라 5,9).
이스라엘 백성이 파스카 축제 때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탈출 13,3-10). 따라서 여기서 누룩은 마땅히 경계하거나 마다해야 할 요소로 이해됩니다.
율법과 전통 준수에 집착한 나머지 교만과 위선을 일삼았던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친(親)로마 세력으로서 정치적 이권 추구와 포악함의 대명사였던 헤로데의 누룩은 문맥상 예수님께 대한 악의를 상징합니다.
당신의 말씀과 행적으로 제자들에게 당신 사명의 참된 의미를 보여주시고 그들을 그 사명에 참여시키려고 애쓰시는 스승 예수님의 노력에 역행할 경우, 제자들도 그러한 악의에 빠질 위험이 있음을 가르치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스승님의 가르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 개밖에 없던 빵에 묶여 있습니다. 더욱이 스승님이 누룩을 말씀하시니, 제자들의 걱정은 누룩처럼 더 부풀어 오릅니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거의 가진 것 없는 상태에서 한 번은 오천 명을, 또 한 번은 사천 명을 배불리 먹인 사건이 엊그제 펼쳐졌는데, 아직도 세속적인 걱정에 젖어 있던 제자들, 타고 있는 배 안에는 분명 주님이 함께하고 계신데도 아직도 믿음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제자들을 향해, 빵의 기적 이야기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우십니다.
기적 또는 표징은 믿음을 견고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대원칙, 주님과 함께라면 아무것도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것이 없다는 대원칙을 각인시켜 주십니다.
돌이켜 보면, 오늘 믿음 문제로 예수님으로부터 질책을 받고 있는 제자들의 이 수치스러운 모습은, 배 안에 다른 사람은 없었으니 제자들이 비밀에 부치기로 합의했다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지워버리고 싶은 이 사건을 전하면서, 마음이 완고하여 그토록 믿음이 부족했던 우리가 복음 전파자로 나설 수 있는 데에는, 사랑과 인내를 기반으로 한 스승님의 참교육 덕분이었음을 소리 높여 외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면서 늘 죄송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도로서의 사명 수행에 최선을 다해 나갔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도 주님과 함께라면 두려울 것도, 걱정할 것도 없다는 믿음으로 지금까지 걸어온 이 길을 열심히 걸어 나가는 소중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댓글 주님과 함께라면 두려울 것도, 걱정할 것도 없다는 믿음으로...
아멘.